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65)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65화(65/353)
☆ 제66화 ☆
* * *
더 부축할 필요는 없을 듯해서 루아티샤는 숙였던 몸을 바로 했다.
“…….”
아이는 멀어지는 온기를 향해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가 도로 물렸다.
“자, 아~ 해.”
루아티샤가 협탁 위에 두었던 수프를 떠서 내밀었다.
아이는 한참 제 앞에 내밀어진 수프를 보다가 작게 입을 열었다.
“옳지, 잘 먹는다. 아이, 착해.”
토닥임을 받으면서 아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 나는 이 여자애의 장단에 맞춰주고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릇을 깨끗이 비울 때까지 거부하지 않고 받아먹었다.
“왜…… 날 도와주는 거야?”
“원래 할미는 비쩍 마른 애를 보면 먹이고 싶어지는 법이거든.”
꿈에서까지 할미 소리인가.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눈앞이 흐릿하며 의식이 점멸하길 반복한다.
“정 마음이 불편하면 나중에 갚아. 멀쩡히 살아서.”
그 가운데에서 여자애의 목소리만 선명했다.
“나한테 갚을 필요는 없어.”
그 말은 꼭, 집착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렸다.
“누군가 다치거나 굶고 있으면 그 사람을 치료해주거나 빵을 주면 돼.”
너한테 갚고 싶으면?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크흑…….”
대신 고통에 찬 신음이 입안을 메웠다.
아이는 입술을 피가 터지도록 사리물며 고통을 참았다.
붉은 금제가 꿈틀거리며 아이의 몸과 영혼을 옥죄었다.
흐릿한 시야로 울 것 같은 여자애의 얼굴이 보였다.
울지 마.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저 여자애가 울든 말든 상관없어야 하는데.
울먹한 목소리는 곧 나지막한 노랫소리가 되었다.
‘여전히 못 부르네.’
얘는 절대 가수는 못 되겠다.
영혼이 조각날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한가로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스스로에게 놀랐지만, 자꾸만 이 여자애의 생각이 났다.
박자감이 완전 엉망이다.
가슴을 두드리는 손과 노래가 엇박이라 편안해지기는커녕 들을수록 불편해졌다.
‘하지만 그래도.’
목소리 하나는 꽤 듣기 좋았다.
정말로, 듣기 좋아서一.
후광과도 같은 빛무리가 그 여자애의 몸에서 터져 나왔다.
‘이 정도로 미화될 노래는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 여자애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여자애에게서 뻗어져 나온 빛이 제 몸에 닿았다.
따뜻하고, 온유한 부드러운 파동.
그 힘이 그의 안에 웅크려 있던 힘과 만났다.
마치 사막에 내린 한 줄기 빛 방울처럼, 그 힘은 메말라 있던 그의 생명에 스며들었다.
한 줄기 빗방울이라고 생각했던 게 이내 무수하게 겹쳐 내리는 비가 되었을 때.
황폐해졌던 그의 생명이 기름진 윤기를 얻어 다시 날개를 펼쳤다.
영혼과 육체를 갉아먹던 금제를 조금씩, 조금씩 몰아내기 시작한다.
그 과정은 뼈를 재조립하는 것과 같이 고통스러웠다.
아이는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되찾기를 반복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여자애의 환영은 여전히 곁에 있었다.
차가운 손이 부드럽게 뺨을 감쌌다.
그 냉기가 반가웠다.
손이 차가운 게 아니라 제 몸이 지나치게 뜨거운 건지도 모른다.
“여전히 죽고 싶어?”
살아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나도 예전엔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생각하지 못했어. 그럴 여유가 없었거든.”
무슨 소리야, 그게.
이렇게 풍족한 삶을 살고 있으면서.
“하루 먹고살 돈을 버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신경 쓸 수 없었거든. 당연히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하지 못했지.”
돈 때문이라는 건 다르긴 하지만, 나도 그 기분을 알아.
미래를 갖는 것조차 사치인 느낌.
“너무 힘들어서 돈이 생기면 무조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푹 쉴 거라고 생각했어.”
나도 그래.
이 고통에서 해방되어서 쉬고 싶다.
죽으면 편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틀렸어.”
단호한 목소리가 생각을 끊어냈다.
“막상 먹고 살 걱정이 사라지니 하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 생겨났거든.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겠다던 생각은 완전히 사라졌어.”
왜?
그건 이해 안 돼.
“좋아하는 게 많아지고 싫어하는 것도 알게 되었어.”
여전히 알아듣지 못할 말이었다.
“그제야 비로소 깨달은 거지.”
하지만 여자애의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아, 내가 하고 싶은 게 없었던 건, 없다고 생각해야 그나마 견딜 수 있어서였구나.”
마치 무언가를 염원하듯 그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삶이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꿈을 갖지 않는 게 더 편해서.”
그건 알아.
포기하면 차라리 편해.
“‘원래의 나’는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고 도전해보고 싶었던 것도 많구나.”
여자애가 손을 꽉 잡았다.
지독히 현실 같은 감각이었다.
“그러니까 죽는 게 나은 건 없어. 너에게도 하고 싶은 일이 잔뜩 생길 거야.”
하고 싶은 일.
되뇌는데 여자애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꼭 그렇게 될 거야.”
말간 얼굴이 싱긋 미소 지었다.
* * *
“엄청납니다!”
“확실히 차도를 보이고 있어요. 대단한데요?”
마법사들과 술법사들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붉은 선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보며 금제가 풀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정신을 못 차리며 앓는 시간이 많아서 걱정되던 챘다.
그런데 이 방면의 전문가들에게 확인을 받으니 몸에서 힘이 쭈욱 빠져나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아이 안의 에테르가 금제에 대항하고 있습니다.”
자가 면역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나 보네.
‘노래로 에테르를 생성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딱 한 번.’
부족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한 번 더 공급해주면 스스로의 에테르로도 금제를 몰아낼 수 있겠어.
“하지만 에테르 수급은 어떻게 한 건지……. 이 방에서 강렬한 에테르 반응이 있었던 건 관측되었습니다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얘는 원래 엄청 강한 에테르를 가지고 있었잖아. 오러로 기혈을 뚫는 것처럼 운용하면 되지 않겠냐고 했어.”
“호오?”
“경들이 느낀 에테르는 그때 이 애 몸에서 방출된 에테르 아닐까? 난 잘 모르지만.”
턱을 쓴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길이 닦인 것과 안 닦인 것은 다르죠.”
뭐가 확실히야. 아무 말이나 한 건데.
“저희 마법사들도 마나 회로를 따로 뚫습니다. 그래야 마나가 움직이는 속도도 빠르고 손실도 일어나지 않죠.”
“보유하고 있던 에테르의 효율이 좋아진 덕에 자가 치유가 가능해졌다라. 일리 있군요.”
“그런데 에테르가 그런 식으로 운용이 되는 종류의 힘이었습니까?”
날카로운 지적에 나는 뜨끔했다.
나도 모르는데.
하지만 답은 다른 쪽에서 나왔다.
“아직 에테르에 대해 밝혀진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니 어느 쪽도 확언할 수 없지.”
“권능자는 에테르를 다룰 수 있으니 다를지도요.”
“흥미롭군요.”
각자 알아서 토의 모드로 들어갔다.
어쨌거나 내 말도 안 되는 변명이 잘 먹힌 것 같아서 다행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는지, 아가씨의 지식에 감탄했습니다!”
“그야말로 천재라는 말조차 아깝습니다! 이 어린 나이에……. 역시 파에라톤이십니다!”
아니, 내가 했던 변명은 진짜 아무 말 대잔치인데.
말이 되는 소리인지는 나도 몰라.
“각하께서는 이런 따님을 두어 정말 좋으시겠습니다.”
“부럽다는 말로도 부족하군요. 어떠십니까, 아가씨를 마법사로 키우시는 건.”
“마법사보단 술법사가 낫겠지요. 본디 금제는 술법의 영역입니다.”
아빠는 별말이 없었다.
보통 때라면 당연하지, 하는 태도로 반응했을 텐데.
어쩐지 굳은 얼굴도 평소와 다른 것 같은…….
“그럼 이 아이에 대한 확인은 전부 마친 건가?”
“예, 각하.”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곤 방을 나섰다.
“루루, 따라오거라.”
왜 그러시지?
나는 어깨를 조금 좁힌 채 아빠를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아빠의 집무실이었다.
아빠와 나, 오빠들까지 들어오자 에르켈 자작이 문을 닫았다.
“루루.”
“네, 아빠.”
“나한테 할 말 없느냐.”
지그시 쳐다보는 시선에 나는 그제야 아차 했다.
“……죄송해요. 그 애 방에 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갔어요.”
역시 아셨구나.
몰래 움직인다고는 했지만, 정말 아빠가 모르셨을 리 없다.
그냥 봐주신 거지.
“하지만 위험한 짓은 하나도 하지 않았어요. 그 애가 에테르를 운용하기 편하게 해줬을 뿐이에요.”
이건 진짜였다.
나는 에테르를 생성해 그 애가 스스로 금제를 풀 수 있도록 보탬이 되어준 거였으니까.
“아빠와의 약속을 어겼구나.”
“죄송해요.”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네가 먼저 말해주길 기다렸다.”
“잘못했어요.”
“…….”
아빠는 이렇다 할 말씀이 없으셨다.
힐끔 고개를 드니 아빠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많이 화나신 걸까?
덜컥 겁이 나고 가슴이 울렁울렁했다.
기가 팍 죽은 채 눈치를 살피는데, 아빠 뒤에서 에르켈 자작이 입을 뻐끔거렸다.
‘나는 속상한데 저 아저씨는 왜 그러는 거야.’
보기에 참 부담스러운 모양새였다.
고개를 돌리는데, 무언가가 뇌리를 스쳤다.
다시 에르켈 자작을 보니 뻐끔거리는 게 아니라 입 모양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뽀.”
뽀?
‘뽀뽀.’
응?
‘뽀뽀, 뽀뽀, 뽀뽀.’
아, 설마?
‘그게 통하겠어?’
그렇게 생각했지만, 밑져야 본전.
나는 도도도 달려가 아빠의 다리에 매달렸다.
“안아주세요.”
그러자 아빠가 못 이기는 척 나를 달랑 들어 올렸다.
나는 아빠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쪽!
“죄송해요, 아빠.”
아빠가 나를 힐끔 보더니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굳었던 입매가 살살 풀어지는 게 보여서 나는 신이 났다.
“용서하면 루루 뺨에도 뽀뽀해 주세요.”
뺨을 내밀자 아빠가 쪽, 하고 뽀뽀해줬다.
히히.
“나는 내 동생 걱정으로 잠도 못 이뤘는데.”
“약골 주제에 위험한 짓이나 하고.”
“…….”
나는 가는 눈으로 아레스와 익시온을 바라보다가 결국 두 사람에게도 뽀뽀를 해줬다.
두 사람은 걱정시킨 벌이라며 내 뺨에 뽀뽀를 돌려줬다.
흠?
벌이 아니라 이때를 틈탄 욕심 채우기 같은데?
한바탕 뽀뽀 소란이 지나가고 난 뒤, 아빠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네 노예의 일이니까 너도 알아야겠지.”
그 말에 나는 자세를 바로 했다.
“그 정도 금제를 쓸 수 있는 세력은 제국에 몇 없다. 그만한 의식에는 흔적이 남는 법. 금제를 바탕으로 추적했다.”
“그럼 그 애에게 금제를 건 사람의 정체를 알아내신 거예요?”
“그래, 황가와 관련되어 있다.”
“황가? 그럼 황제의……?”
“황후나 황태후일 수도 있지.”
어쨌거나 어린애의 인생을 망가트리지 않아도 충분히 잘 먹고 잘 사는 위치의 인간들이었다.
그런데 왜…….
“더욱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아빠의 붉은 눈동자가 무겁게 빛났다.
“네 노예가 황가의 핏줄이라는 거다.”
나는 입을 벌렸다.
황가의 핏줄?
그럼…….
맞잖아, 황자!
* * *
몸이 가볍다.
이런 감각을 느끼는 게 대체 얼마 만이지?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게 느껴지고 뛰는 혈맥의 진동이 생생하다.
아이는 침대 위에 누운 채 팔을 들어 올렸다.
‘없어…….’
불길한 기운을 내뿜으며 스멀 스멀거리던 붉은 선.
하얀 팔은 깨끗했다.
‘금제 발동이 멈춘 건가?’
하지만 건강에 이상은 없다.
심지어 자신은 지금 유례없이 안정적인 상태였다.
시선을 트니 침대 맡에 앉아 있는 여자애가 보였다.
오래전부터 보고 있었던 건지 차분한 시선이었다.
‘아, 그렇군. 꿈이군.’
그러고 보니 정신이 들기 전 노랫소리가 들렸던 듯했다.
“정했어.”
“뭐를?”
“네 이름.”
그걸 아직까지 생각하고 있었나?
그 사실이 어쩐지 가슴에 깊게 박혔다.
“시드.”
여자애의 입에서 나오는 발음이 생경했다.
“네 이름을 시드라고 하자.”
그렇게 말하며 웃는 얼굴도 낯설었다.
어딘지, 멀리 떠날 것만 같은 미소.
“……시드.”
나직하게 따라 말하는 아이一 시드를 보며 루아티샤는 작게 미소 지었다.
“내가 아는 나라 말 중에 씨앗이랑 발음이 똑같아.”
“씨앗?”
“응, 씨앗은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악마의 말대로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겠지.
어쩌면 나쁜 악당이 되어버릴지도 몰라.
하지만 아주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어.
소설 속 남자주인공처럼, 멋지고 특별한 사람이.
“나는 원작 악당이나 흑막이 치유 받고 갱생해서, 결국 위대한 존재가 되는 내용도 참 좋아하거든.”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같은 시선이 돌아왔지만, 루아티샤는 개의치 않았다.
“어떤 사람이 될지는 네가 선택해.”
어떤 토양에서 자랄지, 비는 얼마나 맞을지, 어떤 햇살을 맞을지.
“근데 그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야.”
이건 자신보다 시드가 더 잘 알 것이다.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삶이 송두리째 망가졌으니까.
“그러니까 다시는, 누군가가 네 삶을 마음대로 하게 두지 마.”
“너…….”
시드가 무언가 눈치챈 얼굴로 입을 열었지만, 루아티샤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밖에는 벌써 봄이 왔어.”
루아티샤는 품에서 조그마한 꽃다발을 꺼냈다.
정원에서 가장 예쁜 꽃들만 따서 직접 만든 거였다.
“이건 선물이야.”
시드는 꽃다발을 내밀며 조금 멋쩍은 듯 웃는 여자애를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악몽일까.
또 어떤 것을 빼앗아 가려고 이런 환상을 보여주는 걸까.
만약.
만약에라도 이 여자애가 눈앞에서 잘못되기라도 한다면一.
그게 고작 환영이라 할지라도 나는一.
생각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풀썩, 꽃향기가 품 안에서 물씬 피어올랐다.
꽃다발이 품에 가득 안겼다.
이런 걸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봄볕처럼 따스하고 봄바람처럼 간질거리는 향기.
보기만 해도 보드라운 게 느껴지는 연한 꽃잎.
꼭 이 여자애 같은.
시드는 그 꽃 사이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열쇠와 작은 버튼이었다.
무슨 열쇠인지는 한눈에 알아봤다.
지금 제 목에 걸린 구속구의 열쇠와 제어기였다.
“이제 자유롭게 살아.”
속삭임이 들렸다.
시드는 천천히 손을 뻗어 열쇠와 제어기를 잡았다.
‘이걸, 왜……?’
다급히 고개를 든 순간, 멀어져 가는 여자애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애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커흑……!”
흐트러지는 머리카락이 마치 꽃잎 같았다.
눈앞에서 천천히, 여자애가 쓰러져 내렸다.
품 안의 꽃보다도 더 붉디붉은 피를 흘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