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88)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88화(88/353)
☆ 제89화 ☆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던 제온이 손을 뻗었다.
그는 나를 제 눈높이까지 달랑 집어 들고는 시선을 맞췄다.
무표정한 얼굴로 한참을 빤히 바라본다.
“……역시 이상해.”
아니,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댁인데요.
“마기가 없는 파에라톤이라더니 단순하게 마기가 없는 게 아닌 건가?”
뭐?
그게 무슨 뜻이지?
제온은 날 들고一안은 게 아니라 든 거였다一 공작성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온의 방으로 가나 했는데 아니었다.
마치 시험이라도 하듯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사람이 많은 곳이라도 상관없이.
‘아니, 오히려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가는데?’
항상 방에만 박혀 있거나 아무도 없는 전용 수련장에만 가는 제온이 이렇게 돌아다니는 건 처음이었다.
다들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제온은 아무 말 없이 지나쳤다.
그런 후에야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여전히 제온에게 들린 채였다.
다 치워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방은 내가 꾸미고 간 그대로였다.
토끼, 양, 고양이 인형과 핑크빛 담요. 동화책과 쿠키.
화병의 꽃은 이미 시들었는데도 버리지 않았다.
따로 언질하지 않았으면 방을 치우는 하녀가 보고 버렸을 텐데.
일부러 놔둔 거야.
왠지 가슴이 찡해졌다.
그동안 내심 많이 섭섭했었나 보다.
“너, 정체가 뭐지?”
그 말에 고개를 드니 제온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감정도 담지 않고 있던 그의 눈동자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아니, 혼란만이 아니었다.
뭔가 좀 더一.
“……뭐든 좋아.”
제온이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침실 쪽이었다.
“일단 자게 해줘.”
그가 나를 품에 안은 채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응?
고개를 드니 제온은 이미 눈을 감고 있었다.
“제온?”
그가 조용히 하라는 듯 나를 안고 있는 팔에 꽉 힘을 줬다.
‘뭐지.’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제온은 금방 잠이 들었다.
예민해서 이렇게 누가 빤히 바라보고 있으면 잠 못 들 줄 알았는데.
‘숨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자네.’
피곤한 눈가를 한 채로도 여전히 감탄이 나올 만큼 단정한 얼굴이었다.
잠든 제온을 보고 있으려니 나도 졸음이 살살 몰려오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낮잠 시간이라 잠을 자러 가는 길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가물가물 눈이 감기기 시작해서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제온과 함께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이른 저녁.
제온 파에라톤은 잠에서 깨어났다.
머리가 맑고 깨끗했다.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개운함이었다.
품 안에는 여전히 따끈따끈한 온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내려 잠든 아이를 바라보았다.
말랑말랑한 얼굴이 더 풀어져서 입까지 살짝 벌린 채 꿈나라 삼매경이었다.
“……진짜군.”
이토록 깊게 잘 수 있다니.
그것도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 공작성에서.
제온의 방에는 웬만해서 고용인들이 드나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멀리 있는 사람들의 기척이 기분 나쁘게 신경을 건드렸다.
그 탓에 공작성에 있을 때는 깊게 잠들 수 없었다.
자봐야 쪽잠, 그것도 며칠에 한 번씩이었다.
마기가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것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였다.
예민하기에 그 누구보다 섬세한 컨트롤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 탓에 느끼고 싶지 않은 것까지 아주 잘 느껴졌다.
자라나면서 힘이, 마기가 강해질수록 더더욱 그랬다.
그에게 타인의 존재는 항상 몸 위를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벌레 같은 것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누가 사람을 곁에 두고 싶겠는가.
몬스터는 차라리 나았다.
벌레보다 더 큰 감각으로 분명하게 신경을 건드렸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대로 죽여도 됐다.
몬스터를 한참 죽이고 나면 그 주변엔 몬스터도, 인간도 없었다.
소모된 마기의 양만큼 민감도 역시 떨어졌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잠이 들 수 있었다.
체력은 바닥을 치고 언제 또 몬스터가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차라리 그게 나았다.
제온이 집에도 돌아오지 않고 몬스터를 토벌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이 아이는 괜찮은 거지?’
처음에는 그저 기분 탓인가 했다.
그다음에는 너무 작아서 존재감이 안 느껴지는 거라고 납득 했다.
마기가 없는 어린아이가 주변에 있는 건 처음이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고 생각했다.
신기했다.
바로 눈앞에서 이야기해도, 소리쳐도, 심지어 벽에 가두고, 밀치고, 건드리기까지 해도一.
전혀 불쾌하지 않다.
오히려 이런 존재는 처음이라서 더…….
하지만 아이를 곁에 두고 잠이 든 자신을 발견한 순간.
제온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건 짧지만 아주 깊은 잠이었다.
심지어 아이가 곁에 다가와 자신을 건드리기 전까지 기척을 눈치채지도 못했다.
그렇게 잠든 게 대체 몇 년 만인지.
아니, 처음이었다.
이상은 곧 경계로 발현되었다.
“나가. 당장.”
매일매일 소파 위에 둥지를 틀고 있을 것 같던 아이는 그 후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존재를 잊고 있던 다른 사람의 기척이 민감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것 역시 이상 했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다른 사람들의 기척이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었다.
사막에서 물을 딱 한 모금 마시면 갈증이 사라지긴커녕 더한 갈증이 느껴진다.
제온이 그런 상태였다.
타인의 기척은 더 예민하게 느껴졌고, 그나마 며칠에 한 번씩 자던 쪽잠조차 들 수 없었다.
결국 제온은 아이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아주 깊고 편안한 잠을 잤다.
잠든 아이를 내려다보며 그는 깨달았다.
이 달콤한 잠을 맛보기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단지 그뿐일까?
루아티샤 파에라톤은 이상한 여자애였다.
아무도 그에게 하지 않았던 말을 하고, 아무도 그에게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한다.
화를 내면서도 끊임없이 부딪쳐온다.
나가라고 이 아이를 쫓아냈을 때.
사실 제온은 다음날이면 바로 이 조그마한 아이가 또 소파 위에서 뭉개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비어있는 소파에 담요만 덩그러니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때의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할지 제온은 알지 못했다.
서늘한 가슴을 외면한 채, 그는 잘됐다고 생각했다.
자꾸만 와서 방을 오염시키고 눈앞을 어지럽히던 게 사라지니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열
어느 순간, 제온은 아이가 꽃을 꽂아두던 화병이 빈 것을 깨달았다.
시들어서 하녀가 치운 것이다.
머리보다 몸이 더 먼저 움직였다. 제온은 미친 듯이 달려 나갔다.
수련장에 다녀오기 전까지만 해도 있었다.
그러니 아직 있을 것이다.
있어야만 한다.
제온은 버리기 위해 모아놓은 꽃들 사이에서 루아티샤가 제 방에 꽂아놓은 꽃을 발견했다.
그제야 발걸음이 멈췄다.
공작성을 장식했던 다른 꽃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엉성하고 볼품없는 꽃다발이었다.
잠시 멈춰 서 있던 제온은 천천히 걸어 그 꽃다발을 주워 올렸다.
방으로 돌아와 그 아이가 했던 것처럼 화병에 꽂았다.
왜 그러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다 그 애가 두고 간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 그 아이는 없었다.
어쩌면 그 아이는 다시 이 방에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지독한 공백이 찾아왔다.
그는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은 채 방 안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 * *
“우음…….”
답답해.
나는 몇 번 뒤척이다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떴다.
‘헉, 깜짝아.’
바로 눈앞에 조각 같은 소년의 얼굴이 있었다.
제온은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던 거지?
캐노피를 치지도 않았는데 주변이 어두웠다.
시간이 꽤 지난 듯했다.
제온이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어서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인사했다.
“잘 잤어?”
제온은 아주 낯선 질문을 들은 사람처럼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나는 가만히 제온의 얼굴을 살폈다. 눈가에 매달려 있던 피로가 다 사라져 있었다.
“그동안 잠 한숨도 못 잔 거야?”
자게 해달라는 그의 말이 신경 쓰였다.
설마 잠을 한숨도 못 잔 건 아니겠지만.
“……그래.”
……진짜로?
그래도 괜찮은 거야?
제온은 키도 훌쩍 크고 몸도 좋았지만, 그래도 성장기인데!
마기가 있으면 잠을 안 자도 살 수 있는 건가?!
그래도 피로가 쌓여있던 얼굴을 생각하면 몹시 괴로웠을 게 틀림없다.
“힘들었겠다.”
나는 제온의 가슴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그러고 있으려니 자연히 의문점이 떠올랐다.
“있지, 제온이 아까 나한테 자게 해달라고 했잖아. 내가 재워 주면 잘 수 있어?”
제온은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자느라 흐트러진 내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네가 곁에 있으면 잘 수 있어.”
왜?
난 딱히 수면 능력 같은 거 안 썼는데?
그때, 제온이 몸을 일으키곤 나를 달랑 들어 올렸다. 그리고 성큼성큼 방을 나섰다.
“어디 가?”
그가 향한 곳은 아빠의 집무실이었다.
아빠는 나와 제온의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제온이 입을 열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 *
아빠의 보좌들이 다 나가고 아레스와 익시온이 소환되었다.
그리고 제온이 들려준 이야기는 아주 놀라웠다.
예민하다고 말하던 익시온의 어조가 묘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게 설마 마기 이야기였을 줄 이야.
“루루가 곁에 있으면 민감도가 둔해진다는 건가?”
“컨트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집중할 수 있어서 더 정밀하게 제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부작용만 사라졌다는 건데.”
아빠가 나를 바라보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어떤 기색도 내비치지 않은 시선이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빠, 왜 그런지 알아내는 방법이 있는 거죠.”
“……그래.”
아빠는 대답을 망설였지만 내게 거짓말을 하진 않으셨다.
“왜 그 방법을 안 쓰세요?”
“가설이 틀리면 네가 아파할 수도 있어.”
“괜찮아요.”
“안 돼.”
“이건 저에 대한 거잖아요. 저도 저를 좀 더 잘 알고 싶어요.”
아빠가 미간을 찌푸린 채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결국 아빠는 옅은 한숨과 함께 내게 손을 뻗었다.
나를 무릎에 앉히고 머리를 꾹 눌렀다.
“아프면 바로 말해야 한다.”
“네!”
아빠가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
이윽고 새까만 마기가 내게로 불어넣어지기 시작했다.
아빠가 방어막을 쳐주시고 결계진도 만들어주셨지만, 이런 식으로 마기가 안에 들어오는 건 처음이었다.
아빠는 조심조심하면서도 내게 물었다.
“아프니?”
“아니요. 하나도 안 아파요.”
“그래.”
느낌이 조금 이상했지만.
아빠는 좀 더 살핀 후에 마기를 회수했다.
“어때요?”
아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기는 인간이 지니기엔 너무나 강대한 힘이다. 그 탓에 보유자들은 어딘가 뒤틀린 감각을 가지고 있지.”
아빠가 천천히 익시온과 아레스, 제온을 돌아보곤 이어 말했다.
“하지만 루루는 그 뒤틀린 감각을 안정화시킬 수 있나 보구나.”
내가?
“저는 그냥 마기 없이 태어난 평범한 애인 줄 알았는데.”
“마기 없이 태어난 파에라톤은 네가 처음이다. 어떤 다른 힘이 숨겨져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
마기가 없이 태어났을 뿐, 평범한 아이는 아니라는 걸까.
‘하긴, 환생자인 것부터가 평범한 거랑 거리가 있고.’
어쩌면 나한테 뭔가가 더 있을지도 몰라.
“루루와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 네 마기도 점차 안정되겠지. 그러면 이전처럼 힘들지 않을 거다.”
“잘됐다, 제온!”
나는 손뼉을 짝, 치며 웃었다.
그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점점 안정화되고 나면 다른 사람들과도 아무렇지 않게 어울릴 수 있겠다!”
제온이 고개를 비딱하게 기울인 채 무표정하게 내게 말했다.
“나는 딱히 필요 없는데.”
“응, 필요 없겠지. 하지만 때로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게 무척 소중해지는 법이거든.”
그 말에 제온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군.”
“어쩔 수 없이 제온 방에 내 기지를 마련해야겠다! 나가라고 해도 절대 나가지 말구! 아, 나한테 나가라고 하면 안 돼. 나는 제온을 도와주는 거니까!”
후후, 이것으로 내가 주도권을 쥐었다!
제온은 신이 난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너는 무슨 이득이 있어서 나를 도와주려는 거지?”
응?
그거야 당연하잖아.
이 가문을 정복一이 아니라!
“그야 제온은 우리 오빠니까.”
조금 멋쩍어서 나는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좀 짜증 날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아직도 푸딩 사건은 용서 못 한다.
“그래도, 내 오빠니까. 가족이니까.”
유리 세공품처럼 항상 무기질적이던 제온의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렸다.
몇 번 감정의 편린을 보긴 했지만, 제온이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 * *
다음날.
루아티샤는 아침부터 일에 치였다. 어제 잔뜩 자버린 대가였다.
그래도 조직 개편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나머지는 에체시스 용병단에 대한 조사인데.’
떠도는 소문만 모아봐도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흥, 하지만 이쪽을 캐냈다니. 어디 두고 봐. 나도 확실히 캐 내주지!’
루아티샤는 콧김을 뿜으며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어?’
그녀의 눈동자가 훅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