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59)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59화(59/353)
☆ 제59화 ☆
* * *
나는 일단 감옥에서 나와 내 방으로 돌아왔다.
바로 아키투스를 꺼내려고 하는데, 어느새 시곗바늘이 세 시를 가리키려 했다.
‘아, 맞다. 회의!’
우선 일부터 하고 와야겠다.
나는 곧바로 집무실로 향했다.
“아가씨! 종을 들이셨다면서요!”
집무실 문을 열자 디에르 자작이 울망울망한 눈으로 내게 물었다.
“응, 뭐.”
요즘 왜 이리 다 큰 남자들의 울망울망을 많이 보게 되는 거지.
자라나는 새싹인 내 정신 건강에 안 좋다구.
“그래도 아가씨의 첫 번째 종은 접니다, 저!”
“그럼 그만 떠들고 어서 일 해!”
“흑, 너무해. 하지만 그런 아가가씨도 멋져요.”
“…….”
벌써 지친다.
내 주변은 왜 이러지?
“원로원은 어떻게 되었어?”
칸도르 백작이 내 물음에 고개를 숙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음 달 초에 개최될 원로원 수장 투표에서 완전히 결판내겠습니다.”
“그냥 이겨선 안 돼. 압승해야 해.”
“당연한 말씀을.”
칸도르 백작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디에르 아저씨 쪽은?”
“상단 설립은 마무리 단계입니다. 모든 법적인 절차는 마무리되었고, 인력 선별만 되면 끝입니다. 자세한 건 이 보고서를 보시죠.”
“응, 그럼 이 이후는 가장 중요한 검은 황금 생산인데…….”
“걱정 마십시오. 생산 라인에서 철저히 기밀을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슬슬 타 대륙 어디에서 검은 황금을 들여오는지 서류를 꾸밀 차례네.”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야지.
“예, 그쪽은 공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준비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회의는 그간의 진척 상황과 앞으로 진행할 일을 점검하는 자리라 시간이 크게 걸리지 않았다.
보고서를 보며 피드백을 한 후, 나는 양 팔꿈치를 처억 테이블 위에 얹었다.
“그래서, 내 노예에 관한 거는 좀 알아 왔어?”
나는 두 사람에게 그 애에 관해 아무 명령도 하지 않았다.
그럴 시간도 없고 정신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 일 잘하는 사람이 좋다니까.
“그는 이능을 행할 수 있는 ‘권능자’입니다. 하지만 특이한 점은 동시에 두 가지 이능을 지녔다는 겁니다.”
“심지어 이능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알려진 독을 씁니다.”
“가장 이상한 점은 에테르 수치가 모두 지극히 평범하다는 거죠.”
“평범하다고?”
“수치만 보면 절대 이능을 사용할 수 없어요. 그것도 두 개나 사용하려면 에테르 수치가 다른 권능자보다도 훨씬 높게 나와야 합니다.”
마법사에게 마나가, 소드마스터에게 오러가, 신관에게는 신성력이 있듯, 권능자에게는 에테르가 있다.
에테르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힘으로 평범한 인간에게도 존재한다.
다만 권능자에게는 유독 높게 나타나서, 에테르가 그 이능의 근원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신관이 강할수록 보유하고 있는 신성력이 많듯, 권능이 강할수록 에테르를 많이 지녔다고 한다.
“어쨌거나 가지고 있는 능력에도 특이한 점이 한둘이 아니라는 거네.”
“그렇습니다.”
“그 애가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는 알아? 일단 시간부터가 말이 안 되는데.”
“경매장에 있던 말을 갈취해서 타고 온 겁니다.”
그렇게 어린데 말을?
하긴, 이건 다른 것에 비하면 놀랄 게 아니다.
“왜 공작성에 왔는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건, 아마 이곳 사람들이라면 자기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겠지.
“신원은 파악했어?”
“죄송합니다. 아직 파악 중입니다만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우선 아스탈에 어떻게 팔려 왔는지부터가 오리무중입니다.”
끄응.
정체에 대한 실마리라도 없으니 난감하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역시 이 경우라면 그건가.
“혹시 망국의 왕자인 거 아니야?”
“예?”
“아님 타 대륙 황자라거나?”
로판 세계의 설정값을 볼 때 이것밖에 없잖아.
엄청난 미모+특별한 능력+밝혀지지 않는 비밀.
‘이 삼박자인데 출생의 비밀이 빠질 순 없지!’
그런데 두 사람의 반응이 이상했다.
“아니, 왜 왕자나 황자씩이나 되는 사람이 암시장 경매에 나서 옵니까.”
“아가씨는 가끔 보면 참 말도 안 되는 소릴 하신다니까요.”
그, 그럴 수도 있지!
“보통은 혈연이나 정치적 이슈가 있는 다른 나라에서 망명을 받아주겠죠.”
“적군에게 잡히면 암시장 노예로 나오는 게 아니라 전쟁 포로가 될 거고요. 아님 그냥 죽는다거나.”
“그리고 요즘 망하는 나라는 다 몬스터 때문이지 국가 분쟁 때문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죠. 타국에선 영토를 먹기 위해서라도 왕족을 받아줄 겁니다.”
“타국으로 망명을 안 갔다고 해도 저런 능력을 가진 왕자가 몬스터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고 노예로 팔려 오지도 않을 거 고요.”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었다.
쳇.
나는 입술을 비죽였다.
로망이 없어, 이 인간들은.
* * *
그 애에 관한 정보는 별 소득이 없었지만, 그래도 나의 유전 사업에는 꽤 진척이 있었다.
나는 집무실을 나서며 두 사람을 치하했다.
“둘 다 고생 많았어. 덕분에 내 일이 확 줄었네.”
“아이는 잘 노는 것도 일이니까요. 날이 많이 풀렸으니 밖에서 노세요. 제 아들 녀석도 공녀님을 보고 싶어 합니다.”
“아, 그럼 언제 한 번 오빠를 초대해야겠다.”
오빠의 정체는 공작성에 커다란 소동을 불러일으켰다.
다행히 우호적인 방향이었다.
보통 님프는 가슴 설레는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니까.
최근 고용인들 사이에서는 〈까칠 백작과 물의 요정님〉이라는 소설이 비밀리에 거래된다고 한다.
당연히 소설은 해피엔딩이라고.
‘역시 이곳 소설의 제목은 K-로판을 따라오지 못했군.’
정체를 숨긴 채 폭군을 꼬셔 버렸다, 정도는 되어야지.
“아가씨, 저도 아가씨랑 놀고 싶어요.”
“안돼.”
단호하게 거절하자 디에르 자작이 낑낑거리며 조르기 시작했다.
“너무해. 아가씨는 저한테만 차가워요. 제 덕에 일이 줄었다고 하셨잖아요.”
“뭐 하고 놀 건데?”
“아가씨 머리一.”
“머리카락을 마흔아홉 갈래로 땋느니 뭐니 하면 진짜 화낼 거야.”
“그럼 서른아홉 갈래는……?”
나는 대답 대신 그를 벌레 보듯 바라봤다.
“그런 아가씨의 시선을 볼 수 있는 건 저뿐일 거예요! 역시 저는 아가씨의 첫 번째 종이니까!”
그래도 좋다며 디에르 자작이 꺄르륵거리는 때였다.
“아가씨, 그, 아가씨의 노예가 아가씨를 찾고 있습니다.”
기사 아저씨가 와서 말했다.
“걔가 나를?”
무슨 일이지?
걸음을 옮기는데 디에르 자작이 나를 붙잡았다.
“지, 지금 주인님 찾는다고 그놈한테 바로 가시는 거예요?”
“아니, 그럼 어떡해. 지금 상황이一.”
“저랑은 요즘 간식도 잘 안 드시면서! 간식 사와도 ‘놓고 가’하고 말면서!”
하.
“노예라면 아가씨 곁에서 시중도 들고, 아가씨 머리도 땋아 주겠죠?”
아니, 안 땋아.
감옥에 갇혀 있어.
아저씨도 감옥에 처넣어줄까?
그때, 칸도르 백작이 침착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공녀님, 제가 함께 가도 괜찮겠습니까? 직접 보면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릅니다.”
오오, 역시 할부지야.
나의 빛과 소금, 정상인!
“그래, 같이 가자.”
“저, 저도 갈래요!”
“좋아.”
허락에 기뻐하는 디에르 자작을 보며 나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디에르 아저씨 조심해.
아저씨는 감옥 구경하다가 그대로 감옥에 들어가는 수가 있어.
* * *
아까와 달리 그 애는 일어나 서 있었다.
‘아직 앉아 있는 것도 힘들 텐데.’
옆에서 디에르 자작과 칸도르 백작이 속삭였다.
“와, 듣긴 했지만 정말 아름답게 생긴 소년이네요. 능력 때문이 아니라 얼굴 때문에 경매장에 나온 것 같아요.”
“확실히 아가씨께서 망국의 왕자 운운하신 게 이해 갑니다. 그런 낭만 소설의 주인공 같은 모습이긴 하군요.”
아니, 나는 설정값을 보고 합리적으로 판단한 건데.
나는 입을 비죽였다.
얼굴은 자잘한 상처로 엉망에 입술엔 피딱지까지 앉아 있지만, 그래도 그 애는 아름다웠다.
그 가운데 상처 입은 들짐승처럼 경계심이 가득한 눈이 나를 노려보았다.
“이제 나를 어쩔 생각이지?”
“공작성을 습격한 벌을 줄 거라고 했잖아. 그새 잊었어?”
그 애는 전혀 믿지 않는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그리고, 너.”
나는 제법 오만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말이 짧네?”
“…….”
도와줘요, 악녀 언니들!
그간 고구마라며 욕해서 미안해!
“너는 내 노예야. 내 소유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인에 대한 예의는 갖춰야지?”
으득, 이 가는 소리가 살벌했다.
악녀 언니들의 가호가 통했나 보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귀족가 딸이 노예 놀이를 하고 싶은가 본데, 난 거기 어울려줄 생각 따윈 없어.”
“네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 내 생각이 중요한 거지.”
“공작성을 습격한 죄라면 내 목숨으로 지불하지.”
“그게 네가 바라는 거야?”
“…….”
나는 피식 웃으며 그 애를 내려다봤다.
“사람한테 부탁을 하려면 공손하게 하는 게 어때?”
“…….”
“아님 뭐, 세상물정 모르는 귀족가 딸내미의 노예 놀이에 동참 좀 하든가.”
그 애의 눈빛이 번뜩였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넌 제법 쓸 만하니 살육 인형으로 만드는 것도 재밌겠지. 아님 예쁘장한 얼굴이니 남들이 부러워하도록 시중을 들게 해도 괜찮겠어.”
고요히 분노하는 그 애의 얼굴을 보며 나는 생긋 미소 졌다.
“죽지도 못하게 한 채 평생 너를 내 마음대로 부리는 건 아주 쉬운 일이야.”
“……그냥 나를, 죽여주십시오.”
으드득, 이 가는 소리가 살벌했지만 어쨌든 내 말대로 공손해지긴 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이왕이면 주인에 대한 예를 갖춰서.”
“……주인님.”
좋아.
일단 이걸로 나에 대한 정은 완전히 뚝 떨어졌을 테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나한테 집착하지 않을 거야!’
그럼 다음은一.
앞일을 생각하는데 뒤에서 수군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우리 아가씨께서는 연치도 어리신데 카리스마가……!”
“누가 아가씨께서 저놈에게 말랑하게 굴 거라고 걱정했어! 저리 똑 부러지시는데!”
“패왕! 우리 아가씨는 패왕이시다!”
“…….”
제발 닥쳐요, 기사 아저씨들.
얘 표정이 점점 이상해지잖아요.
디에르 아저씨는 그만 울먹대고!
“크홈……!”
나는 헛기침으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너무 허약해 보여서 이대로 벌줘봤자 재미없겠어. 어떤 벌을 받을지 거기서 기대하고 있으라고.”
나는 그대로 몸을 돌리려다가 멈칫했다.
“근데 너, 이름이 뭐야?”
“……그딴 거 없어……요.”
알려주기 싫다는 건가?
아니면…….
‘혹시 예전의 나처럼 이름을 모르거나 없는 걸까.’
가슴이 지끈거렸다.
“……그래.”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지하 감옥을 나왔다.
컴컴한 감옥과 달리 바깥은 눈부신 햇살이 가득했다.
“아, 아, 아가씨!”
디에르 자작이 부르르 떨며 울멍울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으, 안 좋은 예감.
“저도 아가씨를 주인님이라고 부를래요!”
윽.
왜 안 좋은 예감은 항상 빗나가질 않는 걸까?
순간적으로 메이드복을 입은 채 “주인님!”하고 나를 부르는 디에르 자작이 눈앞을 채웠다.
“진짜 싫어. 최악이야.”
“너, 너무해……!”
디에르 자작이 눈물을 흩뿌리며 달려갔다.
“앗, 그렇게까지 말할 건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뒤늦게 손을 뻗었지만 이미 디에르 자작은 저 멀리로 멀어진 후였다.
디에르 아저씨, 다음 회의 때 분명 삐져서 난리 칠 텐데 그걸 또 어떻게 받아준담?
“공녀님도 참 고생이십니다.”
칸도르 백작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감격해서 그를 올려다봤다.
“할부지가 정상인이라서 참 다행이야.”
나의 소중한 정상인 친구!
반짝이는 눈으로 칸도르 백작을 바라보자 그가 마주 미소 지었다.
저 믿음직스러운 미소를 보라!
“그런데 요즘에는 그림은 안 보내주십니까?”
“…….”
다 나가.
나 혼자 있을래.
* * *
나는 방으로 돌아와서 아키투스를 꺼내 들었다.
지체할 이유가 뭐 있겠는가.
그 아이가 속에서 무럭무럭 복수심을 키우기 전에 말랑하게 풀어줘야 한다.
“소설 소환!”
[소환할 〈소설〉을 말씀해주십시오.]“〈사람 잘못 보셨어요, 공작님!〉 아마, 음. 50화부터 70화까지?”
[소설 독자답지 않은 요청입니다.]네?
[소설은 전개를 따라가며 읽어야 합니다.] [1화부터 순차적으로 소환해야 합니다.]아니, 이미 다 읽은 거라고!
[1화부터 결제를 시작합니다.]야!
☆ 제60화 ☆
아키투스가 빛나며 저절로 책이 열렸다.
페이지가 넘어가며 이전에 있던 글자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글자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캐시를 사용해〈사람 잘못 보셨어요, 공작님!〉을 1화부터 70화까지 소환했습니다.]“허허허…….”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나는 소환이 끝난 아키투스의 페이지를 넘겼다.
다행히 내가 원하는 능력은 딱 70화에 있었다.
이걸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50화였으면 피눈물이 났을 테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튼 드디어 레벨업해서 얻은 새로운 기능을 쓸 수 있겠다!’
장착한 능력 해제하기.
그 말은 곧바로 새로운 능력을 뽑아 장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능력 장착 해제!”
[캐시가 부족합니다.]여기에도 캐시가 드는 거였어?
세상에 공짜는 없구나, 흑.
나는 우선 보유 캐시를 확인했다.
– 보유 캐시: 1100캐시, 5000캐시 뽑기권(x2), 3000캐시 뽑기권(x2), 2000캐시 뽑기권, 1000캐시 뽑기권
그간 캐시 뽑기권이 많이 쌓여 있었다.
음, 이걸 다 뽑아버릴까?
아니야. 일단 오늘은 한 놈만 팬다.
“5000캐시 뽑기권 한 장 뽑을래.”
내 운을 분산시키지 않고 이 한 장에 집중한다!
그러니 제발……!
[5000캐시 뽑기권을 사용합니다.] [축하합니다!] [5000캐시 당첨!]지, 진짜야?
운을 집중한다고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 완벽하게 5000캐시가 나올 줄이야!
뭔가 느낌이 좋다.
조금 더 돌리고 싶은 마음을 참고 일단 능력부터 갈기로 했다.
[캐시를 사용해 장착한 능력을 해제합니다.] [해제하고 싶은 능력을 말씀해 주십시오.]‘마음 같아선 〈콜록콜록, 왈칵!〉이지만.’
패시브라 해제 못 하니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세금 폭탄을 맞아라!〉”
사실 이것보다는 〈없었는데요, 있었습니다〉를 해제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이건 당장 사용할 일이 없을 게 확실하니까.
하지만 워낙 좋은 능력이다 보니 걱정이 됐다.
‘혹시 장착 해제한 능력이 그대로 사라질 수도 있잖아.’
능력 보관함이 해금되었다는 메시지가 있었지만, 그 보관함이 어떤 제약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5000캐시를 사용해 능력 〈세금 폭탄을 맞아라!〉를 장착 해제합니다.]아키투스 표지의 크리스탈 하트에서 스르륵 빛이 흘러나왔다.
그 빛은 이내 날개 달린 하트 크리스탈의 모습이 되었다.
나는 그걸 손에 잡고 고민했다.
보관해도 괜찮겠지?
“능력 보관함에 보관할래.”
[능력 〈세금 폭탄을 맞아라!〉를 능력 보관함에 보관합니다.]알림과 동시에 내 앞에 새로운 창이 생겼다.
‘아이템 창 때랑 비슷한데?’
그렇게 생각하며 크리스탈 하트를 창에 가져다 대자 창에 스며들었다.
창에 뜬 하트 그림에 손을 뻗자 다시 내 손에 잡혔다.
‘좋아, 딱히 아무 제약도 없구나.’
아무렴 해제하는 데만 5000캐시나 들었는데 잘 되어야지!
나는 다시 보관함에 하트를 넣고 아키투스를 펼쳤다.
‘그럼 이제 능력을 뽑을 때지!’
[특성 〈러시 앤 캐시〉를 사용해 〈소설〉 속 여주인공의 능력을 추출합니다.]펼쳐진 책에서부터 작은 모래 알갱이 같은 빛무리가 흘러나왔다.
이윽고 빛의 알갱이들이 나뉘고 합쳐지며 두 개의 크리스탈이 되었다.
‘아, 맞다. 지금 소환할 수 있는 능력 개수가 총 다섯 개였지.’
세 개를 소환하고 있으니 능력이 이렇게 적게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제발 이 둘 중의 하나는 내가 원하는 능력이어야 할 텐데……!’
불안을 누르며 나는 그 중 하나를 골랐다.
[능력 〈나를 잊으세요〉를 선택하셨습니다.]나를 잊으세요……?
이 여주 언니한테 기억상실 능력은 없었는데?
대체 능력 이름을 누가 짓는 건지 이것만 봐서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능력을 창작합니다.]내 손에서 날아오른 하트 크리스탈이 날아오르더니 장착을 해제하며 투명해졌던 표지의 하트에 스몄다.
다시 모든 하트가 붉게 물들었다.
[능력〈나를 잊으세요〉]– 공감 글귀:
‘다시는 속이고 도망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나는 주먹을 꾹 쥐었다.
하지만 결심을 바꾸진 않았다.
‘공작님을 위해서예요.’
그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나에겐 이 방법밖에 없다.
‘없어진 나를 보고 화내세요. 또 도망갔냐고 욕하고, 역시 믿을 수 없다고 소리치고 그다음 엔…….’
나는 비어져 나오는 눈물을 삼키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를 잊으세요.’
이번에야말로 가장 완벽한 둔갑을 할 때다.
‘와, 전에 이거 읽으면서 진짜 고구마라고 가슴 쳤는데.’
지금 봐도 저 장면은 대고구마였다.
‘심지어 당연히 남주한테 들킬 줄 알았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남주는 바로 코앞에서 여주를 보고도 못 알아챈다.
물론 덕분에 돌아버린 남주가 이러저러한 추노 작전을 펼치는 게 팝콘각이지만.
〈사람 잘못 보셨어요, 공작님!〉의 여주인공이 눈물지으며 결심했던 순간입니다.
그녀는 완벽하게 모습을 바꾸어 주는 마법 아이템으로 남주의 눈을 피했습니다.
이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전적으로 독자님의 재량에 달려 있습니다.
– 능력 효과: 환상을 통해 한 시간 동안 모습을 원하는 대로 바꿉니다.
– 사용 가능 횟수: 0/10
‘좋아. 내가 원하던 능력이야!’
고구마로 목 막히게 하던 장면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어쨌든 기분이 좋았다.
능력도 제대로 뽑았고, 장착했던 능력을 다 쓰지 않고 새 능력을 뽑았고!
‘그럼 이제 남은 건 그 아이한테 가는 건가.’
나는 아키투스를 침대 옆 협탁에 집어넣고 침실에서 나왔다.
그대로 방을 나서려는데 복도에서 로라랑 딱 마주쳤다.
“어디 가세요, 아가씨?”
“으응, 그 애한테.”
“오늘 벌써 두 번이나 가셨잖아요?”
나는 그 말에 아차, 했다.
공작성 습격범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공작가의 위신과도 관련되어 있다.
‘제대로 된 벌을 내리지 않으면서 자주 찾아가는 것도 사람들 보기 좀 그런가.’
저렇게 보러 가는데 왜 벌은 안 내리냐고 할 거 아냐.
“내일 가세요. 오늘은 목욕하시고.”
“으음…….”
하지만 우선 상처 치료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
“목욕하기 싫으셔서 그래요? 오리랑 고래랑 같이하셔요.”
아니, 난 목욕하기 싫다고 투정 부리는 게 아니란 말야!
“새 장난감도 있어요! 거북이랑 해달 친구!”
“……해달?”
아니, 이게 아니지!
“그으럼요! 자아, 해달 친구랑 같이 목욕하러 갑시다아!”
로라가 날 안아들고 룰루랄라 욕실로 갔다.
* * *
“그러고 보니 아가씨, 오늘 디에르 자작님이 울면서 정원을 가로질렀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털다가 내 손을 마사지해주며 말했다.
나는 탕 안에서 푸르르 고개를 저었다.
“디에르 아저씨가 날 주인님으로 부르게 해달라잖아!”
“어머, 아가씨는 디에르 자작님이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게 싫으세요?”
낸시가 내 머리카락에 기름을 바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 큰 아저씨가 그러는 거 보기 흉해.”
“아가씨께서 보기엔 아저씨긴 하죠. 하지만 좋아할 사람 많을걸요?”
“잘생기고 능력 좋은 남자가 ‘주인님’하고 부르는 거, 좋잖아요.”
“빨간 머리도 포인트죠.”
로라는 빨간 머리파구나.
나도 빨간 머리가 싫진 않다.
다만.
“후우, 언니들은 뭘 모르는구나.”
나는 기댔던 상체를 똑바로 세우며 언니들을 바라봤다.
내가 말이야, 지금은 환생해서 5세 몸일지라도 이쪽엔 빠삭하거든?
무려 수천 권의 로판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말씀.
“주인님하고 부르려면 금욕적이거나 유혹적이어야지. 아님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처럼 순진하거나.”
수 세기 동안 쌓이고 쌓여 축적된 빅데이터.
그걸 기반으로 한 최적의 양
식미.
“디에르 아저씨는 너무 촐싹거려. 주인님이라고 불러봤자 느낌이 하나도 안 산다구!”
내가 물을 탕탕 치며 열변을 토하자 해달 친구와 거북이 친구가 파르르 도망갔다.
“그, 그렇군요.”
언니들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보더니 내 말의 대단함을 깨달은 듯 눈빛을 달리했다.
“듣고 보니 금욕적인 기사님이 절 주인님이라고 부르면 좋을 거 같아요.”
“그래, 항상 단추는 목 끝까지 잠그고, 응? 드러나는 살결이라곤 장갑과 소매 사이의 틈이 전부인 남자가, 응?”
“하아……. 너무 좋아요.”
“아니면 요망한 여우 같은 남자가 살랑살랑! 막 주인님이라고 눈웃음치고. 근데 나한테만 그래야 해. 다른 놈한테 눈웃음치면 바로 실격이야.”
“크으! 절묘한 배합이네요!”
그럼, 그럼.
유구한 전통이 있는 설정이라고.
흥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
“……그런데 아가씨.”
안나가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그런 걸 아세요?”
“…….”
맞다, 나 다섯 살 응애였지.
그제야 내가 알려준 고전적 양식미에 심취해 있던 다른 언니들도 아차, 하고 나를 바라봤다.
어, 그게.
나는 눈을 도로록도로록 굴렸다.
“……라, 라고 클라티에 언니가 그랬어!”
에이, 몰라 몰라!
이럴 땐 누명이다!
억울하면 찾아오든가! 배 째!
“타렌카 부녀는 정말 도움이 되는 게 없군요!”
“요즘 애들이 조숙하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정말!”
“순진한 우리 아가씨께 뭘 가르친 건지!”
뭐긴 뭐야, 좋은 거지.
언니들도 좋아했으면서, 차암나.
“아가씨, 아직 아가씨한텐 너무 일러요. 그런 말은 애비 지지예요. 어서 잊으세요.”
안나가 빨리 잊으라며 내 두피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그런다고 잊혀지겠어?
자기들은 다 기억할 거면서 나만 잊으래.
분명 이따 나만 쏙 빼놓고 꿀 조합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하겠지.
‘치이.’
나는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얌전히 눈을 감았다.
아, 시원해.
언니들 손길 최고다.
나는 몸에 힘을 뺀 채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있네.’
왜 그 애를 내쫓으라는 퀘스트가 안 오는 거지?
하다못해 클라티에한테 사이다 먹이라는 것까지 퀘스트로 왔었잖아.
나한테 저 애를 내쫓으라, 죽이라 말할 게 아니라 퀘스트로 오는 게 더 확실하잖아.
그런데 왜 안 오는 걸까.
악마가 그런 퀘스트를 보낼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걸까?
악마 본인에게 무슨 제약이 있거나.
아니면 저 아이에게?
한참을 끙끙거렸지만, 지금 생각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자아, 고생하셨어요. 이렇게 잘하시는데 왜 싫다 하셨을까? 목욕하니 기분 좋죠?”
“해달 친구도 아가씨랑 목욕해서 행복하대요.”
“다음에도 또 하자고 하네요! 그럴 거죠?”
아니, 자꾸 목욕하기 싫어하는 애 취급하는데.
나 목욕하는 거 좋아하거든?
‘무, 물론 패널티 때문에 완전히 애기가 됐을 때 목욕하기 싫다며 울고불고 난리 쳤던 적이 있긴 하지만.’
끄응.
내 업보구나.
“아가씨, 팔을 들어주세요.”
곧 나는 커다랗고 푹신한 수건에 돌돌 말렸다.
안나가 목욕 잘한 상이라며 내게 쿠키와 꿀을 넣어 데운 우유를 주었다.
‘후우, 어린애의 삶 최고야.’
커서는 목욕했다고 아무도 상 주지 않는데.
몸도 따끈따끈하고 배도 부르니 점점 잠이 밀려왔다.
머리를 말려주던 안나가 후후,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감은 채 웅얼웅얼 입을 열었다.
“내일은…… 그 애에게 가도 되겠지?”
“어머나? 아가씨께서는 그 아이가 참 마음에 들었나 봐요.”
“하긴 첫눈에 마음에 들 만큼 잘생기긴 했죠. 우리 도련님들도 대단한데 그 애는 다른 느낌이랄까.”
“그런 거 아냐!”
다들 내가 미모에 홀려서 이런다고 오해하나?
“나는 세계 평화를 위해 애쓰고 있는 거라구! 그리고 걘 어린애잖아!”
나는 눈을 반짝 뜨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어린애는 잘 먹구 잘 놀아야 하는 법이야. 아직 뭘 모르니까 잘못할 수 있어! 그걸 어른들이 바로 잡아줘야지!”
“네네, 어른이신 아가씨께서 바로 잡아주시려구요?”
“아구, 우리 아가씨 다 크셨네?”
언니들이 내 뺨을 꼬집으며 쿡쿡 웃었다.
우씨!
“아무튼 공작성을 습격했으니 무작정 풀어주고 보살펴줄 순 없겠지만, 어쨌든 그 애도 선은 안 넘었잖아. 기사 아저씨들 다 회복한 거 봤지?”
“네, 오늘 아침부터 아가씨를 찾아와서 걱정하지 말라고 난리였지요.”
“그래!”
나는 그것 보라며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후후, 아가씨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셔요.”
“아가씨께서 그리하신다는데 누가 막겠어요.”
“목욕만 잘하시면 말이죠.”
아니, 이 언니들이!
완전 흥이야!
* * *
다음날.
나는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지하 감옥 앞에 섰다.
바구니에는 먹을 것과 붕대, 약, 깨끗한 물이 가득 들어있었다.
‘무거워.’
부디 저 녀석이 이 정성을 알고 마음을 곱게 먹어야 할 텐데.
‘부디 나한테 집착도, 복수도 하지 않길!’
나는 감옥 복도에서 몸을 숨긴 채 능력을 사용했다.
[능력 〈나를 잊으세요〉를 발동합니다.] [원하시는 외양을 머릿속으로 떠올려주십시오.]나는 다른 이의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는 최적의 모습을 상상했다.
‘이 모습이면 무조건 통한다!’
딱히 몸에 느껴지는 기운은 없었다.
하지만 내려다보이는 눈높이가 달라졌고, 무엇보다 손이 내 손이 아니었다.
신기해서 천천히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보기엔 내 것 같지 않지만, 내 의지대로 잘 움직였다.
얼굴을 더듬으니 완전히 달라진 감촉이 느껴졌다.
‘우와, 신기해.’
둔갑이라니 진짜 마법 같잖아!
나는 내려놨던 바구니를 들고 당당히 안쪽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앉아 벽을 노려보던 그 애가 나를 보고 벌떡 일어났다.
오냐.
애가 그래도 예의에 밝네.
장유유서는 지켜야지.
나는 주름진 얼굴로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할미 왔다.”
어쩐지 그 애의 표정이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