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Baby Runs A Romance Fantasy With Cash RAW novel - Chapter (99)
아기님 캐시로 로판 달린다-99화(99/353)
☆ 100화 ☆
황제는 분명 그 시선을 느꼈을 텐데도 아무런 내색 없이 턱을 쓰다듬었다.
“종합해보지. 분명 초반에 분위기를 잘 이끌어나가던 영애는 타렌카 영애였어.”
“예, 폐하께서 나가시고 홀에 있을 때 파에라톤 공녀와 잠시 소란이 있긴 했습니다만.”
“호오? 파에라톤 공녀와?”
황제는 소란 따윈 한 번도 일으키지 않은 타렌카 영애가 소란을 일으켰다는 것보다 파에라톤 공녀라는 말에 더 흥미를 느낀 듯했다.
해서 체시아 백작은 상세하게 그 상황을 설명했다.
“흠, 그랬군. 파에라톤 공녀 성격이 보통이 아니구먼.”
황제가 껄껄껄 웃었다.
“타렌카 영애 입장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 굉장히 당혹스러웠을 텐데, 그래도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습니다.”
“그래, 티타임이 시작되었을 때는 과연 소문대로 부드럽게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있었지.”
“예, 타의 모범이 되는 영애입니다. 그 옆에 앉은 포셰트 영애와는 비교가 되더군요.”
“문제없을 때보단 문제가 생겼을 때 진가가 드러나는 법이지. 소란 후의 회복력을 보면 꽤 괜찮군.”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외에도 영애들 사이의 구심점이 되는 자들이 몇몇 보였습니다만.”
“딱히 눈에 띄는 행태는 아니었지. 또래들 사이에서 조금 인기 좋은 아이를 뽑는 게 아니니까.”
“그렇지요. 하지만…….”
체시아 백작이 푸른빛 긴 생머리를 한 영애의 초상화를 슥밀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첼로인 영애를 한 번 눈여겨 볼 필요는 있겠어. 조용해서 눈에 띄진 않지만 꽤 능숙하더군.”
“예, 함께 자리한 영애들도 꽤 괜찮고요. 무리를 보면 알 수 있죠.”
“그에 반해 파에라톤 공녀는 초반엔 그저 그랬어.”
“사교모임 자체에 처음이라 들었습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으니 당연히 그랬겠지요. 흥미를 갖는 영애들은 많았어도 먼저 총대를 메고 다가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을 테고요.”
“그렇지. 파에라톤 공녀라는 신분에는 흥미가 있어도 그 사람이 어떤진 모를 테니.”
“일반 사교 모임에서라면 흥미만으로 말을 걸어봤을 테지만 새벽 축제라는 부담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 괜히 성격이 이상한 사람과 얽히면 바로 발목 잡힐 테니까. 거기다 평판이 좋은 타렌카 영애와 소란이 있었으니 그것 역시 부담이었겠지.”
“네. 여론은 파에라톤 영애에게 좋게 마무리됐지만, 그 성격에 보통이 아니라는 것 역시 드러났으니까요.”
“타렌카 영애를 유력한 우승 후보로 점치고 있는 사람들도 많으니 더 몸을 사렸겠지.”
“그런데 지금 파에라톤 공녀는 단번에 그 상황을 뒤집었군요.”
“허허, 이 정도면 브란테 영애와 셀란도 영애에게 파에라톤 공녀가 고마워해야 하는 게 아닌가?”
“아주 좋은 기회를 제공했지요. 하지만 그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전적으로 능력에 달려있습니다. 적당히 할 법도 했는데, 아예 목덜미를 물어 죽여놨으니.”
“첫 사교 모임 참석이라는 것, 새벽 축제를 막 시작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웬만한 배짱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지. 아니면 생각 없이 막 지르는 스타일이 거나.”
“하지만 뒤이어 수습하던 걸 보면 생각 없는 스타일은 아니던데요?”
“그런가? 아직 그걸 판단하긴 이르다고 보는데. 꽤 운이 좋게 작용했어.”
“다른 영애들을 끌어들인 것 말씀입니까?”
“그래, 위험한 수였지. 만약 다른 영애들이 왜 자기까지 끌 어들이냐고 하면 어쩌려고 했나.”
“파에라톤 공녀는 안 그럴 거라고 계산하고 움직인 것 같습니다만.”
황제의 눈에서 이채가 돌았다.
영애들의 사전 정보에 대해서 황제는 간략한 보고만 받았지, 체시아 백작처럼 자세히 알지 못했다.
“자세히 말해 봐.”
“브란테 영애와 셀란도 영애는 평판이 지극히 안 좋은 자들입니다. 대다수의 영애가 이들에게 불쾌감을 가지고 있지요.”
“언제 한 번 망신 주고 싶다고 생각한 영애들이 많다는 뜻이군. 파에라톤 공녀는 그걸 이용했다?”
“단순히 그것만이 아닙니다. 영애들 사이에서 중심이 되는 자들은 몇 사람 더 있었습니다. 타렌카 영애를 언급하지 않은 건 이전의 소란 때문이라고 치죠. 하지만 왜 그중에서 세 사람만 콕 집어 말했을까요?”
황제가 무릎을 탁 쳤다.
“파에라톤 영애가 그 짧은 시간에 선별을 했다? 반응이 긍정적으로 돌아올 자들로만?”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하필 그 세 사람이었는지 설명되지 않아요.”
“허어, 대단하군. 그 짧은 시간에 영애들을 판단하고 여론에 도움이 될 만한 자들을 추렸다라…….”
“브란테 영애와 파에라톤 공녀가 말을 주고받을 때 모든 영애들이 두 사람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반응을 살폈던 거겠지요.”
“하긴, 처음에 혼자 앉아 있을 때도 어색해하는 표정은 아니었지. 오히려 때를 기다리는 느낌이었어. 그때부터 파악에 들어갔군.”
“아주 절묘합니다. 특히 미첼로인 영애는 파에라톤 공녀에 대한 호의나 브란테 영애에 대한 경멸 때문에 동조하진 않았을 겁니다. 다만一.”
“그래, 거기서 나설 성격은 아니지. 실제로 처음 파에라톤 공녀가 미첼로인 가를 언급했을 때 힐끔 눈치만 줬지. 그렇군. 정말로 다 파악했군.”
황제는 파에라톤 공녀의 초상화에 얼굴을 고정한 채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대화 내용은 다른 곳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황후는 파에라톤 공녀의 초상화를 톡톡 두드리며 미소 지었다.
“대단하군. 가장 어린데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어. 각 가문의 주요 사업까지 꿰고 있던 것 같은데?”
“아카데미와 사관 학교, 마도서와 병원까지 줄줄이 나올 때는 놀랐다니까요? 알기만 하는 것과 그걸 실제로 대화에 써먹는 것은 다르지요.”
황후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에스테반, 어찌 생각하니?”
“공녀를 보고 예선에 참여하지 못하는 걸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방금 그 아쉬움이 사라졌습니다.”
“호오?”
“예선에 참여했다면 공녀의 이런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귀로 들었어야 했을 테니까요.”
황후가 픽 웃었다.
“어지간히 마음에 든 모양이구나. 파에라톤 공녀라……. 괜찮지. 언제나 그 가문은 탐이 났으니 말이야. 멍청한 아펠리아가 실패하지만 않았어도.”
황후가 이를 으득 갈았다.
실패해도 그냥 조용히 실패할 것이지, 그게 무슨 개망신인가.
그때 자신까지 엮여서 구설에 오르내렸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짜증이 올라왔다.
저 얄미운 황비가 그 틈을 타서 흑사병이 유행하는 와중에도 몸을 돌보지 않고 제국을 위한다는 이미지까지 챙겨가는 바람에 얼마나 비교를 당했던가.
‘하지만 제아무리 황비가 난다 긴다 해도 날 이기진 못해.’
황후는 뿌듯한 눈으로 제 아들을 바라봤다.
* * *
황후가 황비를 향해 이를 갈던 시각, 황비궁.
황비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주머니 속의 송곳은 숨길 수 없는 법이지. 하지만 이렇게나 빨리 두각을 드러낼 줄 이야.”
“황후가 곧장 작업에 들어갈 겁니다.”
“쉬이 흔들리는 아이가 아니야. 황후가 꼬셔도 바로 넘어가지 않을 거네.”
“다행입니다.”
“다행한 일이나 그게 내게도 어려운 숙제구나. 셈이 빠른 아이다. 무엇을 주어야 저울이 맞을까.”
고심하는 황비를 보고 시녀장이 미소를 지었다.
“한데 그리 기분이 나빠 보이시지 않습니다.”
“그러게 말이군. 이 위치에 와서 어린아이 환심을 사려고 고민하고 있는데. 하긴, 다 늙은 귀족들과 저울질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지.”
시녀장은 즐겁게 농을 하는 황비를 보며 흐린 미소를 지었다.
‘황녀님께서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황녀가 살아 있었다면 딱 파에라톤 공녀의 또래였을 거다.
공녀를 보며 저리 즐거워하는 황비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 * *
황태후 궁의 온실.
몬스테라의 넓은 잎사귀를 천으로 닦던 황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파에라톤 공녀를 눈여겨보겠군.”
“어찌할까요? 저희도 접근할까요?”
“일단 기다려 보게. 이 늙은이는 몇십 년이나 되는 세월을 뒷방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이제 와 조금 더 기다린다 해도 다를 것 없네.”
“그러시면…….”
“관심 없는 척 지켜보다 다른 쪽에서 움직이면 바로 보고하게나.”
“물론입니다, 폐하.”
황태후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아이, 시드라고 했나? 지금 어디 있지?”
“황제 폐하께서 델루만궁에 숨겨두고 계십니다. 황후나 황비 쪽에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흐음…….”
황태후는 잠시 말없이 잎사귀를 닦는 것에 전념했다.
“나는 그 아이의 출신이 의문이야.”
“예? 황제 폐하의 자식이 아닐 수 있다는 뜻입니까? 하지만 분명 신석의 반응이一.”
“아니, 아니. 그쪽이 아니라.”
황태후는 무어라 더 말하려 하다 입을 다물었다.
“영식들 쪽은 어떻지? 델바트렌 공자가 참여하지 않았던가.”
아예 다른 질문을 하는 황태후에게 보좌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델바트렌 공자는 땡땡이 중입니다.”
‘하, 진짜 귀찮아.’
라파엘 델바트렌은 풀숲 사이 그늘에 누워 한가롭게 하늘을 올려다봤다.
조부인 델바트렌 공작이 반드시 새벽 축제에 참여하라고 해서 오긴 왔는데 영 맞질 않는다.
‘할아버지의 명령이든 뭐든 그 검만 아니었으면 쌩 까는 건데.’
가문에 내려오는 보검을 거니 얄짤 없이 참여하는 수밖에 없었다.
‘뭔 티타임이야. 대강 여기서 시간 때우다가一.’
그때였다.
퍽!
“아야!”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돌덩이가 배를 가격했다.
그는 쿨럭, 기침을 하며 돌덩이를 바라보았다.
유순해 보이는 말간 얼굴과 커다란 푸른 눈동자, 포슬포슬 한 분홍빛 머리카락.
하늘에서 떨어진 돌덩이라기보단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는 비유가 더 어울리는 여자아이였다.
다만 라파엘에게는 그만한 감수성이 없었다.
“미안, 미안해요. 여기에 사람이 있을 줄은 몰라서…….”
어쩔 줄 모르고 사과하는 여자애를 보고 라파엘은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넌.”
“음, 지나가는 사람?”
배시시 웃는다.
꼴을 보아하니 새벽 축제 참가자였다.
“너도 땡땡이냐?”
그 말에 여자애가 허리에 척 손을 얹고 배를 뽈록 내밀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땡땡이 칠 사람으로 보여?”
당당한 건 좋다만 지금 할 소리는 아니었다.
“지금 창문에서 뛰어내린 건 뭔데.”
“창문에서 뛰어내렸다니. 내가 그런 위험한 짓을 할 리가 없잖아.”
라파엘은 돌덩이가 뛰어 내렸던 창문을 힐끗 눈짓했다.
“그냥 문이 아닌 곳으로 나왔을 뿐이야.”
“…….”
라파엘은 난생처음으로 말을 잃었다.
스스로도 한 뻔뻔하다고 생각했지만 얘는 진짜다.
“아프게 한 건 미안해! 혹시 이상 있으면 디에르 자작한테 연락해! 그럼 난 이만!”
여자애는 빠르게 사과한 다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졌다.
분홍빛 구름이 나폴나폴거리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라파엘은 미간을 찌푸렸다.
“별 이상한 애를 다 보겠네.”
* * *
나는 주변을 살핀 후, 에르메스 짹을 향해 물었다.
“왜 못 들어왔던 거야?”
“결계가 쳐져 있다 짹!”
공작성의 결계는 잘 통과하더니 황궁의 결계는 좀 다른가 보다.
“내가 부족한 게 아니다 짹 아직 나는 내 힘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짹!”
“알았어, 알았어.”
‘내 영향력이 낮아서 에르메스 짹의 능력이 제한되었다고 했지.’
내가 에르메스 짹에게서 편지를 받으려는 순간이었다.
“대가는?”
역시 자본주의의 전령 정령.
“지금은 못 줘. 나중에 집에 가서 줄게.”
에르메스 짹은 대답 없이 좀 더 위로 날아올랐다.
“화이트 초코 마카다미아 쿠키랑 아망드 쇼콜라!”
“역시 넌 좋은 사람이다 짹!”
에르메스 짹은 새 주제에 초콜릿 맛을 좋아했다.
‘이렇게 갑자기 연락을 보낼 정도면 큰일이 난 게 틀림없어.’
나는 서둘러 편지를 열었다.
발신인은 에체시스의 용병단 장인 에첸이었다.
그리고 내용은…….
우리 단원 중 용한 점쟁이가 있는데 네 운세에 대해 알려주더군.
오늘 넌 운명을 만날 거래.
잘해 봐.
“…….”
장난하냐!
‘뭐야, 급한 일인 줄 알고 괜히 긴장했잖아.’
비록 일 층이긴 하지만 창문까지 타 넘으면서 나왔는데!
‘바쁜 용병단 아니었어? 얘도 어지간히 심심한가 보네.’
그 한가함이 부러웠다.
칫, 하면서 편지를 박박 찢는 순간이었다.
“주인님.”
등 뒤에서 들리는 낮고 고요한 목소리.
처음 듣는 목소리인데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봄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가운데, 한 소년이 서 있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금발, 신비롭고 오묘한 보랏빛 눈동자.
우뚝한 콧대와 날렵한 턱선, 깊은 눈가.
몇 년이나 지났음에도 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시드…….”
신음 같은 내 부름에 그가 미소 지었다.
“오랜만이야, 주인님.”
“…….”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황궁에 오면 어쩌다 시드를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황실의 핏줄임은 틀림없으니까.
만나면 어떻게 할까, 무슨 말을 할까, 어떻게 인사할까, 어떤 표정을 지을까.
몇 번이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모르는 척해야겠지.’
시드도 나를 모르는 척할 거야. 황궁에 있으면 입장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잠깐이나마 노예였다는 사실은 황자인 그에게 있어 커다란 흠집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그에게 있어서 좋은 주인이 아니었다.
집착을 막겠다고 부러 모진 말도 몇 번이나 했다.
나에게는 그와의 추억이 넘쳐 나지만 그에게는 아니었다.
‘시드를 치료하고, 따스함을 알려주고, 이름을 붙여 준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나였지만 내가 아니다.
시드에게는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만나봤자 이 인연은 이어지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一.
바스락.
내가 찢었던 편지지가 시드의 발아래 짓밟혔다.
오늘 넌 운명을 만날 거래
반쯤 찢긴 그 문구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시드가 내게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