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95)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95화(95/353)
☆ 제96화 ☆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듣기에 따라서 아주 다르게 들리지 않는가?
루아티샤와 포셰트 영애가 옷을 두고 싸웠고, 심지어 루아티샤는 거짓말까지 했다.
‘그걸 착한 내가 중재한 거고.’
클라티에는 계속해서 난처한 얼굴을 꾸며내며 속으로 미소 지었다.
파에라톤 공자들이 누굴 더 좋아할지 뻔하잖아?
‘내가 이겼어.’
그런 생각을 하며 루아티샤를 보는데一.
‘뭐, 뭐야, 저 표정은?’
마치 애잔하고 안타까운 것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
“야.”
클라티에가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너 뭐냐?”
익시온이 클라티에를 향해 물었다.
빙글거리던 표정까지 지운 채 무표정한 얼굴로.
“네, 네?”
“난 내 솜뭉치한테 물은 건데 네가 뭔데 끼어들어?”
이, 이게 아닌데?!
* * *
‘에구, 저런.’
나는 안타까운 눈으로 클라티에를 바라봤다.
우리 오빠들은 저런 게 통할 상대가 아닌데.
설령 내가 클라티에를 칼로 찔렀어도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일단 잘했다’라고 할 사람들이다.
“저, 저는 그저 상황을 설명해 드리려고…….”
“그러니까 왜 그걸 네가 대답하냐고. 너 때문에 솜뭉치랑 이야기할 거리가 줄어들었잖아.”
익시온은 정말로 기분이 나빠 보였다.
“주제넘게 나섰다면 죄송해요. 저는 그냥 루아티샤가 했던 말에 의문을 느껴서…….”
클라티에가 한 떨기 백합처럼 가련하게 떨며 물기 어린 눈으로 익시온을 올려다봤다.
솔직히 여자인 나도 당장 달려가 보듬어 주고 싶을 정도로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너 말이 좀 이상하다?”
상대가 워낙 안 좋았다.
“그러게. 꼭 내 막내를 탓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제온까지 가세하자 클라티에가 주춤했다.
“그, 그럴 리가요! 전 그냥 아까 루아티샤가 했던 말이 안 맞아서一.”
“솜뭉치가 하는 말 중에 틀린 건 하나도 없어.”
틀려도 맞게 만들 기세였다.
“그래서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드레스를 두고 싸웠다고?”
“네, 네!”
“애초에 솜뭉치 드레스를 탐내는 게 잘못 아닌가?”
“그걸 또 상대해주고 있다니 내 동생은 너무 착해.”
“막내가 마음이 너무 여리긴 하지. 걱정이야.”
익시온과 아레스 그리고 제온은 말을 하다 말고 또 나한테 엉겨 붙었다.
클라티에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오, 오라버니들!”
결심한 듯 한 발짝 다가오며 화사하면서도 어딘지 애틋한 미소를 짓는다.
“저예요.”
세 남자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오라버니들의 사촌 누이동생 클라티에요.”
“아.”
아레스가 탄성을 내뱉었다.
“네가 그?”
“네!”
아레스가 깊게 미소 지었다. 클라티에의 화사함조차 빛바랠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였다.
클라티에의 뺨이 달아오르고 기대로 눈동자가 별처럼 빛났다.
천천히, 아레스가 클라티에에게 다가갔다. 허리를 숙인 그가 클라티에의 귓가에 무어라 속 삭이는 순간.
“……!”
설렘과 기대로 뺨을 붉게 물들이고 있던 클라티에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아레스를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엔 두려움마저 엿보였다.
‘대체 뭐라고 한 거지?’
내게 다가오는 아레스를 바라봤지만 언제나처럼 봄볕 같은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다.
제온이 나를 끌어안은 채 포셰트 영애를 바라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너, 아직도 그 옷을 붙잡고 있는 거야?”
“왜 이렇게 남의 걸 탐내는 것들이 많아.”
익시온이 혀를 차자 포셰트 영애가 입을 꾹 다물었다.
통통한 뺨에 부끄러움과 짜증, 수치심이 가득 차올랐다.
“안 입어!”
포셰트 영애가 잡고 있던 옷을 팩 놓고 돌아섰다.
그대로 나갈 듯하다가 다시 뒤돌아서 쿵쾅거리며 내 앞에 다가왔다.
“너, 각오해!”
척, 손가락을 치켜든 포셰트 영애가 씩씩거리며 선언했다.
“나도 새벽 축제에 나갈 거니까! 그때 내가 더 멋지다는 걸 만천하에 알려주겠어!”
그렇게 포셰트 영애는 의상실 밖으로 사라졌다.
‘……뭔가 폭풍 같은 꼬마 아가씨네.’
일행이 먼저 나가버려서 혼자 남은 클라티에만 뻘쭘해졌다.
“어휴, 다혈질이라서 걱정이야, 정말.”
클라티에는 민망한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문가로 갔다.
문을 열려다가 멈칫한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 몰랐어. 루아티샤.”
“나야말로.”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지금은 포셰트 영애를 따라가 봐야 할 것 같아서.”
절대 꼬리를 말고 도망가는 게 아니라는 듯 말한다.
“다음에 인사하자. 곧 볼 테니까.”
이번 일을 갚아주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과연 네가 갚을 수 있을까?
나는 비딱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딱히 인사하고 싶지 않은데. 보고 싶지도 않고.”
내 말에 뭐라 하려던 클라티에가 힐끔 아레스의 눈치를 봤다.
그리고는 말없이 의상실을 나섰다.
* * *
“포셰트 영애!”
카멜리아 포셰트는 자신을 부르는 음성에 팩 몸을 돌렸다.
난처한 얼굴을 한 클라티에를 보자 짜증이 확 치솟았다.
“왜 따라오는 거야?!”
“네?”
“조금 전에 의상실에서一.”
“아, 정말 깜짝 놀랐어요. 익시온 오라버니가 영애를 루아티샤의 시녀처럼 보길래.”
“뭐?”
그러고 보니 옷 입는 걸 도와주려는 거냐고 했었지.
“그래서 아니라는 걸 알려준 건데……. 옷을 두고 경쟁한 거라고.”
“경쟁?”
“네, 경쟁이요.”
카멜리아는 그 말에 가슴 속 응어리가 사르르 풀어졌다.
그야 그 유명한 파에라톤 공녀와 경쟁할 사람이 자신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아까 선전포고도 나름대로 멋지게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뭐야, 그런 거였구나.”
금세 풀어진 카멜리아를 보고 클라티에는 실소가 나오려 했다.
‘멍청하긴.’
그 생각을 숨긴 채 클라티에는 눈썹을 늘어트렸다.
“기분 나쁘셨어요? 하긴, 파에라톤 공자들이 오해할만한 상황이었죠. 루아티샤는 왜 자기 옷이 아니라고 거짓말해선…….”
“아닌데.”
“네?”
“걘 거짓말하지 않았어.”
클라티에는 흠칫, 하며 카멜리아를 바라보았다.
샛노란 눈동자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자기 옷 아니라는 말은 안 했어. 유트라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했지.”
“그, 그러네요.”
“딱 봐도 걘 자기 옷인지 몰랐던 거고 걔네 오빠들이 걔 몰래 준비했던 거잖아. 클라티에, 은근히 눈치가 없구나?”
세상에서 제일 눈치 없는 사람에게 눈치 없다는 말을 듣다니.
클라티에는 발끈하려는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뭐, 그래도 재수 없는 건 맞지만! 내가 더 멋지다는 걸 알려줄 거야.”
“그럼요.”
주먹을 꽉 쥐는 카멜리아를 보며 클라티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얘는 멍청한 건지 예리한 건지 모르겠어.’
고개를 돌리던 클라티에는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새벽 축제 포스터를 보고 시선을 고정했다.
‘반드시 내가 우승해야 해.’
새벽 축제의 우승자는 차세대 사교계를 이끌어나갈 재원으로 인정받는다.
남들은 맨땅을 걷고 있을 때 발 앞에 레드카펫이 깔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한테 붙은 꼬리표를 떼려면 그 수밖에 없어.’
아버지인 니콜라스 타렌카는 선대에게 작위를 회수당한 것은 물론, 귀족으로서의 지위마저 박탈당했다.
거기에 이혼까지 당했으니 얼마나 망신이었는지 모른다.
클라티에는 다시 타렌카 후작이 된 조부의 밑으로 들어가 생활해, 타렌카 후작 영양으로서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에게 붙은 소문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아무도 고소하지 않았지만, 니콜라스 타렌카가 사기꾼이라는 말이 돌았다.
‘새벽 축제의 우승자가 되면 날 이야기할 때 아빠에 대한 말도 쏙 들어가겠지.’
사교계에서 가장 이름 높은 레이디.
권력욕과 명예욕이 강한 클라티에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모두의 귀감이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저런 멍청이랑 함께 다니는 것도 감수하고 있지 않은가.
포셰트 후작가는 명문 중에서도 명문이다.
‘나와 함께 다녀도 가문의 수준이 맞아서 부끄럽지 않지.’
게다가 멍청하고 다혈질이라서 딱 이용해 먹기 좋았다.
‘원래 곁에 있는 애가 못나면 못날수록 내가 돋보이는 법이거든.’
그리고 그 생각은 딱 맞아떨어졌다.
클라티에는 지금 사교계의 어린 영애들 사이에서 가장 평판이 좋은 숙녀였으니까.
벌써부터 귀부인들이 귀여워하면서 클라티에를 초대하곤 했다.
‘그래, 나에겐 내가 이뤄놓은 것들이 있어.’
굴러들어온 돌이 단단히 뿌리 내린 돌을 빼낼 순 없다.
오늘은 설마하니 그 모지리가 그렇게 당당히 자신에게 맞설 줄 몰라서 당황했다.
그 바람에 실수한 것뿐, 다음에 만나면 다를 거다.
루아티샤에 대한 소문이 돌 때마다 얼마나 다시 만나고 싶었던가.
화목하고 단란했던 자신의 가족을 한순간에 망쳐놓은 악마 같은 계집애.
‘네가 내게서 빼앗아간 모든 것을 돌려받겠어.’
클라티에의 눈동자가 새파랗게 빛났다.
* * *
클라티에와 포셰트 영애가 사라진 후 우리는 의상실의 소파에 앉았다.
“익시온, 옷은 다 수선한 거야?”
“어? 아니, 그게…….”
잠시 당황했던 익시온이 “하아아一.” 하고 목덜미를 문질렀다.
“유트라, 아직 멀었어?”
“잠깐만요. 거의 다 됐어요!”
뭐지?
조금 기다리자, 유트라가 커다란 상자를 든 채 나왔다.
상자를 받아든 익시온이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익시온?”
“가만있어 봐.”
익시온이 내 한쪽 발목을 살며시 붙잡더니 신발을 벗겼다.
“내 동생 사교계 입성 선물.”
요정이 신을 것처럼 섬세하고 아름답게 생긴 구두가 상자 안에서 나왔다.
익시온은 경건한 태도로 내 발에 그 구두를 신겨 주었다.
항상 장난기 넘치던 모습과 사뭇 달라서 나는 괜히 가슴이 간질거렸다.
익시온에게 이런 면도 다 있구나.
“어때?”
익시온이 제 무릎 위에 내 발을 올린 채 나를 올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엄청 예뻐!”
“걸어 봐. 편해야 하니까.”
나는 익시온의 손을 잡고 폴짝 일어났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감탄이 나왔다.
“와, 엄청 편해! 신발을 신지 않은 것처럼 가벼워!”
콩콩 뛰며 익시온을 와락 끌어안았다.
“고마워, 익시온. 너무 멋진 선물이야!”
“뭐, 넌 약골이라서 발도 약하니까.”
익시온은 쿨하게 말했지만,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 있었다.
“하, 설마 저 녀석한테 선수를 빼앗길 줄이야.”
아레스가 고개를 젓더니 유트라를 향해 손짓했다.
“준비는?”
“두 분께서 주문하신 것 모두 완성되었습니다.”
유트라의 시선을 받은 의상실 직원이 공손한 태도로 상자 두 개를 가져왔다.
아레스가 상자에서 꺼낸 것은 부채였다.
촤르륵, 부채를 펼쳐 든 아레스가 반쯤 얼굴을 가린 채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 상태로 싱긋 웃으니 “와……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레스는 정말 여자 꼬시는 거 잘할 거 같아.”
“여자 꼬실 생각은 없는데.”
아레스가 웃으며 내게 허리를 숙였다. 가까워진 얼굴 사이를 얇은 부채가 가로막았다.
“다만 내 동생에게는 첫 번째가 되고 싶어.”
부챗살이 하나씩, 하나씩 접히며 살짝 쳐진 눈매가 나른하게 휘는 모습이 조금씩, 조금씩 드러났다.
“안 돼?”
‘우와…….’
역시 경국지색 아레스, 요망한 아레스!
나도 모르게 흘려서 안 되긴 왜 안 되냐며 고개를 저을 것 같다.
그 순간,
“막내 예쁜 눈 어지럽히지 말고 꺼져.”
제온이 차가운 얼굴로 아레스를 밀어냈다.
그가 나를 안아 든 채 제 무릎 위에 앉혔다.
제온의 손에 들린 것은 붉은 보석이 박힌 새까만 머리 장식이었다.
“나라고 생각하고 데리고 다녀줘.”
항상 머리 쓰다듬어 달라고 말하는 제온다웠다.
제온의 커다란 손이 내 머리칼을 쓸어 넘기더니 직접 장식을 달아주었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 표정도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왜? 안 어울려?”
“아니. 지금 다시 벽쿵 당하고 싶一.”
“고마워! 고마워, 제온! 항상 하고 다닐게!”
나는 기겁해서 제온의 말을 잘랐다.
익시온과 아레스를 보니 뭔가 찝찝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휴, 제대로 못 들었나 보다.
다행이야.
다른 오빠들한테까지 벽쿵을 시도하면 난 쪽팔려서 죽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빠들에 비해 한참 짧은 팔다리를 우울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공녀님, 이건 저와 저희 의상실 직원들의 선물이랍니다.”
유트라가 활짝 웃으며 토르소에 걸린 드레스를 내밀었다.
아까 포셰트 영애가 탐내던 바로 그 드레스였다.
‘아하, 오빠들이 따로 주문을 넣을 때 유트라가 저 드레스에 대해 알려줬구나.’
“고마워, 유트라! 그리고 직원 언니, 오빠들!”
“저희는 공녀님께서 반드시 이번 대 아우로라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공녀님 외에 될 사람은 없죠!”
“히히, 고마워!”
나를 인정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무척 기분 좋은 일이구나.
행복하다.
의상실 직원들과 조금 수다를 떤 뒤에 나는 집으로 귀환했다.
* * *
제온에게 안긴 채 마차에서 내린 순간, 나는 무언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비에는 무려 아빠가 내려와 계셨다.
‘가문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걱정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빠는 잔뜩 굳은 얼굴로 천천히 오빠들을 쭉 둘러보다가 마지막으로 날 바라봤다.
기분이 몹시 가라앉아 보였다.
나는 긴장한 채 아빠의 입술이 열리길 기다렸다.
짧은 침묵 후, 아빠가 입을 열었다.
“그래, 내 딸의 제도 첫 외출을 날름 채갔단 말이지.”
네?
“내가 내 집에 도둑놈들을 키우고 있었군.”
저기요, 아빠?
이게 그렇게 무게 잡을 일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