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97)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97화(97/353)
☆ 제98화 ☆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는 말에 클라티에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달아올랐다.
“뭐야, 아는 사이가 아니었던 거야?”
“사촌이긴 하지만 파에라톤 공녀는 거의 공작령에서만 지냈을 테니…….”
수군수군거리는 소리에 클라티에가 애써 다시 미소를 만들어냈다.
“농담도 차암! 우린 어렸을 때 한 집에서 친동기간처럼 같이 컸잖니.”
“내 친동기는 우리 오빠들밖에 없는데요.”
낄끼빠빠해라, 응?
하지만 이 정도로 물러나면 클라티에가 아니다.
나를 노려보던 것도 잠시, 클라티에는 슬픈 얼굴을 꾸며내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너무해……. 나는 루아티샤 너를 친자매처럼 여기고 있었는데……. 이렇게 밀어내다니 마음이 아프다.”
당장 그런 게 아니라고 보듬어 주고 싶을 정도로 가련한 얼굴이었다.
대번에 갤러리들에게서 반응이 왔다.
“한 집에서 컸다는데요? 그럼 파에라톤 공녀가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걸까요?”
“근데 진짜 모르는 걸 수도 있잖아. 아기 때면 기억 못 하지.”
“아무리 그래도 사촌인 건 확실한데 이렇게 다 보는 앞에서 누구냐고 면박을 줘야 하나. 클라티에 영애가 불쌍해.”
일부러 큰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은 아까 클라티에의 곁에 찰싹 붙어있던 영애였다.
평판을 생각하면 딱 자르는 것보다 나 역시 가면을 쓴 채 행동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럴 필요 있나?
내가 클라티에도 아니고.
“아, 생각났다.”
나는 짝, 하고 손뼉을 쳐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저번에 유트라의 의상실에서 봤던 건 기억나네요. 그때 우리 오빠들한테도 이렇게 아는 척했죠?”
“어?”
그 이야기가 나오자 클라티에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왜, 그때 영애가 나에 대해서 안 좋은 말을 했잖아요. 그래서 오빠들이 화내니까 갑자기 ‘저 예요, 저. 클라티에.’라고 아는 척했죠?”
“안 좋은 말이라니. 나는 그냥 의문을 표한 것一.”
“근데 우리 오빠들은 영애와 초면이라고 하던데.”
클라티에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이쪽을 주목하고 있던 갤러리들의 시선도 묘해졌다.
“왜 자꾸 초면인 사람한테 격의 없이 대하면서 아는 척하세요?”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도무지 이해 안 된다는 듯 클라티에를 바라봤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친절한 건 좋아요. 하지만 친절과 이건 다르죠? 사람에 따라선 무례라고 느낄 수 있어요.”
의상실에서 만났을 때도 예법 강의해줬는데 또 해줘야 하니?
내 시선을 읽은 클라티에의 입매가 파르르 떨렸다.
“뭐야, 그럼 클라티에 영애는 초면인 공자들한테도 저랬다는 거야?”
“거기다 안 좋은 말을 했다니……. 보통은 가족 앞에서 일부러라도 좋은 말을 해주지 않나요?”
“아니, 저기. 그래도 클라티에 영애를 알지도 못하는 척 면박 주는 건 아니죠.”
클라티에의 추종자가 애써 편을 들었지만 소용없었다.
“글쎄요. 가족들 앞에서 욕해 놓고 남들 앞에서 저렇게 가까운 사이처럼 행동하면 당연히 파에라톤 공녀가 화나지 않겠어요?”
“그저 모르는 척한 것만 해도 어디에요. 아직 열 살밖에 안 된 걸 생각하면 세련됐네요.”
“애초에 친동기간처럼 지내지도 않은 것 같고.”
그 웅성거림에 클라티에가 치맛자락 꾹 말아쥐었다.
‘언플하려다가 개쪽만 당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고소해라.
이대로 끝내는 게 그나마 잃는 게 적을 텐데, 안타깝게도 클라티에에게 그럴 생각은 없는듯했다.
‘아, 황족들을 의식하는 건가?’
황제와 황후는 나갔지만, 황자와 황비는 여전히 홀에 있었다.
이대로 꼬리를 말면 그들에게 인상을 남길 수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나는 그냥, 그냥 사촌들과 친해지고 싶었을 뿐이야. 내가 무례했다면 미안해……!”
클라티에가 물기 어린 눈으로 가련하게 떨었다.
한심할 정도로 똑같은 전략에 하품이 나오려 했다.
그때였다.
“어머? 황자 전하께서 나서실 건가 봐요.”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황자가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긴, 황자 전하께서는 클라티에 영애와 이미 안면이 있으시죠?”
“두 분 사이에 분위기도 괜찮다고 하던데, 어머?”
핑크빛 기류가 생길 예감에 영애들이 얼굴을 붉혔다.
곤란한 일을 겪고 있는 정인을 구하는 황자.
너무나 로맨스 소설 같지 않은가.
클라티에의 눈 역시 기대로 빛났다.
그러나 그 소설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파에라톤 공녀.”
황자는 클라티에를 완전히 무시한 채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당연하지.’
권력자에게는 누가 더 착한 척 잘하느냐는 중요하지 않거든.
그리고 잊었어?
이건 축제가 아니라 경연이야.
착한 척하면서 어떻게 피 튀기는 경쟁할래?
“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나는 예에 맞춰 무릎을 굽힌 후 고개를 들었다.
황제와 황후의 미모의 좋은 부분만을 적절히 타고난 황자가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애쉬 블론드와 신비로운 청회색 눈동자.
얼굴에서부터 흐르는 귀태가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신분을 나타내는 듯했다.
“에스테반이다.”
“황자 전하의 존함을 직접 듣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생긋 웃었다.
에스테반 황자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이런, 황족이라 예선에 참여하지 못하는 게 아쉬워질 줄은 몰랐는데.”
에스테반이 입꼬리를 올렸다. 아까의 예의 차리던 미소와 다른 진짜 미소였다.
“본선에서 공녀를 꼭 봤으면 좋겠군.”
그는 그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떴다.
“지, 지금 황자님께서 직접 이름으로 부르는 걸 허락하신 거 맞죠?”
“처음 아니에요? 세상에.”
“와, 그런데 파에라톤 공녀는 그걸 거절하네요?”
그 소란 사이로 황비가 우아하게 걸어 내게로 다가왔다.
“루아티샤.”
“황비 전하.”
나는 치맛자락을 펴며 무릎을 굽혔다.
황비가 옅게 웃었다.
“어머나, 제법 의젓해졌구나. 왠지 아쉬운걸. 깡총하며 인사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별걸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자 황비가 쿡쿡거렸다.
“별거라니. 내게는 사랑스러운 추억이란다. 그나저나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그간 잘 지냈니?”
“전하께서 걱정해주신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황궁에서 너를 보게 되어 무척 기분이 좋아. 내 제안은 아직도 유효하단다.”
“생각해볼게요.”
새침하게 대답하자 황비가 재밌다는 듯 웃고는 자리를 떴다.
“뭐야, 황비 전하까지?”
“파에라톤 공녀가 무척 마음에 드셨나 봐요. 먼저 말을 거시는 분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공녀에게 하신 제안은 뭘까요?”
영애와 영식들은 모두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클라티에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없었다.
가느다란 그녀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 * *
황족이 전부 퇴장하고 나자 궁내부 장관인 체시아 백작이 앞으로 나섰다.
“환영합니다, 여러분. 처음으로 황제 폐하를 뵙고 긴장하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우선 맛있는 케이크와 따뜻한 차를 마시며 긴장을 푸세요.”
체시아 백작은 아주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우승자가 있기에 경연처럼 보이지만, 새벽 축제는 축제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참가자들의 즐거움이죠.”
온화한 인상만큼이나 말도, 어조도 다정했다.
“이렇게 다양한 또래와 한자리에 있는 것도 드문 일이죠. 친구와 추억을 만드는 것도,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도 축제의 묘미겠죠?”
‘하지만 궁내부 장관이라면 마냥 속 좋은 사람은 아니겠지.’
황궁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동시에 중앙 권력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를 보좌하고 있는 관료들의 얼굴에 어린 긴장을 읽었다.
“재미없는 어른들은 빠질 테니 편안하고 즐거운 티타임을 보내세요. 영애들은 오른쪽으로, 영식들은 왼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안내자들이 홀의 양측에 난 문을 열었다.
그 안으로 가자 근사한 티파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황궁에서 티타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설레는 일일 터.
여기저기서 터지는 감탄에 안내자가 싱긋 웃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시길.”
그 말과 함께 문이 닫혔다. 어른들은 한 명도 남지 않았다. 하녀와 하인들까지도.
남은 건 새벽 축제에 참여한 아이들뿐이었다.
‘흐음, 이건 또 새로운 방식이네.’
역대 새벽 축제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들었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또래들끼리만 놔두는 경우는 없었다.
“하아, 긴장했었는데 이제 살 것 같다.”
“체시아 백작님께서 이번 새벽 축제를 주관하시는 걸까?”
“그런가 봐. 궁내부 장관이 되시는 분께서 직접 맡다니, 이런 일은 처음이지 않아?”
“체시아 백작님께서 좋은 분 같아서 다행이야.”
이미 아는 얼굴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무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내가 저 안으로 파고들기엔 좀 늦었지.’
엄마나 샤프롱 혹은 독서 클럽 같은 사교 모임을 통해 친해진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굳이 그 안에 비집고 들어가려고 할 필요는 없다.
이미 충분히 관심을 받고 있으니까.
‘오히려 다들 날 너무 의식해서 문제지.’
나는 대강 빈 테이블에 앉았다.
이글거리는 시선이 느껴져서 돌아보니 포셰트 영애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더 멋지다는 걸 알려주겠다더니 엄청나게 의식 중이잖아.’
클라티에가 옆에서 뭐라 뭐라 말을 하는데 날 보느라 하나도 듣고 있지 않다.
아무래도 나랑 동갑은 포셰트 영애뿐인 듯했다.
‘하긴, 새벽 축제는 딱 한 번만 참여할 수 있으니까.’
열 살보다 열네 살에 참여하는게 훨씬 유리하니 나랑 동갑인 영애들은 다음 새벽 축제를 노리는 듯했다.
새하얀 찻잔에 차를 따르자 향긋한 향기가 났다.
‘하지만 아이 입에는 너무 쓰다구.’
나는 설탕을 퐁당퐁당 넣고 우유를 잔뜩 부었다.
그때였다.
“저, 저어 파에라톤 공녀.”
한 무리의 영애들이 내 테이블로 다가왔다.
눈이 마주치자 침을 꿀꺽 삼킨다. 긴장하고 있다는 게 나한테까지 느껴졌다.
“뵙게 되어 영광이에요. 저는 아데르센 백작가의 티리엘입니다. 저번 치료제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생긋 웃자 소녀들의 눈동자가 별처럼 빛났다.
‘귀엽네.’
“저, 저는 린드할 자작가의 자스민이에요. 공녀님께서 보내주신 치료제로 인해 영지가 살아날 수 있었어요.”
두 가문 모두 흑사병의 진원지인 미아렌령과 인접해 있어서 고생이 컸을 거다.
함께 온 다른 영애들 역시 너도, 나도 자신을 소개했다.
“계속 서 있기도 다리 아프진 않나요? 괜찮으시면 앉으세요.”
“그, 그래도 될까요?”
영애들이 화색을 띠며 자리에 앉았다.
“공녀님께서는 제 은인이세요. 실은 제 어머니께서 흑사병에 걸리셨거든요. 공녀님의 치료제가 아니었으면 어찌 되었을지.”
“제 사촌 동생도요. 그 소식을 듣고 정말 놀랐었는데 덕분에 살았어요.”
영애들은 흑사병 치료제를 만든 내게 큰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치료제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다는 말을 직접 들으니 새삼 뿌듯했다.
무엇보다 또래 영애들과 이런 시간을 갖는 건 처음이라서 나 역시 들떴다.
그때였다.
“그 치료제 하나로 얼마를 챙겼는데, 5년이나 지나서까지 호들갑이라니.”
“좀 비굴하지 않나? 쪼르르 가선 아양이나 떨고.”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서 뾰족 날 세운 목소리가 들렸다.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영애들의 얼굴이 확 굳었다.
“도, 도와준 분께 감사 인사를 하는 게 뭐가 비굴하죠?”
“어머, 세상에. 아데르센 영애, 지금 엿들은 건가요?”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으면서.
‘그래. 사람이 이만큼 많이 모이면, 그것도 혈기 왕성한 십 대들만 모여 있으면 이런 사람은 꼭 나오지.’
하지만 아데르센 영애는 난생처음으로 받은 주목과 공격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처음 내게 말을 걸었을 때도 느꼈지만 내 주변의 영애들은 모두 온화하고 살짝 소심한 성격인 듯했다.
아데르센 영애의 반응에 상대는 더 신이 났다.
“그리고 제가 틀린 말 했나요? 그때 그 치료제로 파에라톤 공녀가 얼마나 많은 걸 가져갔는데요.”
“그래놓고 도와줬다고 아직까지 생색이라니. 진짜로 도와줄 생각이었으면 공짜로 전국에 다 뿌렸어야죠.”
나는 생긋 웃으며 영애들을 돌아봤다.
“혹시 치료제 만들어 봤나요?”
“……만들어 보진 않았죠.”
“그쵸. 원래 하지 않은 일에 이렇다, 저렇다 말 얹는 건 쉽거든요. 그래서 못 만들어 봤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 말에 상대가 발끈했다.
“만약 제가 치료제를 만들었으면 분명 전국에 공짜로一.”
“그 수량이 얼마나 되는진 알고 하는 소리겠죠?”
영애의 얼굴에 왈칵 짜증이 차올랐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 할 말 없겠지. 모르니까.
미안하지만 나는 여기서 멈출 생각 따윈 없다.
내가 학창 생활을 겪어봐서 아는데 이런 애들은 예의를 지킬수록 더 우습게 보거든.
“그 많은 치료제를 만드는 데 드는 생산 비용은요?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에 들어간 비용은 생각해 봤나요?”
물론 개발비는 0캐시였다.
이미 소환했던 소설을 다시 불러와서 능력을 뽑았으니까.
“재료를 구하고 치료제를 옮기는 데 들어가는 유통비 역시 당연히 계산하셨죠?”
“…….”
“그 정도 생각도 없이 남의 일에 함부로 말을 얹진 않았을 거라고 믿어요.”
“파, 파에라톤 공작가의 재력은 모두가 알아요.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치료제를 만드는 데에는 모두 마나가 들어갔어요. 파에라톤 영지의 마법사들이 전부 매달렸다는 거지요.”
나는 여태까지 짓고 있는 웃음을 거두고 날카롭게 물었다.
“내가 그들에게 아무런 대가도 없이 노동하라고 명해야 하나요?”
“마, 마법사들을 설득해서一.”
“설령 그들이 무급으로 봉사한다고 해도 그게 제대로 된 행정 체계와 영지 경영일까요? 나에겐 파에라톤 공녀로서 공작령의 영지민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어요.”
시비를 걸던 영애들은 모두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오해하는 게 있는데.”
나는 그런 그들을 향해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처음에 나는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조건으로 치료제를 주겠다고 했어요. 제국과 사람들을 위해서.”
이건 유명한 사실이다.
내 제안을 거절한 미아렌 백작은 아예 작위를 여동생에게 뺏기지 않았던가.
“미아렌령은 물론 그 인접 영지에게도 그랬지요.”
“마, 맞아요. 제가 똑똑히 기억해요.”
“저도요!”
아데르센 영애와 린드할 영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던 제게 접촉해서 이러저러한 조건을 걸 테니 치료제를 달라고 했던 건 다른 귀족분들이에요. 제가 아니라.”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이런 선후 관계도 모르는 채 무작정 저를 생색내느니, 얼마를 챙겼느니 하면서 비난 한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