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90)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90화(90/353)
☆ 제91화 ☆
‘내가?’
‘이 녀석이랑?’
표정이 다 읽힌다, 다 읽혀.
“싫으면 말구. 싸울 거면 루루는 혼자 잘래.”
결국 우리 다섯 가족은 운동장만한 아빠 침대 위에서 나란히 누웠다.
휴, 오늘도 나의 귀여움으로 집을 지켰다!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를 감싸고 있는 온기가 느껴졌다.
‘뭔가 기분이 이상한데.’
오순도순(?) 온 가족이 누워 있는 게 발끝이 간질간질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잘자렴.”
“꿈에서 만나, 내 동생.”
“자라.”
“……잘자.”
귓가에 작게 속삭이는 제온의 말까지 듣고 나자 가슴이 빵빵 해졌다.
아.
이게 행복이구나.
코코아를 먹지 않아도 행복한 밤이었다.
다섯 살의 마지막 계절이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 * *
이건 꿈이다.
눈앞의 샘을 보자마자 깨달았다.
아니, 이제 샘이라고 부를 수 없는 규모였다.
꽤 커다란 연못이 된 샘을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차가운 물살이 내 손가락 사이를 간질이고 연못에 파문이 일었다.
첨벙!
물이 중력을 거스르고 나를 향해 쏟아졌다.
세계가 뒤집히고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일전에 보았던 고대의 유적과도 같은 신성한 제단.
처음 봤을 때는 곳곳이 반파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꽤 많이 복구되었다.
그 웅장하고 위엄 있는 풍경 속에서 악마가 서 있었다.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도 더 자란 모습에 옷도, 장신구도 화려하게 늘었다.
“오랜만입니다, 독자님.”
악마가 싱긋 웃었다.
“어때요, 더 자라니까 저도 꽤 괜찮一.”
“어떻게 된 거야?”
또 쓸데없는 말을 하기에 나는 본론부터 꺼냈다.
정작 중요한 말은 시간이 다 되어서 듣지 못하고 돌아갈 순 없지.
“어떤 걸 이르시죠?”
“나는 마기 없이 태어난 평범한 애 아니었어? 내 능력이 정확히 뭐야?”
“독자님이 왜 그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그냥 금수저에 잘생긴 아빠와 오빠들이 있어서 그런 거 아냐?”
그게 약속이니까.
“아빠와 오빠들이 있는 집안은 많아요.”
“하지만 우리 가족만큼 잘생긴 아빠와 오빠들은 다른 데엔 없을걸.”
나는 허리에 척 손을 얹고 배를 뽈록 내밀었다.
“……그건 그렇군요.”
악마가 다소 떨떠름하게 말했다.
“그런데 지금 네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단순히 그 때문은 아닌 것 같네.”
“그렇습니다. 독자님이 어떻게 소설을 소환하고 여주인공의 능력을 빌려 쓸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냥 사기 계약 당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이것도 틀린 것 같았다.
“독자님이 정말로 아무 능력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각성조차 할 수 없었을 겁니다.”
“파에라톤의 핏줄이기 때문에 힘을 각성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야?”
“그렇습니다.”
“그럼 내가 이 집안에 태어난 것도 우연이 아니야?”
악마가 재밌는 말을 들었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웃었다.
“우연이라니. 모든 것은 카르 마에서 비롯된 필연입니다, 독자님.”
“…….”
“단 하나 예외인 것이 독자님이 걸어가는 길이겠지요.”
몇 번이나 비슷한 말을 들었다.
인과율의 한계를 걸을 수 있는 유일한 자一라고.
“이래 봬도 저는 꽤 진심으로 독자님에게 모든 것을 걸고 있답니다.”
“잠깐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 처음부터 나는 금수저에, 잘생긴 아빠와 오빠, 거기에 능력까지 가지고 태어날 예정이었어?”
“어? 뭐……. 그렇죠?”
“근데 그 조건 넣어줬다고 그간 그렇게 생색낸 거야? 원래부터 있는 옵션이었는데?”
“아, 하하, 그게 그렇게 되나요?”
“너 일로 와. 역시 딱 한 대만 맞자!”
“싫어요!”
악마 녀석이 포르르 날갯짓을 해 날아올랐다.
꽤 커다래진 새하얀 날개가 창공을 가르는 모습은 악마라기보단 천사 같았다.
‘저 사기꾼 놈!’
“그래서 나에게 마기가 없는 대신 무슨 힘이 있는 건데? 내가 내 힘을 잘 알아야 너한테도 좋잖아.”
“그건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나한테 모든 것을 걸고 있다면서 그것도 대답 못 해줘?”
“언젠간 말씀드릴 수 있는 날이 오겠지요. 아니면 독자님께서 스스로 깨닫게 되실지도요.”
탁, 악마가 제단 위에 발을 디디며 싱긋 웃었다.
“축하합니다. 파에라톤 공작가를 완전히 장악했으니 일단 커다란 산 하나는 넘었네요.”
악마는 꽤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손에 넣은 힘이 단단히 여물려면 시간이 필요한 법. 다가오는 그 날을 대비해 내실을 다지시길 바랍니다.”
악마가 제단 위에서 날개를 촥 펼쳤다.
햇살이 새하얀 머리칼과 새하얀 날개에 부딪혀 눈부시게 부서졌다.
“독자님이 불러일으킨 변화가 이미 돌풍이 되고 있습니다.”
쿠웅!
“그 바람이 독자님의 항해를 도와주는 순풍이 될지, 혹은 역풍이 될지.”
세상이 뒤흔들리고 있었다.
익숙하게 소용돌이치는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악마를 바라봤다.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뱃 머리를 돌리는 것도 독자님의 역할.”
휘날리는 풍경 사이에서 악마는 홀로 장대하게 우뚝 서 있었다.
“모든 것은 독자님께 달렸습니다.”
곧 악마의 모습마저 완전히 어둠에 잠겼다.
……꽤나 비장했는데 말이야.
그래서 결국 이번에 하고 싶은 말은 퀘스트나 열심히 깨라는 거 아니야?
쟤도 참, 쓸데없이 어설픈 모양새 하지 말아야 할 텐데.
악마라 그런가, 중이병이 심하단 말이야.
Chapter 20.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나요?
“앗!”
몸이 휘청였다.
옆에 있던 아즐이 나를 꽉 붙들어줬다.
“고마워. 키가 커진 게 영 적응되지 않아서.”
그 말에 아즐이 미안한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상단주께서 직접 오셔야 상대하겠다고 해서. 제가 들키지만 않았어도…….”
지난번에 아즐을 상단주라고 속여서 보냈는데 바로 들켰다.
“아니야. 언젠가는 한 번 부딪쳐야 했어. 진짜 성가신 상대니까.”
지난 5년간 내가 얼마나 고생했던가.
서로의 정체를 걸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추적.
엎치락뒤치락하며 정체를 알아낼 뻔한 적도 있었고, 정체를 들킬 뻔한 적도 있었다.
루아티샤 파에라톤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상대.
에체시스 용병단 단장.
때로는 감탄했고, 때로는 너무 열받은 나머지 자다가 일어나서 이불을 팡팡 찼다.
그러다 극적으로 협상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내가 직접 가는 건 꽤 불안한 일이지만, 그래도 역으로 생각하면 그 자식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할 수 있다!
내가 먼저 정체를 알아내서 그동안 찬 이불의 값을 받아내 주겠어!
“이쪽입니다.”
아즐의 안내에 나는 쓰고 있는 가면을 다시 확인했다.
커다란 가면은 내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있어서 그 아래 생김새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로브의 후드까지 다시 한번 깊이 눌러쓴 후에야 건물 안으로 발을 디뎠다.
야명석이 박힌 어둑한 긴 복도를 지나 세 개의 문을 통과 했다.
‘흠, 오늘 협상을 위해 임시로 준비한 곳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
세 개의 문은 아즐이 용병단에게 미리 건네받았던 패를 각각 집어넣고 나서야 열렸다.
한 번 쓰는 곳이라기엔 들어간 품이 많았다.
‘보안을 보니 용병단이 쓰는 아지트 중 하나야.’
나한테 아지트 위치를 들켜도 상관없다는 걸까?
아니면 협상이 잘 체결되어 우리가 한배를 탈 것이라는 확신일까.
마지막 문이 열리자 확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실크 벽지와 고풍스러운 가구, 섬세하게 양각된 티테이블과 의자.
세팅되어 있는 다기는 폼베르텔의 것이었고, 꽃이 풍성하게 꽂힌 화병이 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용병단의 아지트라기보단 꽤 격조 있는 티하우스의 프라이빗 룸 같았다.
내심 거친 이미지를 생각하고 있었던 지라 나는 조금 놀랐다.
“어서 오시게, 안수르 상단주. 황제도 만나지 못한 비싼 사람을 내가 만나게 될 줄이야.”
산적 같은 몸을 한 사내가 나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정체를 그렇게나 숨겼으면서 그는 아무런 위장도 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댄 채 서 있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
“내가 할 소리군. 억만금을 준 의뢰인조차 대면하지 못한 그 유명한 에체시스 용병단의 단장을 직접 보게 되다니.”
그 말에 남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눈이 마주친 순간, 그의 갈색 눈동자가 살짝 흔들린 것 같았다.
착각인가?
그때 산적 사내가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껄껄! 단번에 단장님을 알아보는 사람은 상단주가 처음이오! 과연 대상인의 안목은 대단하군. 다들 나를 단장이라고 착각하던데.”
그럴 만도 하다.
이 산적 사내는 보기만 해도 완벽한 무골인데다가 풍기는 기세부터 남달랐다.
하지만 저 남자는 아무리 봐도 평범했다.
도무지 S급 용병단의 일원으로는 보이지 않아서 사무직 직원으로 착각할 법했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에체시스 용병단장을 스토킹…… 아니, 정체를 추적해 왔다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그간의 행적을 통해 성격은 얼마든지 알 수 있었다.
저렇게 첫 만남에 가감 없이 구는 자는 아니었다.
에체시스 용병단의 단장은 아주 신중하고 치밀한 자였다. 짜증이 날 정도로.
“드디어 만나게 되는군.”
단장이 내게로 걸어오며 말했다.
어조가 조금 독특했다. 마치 만나게 되길 아주 오랜 시간 기다린 사람처럼一.
‘하긴, 5년 전부터 나를 추적했으니까.’
나를 살펴보는 눈길이 아주 예리해서 가면을 쓰고 있음에도 얼굴이 긴장됐다.
‘과연 평범한 듯 보여도 에체시스의 단장이라는 건가.’
우리는 자리에 앉아 서로를 탐색했다.
단장은 검은 머리에 갈색 눈을 한 평범한 인상의 남자였다.
‘지금’내 모습과 동년배처럼 보였다.
‘저 모습이 진짜인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이쪽은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은데 그쪽은 쓰고 있다니 불공평하지 않나?”
“가면을 쓰지 말라는 말은 없었는데.”
“그래,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어. 그 얼굴을 꼭 봐야겠거든.”
“대가는?”
“얼굴을 보여주는 데에도 대가가 필요하나?”
“아무도 보지 못한 얼굴이야. 꽤 비싸지. 나는 상인이라 셈은 정확해야 하거든.”
“과연, 일리 있군. 확실히 그 얼굴은 비싸지.”
응? ‘그’얼굴?
왠지 묘한 말인데.
내가 멈칫하자 그가 덧붙였다.
“황제조차 보지 못한 얼굴이니 말이야.”
“……무엇을 걸 거지?”
“샤이렌꽃 10만 송이.”
뭐?
가면을 쓰고 있어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동요한 내 얼굴이 그대로 보였을 테니까.
산적 사내도 예상치 못했는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단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심인가? 샤이렌꽃은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이유인데.”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어서.”
“내 얼굴이?”
그가 씨익 웃었다.
평범한 인상의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는 모습이 꽤 눈에 박혔다.
“그냥 가면을 쓴 채 이대로 협상을 진행한다면? 의뢰비는 얼마가 되든 충분히 지급할 수 있어.”
“글쎄, 시작부터 공평하지 않은 거래를 이쪽에서 받아들여야 할까?”
흠, 이 정도면 충분히 튕겼고.
너무 바로 벗으면 진짜 얼굴이 아니라는 티가 팍팍 나니까.
‘거기다 샤이렌꽃 10만 송이가 공짜로 오다니 이건 개이득이야.’
텅 빈一정확히는 잠든 마나석을 일깨워 검은 황금으로 만들려면 몇 가지 필요한 재료가 있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샤이렌꽃이었다.
샤이렌꽃은 딱히 구하기 힘든 꽃이 아니었다.
관상용으로도, 약재로도 쓰이지 않아서 딱히 돈이 되지 않는 꽃이라 재배농업을 하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대규모 군락지가 드넓은 평원 전체에 펼쳐져 있는지라 그냥 거기서 조달해 오면 됐다.
광활한 평원 전체를 샤이렌꽃이 뒤덮고 있어서 펠로만 평원이라는 원래 이름을 두고 샤이렌 평원이라고 불릴 정도였으니 그 규모가 상상되는가.
그런데.
문제는 잠들어 있던 평원의 지배자가 깨어났다는 거다.
애초에 왜 그 넓은 평원을 쓸모도 없는 꽃이 뒤덮도록 놔두고 있었겠는가.
당장 개간해서 사람이 살든가 했겠지.
다 평원의 지배자인 악트셰라켄이 그 땅에서 잠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꿀 빨았는데 이제 글렀지.’
그 악명 높은 영수가 깨어난 이상, 전처럼 샤이렌꽃을 조달해 오긴 글렀다.
당장 사람 목숨이 위험할 수 있으니까.
다른 곳에서 구하려고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애초에 아무도 샤이렌꽃 농업을 하지 않으니 자생지에서 캐 올 수밖에 없는데, 멸종시킬 생각이 아니고서야 산에 수십 송이 있는 걸 죄다 꺾어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일반 샤이렌꽃은 잠든 마나석을 일깨우는 효과가 전혀 없었다.
오직 펠로만 평원의 샤이렌꽃에만 그런 효능이 있었다.
아무래도 영수인 악트셰라켄의 영향을 받은 듯했다.
어쩐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에서 보여준 돈길에서 ‘펠로만 평원의 샤이렌꽃’이라고 콕 집어 말하더라.
‘그 탓에 내가 직접 재배하는 것도 기각.’
결국엔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는 용병단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S급 용병단이 후보에 올랐지만, 이 의뢰로 인해 어떤 비밀이 새어 나갈지 모르는 법.
그렇다면 차라리 안수르 상단의 비밀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쪽이 더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우리 역시 에체시스 용병단의 비밀 몇 가지는 알고 있으니까 그게 안전핀 역할을 해주리란 계산도 있었다.
마침 에체시스 측에서도 우리에게 일정 물량의 검은 황금을 3년 동안 공급해달라는 거래를 요청해 왔고.
“15만. 15만 송이에 가면을 벗지.”
“좋아.”
어?
당연히 안된다고 할 줄 알고 질러본 건데 에체시스의 단장은 아주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놀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단장! 저 여자의 가면 하나 벗기는 데 그럴 필요가 있소? 이건 공짜로 피똥 싸는 거나 다름없소!”
“가치는 내가 정해.”
“악트셰라켄의 눈을 피해 10만 송이를 조달해 오는 것도 무리한 일이오! 그런데 15만 송이라니!”
“내가 못 할 것 같나?”
단장이 고개를 비뚜름히 기울인 채 조용히 물었다.
딱히 위협적인 어조였던 것도, 살기를 내뿜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산적 같은 덩치의 사내가 곧바로 깨갱, 하고 꼬리를 말았다.
“시, 실언했소.”
“이걸로 가면을 벗을 대가는 충분하겠지.”
단장은 사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기묘한 열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어쩐지 나까지 긴장되는 시선.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곤 가면에 손을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