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of the Alter Lands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월신과 만난 영주님 (1)
당황을 가라앉힌 이사벨라가 내게 물었다.
“경께서는 삼신기에 무언가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특임 성기사가 되면서 문라이트 소드는 내 것이 되었다.
하지만 나머지 두 검은 여전히 일월성교회의 소유.
검만 놓고 가라고 하면 그 말을 들을 리가 없다.
이사벨라의 눈을 보니 물러날 생각도 없어 보이고.
어차피 그녀도 악마 사냥꾼이고, 나처럼 왕국의 실험을 통해 태어났으니 궁금하겠지.
“예. 아마 삼신검에는 월신께서 남긴 메시지가 들어 있을 것입니다.”
“네? 워, 월신님의 메시지요?”
삼신검이라는 명칭을 듣자마자 삼신기가 떠올랐다.
다시 말하면, 무언가를 하고 싶게 만들었다.
철컥, 철컥, 철컥.
세 검의 손잡이를 서로 잇자 마치 레고 블록을 끼우는 것처럼 결합이 되었다.
“맙소사. 마치 하나의 검 같아요.”
정확히 말하면 검이 아니라 짧은 봉 형태가 되었다.
그대로 마나를 밀어 넣자, 하나가 된 삼신검이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나가기 직전의 형광등처럼.
그와 함께 마나가 미친 듯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코어 : 89개] [코어 : 85개] [코어 : 79개]줄어든 마나는 삼신검에 의해 신성력으로 변환되기 시작했다.
“카민 경?”
놀란 이사벨라가 나를 말리려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어 그녀를 제지했다.
순식간에 코어 10개분의 마나가 사라졌지만… 상관없다.
‘변경 땅의 영주님’의 세계관에서 코어 90개분의 마나를 잡아먹는 마법은 없으니까.
그것이 [기원>이라 할지라도.
대주교 헤르딤이 100여 명의 주교의 신성력을 이용해 [기원>을 사용했고, 내 마나 하트의 크기를 고려하면 많아야 50개 정도 들까?
[코어 : 40개]내 예상은 적중했다.
삼신검은 코어 50개를 게걸스럽게 잡아먹은 뒤에야 깜박임을 멈추고 온전히 빛나기 시작했다.
원래 있던 마나까지 생각하면 51개분의 마나가 신성력으로 변한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삼신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거기서 나타난 건 사람 형태의 영혼이었다.
지금까지 봐온 다른 영혼과 다르게 뭉게구름 같은 모습이긴 했지만, 분명 인간의 형태였다.
영혼을 본 이사벨라는 깜짝 놀라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월신… 월신이십니까?”
그녀의 말에 영혼이 반응했다.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
비밀번호?
갑자기 무슨 비밀번호를 대라는 거지?
그보다 이거 월신은 절대 아닌 듯했다.
느낌도 그렇고 억양이나 내용을 보면 사람의 영혼이 아닌 것 같았으니까.
일단 암호가 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변경 땅의 영주님.”
-비밀번호가 틀렸습니다. 비밀번호를 다시 입력해 주세요.
하, 뭐지?
비밀번호가 뭘까 머리를 굴리는데 이사벨라가 경악하며 물었다.
“카민 경?”
“예?”
“신어를 하실 줄 아시나요?”
“신어?”
무슨 소린가 싶어 되물으니, 그녀가 펄쩍 뛰었다.
“방금 신어로 말씀하셨잖아요!”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영혼이 한국어로 말했고, 나도 한국어로 답했다는 것을.
삼신검에서 영혼을 불러냈다는 것에 집중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에겐 왕국어나 한국어나 둘 다 모국어라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이중언어 사용자는 한쪽이 퇴화하기 마련인데, 나는 브레이스 사투리라는 핑계로 남들 모르게 욕하는 데 계속 써먹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웠다.
근데 한국어가 신어라고?
“안녕하세요?”
한국어로 이사벨라에게 묻자, 대답이 돌아왔다.
“아녀하세요… 역시 경께서는 신어를 알고 계시는군요.”
발음이 어눌했지만, 이사벨라는 방금 분명 ‘안녕하세요.’라고, 말했다.
“신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시다니. 당신은 역시….”
이사벨라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도 삼신검의 신성력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
암호가 뭔지 짚이는 게 없는데 이사벨라와 대화하며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방해를 막을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역시 선지자라는 겁니까?”
내 말에 이사벨라가 정색했다.
“네? 선지자라뇨.”
모르는 척하기는.
보나 마나 금속편으로 전해져 온 ‘다만 절대로 이 사실을 선지자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라는 말 때문에 저러는 게 뻔했다.
“역시 회주께서는 눈치를 채셨군요. 사실 저는 어렸을 때, 계시를 받았지요. 이 세상을 마계종에게서 구해 내라는.”
내 말에 이사벨라가 부자연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그때부터 저는 이십여 년간 수련에 매진했습니다.”
나로서는 우연히 얻은 두 번째 삶을 지키기 위해 미친 듯이 특성을 쌓은 것이지만.
그간의 행적을 남들이 보면 무언가 대업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이사벨라도 내 뒷조사를 했을 테니 그렇게 여길 테고.
“아….”
“이 영혼은 월신이 아니라, 그분이 남긴 전령 같은 존재입니다. 느껴지실 텐데요?”
처음 삼신검이 빛을 낼 때는 [기원>이 발동할 때처럼 초월적인 힘이라는 느껴졌다.
다만 그로 인해 나타난 영혼에게서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게 월신이 아니라 확신하는 거고.
“아마 시간제한이 있는 것 같으니, 영령과의 대화에 집중하겠습니다.”
“네, 네.”
그렇게 이사벨라를 치워 놓고.
나는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뜬금없이 비밀번호라.
어쨌든 이걸 만든 건 월신이 분명했다.
에르나스의 뿔에서 본 기억 속에서도 아이템을 만드는 존재는 아진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삼신검에 깃든 것은 분명 나에게 전하는 전언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 녀석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겠지.
기억을 떠올려 보면 그 녀석은 미니 게임, 특히 퍼즐 형식으로 만들어진 것을 못 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렇게 말했었지.
“…힌트 좀 줘.”
그렇게 말한 순간.
사방이 하얗게 물들었다.
뭐지,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바로 아진이었다.
월신 델라가 아닌 한국인 김아진.
“***!”
***?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아진이가 아, 하고 탄성을 터트렸다.
“아. 너는 네 이름을 모르겠구나. 우리도 그랬으니까.”
“뭐?”
“***. 못 알아듣겠지?”
“그래. 전혀.”
“***는 네 이름이야. 근데 못 알아들을 거야. 그렇게 되어 있거든.”
“그렇게 되어 있다고?”
“어. 네 이름을 한 번 떠올려 봐.”
뭔 헛소리지?
나는 내 이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어?
“기억 안 나지? 네 이름이 뭔지.”
아진이의 말대로 갑자기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김 씨였나? 아니면 박 씨였나?
“아무튼 여기에 왔다는 건… 역시 우리의 생각이 맞았다는 거겠지. 쿠르투아가 부활한 거지?”
“쿠르투아? 쿠르투아는 너희가 죽였잖아?”
내 말에 아진이가 쓰게 웃었다.
“죽이긴 했는데… 죽은 게 아니더라고. 아, 지금은 쿠르투아라는 이름을 쓰고 있지 않겠구나. 그 시대에는 네가 있으니, 아마 마신은 아직 부활하지 않았을 거야.”
아진이는 나를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마검도 네가 갖고 있구나. 그렇다면 아직 부활 안 한 게 맞겠네.”
“그래. 아직은 마신이 나타나지 않았다. 머지않아 나타날 것 같기는 하지만.”
“다행이네. 아무튼 시간이 별로 없으니, 용건만 간단히 할게.”
아진이는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말했다.
“일단 갑자기 네 이름이 기억 안 나는 건, 영주 시스템을 얻었기 때문이야.”
“아.”
확실히.
베르트 영지를 떠나기 전까지는 내 이름이 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영주 시스템을 얻은 순간 환생이 확정된 거야. 조금 설명하자면… 그전까지는 가환생 같은 거고… 영주 시스템을 얻는 순간 확실히 이 땅에 발을 붙이게 되는 개념이야. 그래서 영주 시스템을 얻으면 전생의 이름을 잊게 되는 거지. 정확히는 영주 시스템이 내 존재를 제외한 전생의 기억을 잊지 않게 해 주는 도구라고 할까?”
“그러니까… 영주 시스템이 영혼과 육체를 이어 주는 접착제 같은 거란 말이냐?”
“응. 역시 ***야. 정리를 잘하네. 나랑 호진이는 같이 태어났으니까 그 사실을 빠르게 알게 됐지만,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모르더라고.”
하긴.
둘은 붙어 있으니까 서로 이름을 부르다가 곧바로 알아챘을 터였다.
전생의 이름으로 불릴 일이 없는 나와 다른 환생자들은 그 사실을 알아채기 힘들고.
“아무튼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겼어.”
“문제가 생겼다고?”
“응. 그 사실을 악마가 알아 버린 거야. 그래서 완전히 난리가 났지.”
“설마… 악마가 환생자 사이에 잠입한 건가?”
“뭐, 비슷해. 너를 제외하면 환생자 대부분이 우리 시대에 태어났거든? 근데 원래는 ‘변경 땅의 영주님’ 시대… 갈라드리엘 왕국이 건국된 이후에 태어나는 게 정상이었어. 우리가 쿠르투아를 죽였으니 너는 아마 제대로 ‘변경 땅의 영주님’ 시대에 태어났을 거야.”
“그래… 맞아. 잠깐, 그렇다는 건.”
“우리를 깨운 게 쿠르투아란 거지. 마인이었던 놈은 마신이 되기 위해 힘을 모으다가 우리의 존재를 알게 됐어. 아, 우리… 그러니까 환생자는 고대의 영혼이야. 전신이 안배한.”
“전신이 안배한 고대의 영혼?”
“너도 죽었잖아? 우리는 죽은 사람이고, 전신이 환생시킨 거야. 정확히는 죽은 자리에 머물고 있던 고대의 영혼을 소환해서 뛰어난 육체에 깃들게 한 거지.”
“머물고 있던 땅? 그렇다면 이 땅이 지구라는 뜻이냐?”
“그래. 갈라드리엘 왕국이 있는 자리가 아마 동해일걸? 엘브리움 남부 해안가는 일본일 거야. 사회과부도 알지?”
사회과부도는 교과서를 말하는 게 아니라,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던 지리덕후 유저의 닉네임이었다.
지리학과 출신이라고 했던가?
‘변경 땅의 영주님’의 각 영지에 어울리는 특산물 공략 글이 꽤 인기를 끌었다.
저 팁 덕에 소규모 영지에서 시작해도 어느 정도 자원을 뽑아낼 수가 있어서 한결 난도가 내려갔고.
“걔가 그러는데 생명체는 유기질이 많은 곳에서 탄생한다고 하더라. 마계에서 넘어온 몬스터 말고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몬스터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엘브리움 남쪽 해안가에 몬스터가 많은 건가?
제국이 인구가 많은 건 중국 쪽이라서 그런 걸 테고.
“어쨌든 우리는 1만 년 전에 환생하는 바람에 위치가 서쪽으로 조금 비껴갔어. 그래서 처음에는 엄청나게 당황했지.
‘변경 땅의 영주님’의 세계관인데… 갈라드리엘 왕국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에스페스 제국에서 태어나서 다행이지, 제국이 없을 때 태어났으면 다들 이게 뭔가 싶었을 거야. 만약 나라라는 개념이 없을 때 태어났으면 아마 영주 시스템도 못 얻었을걸.”
듣고 보니 그럴 법했다.
영주 시스템은 일단 영주가 되어야 얻을 수 있는 거니까.
“아무튼 우리를 환생시킨 게 전신인 거지?”
“그래. 시간이 없으니 요약하자면 전신은 마신을 죽인 순간 언젠가 마신이 또 나타날 거라는 걸 알았어. 하지만 전신은 인간이고, 기껏해야 100년 정도가 수명의 한계였어. 뒤에 올 시대에는 그와 같은 이레귤러가 없을 확률이 높으니까 ‘환생자 계획’을 준비한 거야.”
갑자기 엄청난 정보가 쏟아지니 정리하기가 힘들었다.
“아, 참고로 전신은 마법사야. 물론 체계가 다른 고대의 마법이긴 하지만. 영주 시스템도 고대 마법의 일종인 거지.”
“이름이 전신인데?”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인간인 거지. 화가, 의사, 발명가, 건축가, 과학자, 음악가… 못 하는 게 없는 만능이잖아?”
하긴 그 정도 되는 이레귤러가 아니고서야 인간계에서 마계종을 청소하는 건 불가능할 터였다.
당장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엘라나 같은 이도 있고.
그녀는 칼로스 미켈란에 버금가는 대마법사지만 배틀 메이지라 불릴 정도로 무력이 강하다.
“짜증 나는 ‘환생자 계획’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데, 이걸 설명하려면 시간이 다 소모되니까… 대충 전신의 피를 이은 인간과 그 외의 우수한 유전자를 타고난 인간을 짝지어서 혈통을 최대한 보존하는 개념이야.”
듣자마자 악마 사냥꾼 실험이 떠올랐다.
아마 전신의 수법을 모방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훌륭한 육체를 양산해서 영혼만 갈아 끼우는 거지. 고대 마법을 잘 쓸 수 있는….”
아진이는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
“한 마디로 너나 나나 신생아의 영혼을 쳐 내고 그 자리에 들어앉은 거라고 보면 돼.”
“뭐?”
“전신 그 새끼… 아주 정신병자지? 대의를 위해 작은 것은 희생시켜도 된다는 마인드인 거야.”
분개하던 아진이가 아, 하고 탄성을 터트렸다.
“이것도 궁금하겠구나. 악마나 전신이나 우리랑은 다른 존재야. 호모 사파이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아, 맞아. 그거. 그게 우리라면서? 아무튼 다 방사능으로 죽었거든.”
“…핵전쟁이 난 건가? 아니면 원자력 폭발?”
“난 그런 거 잘 몰라. 너튜브 망하고 나서는 미용사로 살았거든.”
너튜브가 망했다고?
해외 구독자가 많은 먹방 너튜버라 오래 갈 줄 알았는데.
“오래 가긴 했어. 5년쯤 했으니까.”
“5년? 너 몇 살에 죽은 거냐?”
“나? 70살쯤 암으로. 참고로 호진이는 33살에 음주운전을 한 차에 치여 죽었어. 걔는 자기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더라. 기억이 안 난대.”
어쩐지.
내가 아는 고등학생 아진이랑은 뭔가가 다르다 싶었다.
원래 말이 짧긴 했지만, 아무 부담 없이 너, 너 하길래 얘가 왜 이러지 싶기도 했고.
“기분 나쁜 얘기는 그만하고… 아무튼 둘 다 외계인이란 설이랑 돌연변이란 설이 있는데… 사회과부도는 돌연변이일 확률이 높다고 하더라. 우리 세상에 없던 마나란 게 생겼잖아?”
그때, 하얗게 물든 세계가 암전됐다.
“아씨…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빨리 말할게!”
어둠 속에서 아진이가 다급하게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