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91)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91화(91/353)
☆ 제92화 ☆
답답하게 앞을 가렸던 것이 사라지자 시원한 공기가 느껴졌다.
내 얼굴을 바라보는 단장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다만 그 눈동자의 열기가 묘하게 더 짙어지는 느낌이었다.
“후드도.”
그의 목소리가 어딘지 낮게 잠겨 있었다.
‘얼굴 봤으면 됐지 뭘 후드까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순순히 깊게 눌러 쓴 후드를 벗었다.
15만 송이의 호구…… 아니, 고객님인데 당연하지요.
사라락, 후드가 내려가며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
나는 대강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단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마치 일부러 표정을 지운 사람 같았다.
“…….”
“…….”
가면을 벗고 짜잔! 하고 얼굴을 드러냈는데 침묵뿐이니 민망했다.
나는 볼을 긁적였다. 짧은 단발머리가 뺨을 스쳤다.
“내가 그렇게 예쁜가? 이렇게 말을 잃을 정도로?”
침묵이 더 깊어졌다.
산적 사내의 시선이 아주 노골적이었다. 도끼병 말기 환자를 보는 시선이었다.
“농담이야.”
“껄껄! 상단주께서는 농담도 진담 같이 하시는구려!”
‘아니, 내가 언제 진담 같이 말했다구!’
나는 심통 난 얼굴로 산적 사내를 째려봤다.
‘내 진짜 모습 보면 기절초풍 하겠구만!’
음.
근데 다른 의미로 기절초풍할 것 같다.
열 살 응애니까.
“우리 단장께선 저래 봬도 눈이 티렌산 꼭대기에 달려있소. 어떤 절세미인이 와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더라고.”
농담이라니까, 이 아저씨가!
왜 날 설득하려고 해!
산적 사내가 호탕하게 커허허허허! 웃어젖힐 때였다.
단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깜빡했는데.”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향한 채였다.
“방금.”
“예?”
뒤편에서 산적 사내가 얼빠진 얼굴로 되물었다.
“눈 깜빡했다고.”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빨려 들어갈 듯 깊었다.
‘뭐지.’
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절세미인이 와도 눈 하나 깜빡 안 한 사람이 지금 날 보고 눈 깜빡했다고?
아쉽지만 나는 산적 사내의 예상과 달리 도끼병이 아니었다.
“지금 나 꼬시는 거야? 협상을 유리하게 하려고?”
“사실을 말한 건데 그렇게 보였나?”
“응. 근데 안 통해.”
단장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난 잘생긴 남자들 많이 알거든.”
일단 집에 절세미인이 네 명이나 있어.
“꽤나 얼굴을 밝히는가 보군.”
“나야말로 주변 환경 탓에 눈이 높아서.”
“주변 환경?”
“원래 돈 많고 능력 있는 젊은 여자의 곁엔 수많은 미남들이 따르는 법이지.”
나는 아즐을 눈짓했다.
내 시선을 받은 아즐이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물의 요정의 피를 이은 사람답게 아즐은 청초하고도 산뜻한 미인이었다.
“미남, 이라고.”
아즐을 바라보는 단장의 시선이 검게 일렁였다.
‘제아무리 에체시스의 단장이라고 해도 잘생긴 남자를 향한 질투는 어쩔 수 없구나.’
“저런 취향인가?”
“굳이 취향을 따지지 않아도 아즐 정도면 잘생겼잖아?”
질투해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나는 말이 없는 단장을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 쓸데없는 수작 부리지 말고 담백하게 협상으로 넘어가자구.”
“……그러지.”
“일단 나는 약속한 샤이렌꽃 15만 송이의 상태를 보고 가격을 결정하고 싶은데.”
가면 한 번 벗은 걸로 물량을 확보한 나로서는 급할 게 없어졌다.
“그걸로 시험하겠다는 거군.”
“의뢰 완수까지 걸리는 시간과 꽃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하고 가격을 결정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물건을 보고 가격을 결정해야지.”
“그건 상인의 방식이군. 용병의 법은 달라. 소요 시간과 의뢰품의 상태는 의뢰 가격에 따라 달라진다.”
“가격에 따른 품질 변화는 상인 역시 동의하지. 하지만 제공하는 품질에 대한 신뢰부터 얻어야 할 거야.”
나는 티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으며 씨익 미소 지었다.
“고품질을 기대하고 높은 가격을 지불했는데, 능력이 없어서 그 품질을 맞추지 못하면 어쩌지?”
일종의 도발이었다.
창단한 지 고작 5년.
그럼에도 에체시스 용병단은 명실공히 서열 1위였다.
그 누가 그들에게 능력이 부족해서 의뢰 완수가 의심된다고 할까.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있던 산적 사내가 발끈한 얼굴로 무어라 말하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단장의 답이 빨랐다.
“일리 있는 말이군.”
‘과연.’
이런 도발에는 일말의 동요조차 없다는 거군.
“그러면?”
“그 능력을 증명하는 게 우선이겠지.”
그가 씨익 웃었다.
대단한 자신감의 표명이었다. 그리고 꽤 믿음직스러웠다.
“내 조건은 사전에 말했던 대로야. 절대로 영수 악트셰라켄과 충돌하면 안 돼.”
솔직히 나도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의뢰인지 안다.
차라리 악트셰라켄을 유인해서 전투를 치르고,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샤이렌꽃을 채집하는 게 더 쉬울 것이다.
영수의 영역에서 영수의 눈에 띄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영수를 상대로 버티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할 수 있어?”
“하지 못할 일이면 만나자고 하지도 않았어.”
“좋아. 기대하지.”
“하지만 이런 조건이라면 검은 황금의 공급 기간을 늘려야겠는데.”
기존에 에체시스에서 제시한 기간은 3년이었다.
“어느 정도?”
“5년.”
나는 잠시 고민했다.
5년이면 과한 기간은 아니다. 거기다 검은 황금의 가격은 내가 설정할 수 있다.
내가 독점하고 있으니까.
“그럼 샤이렌 꽃의 공급도 마찬가지로 5년으로 하지. 서로가 원하는 게 현물인데 굳이 현금이 오갈 필요 없겠지.”
“의뢰금을 검은 황금으로 치르겠다는 건가?”
“그래. 그편이 그 쪽에게도 더 좋지 않아?”
나한테도 돈세탁할 일 줄어드니 이득이었다.
“그럼 얼마만큼의 검은 황금을 지불할지는 네 말대로 15만 송이를 가져온 후에 정하는 것으로.”
“그래.”
“그럼 그때 또 봐야겠군.”
어, 그게 그렇게 되나?
“물건 확인만 하면 되니 굳이 대면할 필요는 없을 텐데.”
“신뢰를 위해선 마주 보고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라.”
거짓말하지 마!
에체시스의 단장은 의뢰인에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하잖아!
“아, 추가로 걸고 싶은 조건이 있는데. 샤이렌꽃 납품가를 다음 만남에서 일괄적으로 확정 짓는 건 불합리한 것 같아.”
다음에 만나는 거 확정이야?
“무려 5년이다. 악트셰라켄 때문에 샤이렌꽃 채집은 변수가 많아. 단번에 가격을 결정하는 것보단 각 의뢰 때마다 결정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지.”
“흠, 잘못하면 그쪽에 손해가 될 수도 있을 텐데?”
가격이 더 비싸질 수도 있지만 아예 폭락할 수도 있다.
영수가 다시 잠들 수도 있으니까.
“의뢰 난이도에 따라 가격이 변동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나도 동의하지.”
“나는 그 협상을 상단주와 직접 하고 싶은데.”
“……그 말은 모든 의뢰 때마다 우리 둘이 만나서 협상하자는 건가?”
“그렇지.”
“내 대리인에게 전권을 위임하도록 할게. 아즐이 잘해줄 거야.”
“본인만은 못하지.”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단장의 눈을 마주했다.
딱히 중요한 것도 아닌데 절대 물러서지 않을 기세였다.
“……좋아. 하지만 시간은 내가 정해. 워낙 바쁘신 몸이라서 말이야.”
“귀하신 몸인데 내가 맞춰드려야지.”
“그럼 이것으로 오늘 확인해야 할 것은 다 마친 것 같군. 당연한 말이지만 비밀 서약은 잘 지켜줘야 해.”
“의뢰인에 대한 비밀 엄수는 당연한 말이지.”
“그래. 그쪽도 꽤 비밀이 있는 것 같으니 서로 잘 해보자구.”
나는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단장은 가만히 내 손을 바라보다가 마주 잡았다.
아주 뜨겁고 단단한 손이었다.
[퀘스트 〈비상! 재료를 조달하라!〉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으로 8000캐시 뽑기권이 지급됩니다.] [단 하나의 손해도 보지 않고 거래를 성사한 것은 물론, 샤이렌꽃 15만 송이를 공짜로 얻어냈습니다!]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좋아, 이것으로 퀘스트도 완료했고.’
매번 만나서 가격을 협상해야 하는 건 귀찮은 일이었지만, 에체시스의 단장은 말이 통하는 사람 같으니까.
멍하니 우리가 하는 꼴을 지켜보던 산적 사내가 혀를 내둘렀다.
“뭔……. 처음 만나는 거 맞소? 무슨 잡음 한번 없이 물 흐르듯 진행되는구려.”
“정말 잡음이 없으려면 우선 15만 송이를 잘 가져와야겠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한 훈기가 몸 안에 퍼지자 스르르 긴장이 녹았다.
건너편을 보니 단장은 차를 마시는 나를 시선 한 번 떼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내 정체를 탐색하는 건가?’
평범한 인상이라 그런지 자꾸 보고 있자니 묘한 기시감이 든다.
“그런데……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어?”
나도 모르게 묻고서야 아차, 했다.
나 지금 변장 중인데.
설령 본 적이 있다고 해도 저쪽에선 알지도 못할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응.”
에체시스 단장이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닌가.
“만난 적 있는데.”
나는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곧 깨달았다.
‘뭐야, 작업남인가.’
로판 클리셰는 용병단 단장보다는 신분을 숨기고 정보상인 척하는 대귀족이 남주거나 서브남이던데.
하긴, 평범한 인상이어도 흠결 하나 없는 매끄러운 피부에 단정하고 깔끔한 이목구비.
거기다 입고 있는 옷은 주름이나 얼룩 하나 없다.
이런 남자가 은근히 인기 많은 편이지.
‘아무래도 아까부터 제 인기를 믿고 나를 꼬시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내 환심을 사서 의뢰가를 높게 받으려고 하는 거야? 아니면 나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려는 수작?”
그가 피식 웃었다.
“글쎄.”
“나한테는 안 통한대도.”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협상도 끝났고 차도 다 마셨으니 돌아갈 때였다.
“바쁜 몸이라서 이만 가볼게.”
그는 대답이 없었다.
딱히 대답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라서 나는 문을 열고 문지방을 넘었다.
이대로 순조롭게 퇴장하려는데一.
바로 앞에 있는 계단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해서 몸이 휘청거렸다.
으아, 넘어진다!
그 순간이었다.
“조심一.”
낮은 목소리와 함께 단단한 팔이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등 뒤로 탄탄한 몸이 느껴지고 낯선 향기가 훅 끼쳤다.
언제 다가온 것인지 단장이 넘어지던 내 허리를 끌어안은 것이다.
어찌나 힘이 세면 내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덕분에 나는 완전히 그에게 안긴 채였다.
고개를 드니 곧바로 눈이 마주쳤다.
“一해야지.”
속삭이는 목소리.
갈색 눈동자는 특별할 게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일렁이는 무언가가 목 안을 바짝 조이고 마르게 했다.
“고, 고마워.”
그 탓인지 목소리가 조금 낮게 나왔다.
나는 목을 한 번 가다듬고는 말했다.
“이제 내려줄래?”
그제야 단장이 나를 품에서 내려주었다. 아주 천천히, 느리게.
‘휴, 앉아 있다가 일어나니 이 키에 바로 적응이 안 되네. 앞으로 계속 협상하러 와야 하니 적응 연습을 하는 게 좋으려나.’
멋지게 퇴장할 생각이었는데 머쓱했다.
“그러고 보니 동업자의 이름도 모르네. 이름이 뭐야?”
내 말에 단장은 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에첸.”
아무리 봐도 에체시스에서 막 따온 가명이었다.
본명을 안 알려줄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그래도 가명을 짓는 성의는 보여야 할 거 아냐.
“너는?”
“나는…… 수르아.”
……내가 할 말은 아니었다.
“그럼 잘 부탁해, 에첸.”
“나도 잘 부탁하지, 수르아.”
나는 그렇게 용병단의 아지트를 나섰다.
이번에는 절대 넘어지지 않도록 신경 써서.
* * *
“대체 왜 그런 거요, 단장.”
상단주 일행이 사라지자마자 산적 같은 풍채의 바렌이 쾅, 하고 벽을 두들기며 말했다.
“뭐가.”
“뭐가? 뭐가라니! 그렇게 모르는 척할 거요? 평소와 하나도 똑같지 않았소!”
“내가 어땠는데.”
“가면 한 번 벗기는데 샤이렌 꽃 15만 송이라니. 그거면 검은 황금이 얼마인데!”
“보고 싶었으니까.”
“그 가격을 지불하고도?”
“그래.”
바렌은 복장이 터졌다.
“그럼 나는 꽁으로 일하게 된 거요?”
“불만이면 나가는 문은 언제든 열려 있다.”
에첸의 말에 바렌이 입을 다물었다.
에첸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그의 무위에 반해 따르는 자들은 많았지만, 단 한 명에게도 온전히 마음을 내주지 않았다.
곁을 내주긴커녕 붙잡지도 않는다.
그가 아끼는 것은 단 하나, 꽃이었다.
아무렇게나 꺾어온 듯한 꽃다발을 미친 수를 써서 시들지 않게 만들어놓고 매일 들여다본다.
“크흠, 뭐, 안수르 상단주의 정체를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될 테니 꽁은 아닌 거 같소.”
한 발짝 물러나던 바렌은 다시 복장이 터지는지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대체 왜 의뢰 때마다 매번 만나자는 거요. 우리도 바쁜 몸인데!”
“예쁘잖아.”
“허?”
바렌은 굵직한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볐다.
내가 뭘 잘못 들은 거 같은데.
하지만 에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허 참, 무슨 절세미인이면 이해라도 하겠소. 그런데 그냥 평범한 여자 아니었소? 밖에서 스치면 기억에도 안 남을.”
그 말에 에첸이 눈을 내리뜨며 옅게 미소 지었다.
“네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
바렌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뭐지, 이 ‘그녀의 매력은 나만 알아’같이 재수 없는 발언은.
“그딴 농담은 그만 좀 하쇼. 아까도 내 어찌나 민망하던지.”
바렌이 소름 돋았다는 듯 팔을 쓸었다.
“여자를 길가의 돌멩이보다 무관심하게 보던 사람이 오늘은 왜 그런 수작질을 벌였소? 눈이 튀어나올 뻔한 걸 참느라 힘들었소.”
“수작이 먹혔으면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