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57)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57화(57/353)
☆ 제57화 ☆
익시온과 아레스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나 역시 뜨끔한 얼굴로 집사를 바라봤다.
[그것 보십시오! 제가 뭐라 했습니까!] [위험하다고 어떤 식으로든 엮이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보다 쟤를 더 잘생겼다 할 때부터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마지막 말은 좀 쓸데없는 소리 같은데.
그리고 걔가 아닐 수도 있잖아.
99.9퍼센트 걔일 거 같지만,
암튼 아닐 수도 있어.
제발요.
* * *
밤공기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날이 제법 따뜻해진 덕분에 정원에는 파릇한 새싹이 돋아 있었다.
하지만 날 안고 있는 아빠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파삭거리는 소리가 났다.
발아래 잔디가 얼어붙은 탓이다.
때아닌 서리의 원인은 명료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 냉기의 진원지를 바라보았다.
쩌적!
거친 소리와 함께 땅에서 빙벽이 튀어 올랐다.
아무리 검을 휘둘러 봤자 벨 수 없을 정도로 두꺼운 얼음벽이었다.
하지만 오러를 두른 검은 단번에 벽을 가르고 그 너머로 쇄도했다.
날카로운 검 끝이 금방이라도 습격자의 머리를 꿸 듯했다.
하지만.
울컥, 기사의 입술을 타고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아까 경매장에서 봤던 모습과 똑같았다.
진탕한 속 때문에 토혈까지 하면서도 기사는 검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침입자를 향해 더 강하게 진각을 내디뎠다.
그러나 각혈하는 순간의 공백이 찰나의 틈을 만들었고, 새로운 얼음벽이 검 끝을 막아섰다.
“그만.”
아빠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이 소란스러운 전투 속에서 들리지도 않을 것 같았는데, 침 입자를 상대하던 기사들이 훌쩍 뒤로 물러났다.
순식간에 침입자를 중심으로 원을 그려 포위하는 모양새가 됐다.
그리고 그 포위망 한가운데에는…….
‘하,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아까 경매장에서 봤던 그 남자애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지 마라.”
오빠들이 포위망으로 다가가려 하자 아빠가 막았다.
“경매장에서 독을 쓴 건 저 녀석일 거다.”
“……저놈의 이능이군요. 하지만 독을 이능으로 쓸 수 있다는 건 처음 듣습니다.”
“쓸 수 없는 게 정상이지.”
“한 사람이 두 가지의 능력을 쓰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래.”
아빠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경매장에서 저 녀석의 능력을 선보이기 위해 구속구의 제어를 풀었다고 들었는데.”
“예, 그땐 창살을 극한까지 어려 부수는 걸로 시선을 끌면서, 바닥을 통해 몰래 사회자를 공격했습니다.”
“머리가 좋군.”
아빠가 짧게 감탄하며 이어 말했다.
“사회자를 공격한 것 역시의 심을 피하기 위한 방편일 뿐이었어. 진짜는 독이었겠지.”
나는 아빠의 설명에 입을 벌렸다.
제어가 풀어진 그 짧은 순간 창살을 부수고 사회자를 공격하는 것으로 주의를 분산시키면서, 은밀하게 맹독으로 진짜 공격을 했다니.
더블 블러핑.
‘아직 어린애인데.’
능력도 굉장하고 머리도 비상했다.
[거 봐요! 제가 위험하다고 했죠?]그래그래, 너 잘났다.
나는 흐린 눈으로 알림창을 넘겼다.
이러나저러나 눈앞의 남자애는 아직 작은 아이였다.
취급이 좋지 않았는지 드러난 곳에만 해도 멍과 피딱지가 잔뜩 맺혀 있었다.
옷은 다 해졌고 거기다 맨발.
얼음이 낀 잔디 위에서 있는 발은 발갛게 얼어 있었다.
아무리 특별한 능력을 쓴다고 해도 어린애가 맨발로 경매장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는 것만 해도 고된 일이었을 거다.
그때, 그 남자애랑 내 눈이 마주쳤다.
“……!”
찰나였다.
곧 그 애는 시선을 돌리며 얼음으로 만든 창을 바투 쥐었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눈은 마치一.
그 순간, 새까만 마기가 별빛을 가렸다.
검고 거대한 새가 날개를 활짝 펴 하늘을 뒤덮은 것만 같은 광경.
상공에 펼쳐진 장대한 힘은 재해처럼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그 재해와도 같은 힘이 그 아이를 향해 뚝 떨어져 내렸다.
쩌적! 쩍!
해일처럼 일어난 빙벽이 그 앞을 막아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콰과과과과과!
날카롭게 벼려진 마기가 쌓이고 쌓이는 빙벽을 꿰뚫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의 팔과 다리, 옆구리에서 붉은 피가 튀었다.
하지만 그 격렬한 사투보다도 다른 것이 아직도 내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텅 빈, 그 아이의 눈동자.
‘……이상해.’
저 아이는 왜 여기에 온 걸까.
저런 힘이면 어디든 갈 수 있었을 텐데.
여기에 와서 공격해봤자 결국엔…….
아이는 고군분투했지만, 곧 한계가 찾아왔다.
아빠는 나를 안은 채 손 한 번 까딱하지 않고 그 아이를 제압했다.
콰악! 쾅!
뾰족하게 날을 세운 마기에 팔다리가 잡힌 채 아이는 허공에 꿰였다.
‘역시 이상해.’
그렇게 생각하는데 찌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드니 아빠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응? 뭐지?’
갑자기 왜 이러시는 눈만 껌뻑껌뻑이고 있으니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여, 역시 각하십니다.”
“손 한 번 안 대시고 처리하시다니. 각하의 강함에 다시금 감탄했습니다.”
기사 아저씨들 열심히 사회 생활하는구나.
아빠도 참.
아부 들었으면 뭐라도 한 마디 해주지 왜 자꾸 나만 쳐다본담?
이래서 날 때부터 갑이었던 사람은 안돼.
눈치가 없다니까?
“그, 그렇지 않습니까, 아가씨?”
그런데 갑자기 화살이 내게 향했다.
돌아보니 기사단장 아저씨가 눈물 대신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제발 그렇다고 대답해주세요!’
그런 말이 절절히 느껴지는 시선이었다.
아, 눈치 없는 거 아빠가 아니라 나였구나.
“으응……. 우리 아빠 차암 멋지다아…….”
내 떨떠름한 반응에도 만족했는지 아빠가 눈을 번뜩였다.
“내 딸이 나 보고 멋지다는군.”
“당연히 그렇겠지요! 각하의 무위야 말할 것도 없고, 아가씨께서는 워낙 각하를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그런가? 난 잘 모르겠는데.”
“항상 각하를 보면 안아달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당연히 좋아하시는 거지요!”
일절만 해라, 일절만.
그제야 아빠는 고개를 돌려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누구의 사주냐.”
“…….”
아이는 어떤 반응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아까 그렇게 싸웠던 게 거짓말처럼 반항 한 번 하지 않는다.
보랏빛 눈동자는 여전히 까맣게 죽어 있었다.
“다시 한번 묻지. 왜 이곳을 습격했지?”
여전히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 순간, 그 애의 팔을 붙들고 있던 마기가 훅 부피를 줄였다가 확장하며 요동쳤다.
“……!”
안 그래도 창백했던 소년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졌다.
크게 열린 그의 눈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말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애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면서도 신음 한 번 내지 않았다.
대신 죽어있던 눈동자에 초점이 생기며 무언가가 떠올랐다.
하지만 거기에 담긴 것은 분노나 반항심, 적대감 따위가 아니었다.
“입을 안 열 놈이군.”
그건 이제 드디어 끝낼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조금 귀찮아질 뿐, 이 녀석에게 꼭 들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아빠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리는 가운데.
나는 드디어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든 갈 수 있게 된 아이가 굳이 이곳에 찾아온 이유.
저 아이는 여기에一.
“감히 내 성에 침입한 책임은 져.”
‘一죽으러 온 거야.’
왜?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해질 뿐.
죽고 싶어서, 자길 죽여줄 상대가 있는 곳으로 왔다.
이렇게 작은 아이가.
‘위험하다고?’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저 지경이 된 어린애가?
손 마디가 아팠다.
그제야 나는 내가 얼마나 주먹을 꽉 쥐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때.
별빛마저 삼키는 새까만 마기가 허공에서 뒤엉키며 거대한 창이 되었다.
그 모습에 절로 소름이 돋았다.
나에게는 밤으로 만든 이불처럼 편안하고 다정했던 그 기운이 어쩌면 이토록 흉포하고 잔혹하게 몰아칠 수 있을까.
그 예리한 살의가 그대로 자그마한 아이에게 내리꽂히려는 순간,
“안돼!”
나도 모르게 아빠의 팔을 잡아당겼다.
우뚝.
마기가 아이의 미간 앞에서 소리 없이 멈췄다.
“죽이지 마!”
아빠는 다소 난감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루루, 저 애는 공작성을 습격했다. 그에 따라 마땅한 벌을 받아야 해.”
나는 고집스레 입술을 다물었다.
나도 이게 어린애 같은 생떼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애를 바라봤다.
“기사 아저씨들이 독에 당했는데 죽지 않았어. 일부러 그런 거야?”
그 애는 대답하지 않고 외면 하듯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게 답이 되었다.
‘일부러 그랬구나.’
그러고 보니 경매장에서도 손님들은 멀쩡했다.
노예를 살 생각으로 온 사람들도 솔직히 죽어도 별 상관없지만, 경매장엔 그런 사람만 있었던 게 아니다.
모험가나 신기한 물건 수집가들도 많았고, 나처럼 호기심에 한 번 구경 온 사람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이 아이를 사려고 했던 사람들.
쉼 없이 올라가던 숫자와 뜨거웠던 광기.
자그마한 아이를 향하던 욕망 가득한 시선.
그 경험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으리라.
그들을 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그리고 이 애한테는 그 사람들을 전부 죽일 힘이 있었다.
‘하지만 죽이지 않았어.’
사람의 본성은 거대한 힘을 쥐여주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하지만 이 아이는 그 강한 힘으로, 고작 한다는 게 죽으러 오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애가 위험할 수 있어.’
적어도 지금 당장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이고 세계를 멸망시킬 아이는 아니다.
“아가씨, 아가씨께서 얼마나 착한 심성을 가지고 계신지는 잘 알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어리다고 동정심을 가져선 안 됩니다. 저자는 공작성의 습격범입니다!”
기사 아저씨들이 외치는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들어와서 마구잡이로 사람을 해친 것도 아니야. 기사 아저씨 말고 병사나 평범한 고용인들은 단번에 죽일 수 있었어. 하지만 아무도 안 죽었어.”
“그렇다고 해도 습격한 사실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아가씨께선 일단 들어가 계시죠. 아무래도 오늘 일은 아직 어린 아가씨껜一.”
“내 노예잖아!”
헉.
내가 말하고서도 놀랐다.
말린다는 게 너무 아무 말이나 나와버렸다.
하지만 내 말에 계속해서 반박하던 기사들이 움찔했다.
토, 통하는 건가?
“내, 내 노예니까 벌을 주는 것도 내가 할 거야.”
그러자 기사들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더 커다란 산이 남았다.
“네가 왜 이것의 주인이야.”
익시온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얼굴을 찡그린 채 말했다.
“내가 100억 주고 낙찰받았잖아.”
“하지만 정작 돈은 내지 않았지.”
아레스마저 익시온에게 가세했다.
“그래도 내 꺼야. 돈 받을 사람이 죽어버려서 못 낸 것뿐인걸.”
궤변이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나는 애써 배를 쑥 내밀며 당당하게 말했다.
“내 노예니까 처분도 내가 결정해야지. 노예는 온전히 주인의 소유니까.”
그러자 아빠가 턱을 느릿하게 쓸었다.
“그건 네 권리고 난 너를 무시하지 않으니 물러날 수밖에 없구나.”
“고마워요, 아빠.”
뭔가 이유가 쑥스러워서 나는 괜히 손을 꼼지락했다.
이 가문의 주인인 아빠가 내 권리를 인정했으니 더 이상 아무도 나를 막지 못했다.
아빠 가슴을 탁탁 두들기자 아빠가 나를 땅에 내려주었다.
나는 허공에 매여있는 그 아이의 앞에 섰다.
“갈 곳이 없는 거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어?
그래서 죽으러 온 거야?
이 애는 겨우 내 또래인데 얼마나 많은 절망을 맛본 걸까.
‘이능력이 있다고 해서 정신적으로 성숙한 건 아냐.’
노예로 팔리게 된 데까지는 사정이 있을 거다.
무작정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해도 아직 내 또래의 어린아이.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게 정상이다.
무작정 해방됐다며 희망을 갖기엔 이 아이가 겪었던 일들이 너무 잔혹했던 거겠지.
“그럼 여기서 벌을 받아.”
습격에 대한 죄를 치르고 자의든 타의든 또 살다 보면 뭔가 생각나기 마련이다.
“다만 세 가지를 지켜야 해. 그렇지 않으면 바로 널 죽이라고 명할 거야.”
나는 손가락을 세 개 폈다.
“첫째, 우리 가족에게 해가 되지 말 것.”
이에 대한 반응은 다른 곳에서 튀어나왔다.
“저 녀석은 내게 해가 될 수 없다고.”
“내가 다칠까 걱정해 주는구나. 기뻐.”
“들었나? 내 딸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
나는 세 사람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둘째, 우리 가문 사람과 공작 성에 오가는 사람을 해치지 말 것.”
이에 대한 반응 역시도 다른 곳에서 나왔다.
“아가씨! 저희를 챙겨주시다니……!”
“우리 아가씨는 천사신가?”
나는 웅성거리는 기사들을 무시했다.
“그리고 마지막. 이게 가장 중요해.”
나는 하나 남은 손가락을 꼿꼿이 들며 눈빛을 날카롭게 빛냈다.
그리고 엄히 말했다.
“나한테 집착하지 말 것.”
“…….”
다 죽은 눈으로 나를 보던 남자애의 표정이 처음으로 이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