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60)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60화(60/353)
☆ 제61화 ☆
* * *
내가 생각한 방법은 아주 단순했다.
저대로 내버려 두면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요’상태가 될 수 있다.
불행한 과거, 단 한 번도 호의를 받아보지 못해 세상을 멸망시킬 대악당이 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가.
또 나에 대한 복수심을 활활 태우게 될 수도 있고.
그렇다면 호의를 주고, 보살펴 주는 게 무수한 로판을 통해 검증된 정답이다.
하지만 내가 잘해줘 버리면 나한테 집착하는 건 한순간!
‘그러면 내가 아니면 되지!’
모습도, 목소리도, 이름도 전부 다 바꾼 채, 집착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보살펴 주면 되지 않을까.
심지어 지금 나의 모습은 누가 봐도 푸근하니 넉넉한 품의 할머니.
보기만 해도 가슴이 따수워지는, 마음의 고향.
‘할머니가 있어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이건 된다.’
나는 품에서 조그마한 손거울을 꺼내 모습을 확인했다.
왠지 따땃한 아랫목에서 누워 있으면 할머니가 국수 말아줬던 기억이 떠오르네…….
없었던 할머니와의 추억조차 만들어낼 인심 좋은 할미의 모습이었다.
‘이거면 절대 집착 불가능해.’
단순하면서도 완벽한 계획에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나는 당당하게 허리에 손을 얹고 배를 뽈록 내밀었다.
‘인생의 따뜻함이나 맛보라지!’
“무……슨.”
그 애가 미간을 살풋 찡그린 채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격한 반응인데?’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표정을 굳히며 날 노려봤다.
“뭐하는 짓이지?”
“이눔아, 할미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뭐?”
나는 끙차, 하며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힐끔 그 애의 발에 연결된 구속구가 단단히 벽면에 고정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 애는 여전히 맨발이었다.
‘하긴, 그 신발을 신기는 좀 그랬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차가운 돌바닥에서 발갛게 언, 생채기 가득한 발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쓰렸다.
이제 봄이 오고 있지만 지하 감옥은 여전히 한겨울처럼 추웠다.
발을 감쌀 뭐라도 진작 넣어 줄걸.
‘넣어줘 봤자 하지도 않을 게 분명하니 다음에 들고 와야겠다.’
식사도 다 거부 중이라고 했으니 발을 감쌀 리가 없다.
나는 바구니를 가지고 철창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너.”
“너라니, 이눔이! 할미한테!”
쓰읍!
나는 눈을 부라리며 바구니에서 따뜻한 물에 적신 천을 꺼냈다.
“일루 와서 앉아 봐. 서 있음 다리 아퍼.”
하지만 그 애는 심장이 오그라붙을 정도로 사나운 눈빛을 한 채 날 노려봤다.
없던 추억도 만들어주는 푸근한 할머니 모습을 보고서도 저리 경계하다니, 대단하군.
“자자, 할미가 깨끗이 해주려 하는 거야. 아님 네가 할래?”
“저리 꺼져!”
파악!
그 애가 내 팔을 쳐냈다.
긴 손톱이 긁히며 내 팔에 붉은 선이 생겼다.
그 애가 멈칫했다.
아무래도 노인을 공경하는 장유유서의 마음가짐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았다.
장하다, K-로판!
‘진짜 내 모습이었으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을 텐데!’
이 틈을 노려 다시 다가갔지만, 그 애는 목욕하기 싫어하는 앙칼진 고양이마냥 반항했다.
문제는 고양이가 지나치게 크고 힘이 세다는 거다.
다시 손톱에 긁혀 피나는 일이 없어서 다행이긴 한데, 이래서야 서로 힘만 빼다 끝나겠다.
‘나는 한 시간밖에 변신을 못 한단 말야!’
어쩔 수 없지.
“가만있어!”
목욕을 싫어하는 나쁜 고양이는 강제 목욕 집행형에 처하는 법이야!
내가 가져온 버튼을 꾹 누르자 그 애가 움찔하더니 그대로 아래로 쓰러졌다.
“아구, 무거워.”
나는 그 애를 받아내며 끙, 하고 신음했다.
작은 애라도 무겁구나.
하긴 나보다는 크지.
“너어……!”
그 애는 내 무릎 위에서 쭉 뻗은 채 나를 노려봤다.
사지를 마비시키는 구속이라고 했는데 효과가 좋았다.
그 애는 마취된 고양이마냥 몸을 가누지 못했다.
“자자, 할미가 돌봐주려 하는 거야. 무섭지 않아요. 착하지?”
그 애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나는 따뜻한 수건으로 그 애를 꼼꼼히 닦아주었다.
“그만둬. 윽, 하지……마.”
“그러게 직접 하고 싶었으면 할미 말 잘 들었어야지. 그럼 서로 좋았잖아.”
반쯤 굳어버린 피딱지는 먼지와 엉켜 영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새로운 수건을 꺼내 더러운 피딱지를 살살 걷어내고 소독약을 꺼냈다.
“따끔해요, 따끔!”
상처가 방치된 채 오래 지나 고름이 생긴 곳도 있어서 나는 소독약을 거의 들이붓다시피 했다.
따끔하다 못해 소금을 뿌린 것처럼 쓰릴 텐데도 그 애는 미간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아유, 잘 참네. 뉘 집 손주인지 장군감이야~”
“……발.”
응? 방금 끝에 욕이 들렸던 거 같은데?
내 착각이겠지?
나는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도 감아주었다.
“자아, 다 됐다. 잘 참았어. 할미한테 맡기길 잘했지?”
“무슨 장난질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도 재미없으니 꺼…… 읍!”
나는 버르장머리 없이 말하는 그 애의 입술을 새 수건으로 벅벅 문질렀다.
“얼굴도 씻어야지. 더러우면 안 돼.”
“그만一 윽!”
“자자, 가만있어야지? 입에 수건 들어가면 어쩌누.”
그 애는 몇 번 더 반항했지만, 입을 벌리는 족족 수건을 집어넣으려고 하니 잠잠해졌다.
사지는 마비되어서 움직이지 않지, 입을 열면 수건이 들어오지 포기할 수밖에 없겠지.
‘물론 눈빛은 나를 찢어 죽일 것 같지만.’
어쨌거나 나는 꽤 편한 상태로 그 애의 얼굴을 닦을 수 있었다.
나는 내 무릎 위에 놓인 그 애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새삼 감탄했다.
눈코입은 물론이고 턱 끝조차 신이 일 년 넘게 야근을 하며 만든 것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둥그스름한 뺨을 따라 수건을 쓸고, 오똑한 코를 쓸며 올라가 보고.
반듯한 이마, 가지런한 눈썹, 살짝 새침한 눈꼬리.
그 안의 오묘한, 마치 우주의 신비를 품고 있는 것 같은 보랏빛 눈동자.
‘아…….’
나도 모르게 손까지 멈추고 한참을 그 애의 눈동자만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그 신비로운 빛 안에 담긴 수많은 감정과 아픔 그리고 혼란이 빚어낸 소용돌이가 나를 붙들어서.
꼭 처음으로 지구 밖으로 나가 끝없이 펼쳐진 우주를 본 사람처럼.
그 애의 뺨 위에 놓인 내 손에서 힘이 빠져 스르륵 미끄러졌다.
‘앗.’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손을 거뒀다.
그 애가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돌렸다.
깊은 주름이 패인 채 완전히 꾹 감은 눈을 보며 나는 아차 했다.
‘너무 쳐다봤나.’
좀 머쓱하고 민망했다.
나는 그 애의 얼굴을 마저 닦았다.
그 애는 내가 얼굴을 닦는 동안 입을 열지도, 눈을 뜨지도 않았다.
감옥 안의 횃불 때문에 그 애의 얼굴은 붉은 물이 들어있었다.
긴 속눈썹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횃불을 따라 일렁이는 것을 보며 나는 새삼 감탄했다.
이 햇빛도 안 드는 감옥 속에 핀 한 송이 꽃이라.
아니지. 꽃도 고개를 숙일만한 미모야.
‘죽이지 말라고 막길 잘했어.’
이런 미모를 잃는 것은 인류의 손실이다.
‘여주 언니들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서 아이를 열두 명 정도 낳으렴.’
그것만으로도 넌 인류에 이바지하는 훌륭한 업적을 남기는 거야.
얼굴까지 다 닦은 후 나는 바구니에서 음식을 꺼냈다.
며칠간 식사를 거부한지라 부드러운 흰 빵과 따뜻한 양송이 수프, 물이 전부였다.
슬쩍 마비를 풀어봤는데, 그 애는 전 같이 성난 고양이처럼 굴지 않았다.
재빨리 일어나 나와 멀어지긴 했지만.
“자, 여기 먹을 거.”
“필요 없어.”
“여태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다며. 먹어야 힘이 나지.”
“꺼져!”
파악!
그 애가 쳐낸 흰 빵이 돌바닥에서 굴렀다.
“이눔이! 먹을 걸 함부로 하면 벌 받는다!”
나는 성을 내며 바구니에서 빵을 하나 더 꺼냈다.
“하지만 네가 이럴 줄 알고 하나 더 준비해왔지!”
너의 패턴은 다 파악되었다!
내가 로판 한두 편 봤냐.
식사 거부 공격은 약한 자나 당하는 거다.
“먹기 싫음 나중에라도 먹어. 잘 먹어야지 낫지.”
“안 나아도 상관없어. 아니, 오히려 안 나아서 이대로 죽는 게 나아.”
“어린 눔이 죽는단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다!”
그 애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장난은 그 정도로 해.”
“나는 진심이야.”
진짜다.
위험한 애니, 집착이니, 복수니 이런 거 다 떼어 놓고.
어린애가 이러고 있으니 순수하게 걱정됐다.
“잘 먹고 나아서 건강해져.”
몸도, 마음도.
“무슨 꿍꿍이야.”
“아무 꿍꿍이도 없어.”
그 애는 전혀 믿지 않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원래 할미는 아픈 애를 보면 보살펴주고 싶어지는 법이야.”
“…….”
그 애가 시선을 돌리며 뭐라고 꿍얼거리는데 잘 들리진 않았다.
“몸이 힘들면 생각도 힘들어서 져. 자꾸 안 좋은 생각만 나.”
나는 더러워진 수건을 정리하며 말했다.
“많이 먹고 어서 나아. 그럼 또 전과는 다른 게 생각날 거야. 오랜 세월을 산 이 할미가 보증하지.”
땅에 떨어진 빵까지 주워들고 나니 이제 돌아갈 때였다.
슬슬 한 시간이 다 되어 간다.
쟤도 저렇게 날 경계하는데 내 앞에서 먹어봤자 체하겠지.
“할미는 이만 간다. 아서라, 아가. 배웅은 필요 없다.”
배웅은 전혀 해주고 있지 않지만.
음, 근데 안 먹고 그대로 놔두는 거 아냐?
“……편식은 나뻐. 밥 안 먹으면 다음엔 마비시켜 놓고 할미가 억지로 먹일 거다.”
과연 먹지 않을 생각이었는지 그 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할미한테 안겨서 애기 먹듯 먹고 싶지 않으면 먹어.”
“필요 없다고 했지.”
“안 먹으면 먹여달라는 뜻으로 알겠어.”
나는 그 애의 항변을 무시하고 한결 가벼워진 바구니를 든 채 감옥을 나왔다.
떨어진 빵은 정원에서 새한테 줘야겠다.
* * *
밖으로 나오니 병사 아저씨가 날 보고 놀랐다.
“하, 할머님?”
아차, 깜빡했네.
나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할미다. 잘 지냈누?”
“예, 저는 잘……. 응?”
자연스레 대답하던 병사 아저씨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옛날에 부엌에서 이 할미가 너한테만 파이 남은 거 쥐여줬던 거 기억나?”
“예……. 기억합니다. 고된 훈련으로 제가 울고 있으니 호박파이를 쥐여주셨죠. 그 눈물에 젖은 호박파이만큼 맛있었던 것은 없습니다.”
“그래, 그래.”
나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근데 진짜 그런 추억이 있는 것만 같긴 하지만……. 누구십니까.”
“아가씨가 시켜서 온 사람이네. 걱정 말게.”
허당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할 일은 하는구나, 아저씨.
아저씨는 풀리지 않는 의문에 몇 가지 더 질문을 하려 했지만, 내가 인장을 보여주자 입을 다물었다.
완전히 밖으로 나와 나는 기지개를 켰다.
어느새 내 팔다리는 짤뚱한 어린애의 것으로 바뀌었다.
“역시 단번에 넘어오진 않네. 그래도 계속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둔갑이 풀려도 여전히 내 팔에는 길쭉한 상처가 남아 있었다.
그걸 보니 조금 불안했지만.
“아냐, 아냐! 잘 될 거야!”
양 주먹을 꽉 쥐고 기합을 넣는 순간이었다.
“루루?”
고개를 돌리니 아빠가 보였다.
“아빠!”
나는 활짝 웃으며 아빠에게 도도도 달려갔다.
그런데 아빠의 반응이 평소와 달랐다.
얼굴을 완전히 굳힌 채 뚫어져라 한쪽만 바라보고 계신데, 음 내 팔?
시선을 따라가니 내 팔이 보였다.
정확히는 팔에 길게 난 붉은 상처가.
“팔에 그건 뭐지?”
나는 합, 입을 다물었다.
그 애가 했다고 하면 이번에야말로 죽이겠다고 난리 날 거야!
어쩌지?
“푸, 풀에 베였어요!”
풀은 일부러 날 해친 것도 아니고, 내가 지나가다 베인 거니까 상관없겠지?
그리고 풀을 죽이라고 할 수도 없잖아.
히히, 이 루루님의 놀라운 잔머리!
그때였다.
“당장 정원사를 전부 불러와라.”
낮게 내리깔린 아빠의 목소리가 자화자찬하고 있는 내 뒤통수를 얼렸다.
아, 아빠?
눈에 지금 살기가 넘실거리는데요?
“예, 각하!”
“이는 결코 좌시해선 안 됩니다! 당장 정원사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감히 풀이 아가씨를 베도록 허락하다니!”
아니, 정신 차려. 정원사들이 허락해서 그런 게 아냐.
아저씨들은 말려야지 왜 불 난 데 기름을 붓고 있어.
순식간에 정원사들이 끌려 나왔다.
그들은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하얗게 질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풀에 베였다는 한 마디 했다고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약골! 다쳤다며!”
어디서 소식을 듣고 온 건지 익시온이랑 아레스까지 왔다.
흑흑, 하나도 반갑지 않아.
“내 동생 팔에 상처라니. 어디 봐.”
아레스가 내 팔을 보더니 붉은 눈동자를 어둡게 빛냈다.
“죽고 싶은 모양이네, 감히.”
“그냥 죽여달라고 말하면 쉬울 걸 왜 이런 방법을 쓰는 걸까.”
익시온이 사납게 미소 지으며 정원사들을 내려다봤다.
소년들에게서 흉포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사형!”
“절대로 사형!”
“결단코 사형!”
사람들이 외쳤다.
아빠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오?
역시 아무리 그래도 아빠는 파에라톤이라는 가문을 이끄는 수장!
‘아무리 딸 바보래도 이성은 있어!’
고작 내 팔이 풀에 베였다고 이 많은 정원사를 다 죽이는 게 말이 되는가?
상황을 진정시키실 생각이야!
과연 아빠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원사를 전부 사형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응?
“정원…… 아니, 내 딸이 갈 수 있는 모든 곳의 풀을 뿌리째 뽑아 불사르도록 해라.”
네?
어째서 이곳엔 정상인이 없는가.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쩔 수 없군. 내가 나서는 수밖에.’
나는 기사 아저씨들과 디에르 자작에게서 배운 울망울망 스킬을 사용했다.
“아빠아…….”
“왜 그러지?”
아빠가 당장 나를 안아들었다.
“진짜로 꽃이랑 풀이랑 다 뽑아서 태울 거예요?”
“그래.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나는 양손을 착 뺨에 붙인 채 아빠를 올려다봤다.
“그럼, 그럼 루루꽃도 태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