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87)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87화(87/353)
☆ 제88화 ☆
* * *
“요즘 너무 제온 놈하고만 어울리는 거 아냐?”
익시온의 말에 나는 뜨끔했다.
“내 동생을 빼앗긴 것 같아서 조금 슬픈걸.”
아레스까지 가세하자 더더욱 찔리게 되었다.
솔직히 매일매일 제온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몇 주째 두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든 건 사실이었다.
“아, 아니야! 뺏기긴 뭘 뺏겨! 지금 아레스랑 익시온이랑 같이 간식 먹고 있잖아.”
“예전보다 빈도수가 훨씬 줄었어.”
“나한테는 매일매일 찾아와 주지도 않고.”
양쪽에서 삐진 티를 팍팍 내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진땀이 흘렀다.
“그 새끼가 뭐가 좋다고.”
“제온이 제일 좋은 거야?”
“아니야!”
두 사람의 목소리가 낮아지기 시작해서 나는 서둘러 외쳤다.
에잇!
좀 쪽팔리지만 어쩔 수 없지.
“익시온한테는 벽이 있고 아레스는 혼혈이잖아. 제온은 아무것도 없어.”
“그래, 내게는 벽이 느껴진다고 했지. 완벽.”
“내 동생에게 나는 천국과 제국 혼혈이었지.”
“으응…….”
설마 내가 내 입으로 저 말을 다시 꺼낼 줄이야.
“제온 자식에겐 아무것도 없단 말이지.”
“앞으로도 없는 거지?”
“그러엄!”
안 그래도 쪽팔린 짓 많이 해서 여기서 더 쪽팔린 짓 하고 싶지 않아.
내가 내 손으로 지킨다, 나의 이미지!
“여기 이 금귤잼도 같이 먹어 봐. 맛있어. 발라줄게.”
“코코아 다 마셨네. 어쩔 수 없지. 내가 더 따라줄게.”
기분 좋아진 아레스와 익시온과 함께 간식을 마저 즐기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두 사람이 흠칫하며 한쪽을 바라보았다. 경계심 어린 눈빛이었다.
‘뭐지?’
그쪽을 바라보니 저 멀리 제온이 보였다.
제온은 아무 말 없이 이쪽은 빤히 쳐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유리 세공품처럼 무기질적인 얼굴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제온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두 사람은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안 보이게 되고 난 다음에야 아레스가 입을 열었다.
“저 자식은 조심하는 게 좋아.”
“맞아. 성격이 지랄 맞거든.”
“아레스보다 더?”
내 물음에 두 사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그치. 이 자식도 저 자식 못지않게 성격이 더럽지.”
익시온이 킬킬 웃었다.
아레스는 다소 충격받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치만 맞잖아? 아레스를 사랑하지만, 아레스 성격은 솔직히 좋지 않은걸.”
내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아레스가 미소 지었다.
“반박할 수 없다는 점이 슬프네. 하지만 내 동생이 그래도 나를 사랑한다니 기쁜걸.”
아레스가 고개를 기울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결 좋은 흑발이 흐트러지며 살짝 쳐진 눈매가 사르르 휘었다.
‘와…….’
언제 봐도 감탄이 나오는 모습이었다.
내가 멍하니 바라보자 아레스가 더 깊게 웃었다.
“근데 묘하긴 하네.”
익시온이 비뚜름히 턱을 괴며 말했다.
“뭐가?”
“그 자식은 절대 사람을 곁에 두지 않거든. 예민하니까.”
예민하다는 어조가 어딘지 미묘했다.
단순히 사람 성격이 예민하다는 말과는 다른 느낌.
“그러게. 몇 주간 매일매일 루루와 함께 있었지. 견딜 수 없었을 텐데 어떻게 참고 있는 거지?”
두 사람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뭐, 이 녀석은 좀 다르니까.”
익시온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아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동생은 무척 사랑스럽지.”
차암나.
허참.
내가 그럼 좋아할 줄 알고?
잘생긴 동생바보 오빠들 최고다!
히히.
* * *
그로부터 또 수일.
나는 여전히 제온의 방에서 생활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제온, 내가 제온이랑 같이 밥 먹으면서 지켜봤는데.”
요즘 내가 하는 일은 제온의 취향 찾아주기였다.
“제온은 육식파더라구. 뭐가 나오든 항상 적정량만 섭취한다는 식으로 먹지만, 스테이크가 나올 때 은근히 나이프질이 빨라. 그리고 소스의 맛이 강한 것보단 담백한 걸 좋아하고.”
몇 주간 눈앞에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미세한 차이였다.
제온은 밥을 표정 없이 기계적으로 먹어서 알아차리기 힘들다.
맛있냐고 물어도 딱히 돌아오는 대답도 없었고.
“그리고 의외로 단 걸 좋아하는 거 같아.”
그건 꽤 귀여운 면모였다.
씩 웃으면서 제온을 돌아보는데一.
“어?”
잠들어 있네?
‘그러고 보니 제온이 잠든 건 처음 봐.’
소파에 긴 팔다리가 무방비하게 펼쳐져 있고 정갈한 눈매는 꾹 감겨 있었다.
나는 가만가만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단정한 흰 이마가 드러나 있었다.
가을 햇볕이 소년의 얼굴을 밝게 물들였다.
‘역시 자는 모습은 천사 같네.’
그것도 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예술작품 같았다.
‘이대로 박물관에 가져가면 될 것 같은데.’
모처럼 단잠을 자는데 혹시 햇볕 때문에 깰까 봐 나는 커튼을 쳤다.
그리고 담요를 들고 제온에게 다가갔다.
‘내 전용 담요지만 오늘은 빌려주도록 하지!’
핑크빛 담요를 덮고 있는 제온을 상상하자 조금 웃음이 나왔다.
‘옛날에 뺨에 핑크 하트를 뿅뿅 달고 있던 아빠가 생각나네.’
웃고는 제온에게 담요를 덮어 주는 순간이었다.
파악!
손목이 거칠게 붙들렸다.
제온이 습격당한 야생동물처럼 몸을 반쯤 일으킨 채 날 응시했다.
평소와 달리 미간 잔뜩 찌푸린 얼굴.
그의 눈동자가 잠시 상황을 판단하는가 싶더니 이내 무섭도록 날이 섰다.
“……뭘 한 거지?”
“그냥 담요 덮어준 건데.”
손목이 아프다.
제온의 시선이 내가 쥐고 있는 담요를 향했다.
다시 내 얼굴을 향하는 그의 눈동자는 어딘지 혼란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혼란보다 더 큰 것은 경계였다.
“나가.”
그늘진 얼굴 속에서 붉은 눈동자가 선명하게 번쩍거렸다.
명백한 적의.
“당장.”
* * *
‘핑크빛 담요였던 게 마음에 안 들었나.’
나름대로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내쳐질 줄이야.
하지만 이 정도로 포기할 리가!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도 알아볼까?’
좋아하는 음식 취향을 알아낸 것처럼 지켜보다 보면 알 수 있겠지.
“공녀님.”
그때, 칸도르 백작이 내게 다가왔다. 표정이 상당히 굳어 있었다.
무슨 일이지?
“안수르에서의 연락입니다.”
속삭이는 말에 나 역시 덩달아 얼굴이 굳었다.
“심각한 일이야?”
“정체를 꽤 깊숙이 캐낸 사람이 있습니다.”
“……일단 집무실로 가서 이야기하자.”
집무실에 도착하니 디에르 자작은 이미 와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물을게. 상단의 비밀을 캐낸 사람은 어느 쪽이야? 황제나 황후, 아니면 다른 황족?”
“아닙니다. 그쪽은 오히려 마킹해서 철저히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세력보다 안수르에 대해 알아내기 힘들 겁니다.”
“혹여 섣불리 정체를 캐내다가 관계가 틀어질까 오히려 경쟁이라도 하듯이 호의적으로 굽니다.”
“그럼 고위 귀족? 공작가나 후작가? 아니면 변경백?”
“귀족도 아닙니다. 거대 길드도, 마탑도 아닙니다.”
“그럼 대체 누가?”
“신생 용병단입니다.”
신생 용병단?
유명 대규모 용병단도 아니고 신생?
디에르 자작이 서류를 건넸다.
세멘 용병단 보고서
“몇 달 전에 생겨서 거대 용병단을 먹어 치우며 빠르게 성장 중인 곳입니다.”
나는 자료를 넘겨보았다.
맡은 의뢰부터 시작해서 성장 속도까지.
‘와, 단번에 도급에서 B급, B급에서 S급이라.’
유례없는 속도였다.
B급에서 S급이 되기까지 거친 의뢰는 단 하나.
사실상 도급에서 바로 S급을 줘야 하는데 주기 싫어서 거친 것이나 다름없다.
모급에서 바로 B급이 되는 것조차 최초이니 얼마나 내부 반발이 심했겠는가.
그 때문인지 S급 승급 의뢰는 정말 극악의 난이도였다.
‘세멘, 세멘이라.’
그런 단어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생각날 듯하면서도 생각나지 않았다.
“근데 이 용병단이 어떻게 안수르에 대해 알아낸 거야?”
“위장 잠입입니다. 그것도 몇 개월에 걸쳐 조심스럽게 했더군요. 한두 명이 아닙니다.”
“그거 가지고 정보가 새어 나간다는 게 말이 돼? 우린 점조직으로 운영하고 있어서 아무리 상단에 고용되었다고 해도 자기 직무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뿐만 아니라 검은 황금이 판매되고 난 후 고용된 사람들은 절대 인사이동이 없다.
“용병단의 우두머리가 누군지 꽤 그림을 그릴 줄 아는 놈이더군요.”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죄송합니다, 공녀님.”
칸도르 백작과 디에르 자작이 고개를 숙여서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야. 경계는 황족이나 귀족, 마탑 같은 거대 세력 쪽에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설마 신생 용병단이 이리 움직일 줄은 몰랐겠지. 하다못해 정보 길드였다면 더 빠르게 대응했을 건데.”
나는 서류를 툭 치고는 물었다.
“단장이 어떤 놈인데?”
“그 정체는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아주 강한 놈이라는 것밖엔 확실한 게 없습니다.”
“소문은 무성합니다. 남자다, 여자다. 어디에서는 경력 많은 용병이라고 하는가 하면 또 어떤 곳에서는 아예 신인이라고 합니다.”
끙.
그럼 저쪽을 캐내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겠군.
“그럼 일단 솎아내는 작업부터 하자. 더 이상 정보가 새어 나가면 곤란해.”
“예, 이미 진행 중입니다. 우선 이 자료를 봐주십시오.”
“솎아내면 인력 자원에 공백이 생길 텐데 어떻게 할까요?”
“새로운 사람을 뽑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자.”
“네, 그러면…….”
나는 두 사람과 함께 오랜 시간 회의를 했다.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있을 예정이었다.
최대한 고심해서 개편하고 있지만 실제로 적용된 후에 어떻게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실태를 계속 확인하며 잡음은 없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후에는 세멘을 역 추적하자.’
나한테도 정보 길드 같은 게 있으면 좋을 텐데.
칸도르 백작과 디에르 자작 그리고 나.
안수르에 대한 건 이렇게 세 명이서만 진행하다 보니 일이 많았다.
‘피안크와 그륀드, 옐로체 모두 슬슬 합류시켜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일단 지금은 정보가 새어 나가는 상황이었다.
‘충원도 안정기에 해야지.’
파에라톤 공작가는 안 그래도 강한 견제를 받고 있다.
가문의 안주인인 공작부인을 막 잃은 상황에서 가주를 참전시킨 것부터 그렇다.
그 기간 동안 공작성을 주인 없는 곳으로 만든 거다.
‘아빠가 전쟁에 나가 있을 때도 공작부인을 들여야 하지 않겠냐며 황실에서 사람이 왔다고 했지.’
빈집에 공작부인을 들이려는 이유는 뻔했다.
잠시 레이디 아펠리아 때의 악몽이 떠올라서 머리가 아파져 왔다.
‘지금도 이런데 검은 황금까지 독점하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 어떻게 될지.’
거기다가 그게 텅 빈 마나석을 가공해서 만들어졌다는 것까지 알려지면…….
그간 헐값에 나한테 광산을 팔았던 사람들까지 난리가 날 거다.
‘그럼 곤란해.’
언젠간 알려질 수 있다.
어쩌면 내가 내 입으로 밝히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다른 세력과 교류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선 안 돼.
‘그걸 막기 위해 열일해야지!’
나는 한동안 일에 매달렸다.
그 전부터 코촌 치킨 분점을 낼 준비 중이기도 했기에, 다른 가신들은 내가 그 일로 바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가끔씩 와서는 “크홈, 저희 집 근처에도 목 좋은 곳이 있는데…….”라며 은근슬쩍 운을 띄웠다.
내게 온갖 먹을 것을 안겨주며 로비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 치킨집이 집 가까이 있으면 삶의 복지가 올라가지.
탐낼 만해.
하지만 나는 지금 삶의 복지 지수가 쭉쭉 내려가고 있었다.
‘으으, 피곤해!’
이건 다섯 살 응애가 소화해 낼 수 있는 일정이 아니라구!
물론 저녁이 되면 꼬박꼬박 강제로 돌려보내졌다.
그리고 식사 시간은 물론 간식 시간과 낮잠 시간에도 일을 멈추고 쉬어야 했다.
안 그러면 디에르 자작이 불같이 화냈다.
“안 됩니다! 아가씨께서는 지금 쉬셔야 해요! 낮잠 시간 시간입니다!”
“하지만 아직一.”
“지금 주무시지 않으면 강제로 머리카락을 천만번씩 빗을 거예요!”
“…….”
“앗, 생각해보니 주무시지 않아도 됩니다.”
“……잘래.”
“그럼 자장가 불러 드릴까요? 듣고 싶으시죠? 그렇지요?”
“나가.”
떠올리니 왠지 더 지치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시드의 금제를 조사했을 때에 비하면 훨씬 널널한 일정인데.’
그때는 피곤한 줄도 몰랐는데 이번엔 왜 이리 힘든지.
나는 쭈욱 기지개를 피며 회랑을 걸었다. 낮잠을 자러 내 방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제온도 못 본 지 한참 됐네.’
익시온과 아레스는 내 간식 시간에 합류하지만, 제온은 내가 찾아가지 않으면 만날 수 없으니까.
‘설마 오랫동안 못 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음, 마지막에 나한테 화를 냈던 걸 생각하면 차라리 거리를 두는 게 낫나 싶기도 하고.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화도 가라앉겠지.
‘……근데 시간이 지나도 너무 지났지 않아?’
공작성 안은 따뜻했지만 정원에 나가서 하아, 입김을 불면 새하얀 숨이 나왔다.
벌써 겨울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곧 한 해의 마지막 달이었다.
‘이렇게 못 본 지 오래됐는데. 어쩜 단 한 번 찾아오질 않냐.’
내가 그렇게 뻔질나게 들락거렸는데 갑자기 안 오면 궁금해서라도 찾아오겠다.
섭섭한 마음에 입술이 비죽 튀어나왔다.
‘제온은 매일매일 귀찮게 하던 애가 사라졌다고 좋아할지도.’
흥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모퉁이를 도는데, 내 방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너무 툴툴거려서 내가 헛것을 보나?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그래도 내 방 앞에 있는 소년은 사라지지 않았다.
“…… 제온?”
진짜 제온이 날 찾아온 거야?
제온이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왠지 그의 눈가에는 피곤함이
잔뜩 배어 있었다.
가까이, 더 가까이.
키가 큰 그의 그림자가 나를 완전히 덮고 나서야 발걸음이 멈췄다.
“너,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무 짓도 안 했는데요?
근데 이거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대사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