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86)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86화(86/353)
☆ 제87화 ☆
* * *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마치 처음부터 의도했던 척 자연스럽게 벽쿵을 풀었다.
“음식은 소중히 해야 하는 거야, 제온. 무엇보다 이건 아빠가 직접 만들어 주신 거라구.”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엎어진 푸딩 그릇을 들었다.
잔뜩 뭉그러진 푸딩을 보니 쪽팔림에 잊었던 속상함이 밀려왔다.
‘한 입도 못 먹구…….“
생일날 밤에 먹을까 하다가 아끼고 아끼느라 안 먹었는데.
‘기껏 이 소중한 걸 나눠 먹으려고 했건만.’
가만히 지켜보던 제온이 내 옆에 주저앉았다.
“주방에 말하면 또 만들어 줄 텐데.”
“그런 건 안 돼. 이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거란 말이야. 아빠가 만들어주신 푸딩인걸.”
제온의 시선이 날 향했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눈이었다.
“차라리 잘됐네.”
“뭐?”
“각하께서 만든 것보단 전문가가 만든 푸딩이 더 맛있을 것 아니야.”
뭐라고?
“지금 맛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섭취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열량과 영양소다. 에너지원을 얻기 위해 음식을 먹는 거니까.”
“…….”
“하지만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을 보면 맛에 더 가치를 두는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지.”
“…….”
“그런 의미에서 이 푸딩은 파티셰가 만든 푸딩보다 무가치하다.”
무가치하다고.
아빠가 날 위해 손수 만들어 준 푸딩이.
“그러니까 파티셰가 만든 것을 새로一.”
팍!
나는 벌떡 일어나 제온을 확 떠밀었다.
버텨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제온은 앉아 있던 그대로 저항 없이 내게 밀렸다.
그래도 화는 풀리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은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가치하다고?
“고마운 줄 알아.”
나는 차가운 눈으로 그를 내려다봤다.
“푸딩 싸대기 날리고 싶은 걸 참은 거니까.”
* * *
쾅!
문이 거칠게 닫혔다.
제온은 루아티샤에게 밀려 넘어진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조금 전 자신을 내려다보던 루아티샤의 얼굴을 떠올렸다.
시리게 빛났던 파라이바 빛 눈동자.
그는 자그마한 손이 저를 떠미느라 닿았던 가슴팍을 짚었다.
“아.”
제온이 고개를 숙였다. 새까만 머리카락이,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 그의 눈가를 덮었다.
가려진 그의 얼굴은 더더욱 표정을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드러나 있는 입매가,
“진짜 처음인데.”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한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 * *
나는 화단에 앉아 애꿎은 풀만 잔뜩 뽑았다.
한참 그러고 있는데 내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루루.”
올려다보니 아빠가 나를 내려다 보고 계셨다.
“아빠…….”
아빠 얼굴을 보니 기껏 죽였던 서러움이 일렁일렁이며 올라왔다.
아빠가 곧장 손을 뻗어 나를 안아 들었다.
“왜 그러지?”
“아빠, 죄송해요. 푸딩 떨어트렸어요.”
“그래서 이렇게 시무룩해 있던 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빠가 옅게 웃었다.
“괜찮다.”
커다란 손가락이 차분하게 내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또 만들어주마.”
그건 정말 감사한 말씀인데.
하지만 아빠.
그거 푸딩 마흔일곱 개 굽다가 겨우 하나 제대로 만드신 거잖아요…….
그걸 또 하시게요?
영 미심쩍은 눈으로 아빠를 바라보자 아빠가 내 눈을 피했다.
“하나를 잘 만들었으니 또 잘 만들 수 있겠지.”
음, 실력이 상승한 결과라기보단 우연의 산물 같았지만.
“다음에는 같이 만들어요!”
그래도 좋았다.
히히.
기분이 좋아지고 나니 제온이 떠올랐다.
그땐 너무 화가 나서 생각하지 못했지만, 제온의 말에는 악의가 없었던 것 같았다.
“…….”
진심으로, 효율적으로 생각해서 해준 말.
주변에 사람을 아무도 들이지 않았다면, 그 누구하고도 어떤 관계도 맺지 않았단 뜻이겠지.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마음을 담아 만들어 준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의미도 두지 않을 수 있다.
모르니까.
고아였던 나도 알고 있던 걸 제온이 모르다니.
공작성에만 이렇게 수많은가 솔들이 있는데.
“그런 건 마기가 흐르는 파에라톤에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니야. 내 생각은 달라.
그러니까 나는 제온에게도 알려줄 거야.
그리고 사과를 받아내야지!
“무슨 생각 중이지?”
아빠가 내 뺨을 톡 건드리며 물었다.
고개를 드니 아빠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뭔가를 꾸미고 있는 얼굴인데.”
꾸미긴요.
그냥 남매간의 우애를 돈독히 다져보려고 하는 겁니다.
애들은 원래 부딪치면서 크는 거잖아요?
* * *
제온 파에라톤은 평화로웠던 자신의 삶에 커다란 위협을 받고 있었다.
문제는 그 위협을 주는 인물이 드래곤도, 황제도, 마탑주나 소드 마스터도 아니라一.
“오다 주웠어.”
동화책을 내미는 다섯 살 어린애라는 거다.
그것도 분홍 솜사탕 같은 머리칼에 말랑말랑한 볼살을가 진.
제온은 루아티샤가 내민 동화 책을 바라봤다.
나는 혼자가 아니야
“…….”
제온은 무시하고 뒤를 돌았다.
애초에 왜 자신의 방에 이 아이가 있는 건가.
요즘 나갔다 들어오기만 하면 아주 자연스럽게 소파에 늘어져 있었다.
제온은 그대로 안쪽 방으로 들어가려다 멈칫했다.
솜인형이 그새 또 늘어나 있었다.
자연히 시선이 저걸 가져다 놓았을 범인을 향했다.
“그냥 거기 있던 건데?”
루아티샤는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는 듯 무심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갖든가 말든가.”
툭 던지고 다시 자신의 둥지가 되어버린 소파 위에 올라간다.
핑크빛 담요를 돌돌 두르고 동화책을 펼쳐 든 후, 쿠키를 와삭와삭 씹어 먹는다.
제온은 새삼스레 제 방을 둘러봤다.
항상 깔끔하고 깨끗했던 방이 온갖 것들로 오염되어 있었다.
달콤한 향기가 나는 꽃.
토끼, 양, 고양이 솜인형.
침대맡의 동화책.
아이용 담요와 부드러운 쿠션, 언제나 집어먹을 수 있게 준비된 과자.
그리고 무엇보다.
저 소파 한구석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조그마한 여자애.
마치 저기가 자신의 영토라도 되는 양 굴고 있다.
처음에는 몰래 살금살금 가져다 놓더니, 한 번 꽃을 놓고 가는 범행 현장을 들키니 이렇게 말했다.
“제온한테 버린 거뿐이야.”
참으로 뻔뻔한 아이가 아닐 수 없다.
그 다음부터는 아예 대범해져서 이렇게 대놓고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제온은 언제나처럼 무시하려던 것을 그만두었다.
방법이 조금 다르긴 했지만, 자꾸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들이 했던 말은 한결같았다.
“이제 말해.”
루아티샤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묻는 제온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를?”
“당신의 상처를 아는 건 저뿐이에요.”
“응?”
루아티샤의 눈이 더 커졌다.
“당신이 그렇게 몬스터를 살육하고 다니는 건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거죠.”
무표정한 얼굴로 저런 대사를 읊는 게 어떤 의미론 참으로 대단했다.
“사실 당신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알고 있어요. 알 수 있어요. 오직 나만이 당신을 이해하고 있어요.”
루아티샤는 감탄했다.
“우와, 누가 그랬어?”
“많이들.”
아하.
루아티샤는 알만 하다는 듯 웃었다.
‘제온에게는 그런 로맨틱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면모가 있긴 하지.’
원래 잘생기면 다 이해해주고 싶은 법이다.
그 사람이 고독해 보이면 더더욱.
“근데 제온한테는 딱히 상처 없잖아.”
“어떻게 알아?”
“당연히 알지.”
상처란 것도 사람과 부딪쳐봐야 비로소 생기는 거다.
하지만 제온은 부딪치긴커녕 스치지도 않았는데 상처는 무슨 상처.
트라우마가 있거나 해서 사람을 피하는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아무도 곁에 들이지 않았는데.
‘그치만 나는 그게 더 슬픈 일이라고 생각해.’
루아티샤는 어깨를 으쓱였다.
“제온이 몬스터 잡는 건 그냥 머리 부수는 게 재밌어서라며.”
“…… 그래.”
“그럼 그런 거겠지.”
제온은 말없이 루아티샤를 바라보았다.
그에게는 항상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제도에 가면 더더욱 그랬다.
그들은 전부 제온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곤 자신의 해석이 옳다고 하며 제온을 이해한다고 했다.
“……넌 날 이해하지 않아?”
“아무것도 얘기해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해해. 잘 모르는데 당연히 이해 못 하지.”
루아티샤가 고개를 들어 제온을 마주 바라봤다.
“하지만 우리 오빠니까 알아 가고 싶다고는 생각해.”
제온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장인의 공예품처럼 아름다운 눈동자는 딱 그만큼 무감했다.
루아티샤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근데 그 여성분들이 제온을 벽에 가두진 않았어?”
“……그런 짓을 한 사람은 너뿐인데.”
루아티샤의 표정이 찌그러진 호빵처럼 변했다.
그건 좀 잊어주라.
* * *
씻고 나온 제온은 자연스레 소파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깨닫고 다소 놀랐다.
어째서 이 아이의 존재를 확인한 걸까.
루아티샤는 소파 위에서 세상 모르게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가느다란 숨결. 목덜미에서 콩 콩 뛰는 맥박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
그는 한참 동안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건 아주 기묘한 감각이었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의 영역 안에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하물며 이렇게 무방비하게 잠든 것은 더더욱.
한참 보고 있자니 루아티샤가 잡고 있던 동화책이 스르륵 미끄러졌다.
제온은 손을 뻗어 동화책을 붙들었다.
그때였다.
아이의 조그마한 손이 동화책과 함께 그의 손을 꽉 붙잡았다.
제온의 눈동자가 훅 좁아졌다.
“…….”
아이는 여전히 꿈나라에 있었다. 무슨 꿈을 꾸는지 아예 입맛까지 쩝쩝 다시고 있다.
제온은 손을 빼내지 않고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체온은 따끈따끈했고, 너무 깊이 잠들어 있었다.
제온은 잠자코 손끝에 붙은 작은 온기를 느꼈다.
유독 마기가 예민한 그에게 타인의 존재는 불쾌감만 줄뿐이었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벌레가 피부 위를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예외가 있다면 똑같이 마기를 보유하고 있는 친부와 형제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건 자그마한 벌레가 아닐 뿐, 오히려 더 큰 존재감으로 신경을 건드렸다.
그런데 어째서 이 아이는 이렇게…….
“아무것도 얘기해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해해. 잘 모르는데 당연히 이해 못 하지.”
“하지만 우리 오빠니까 알아 가고 싶다고는 생각해.”
‘……여태까지 나를 알아 가고 싶다고 한 사람이 있던가?’
모두 난 ‘진짜’당신을 안다면서 자애로운 눈을 하고 다가오다가, 쳐내면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아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루아티샤는 다르다.
소리치고, 떠밀고, 거침없이 화를 내고.
이런 식으로 부딪쳐오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제온 파에라톤은 이해받을 필요 없었다.
제온 파에라톤은 곁에 있어 줄 사람이 역시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온의 손이 루아티샤의 머리카락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루아티샤가 반짝 눈을 떴다.
그녀는 잠들어 있던 자신에게 다가오는 커다란 손을 보았다.
아빠의 손이 아니다
비몽사몽간에 그걸 깨닫는 순간, 비상등이 켜졌다.
그리고 그 감각에 능력이 반응했다.
[능력〈벽쿵♥〉이 발동됩니다.]그 즉시 루아티샤의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손목을 거칠게 확 잡아채 제 아래로 밀어붙였다.
순식간이었다.
쿵!
제온은 소파에 떠밀려 누운 채 저를 짓누르는 루아티샤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긴 분홍빛 머리카락이 그의 이마와 뺨을 간질였다.
이국의 청명한 바다 같은 파라이바 빛 눈동자가 아주 가까이서 그를 담고 있었다.
타인의 눈에 비친 자기 자신을 보는 건 처음이다.
“…… 제온?”
루아티샤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제온의 팔목을 거칠게 틀어쥔 자신의 손.
다른 쪽 손은 제온의 얼굴 옆을 짚고 있었다.
그리고 숨결이 스칠 듯 아주 아주 가까이 있는 제온의 얼굴.
촘촘하게 나 있는 새까만 속 눈썹과 그 아래 빛나는 붉은 눈동자가 홍채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짧아서 실패했던 벽쿵이 소파 쿵으로 바뀌자 훌륭하게 성공했다.
‘……아니, 그래도 난 이딴 거 성공하고 싶지 않았어.’
다섯 살 응애가 해낼 수 없는 일이건만 대애단하신 능력 덕분에 가능해졌다.
“……나에게 이러는 아이는 네가 처음이야.”
눈을 마주한 채, 제온이 속삭였다.
그래, 처음이겠지.
근데 이거 하나도 재미없거든?
이딴 반복 노잼이야.
왜 갑자기 발동 빈도수가 올라간 건데!
흑흑.
그때, 제온의 입꼬리가 설핏 올라갔다.
그가 루아티샤의 팔을 휙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루아티샤의 몸이 아래로 향했다.
제온은 소파 위에 누워 있는 루아티샤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조금 설렜어.”
야. 놀리는 거 다 티 나거든?
하씨, 쪽팔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