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85)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85화(85/353)
☆ 제86화 ☆
* * *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집안을 먼저 다스려야(4)〉
독자님!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파에라톤 공작가의 마지막 관문!
제온 파에라톤이 긴 살육의 나날을 끝내고 드디어 집으로 귀환했습니다!
어서 이 살육마를 휘어잡고, 파에라톤의 정점에 올라서십시오!
가문을 완전히 장악하시고 독자님의 영향력을 만방에 떨치십시오!
– 조건: 제온에게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기
– 보상: 7000캐시 뽑기권
“…….”
이건 퀘스트를 하라는 걸까, 말라는 걸까.
살육의 나날을 보내고 왔다는 소리를 굳이 또 왜 말해!
지금 장갑이 피범벅이라고!
근데 얘한테 인정받으라고?!
“그 더러운 손으로 만지지 마.”
익시온이 이빨을 드러내며 제온에게 날을 세웠다.
제온의 눈동자가 스르륵 익시온을 향했다.
“지금 명령하는 건가.”
그 목소리는 아주 건조했다.
분노했다는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아레스와 익시온에게서 맹렬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두 사람의 경계심이 내게까지 찌릿찌릿 느껴질 정도로.
나는 주먹을 꽉 쥐고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제온, 어서 와!”
나는 이들 사이에 흐르는 기류를 모르는 척 그냥 평범하게 제온을 맞아주었다.
“내 생일 축하해주러 돌아온 거야? 케이크 남겨놓을걸.”
제온은 환하게 웃고 있는 나를 기묘한 걸 보듯 바라봤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지금 제온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하지만 나는 가만히 나를 응시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제온은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거니까.
“파티에 참석할 거면 옷부터 갈아입고 와라, 제온.”
아빠가 나를 슬쩍 가로막아서며 말했다.
제온이 힐끗 아빠를 바라보았다가 대답 없이 뒤를 돌았다.
그는 그렇게 파티장을 나갔다.
그리고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 * *
‘으으, 신경 쓰여! 신경 쓰여!’
나는 보던 서류를 탁, 소리 나게 덮었다.
칸도르 백작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영 집중을 못 하시는 거 같습니다.”
“못하고 있어, 완전.”
의자에서 기지개를 쭉 켰다가 몸을 당기며 물었다.
“저기, 제온은 어떤 사람이야? 많이 난폭하고 흉악해?”
퀘스트창에서는 살육마라고 하질 않나.
어제 익시온과 아레스는 예민하게 반응하고.
아빠는 슬쩍 나를 감추기까지 했다.
‘하지만 가장 신경 쓰이는 건…….’
뒤돌아 나가던 등.
그 반듯하고, 똑바르고, 아무런 쓸쓸함도, 아무런 외로움도 느껴지지 않았던 등.
그 모습이 왜 이렇게 눈앞에서 흩어지지 않는지.
“파에라톤의 일원은 다들 난폭하고 흉악한 감이 있지요.”
“……우리 가족이 그렇게까지 흉악하고 난폭하진 않은데.”
입술을 삐죽이자 칸도르 백작이 피식 웃었다.
“그중 가장 난폭하고 흉악한 건 아무래도 아레스 공자님 아니겠습니까?”
“아레스가?”
우리 아레스가 얼마나 봄볕 같은데.
물론…… 우여곡절이 좀 있었지만.
“폭발할 것 같은 마기의 양부터 시작해서 여러모로 그렇지요. 공녀님께선 아레스 공자님의 예전 모습을 못 봐서 그렇습니다.”
“지금은 그나마 갈무리하고 계시지만, 예전엔 무슨 시한폭탄 같았으니까요.”
옆에 있던 디에르 자작이 끼어들었다.
“가장 상식인은 역시 익시온 공자님이시죠.”
“익시온이?”
“그래도 행동의 동기가 아주 명확하지 않습니까.”
“……익시온은 예전에 날 공격했는데.”
“그건…….”
“상식인은 동생을 그런 식으로 공격하지 않아. 괴롭혀도 정도가 있다구!”
“그 행동의 범위가 너무 극과극이어서 그렇지, 그래도 동기는아주 명확하지 않습니까?”
“응.”
하긴, 익시온이 내게 그렇게 날을 세웠던 이유는 다분히 인간적이었다.
그 애는 그냥 자신을 아무렇지 않게 대해 줄 평범한 사람이 필요했던 거다.
단단하게 받쳐줄 땅이.
하지만 자기 자신이 그걸 원하는지도 몰랐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는 더더욱 몰랐다.
“행동이 너무 과격해서 그렇지, 그 안을 들여다보면 매우 인간적인 동기를 가지고 있죠.”
“아레스 공자님은…… 평범한 사람의 감각과는 확연히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이해는 되죠.”
“그만한 힘을 가졌으면 다른 인간들이 벌레처럼 보일 테니까요. 그 벌레들이 자신을 통제하려고 들면 분노할 수밖에 없죠.”
두 사람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레스는 항상 웃고 있지만, 그럴수록 선명하게 적의가 느껴질 때가 있다.
나한테는 이제 완전히 괜찮지만.
“하지만 제온 공자님은…….”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왜, 왜 그러는 거야. 사람 불안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 말에 제온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유리알처럼 아무 감정 없이 무기질적이었던 눈.
감정이 하나도 담기지 않았던 건조한 목소리.
“단순히 도련님은 차갑다…… 라고 하기엔 너무 부족하죠.”
“사실 공작성에 있는 사람 누구도 제온 공자님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겁니다.”
“왜?”
“집에 계시는 때가 거의 없거든요.”
“항상 밖에 있어?”
“네, 지난 4년간 단 한 번도 돌아오지 않으셨잖습니까? 자주 그러십니다. 5년 전에도 마님의 출산이 임박해서 돌아오셨던 겁니다.”
“거기에 워낙 사람을 곁에 두지 않으셔서 보좌단도 없습니다.”
“첫째인데?”
가장 화려한 보좌단을 이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전담 집사나 하인조차 없으시니까요.”
“왜?”
“……모르겠습니다.”
“싫다거나 귀찮아하는 내색도 전혀 없으셨습니다. 그냥…….”
칸도르 백작이 말을 흐렸다.
그냥, 뭐?
뭘 했는데?
“크흠, 어쨌든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러셔서 제온 공자님을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애기일 때부터 그랬다구?”
너무하잖아!
“아가씨, 마기가 흐르는 파에라톤은 딱히 성장에 정서적인 교류가 필요하지 않아요. 일정 수준의 사회화가 필요하지만 보살핌은 없어도 괜찮습니다.”
“지금 익시온 도련님을 보세요. 어느 보좌와 하인이 도련님을 보살펴 드리겠습니까. 아레스 도련님도 그렇고요.”
……그래도 익시온한테 필요했던 건 가족이었어.
멀쩡히 기능하고 있다고 해서 그게 다가 아니야.
‘완벽, 이라고 했었지.’
“저는 각하를 한 치의 틈도 없이 완벽한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타인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분이고, 타인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이해 못 하는…….”
그건 완벽한 게 아니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걸 완벽하다고 여기며 수긍하고 있다면.
그간 아빠와 오빠들이 어떻게 지내왔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는 거 하나라도 있을 거 아냐. 좋아하는 거라던가.”
“글쎄요.”
“그럼 싫어하는 거는? 이건 더 알기 쉽잖아.”
“그것도 잘…….”
“…….”
자신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아무하고도 공유하지 않는 삶이란 어떤 걸까.
시무룩한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디에르 자작이 나를 위로하려고 했다.
“제온 도련님과 친해지고 싶으셔서 그러세요? 우리 아가씨께서는 귀여우시니 제온 도련님도 좋아하실 거예요.”
“제온이 무슨 디에르 아저씨도 아니고.”
흥, 하고 입술을 내밀자 디에르 자작이 한참 고민했다. 그러더니 반색하며 외쳤다.
“아, 제온 도련님께서 좋아하시는 거 하나 생각났어요!”
“정말?”
역시 그래도 좋아하는 거 하나쯤은 누군가와 공유했겠지!
적어도 다른 사람이 알아챘다거나!
“뭔데, 뭔데?”
“몬스터 머리를 부수는 게 재밌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
“이걸 주제로 대화해보시면 어떨까요?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겁니다.”
디에르 자작이 “어때요?” 하며 자랑스럽게 웃었다.
……도움 되는 정보 참 고맙다!
* * *
나는 높게 묶은 머리를 한쪽으로 넘기며 거울로 목뒤를 확인했다.
새까만 문양이 목덜미에 새겨져 있었다.
내가 시드를 맡겠다고 했을 때 아빠가 직접 쳐주신 결계진이었다.
‘이거면 괜찮겠지.’
그나저나 시드 녀석은 잘 크고 있을까.
이 할미는 걱정이 돼.
‘아니지, 그 배은망덕한 놈을 걱정할 때가 아냐!’
나는 푸딩 그릇을 들고 제온의 방으로 갔다.
똑똑, 문을 두드렸는데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슬쩍 문고리를 돌려보니 문이 열렸다.
‘어, 이건……. 여주를 만나기 전 북부 대공의 방 같은데?’
고급스럽고 호화로웠지만 묘하게 황량했다.
왠지 냉장고 문을 열면 에비☆ 생수만 가득 채워져 있을 거 같은…….
‘자리를 비웠나?’하며 두리번거리는데.
“어.”
제온이 기척도 없이 안쪽 창가에 기댄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녕, 제온.”
조금 머쓱해서 인사를 하고 테이블 위에 푸딩이 담긴 트레이를 놓았다.
“같이 간식 먹을까 하고 왔어.”
“…….”
“집에 돌아오니까 좋지? 원래 집 나가면 고생이래.”
“…….”
아니, 이렇게까지 반응이 없을 수 있어?
귀찮아서라도 뭐라 하겠다!
‘결국 그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는가.’
“그간 어떻게 지냈어? 몬스터를 살…… 토벌하고 다녔다고 들었는데.”
“…….”
몬스터 머리 깨는 거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
반응이 한결같이 없잖아!
그때, 제온의 시선이 잠시 내 목덜미를 향했다가 돌아왔다.
‘서, 설마 결계진을 확인한 거야?’
결계 없었으면 어쩌려고?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도…….
“설마 제온이 내 생일에 돌아올 줄 몰랐어. 어제 진짜 재밌었는데. 옷 갈아입고 오지.”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제온이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영원히 열릴 것 같지 않았던 입술이 드디어 열렸다.
“너는 머리가 별로 좋지 않구나.”
내가 천재는 아니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멍청하진 않은데.
제온이 뚜벅, 뚜벅 걸어 내게로 다가왔다.
“그런 성대한 파티를 외부인까지 불러서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지.”
장갑 낀 그의 손이 내 뺨에 닿았다. 차갑고 단단한 가죽의 감촉.
“상품을 홍보하는 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겠어?”
그는 마치 상품을 감정하듯 나를 응시했다.
아.
이건 좀 화난다.
“우리 아빠는 그런 사람 아냐.”
제온은 나를 비웃지 않았다. 여전히 무감각한 얼굴로 조용히 물을 뿐이었다.
“네 아빠의 어디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해?”
“그러는 제온은 아빠의 어디 까지 알고 있는데?”
“적어도 너보단 잘 알지.”
“아닐걸?”
나는 허리에 손을 얹고 배를 쑥 내밀었다.
“제온은 아빠가 맘마라고 하는 거 들어 본 적 있어?”
“…….”
없지? 그치?
대답이 없는 제온을 보고 나는 더 당당해졌다.
“아빠가 치카라고 하는 건?”
봐봐, 이것도 없지!
“아빠가 루루 머리 빗겨주고 밤에 잘 때 토닥토닥해주는 건 알고 있어?”
봐!
내가 훠얼씬! 울 아빠에 대해서 잘 안다구!
엣헴, 하며 위를 올려다 보는데…….
뭐지.
이 남자, 갑자기 표정이 읽히는데요?
‘하나도 몰랐지만 정말 알고 싶지 않은 정보다.’
다소 무표정하긴 했지만, 제온은 확실히 그런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생각을 하나라도 알게 된 건 좋은데, 이런 생각이라면 나도 별로 알고 싶지 않았어.’
말할 땐 몰랐는데 좀 쪽팔렸다.
“아, 아무튼! 우리 아빠는 그런 사람 아냐.”
나는 서둘러 말을 돌리며 부산스레 푸딩을 내밀었다.
“이, 이거 먹을래?”
제온의 시선이 푸딩을 향했다.
“엄청 맛있어. 무려 아빠가 직접一.”
탁!
“필요 없어.”
만들어주신 건데.
제온이 쳐낸 푸딩이 그대로 허공을 날아 바닥에 철푸덕 쏟아졌다.
‘저건…… 우리 아빠가 내 생일이라고 내가 좋아하는 푸딩을 직접 만들어주신 건데.’
푸딩은 공작저에 와서 아빠랑 처음으로 함께 식사하면서 먹었던 거다.
아빠가 나한테 처음으로 양보해 주셨던 거.
맛있어서 푸딩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것 말고도 내게는 의미가 컸다.
그리고 저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푸딩이다.
“울지 마. 그러면 정말 귀찮을 거 같으니까.”
새빨간 눈동자가 나를 서늘하게 내려다봤다.
그 눈에서조차 분노와 짜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고하는 목소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보통이라면 그 이질감이 무서웠겠지만 지금 나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우리 아빠가 앞치마까지 입고 손수 내 앞에서 만들어주신 푸딩이 땅에!
철푸덕!
쯧, 하고 혀를 찬 제온이 방을 나가려고 했다.
지금 저래놓고서 그냥 가려고 한다고?
눈앞이 분노로 타올랐다.
“음식은 소중히 해야지!”
그렇게 외치는 순간 내 몸이 절로 움직였다.
쿵!
[능력〈벽쿵♥〉이 발동되었습니다.]내 손이 강하게 벽을 짚었다.
그리고 벽과 나 사이에 제온이 갇혔다.
한치의 틈도 없이, 가까이.
이렇게만 보면 참 완벽한 벽쿵이었다.
‘……내 시선은 제온의 허리에 오지만.’
벽쿵을 시도했으나 짧아서 장렬히 실패라니.
쪽팔려.
‘이 능력은 걸크러시라며, 걸크러시라며!’
이게 어디가 걸크러시인가!
나는 최대한 표정을 관리하며 고개를 들었다.
어쩐지 멍한 표정의 제온이 보였다.
“……나한테 이러는 아이는 네가 처음이야.”
……그야 처음이겠지.
근데 처음이고 싶지 않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