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81)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81화(81/353)
☆ 제82화 ☆
* * *
“하, 치료제를 거절하다니 미쳤나?”
나는 미아렌 백작에 관한 보고를 듣고 뒷목을 잡았다.
흑사병이 번진 상황에서 치료제는 그야말로 억만금을 주고 사도 부족한 가치를 지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의 공짜로 치료제를 제공하려 했다.
사람들을 살리는 게 우선이니까.
아레스가 봄볕 같은 미소를 지었다.
“감히 내 동생의 호의를 거절하다니. 살 가치가 없네.”
“주제도 모르는 벌레들이 너무 나댄다니까. 그냥 죽이고 올까?”
“……그런 통치자는 죽는 게 미아렌령 영지민들을 위한 일 같지만, 안돼.”
대체 왜 거절했지?
‘효능이 의심 가도 일단 받아서 시험해 보면 되잖아! 거기다 우리 아빠가 보증했는데!’
효과가 잘못되었을 땐 아빠가 책임진다는 뜻이다.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거 아니냐구!
“잘못하면 자기도 흑사병으로 죽을 수 있는데!”
“미아렌 백작은 안 죽을걸. 성수가 있으니까. 자기 목숨줄에 대해선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그렇게 구는 거지.”
“성수?”
대강 만병통치약 같은 건가?
“우리 집에도 있어?”
“……우리 집엔 없어.”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 마. 어차피 그 기싱은 내 동생이 있는 곳까지 못 와.”
“와도 내가 죽여줄게.”
‘……뭔가 말을 돌리는 것 같은데.’
어쨌든 파에라톤령은 흑사병이 돌기 전부터 워낙 대비를 철저하게 해놔서 걱정이 없었다.
지금도 각 검문소마다 철저히 관리 중이고, 영지 곳곳에 치료제를 준비해놨다.
‘문제는 다른 곳이지.’
“다른 영지들은 지금 난리 났다며?”
“미아렌 백작령에서 워낙 관리를 개판으로 한 덕에.”
“미아렌령은 살짝 남서쪽이긴 하지만 그래도 중부라서 영지 간의 이동이 많아. 그래서 다른 영지로 더 빨리 퍼졌지.”
아레스가 흑사병 현황 지도를 내 쪽으로 슥, 밀며 말했다.
제국 전도에는 붉은색과 초록색으로 칠해진 땅덩어리가 보였다.
붉은색은 전염 지역, 초록색은 안전한 지역이었다.
각 관할지에서 마도장치를 눌러 보고하면 바로바로 반영되는 편리한 지도였다.
미아렌령 근처의 다섯 영지는 한 곳 빼고 다 빨간색이었다.
“초동 대응도 제대로 못 하고, 치료제까지도 거부하더니. 영주가 무능하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구나.”
“그래도 린드할령은 붉었다가 다시 초록색이 됐잖아. 내 동생이 만든 치료제가 아주 잘 듣고 있다는 뜻이지.”
“그건 진짜 다행이야.”
린드할 자작령과 아데르센 백작령은 미아렌령 다음으로 흑사병이 퍼진 곳이었다.
나는 곧바로 그들에게도 치료제를 보냈고 두 영지는 두 팔 벌려 환대했다.
어쨌든 붉었던 지역이 치료제 덕에 초록색이 된 걸 보니 가슴이 찡했다.
“오늘도 사절단이 찾아왔다며?”
“응.”
“인기 많네, 내 동생.”
흑사병이 퍼진 영지는 물론, 아직 안전한 지역에서도 너도나도 치료제를 줄 수 없냐고 사절이 왔다.
미아렌령과 가까운 곳일수록 막대한 선물과 엄청난 조건을 들고 자기네들에게 치료제를 더 줄 순 없겠냐며 난리였다.
아빠랑 사이가 안 좋다는 어떤 후작 할아버지는 아예 직접 파에라톤령까지 찾아왔었다.
“전쟁에 미친 살육귀와는 겸상도 안 한다 하지 않았나? 내 성에 찾아오다니 죽을 때가 된 건가.”
“공작께 내 지난 무례를 사과드리오.”
“후작이 이리 쉽게 사과할 줄은 몰랐군.”
“영지민의 목숨 앞에서 내 자존심이 뭐가 중요하겠소.”
아빠는 가늠하듯 그 후작 할아버지를 바라보더니 이내 한숨과 함께 말했다.
“치료제에 관한 건 내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오. 내 딸아이의 것이니 그 아이와 얘기하시오.”
“……많이 유해지셨군. 네 아버지가 저리 부드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된 건 다 네 덕이겠구나.”
딱히 우리 아빠 지금 부드러운 표정 짓고 있는 건 아닌데.
나한테 미소 지어주는 거 보면 기절하시겠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할아버지에게 치료제를 주었다.
우리 아빠한테 전쟁에 미친 살육귀라고 했던 걸 똑똑히 들었기에, 괘씸죄로 조건을 좀 더 추가해서.
그럼에도 그 할아버지는 매우 흡족해했다.
“내 손자가 조금만 더 나이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연하는 싫으냐?”
“몇 살인데요?”
“너보다 네 살 어리단다.”
그럼 지금 한 살 응애잖아!
이 할아버지가!
“크면 네 살 차이 별거 아니란다.”
“한 살 응애를 남편감으로 들이미는 할부지가 있는 남자애는 무조건 별로야.”
“이것 참, 내가 내 손자의 앞길을 막아버렸구나. 그래도 손녀딸은 딱 너랑 동갑이란다. 나중에 만나서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구나.”
“흥, 봐서요.”
그 할아버지는 포셰트 후작으로, 꽤 대단한 권력자였다.
포셰트령은 아직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지만, 감염지 인근이라 바짝 경계 중이라고 했다.
아직 그렇게까지 급한 상황이 아닌데 영주가 자존심까지 굽혀가며 먼 길을 찾아온 게 꽤 감명 깊었다.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티룸의 문이 열리고 내 전담 집사인 오르카가 들어왔다.
“아가씨, 아가씨께 손님이 왔습니다.”
“또? 이번엔 어느 귀족이 보낸 사절단이야?”
“미아렌 백작이 직접 왔습니다.”
미아렌 백작?
‘그 뻔뻔하고 오만한 치가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상황이 급한가 보네.’
미아렌 백작은 괘씸해서 하나도 도와주고 싶지 않지만, 미아렌령의 수많은 사람들은 무슨 죄인가.
‘어차피 싹싹 빌 테니 구경하다 치료제를 내줘야겠다.’
물론 조건을 엄청 걸어서!
“그리고 아가씨.”
오르카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미아렌 백작은 자신이 직접 파에라톤령까지 온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백작인 내가 몸소 와야 하냔 말이야!’
원래는 가신들을 보내려 했지만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한 번 거절했는데 어떻게 저희가 갑니까! 그때 그냥 좋게 거절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온갖 곳에서 파에라톤에 치료제를 달라며 사정한다더군요. 우리도 성의를 보여야지요!”
치료제고 나발이고 그냥 싹 불태워버릴까.
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거나 세금원이 줄어드는 것은 미아렌 백작으로서도 원치 않는 일이었다.
“공녀님께서 곧 드실 겁니다.”
“공녀? 공작이 아니라?”
“치료제는 공녀님께서 만든 물건이니 모든 권한은 공녀님께 있습니다. 치료제 때문에 찾아오신 것 아닙니까?”
“맞네.”
“그럼 공녀님과 이야기 나누시지요.”
어린 여자애 따위가 나랑 협상이라니.
미아렌 백작은 불만스레 입술을 오므렸다.
그래, 뭐. 파에라톤은 어려도 괴물이니까. 공녀에겐 마기가 없다고 해도 치료제를 만들었다는 걸 보면 그래도一.’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 문이 열렸다.
‘엥?’
방안으로 뽀짝뽀짝 걸어들어오는 작은 어린아이를 보고 미아렌 백작은 헛웃음을 지었다.
‘뭐야, 진짜 애잖아.’
그것도 파에라톤답지 않게 핑크빛 머리카락이 솜사탕 같은, 말랑뽀송이였다.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조금 들었지만, 곧 생각을 바꿨다.
‘이거 아주 쉽겠어.’
미아렌 백작이 느물한 웃음을 지으며 한쪽 다리를 꼬았다.
“그래, 네가 파에라톤의 막내딸이구나. 이거야, 소개를 안 들었으면 몰라볼 뻔했어. 파에라톤 놈들은 다 인간 같지 않은데 너는 아주 귀엽구나.”
아이의 파라이바 빛 눈동자가 순간 번뜩인 듯했지만, 착각일 것이다.
이렇게 칭찬까지 해주는데 왜 자신을 노려본단 말인가.
무엇보다 이 아이는 딱 봐도 화도 낼 줄 모르는 순둥이였다.
“일전에 내게 치료제를 주고 싶다고 했지? 뭐, 늦었지만 받아주마.”
“…….”
“그때는 내가 정신이 없어서 말이다. 이런 귀염둥이가 준 선물인 줄 알았으면 받아주었을 텐데.”
“…….”
“섭섭한 건 아니지? 이제라도 받아줄 테니 기분 풀거라.”
아이는 대답 없이 빤히 자신을 바라봤다.
미아렌 백작은 그제야 슬슬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의 입술이 열렸다.
“할부지는 누구예요?”
아주 또랑또랑한 목소리였다.
* * *
미아렌 백작의 표정이 볼만 해졌다.
바보처럼 입을 벌린 채 헛숨만 삼키는 모습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돌발 퀘스트 발생!]〈인생은 실전이야, 종만아!〉
독자님!
굳이 설명이 필요한가요?
싹싹 빌며 치료제를 달라 구걸해도 모자랄 판국에 이 적반하장은 뭐지요?
인생은 실전이라는 것을 이 종 같은 놈에게 알려줍시다!
오해는 마세요!
평소 딸랑딸랑 권력에 아첨하는 놈이라 종 같다고 한 겁니다!
이딴 놈은 어서 폐기시키는 게 곧 세계 평화를 위한 길입니다!
– 조건: 미아렌 백작에게 인생의 쓴맛 알려주기
– 보상: 5000캐시 뽑기권, 제국 내 영향력 증가
아까 미아렌 백작이 파에라톤 놈들은 인간 같지 않다느니, 넌 귀엽다느니, 치료제를 받아주겠다느니 할 때 뜬 퀘스트였다.
물론 나는 이 종 같은 놈을 아주 적극적으로 조질 준비가 되어 있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하, 할부지……라고?”
“네! 할부지 아녜요?”
나는 순진한 척 눈을 크게 떴다. 깜빡깜빡하는 건 덤.
과연 미아렌 백작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내가 어딜 봐서 영감탱이야! 나는 네 아빠랑 동갑이다!”
“우움, 울 아빠랑 나이 같다구요? 우웅? 이상하다아? 우움?”
나는 미아렌 백작을 위아래로 훑으며 고개를 우로 갸웃, 좌로 갸웃했다.
“이,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딱 봐도 동갑인데!”
“그치만 울 아빠는 할부지처럼 배도 안 나왔고, 주름도 없고, 어깨도 굽지 않았는걸요!”
“뭐, 뭣!”
“아, 머리카락도 있구요!”
나는 활짝 웃었다.
마지막 말이 치명타였다.
미아렌 백작이 야차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 이 건방진 게! 뭐가 어째?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러는 게냐!”
“우움, 누군지 몰라요. 방금 누구냐고 물었잖아요. 그것도 못 기억해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원래 나이 들면 기억력이 안 좋아진다더라구요! 나는 다아 이해해요!”
“귀엽다, 귀엽다하며 칭찬해줬더니 건방진 계집애가 날一.”
“할부지, 치료제를 달라구 나한테 부탁하러 온 거죠?”
지금 나한테 숙이고 들어와야 하는 처지를 상기시키자 미아렌 백작의 뺨이 꿈틀거렸다.
“……네가 주겠다니 내가 받아주겠다는 거다.”
와, 진짜 대단하다.
나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지난번 저지른 일이 있으니 당연히 무례에 대한 사과부터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상황이 되어서까지 끝까지 자존심을 세우다니?
“줄 생각 없는데.”
“뭐?”
“주겠다고 한 건 옛날 일이죠. 나이 들면 시간 감각이 없어진다고 했어요. 할부지도 그런 거예요?”
미아렌 백작이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그때 할부지한테 주려고 했던 거는 이미 옆 영지에 줬어요. 아주 고마워 하더라구요.”
“끝까지 내가 고개 숙이는 걸 봐야겠다는 거냐!”
“우웅? 루루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요?”
“어른이 칭찬까지 해줘가며 살살 달래면 애가 져줄 줄 알아야지!”
“어른이 져야지 왜 애가 져줘요? 아, 늙었으니까 할부지도 노약자라는 거예요? 그래서 배려받아야 한다는 뜻?”
“이게 자꾸만! 난 아직 젊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닐 텐데.
나는 테이블 위에 내가 받은 서한 뭉치를 탁, 던졌다.
미아렌 백작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 서한을 읽었다.
一그렇게 어린 나이에 흑사병 치료제를 만들다니 정말 대단하시군요. 역시 파에라톤의 자제분이십니다.
一현명한 자에게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선견지명이 깃든다지요. 공녀님의 연치가 아직 어리신데…….
“뭐야, 지금 나더러 이놈들처럼 네게 아양이라도 떨라는 게냐!”
“그건 인사일 뿐이고 중요한 건 그 다음이지.”
一우리 영지에 치료제를 보내주시기만 한다면 앞으로 5년간 매해 영지특산물인 은진주 조개와 푸후곰의 꿀 그리고…….
一치료제를 주신다는 약속만 하시면 바로 금괴 열 상자, 은괴 백 상자, 추가로…….
一파에라톤 영지민에게는 향후 10년간 로이델 항만을 전면 개방하겠습니다. 또…….
“하!”
미아렌 백작이 코웃음쳤다.
“어린 게 이것 때문에 기고만장해졌구나! 겸손할 줄 알아야지. 그깟 치료제 하나 만들어냈다고 유세냐?”
“나는 처음에 당신에게 거의 무상으로 치료제를 제공하려 했어. 그런데 그 호의를 짓밟고 무시한 건 당신이야.”
“하! 결국 기분 나빠서 돈을 받아야겠다?”
“우리 가문의 사절단 개무시 했다면서. 그건 곧 파에라톤 공작을 무시한 거나 다름없어. 난 그런 놈한테까지 공짜로 치료제를 줄 만큼 호구가 아니야.”
“이 상황에서 치료제를 안 주겠다는 건 사람을 죽이겠다는 거야!”
“내가? 당신이 죽이는 게 아니라?”
“너 때문이지! 내 영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는 줄 아느냐? 네가 그 사람들을 다 죽이는 거다!”
나는 미아렌 백작이 개소리를 하도록 내버려두며 응접실에 있는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황금빛의 아름다운 오토마타 시계에서 핑그르르 춤추며 돌고 있는 남녀.
이윽고 남녀가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하? 이젠 내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아? 너 그게 무슨 버르장머리냐!”
“당신이야말로 그게 무슨 버르장머리지? 치료제 좀 달라고 구걸하러 왔으면 그에 걸맞게 굴어야지. 무릎 꿇고 개처럼 빌어 봐.”
“이, 이, 이 빌어먹을 년이!”
미아렌 백작이 황소처럼 소리 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버릇없는 애새끼한테는 매가 약이지!”
그가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나는 눈을 빛내며 호흡을 모아 단전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흐, 흐아아아아앙!”
아직 때리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자 미아렌 백작이 순간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흡족해했다.
“그래, 역시 매를 드니 정신이 드나 보구一.”
“이게 감히 뭐하는 짓이오, 미아렌 백작!”
벼락같은 노호가 미아렌 백작의 등을 후려쳤다.
미아렌 백작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았다.
상대를 확인하자마자 그는 혼비백산해서 허둥지둥 문가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화, 화, 황비 전하를 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