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96)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96화(96/353)
☆ 제97화 ☆
“각하께서 선수필승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이기는 법이지요.”
“아비의 뒤통수를 치라고 가르친 기억은 없다. 내가 집에 없는 틈을 노리다니.”
제도에 온 후로 아빠는 외출이 잦으셨다.
황궁 정무에 나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몇몇 모임에 참석하셨기 때문이다.
아빠는 내가 꽂고 있는 머리 장식과 신고 있는 구두, 그리고 손에 든 부채를 보더니 코웃음을 쳤다.
“하, 너희가 내 자식인 건 확실하군.”
아빠가 다가와서 내 머리를 꾹 눌렀다.
어쩌다 보니 아빠만 쏙 빼놓고 남매들끼리 외출한 게 되어버렸다.
많이 서운하셨을까?
“아빠, 애플파이 사 왔어요. 따뜻하게 해서 바닐라 아이스크림 얹어서 같이 먹어요!”
아빠의 얼굴에 설핏 미소가 깃들었다.
“그래, 저놈들 달고 다니느라 피곤했겠구나. 씻고 오렴.”
“응!”
나는 제온의 품에서 폴짝 내려와 방으로 갔다.
* * *
언니들과 종알종알 수다를 떨며 깨끗이 씻자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아빠의 방으로 갔다.
그냥 애플파이도 맛있었는데 아이스크림을 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방문을 여니 아빠가 나른하게 소파에 기댄 채 반쯤 누워계셨다.
크으, 우리 아빠지만 정말 화보 같다니까?
다정한 마기가 슈르륵 나를 감싸더니 아빠의 품에 툭 내려놓았다.
“오빠들은요?”
“생각 없다더구나.”
애플파이가 별로인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윽고 제도 저택의 수석 집사인 하인츠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얹은 뜨거운 애플파이를 가져왔다.
아주 근사한 모습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바라보자 아빠가 곧바로 한 입 떠주었다.
“어떠니?”
“맛있어요!”
바삭한 파이지 속의 뜨겁고 새콤달콤한 애플 필링, 그 위를 감싸는 차갑고 부드러운 바닐라 아이스크림.
이건 함께 마실 우유나 차가 필요 없다.
이 자체로 완벽하니까!
아빠가 피식 웃으면서 한 입 더 떠주셨다.
짹짹 입 벌려서 계속 받아먹다가 정신을 차렸다.
‘핫, 이게 아닌데!’
접시 위의 애플파이는 반도 남지 않았다.
“이제 아빠 드세요!”
“난 괜찮다.”
“아빠는 내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니까요?”
아빠가 나를 빤히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게는 타인의 신체적 반응을 제어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으니까.”
“…….”
아니, 아빠. 그건 아니에요.
“나도 그래요. 아빠가 맛난 거 드시는 걸 보면 배 속이 빵빵 하게 차올라요.”
나를 바라보는 아빠의 눈동자가 아주아주 깊었다.
“그건 사랑해서 그런 거래요. 그쵸?”
“……그래.”
아빠의 입가에 서서히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나눠 먹을까.”
“응!”
아빠 한입, 나 한입. 아빠 한 입, 또 나 한입.
그렇게 우리는 남은 애플파이를 나눠 먹었다.
다 먹고 나자 아빠가 테이블 위에 놓인 자그마한 상자를 열었다.
“이게 뭐예요?”
“내 딸 사교계 입성 선물.”
아빠가 내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며 말했다. 아빠의 눈처럼 아주 깊고 진한 빛깔의 루비 목걸이였다.
“그런데 설마 저놈들에게 선수를 빼앗길 줄이야.”
어디서 들어본 말이라 웃음이 나왔다.
“아레스도 익시온한테 똑같은 말을 했어요.”
“그것들도 내 핏줄이긴 한가 보지.”
아빠가 내 머리를 꾹 눌렀다.
“오늘 외출은 즐거웠나?”
“네, 거리도 화려하고, 사람들도 많고, 구경거리도 넘치고! 유트라의 의상실은 엄청 크더라구요!”
신이 나서 말하다가 아빠의 표정을 보고 아차, 했다.
“하, 하지만 아빠가 없어서 허전했어요.”
그제야 아빠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별다른 일은 없었고?”
“아, 중간에 잠깐 클라티에와 마주쳤어요. 여전하더라고요.”
아빠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근데 내가 혼쭐 내줬어요!”
자랑하자 아빠가 피식 웃었다.
“잘했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거 같긴 하지만……. 한 번에 쓰러트리면 재미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분명 새벽 축제에 나올 거예요. 그때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려고요.”
“누굴 닮아서 이렇게 똑 부러지는지.”
“다 아빠 닮아서죠.”
나는 씩 웃었다.
아빠가 피식 웃으며 내 뺨을 감싸 쥐었다.
“그래, 넌 내 딸이니 나를 쏙 뺐지.”
따뜻한 아빠 품. 등을 토닥이는 손길이 무척 기분 좋았다.
나는 그 온기를 즐긴 후 머뭇거리다가 슬쩍 물었다.
“그런데 안 말리세요?”
“뭐를?”
“클라티에 코를 눌러주겠다고 새벽 축제에서 깽판 놓게 될지도 모르는데.”
“루루, 네가 하고 싶어 하는데 내가 막을 리 없지 않으냐. 너라면 충분히 잘 할 수 있고.”
아빠는 별걱정을 다 한다는 듯 내 코를 톡, 쳤다.
“그리고 못 해도 돼.”
못 해도 된다니.
나한테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은 아빠가 처음이었다.
나는 항상 잘하기 위해 안달복달했다. 그러고서도 부족한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아마 현대 지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 그렇지 않을까?
“응!”
활짝 웃자 아빠가 내 뺨을 꼬집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네가 상처받을까 염려되긴 하군.”
“솔직히 그럴 수 있겠죠.”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클라티에가 한 말에 새 삼 타격 받을 것 같진 않지만, 앞으로 사교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분명 넘어지고 깨질 수 있을 거예요.”
아빠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도 당장 그 상대의 몸을 찢어발길 기세였다.
“하지만 그럼 뭐 어때요.”
나는 허리에 손을 척 얹고 배를 뽈록 내밀었다.
“나한테는 만병통치약인 우리 아빠가 있는걸!”
나는 아빠를 와락 끌어안았다.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
내게는 가족이 있으니까.
“네 만병통치약은 언제나 기다리고 있으마.”
아빠가 픽 웃으며 내 뺨에 입을 맞췄다.
“재밌게 즐기다 오렴.”
“응!”
Chapter 22. 이 몸 등장!
4년 만에 열리는 새벽 축제로 제도는 들떠 있었다.
신문이나 가십지도 연신 기사를 쏟아내고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그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차세대 사교계를 이끌어나갈 동량을 뽑는 자리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이번 대 에오스와 아우로라는 누가 될까요?”
새벽의 남신 에오스, 새벽의 여신 아우로라의 이름을 따서 새벽 축제의 우승자를 그렇게 불렀다.
제국에 신새벽을 가져오는 존재라는 의미였다.
“아우로라 쪽은 아무래도 타렌카 영애 아니겠어요? 일전에 봤는데 무척 의젓하더군요.”
“그 말괄량이 포셰트 영애를 챙겨주는 아이는 타렌카 영애 정도니까요.”
“아, 확실히. 아이들 사이에서 중재도 제법이고 예법에도 밝더군요.”
“그럼 역시 아우로라는 타렌카 영애가?”
“어머, 그건 아직 모르는 일이죠. 그 파에라톤 공녀가 새벽 축제에 참여한다잖아요!”
“그게 진짜인가요? 헛소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진짜라면 드디어 그 소문만 무성한 공녀를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아직 어느 모임에도 얼굴을 비추질 않던데. 바로 새벽 축제에 참여한대요? 사교계 경험을 좀 쌓고 나가는 게 좋을 텐데…….”
“흠, 그럼 역시 헛소문일까요? 아직 열 살이잖아요. 열네 살에 참여하는 게 나을 테니까.”
“그건 또 모르는 일이죠. 파에라톤이니까요.”
“하지만 마기가 없는데 평범한 아이와 같지 않을까요?”
“부인께선 어떠셨어요? 옛날 공녀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셨잖아요.”
“아주 귀여운 꼬마 아가씨였지요. 커다란 케이크를 자르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파에라톤 공작에게서 그런 딸이 나올 줄이야.”
“아이참, 그런 거 말구요.”
“흐음, 영특해 보이긴 했지만……. 딱히 파에라톤다운 면은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흑사병 치료제를 만든 게 파이라톤 공녀라고 하니까요.”
“거기에 대해서도 말이 많잖아요.”
“어찌 될진 두고 보면 알겠죠.”
“에오스 쪽은 어때요?”
“에오스는 뭐, 황자님이 계시니까……. 본선부터는 황족이 참여하니까요.”
“그래도 델바트렌 공자도 참석한다던데.”
“델바트렌 공자는 좀…….”
“아, 그렇긴 하죠.”
그렇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새벽 축제의 첫날이 밝았다.
* * *
“클라티에 영애, 이쪽이에요.”
“클라티에 영애는 오늘도 빛나네요.”
클라티에는 제게로 모여드는 영애들을 보며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명실공히 차세대 사교계 구심점 중 하나였다.
모두가 우승을 노리고 새벽 축제에 참여하는 건 아니었다.
이건 인맥을 다지는 황금 같은 기회였다.
유력한 우승 후보를 밀어주며 미리미리 눈에 들려는 소년, 소녀들도 많았다.
주변을 힐끔 보니 모두의 이목이 자신에게 쏠려 있다.
대놓고 호의를 내보이는 사람들부터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에 긴장한 사람들, 거기다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까지.
“타렌카 영애,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희 누이가 작은 티파티를 열 생각입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유력 가문의 영식들이 너도나도 말을 걸려고 안달하고 있다.
클라티에는 부채로 입술을 가린 채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그간 노력한 보람이 있어.’
클라티에가 느긋하게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어? 파에라톤 공녀 아니에요?”
“세상에, 진짜 파에라톤 공녀야.”
“파에라톤 공녀가 왔다고?”
클라티에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문가를 향했다.
모두의 시선을 한눈에 받으며 루아티샤 파에라톤이 홀 안으로 들어왔다.
“초상화하고는 또 느낌이 다르네요.”
“과연 파에라톤은 파에라톤이구나. 사교계는 처음인데다 아는 사람 한 명 없을 텐데 하나도 위축되지 않은 것 좀 봐.”
“세상에, 저 드레스 너무 예쁘다……. 유트라님의 신작인가?”
“이, 있어도 괜찮은 거야? 우리 몸 아프면…….”
“괜찮아. 마기가 없다고 하니까.”
파에라톤 공녀, 아니, 공녀는 물론 공자까지 통틀어서 파에라톤 공작가에서 새벽 축제에 참여한 적은 없었다.
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워낙 폐쇄적인 가문이라 공식 행사에 불참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비로운 힘을 가진 베일에 싸인 가문.
어린 소년, 소녀들의 가슴에 꿈과 환상을 불어넣기 충분했다.
또한 경계심을 사기에도.
모두 호기심과 걱정, 기대와 불안이 섞인 얼굴로 루아티샤를 바라봤다.
그리고 클라티에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겨우 등장만 했을 뿐인데 뭘 이리 호들갑이야……!’
아무것도 없이 파에라톤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자신이 받아야 할 주목까지 빼앗아 가고 있다.
‘파에라톤의 피 한 방울 안 섞인 주제에!’
어렸을 때도 그렇지만 어쩜 저렇게 뻔뻔할까?
그때였다.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 황비 전하와 황자 전하께서 드십니다!”
호명관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홀에 울렸다.
황족의 등장에 수런거리던 영애와 영식들이 자리를 잡고 예를 갖췄다.
황제는 아직 십 대 초반인 아이들이 그러는 게 꽤 귀엽고 흐뭇한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모두 고개를 들라. 제국의 미래를 책임질 동량들의 얼굴을 짐이 직접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 말에 모두 조심스럽고 공손한 태도로 고개를 들었다.
아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던 황제의 시선이 잠깐 루아티샤에게 머물렀다.
순간 황제의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그는 내색하지 않고 인자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다들 얼굴만 봐도 영특함이 흐르는구나. 제국의 미래가 밝도다. 새벽 축제는 제국에 새로운 새벽을 가져다줄 그대들의 기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다. 품고 있는 뜻이 있다면 지금은 사양할 때가 아니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자신의 장점을 갈고 닦는 장이 되었으면 한다.”
루아티샤는 길게 이어지는 황제의 축사를 대강 한 귀로 흘리며 황족들의 면면을 살폈다.
황제에겐 몇몇 후궁이 더 있지만, 후비에 책봉된 자는 지금 공식 석상에 함께하는 황후와 황비가 전부였다.
후궁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전부 비밀이었다.
‘시드는 궁으로 돌아오지 않은 건가? 아니면 단순히 후궁의 아들이라 이런 자리에 나오지 않은 걸까.’
이번 대에서 후궁의 자식들이 후궁 밖으로 나온 적은 없다.
자식이 몇인지조차 알려지지 않을 정도니 말 다 했지.
‘그런 금제가 있었던 걸 생각하면 황궁에 돌아오지 않은 게 다행인지도.’
황실이니 뭐니 하는 것과 상관없이 평민으로 자유롭게 사는 게 시드에게도 행복할 거다.
‘돌아오지 않았다면 앞으로 정말 볼 일은 없겠네.’
이 할미가 어떻게 키웠는데.
다행인 한 편 조금 섭섭하기도 해서 루아티샤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 * *
축사를 마친 후, 정무로 바쁜 황제는 곧장 자리를 떴다.
황제의 축사에 고취된 어린 영애와 영식들이 발간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가운데 내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루아티샤, 저번에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 나누지 못했지. 잘 지낸 것 같아 보여서 다행이야.”
클라티에가 생글생글 웃으며 살가운 척 말을 붙였다.
순식간에 이목이 이쪽으로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아하.
여기서 내 유명세를 이용하겠다?
상대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나 역시 살가운 척, 착한 척하면서 인성 배틀을 시작하거나.
아니면一
“저 아세요?”
님 왜 주제도 모르고 자꾸 우리 가족에 끼려 함?
一딱 자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