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002
-네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자연이다.
-네가 존재하기 때문에.
타샤가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자연이다.
-너의 자연은 네가 태어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며.
-또한 너의 죽음 후에 남겨질 죽은 마나 역시도 스스로 존재하는 힘.
-때문에 죽은 마나도 자연이다.
“아.”
타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죽은 마나를 흡수하며 강해지는 다크엘프.
그들이 자연의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를.
죽은 마나도 다크엘프도 존재하므로, 자연이니까.
스스로 존재하는 그들을 자연이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왜냐면 이미 존재함으로써 자연이니까.
-세상의 모든 것은 자연이다.
타샤는 눈을 감았다.
수많은 풍경이 떠올랐다.
그녀가 자라오면서 마주해야 했던 수많은 것들.
그 모든 것들이 자연이라고?
아름다운 숲과 들판.
자유로운 바람들.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인연의 조각들.
그리고, 하얀 별을 비롯해 싸워야 했던 적들.
그 모든 것들도 자연이라고?
문득 타샤는 생각했다.
그들이 자연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나?
그 결과로 선과 악이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
-아이야.
-다크엘프는 자연의 순리에 받아들여진 존재가 아니다.
-다크엘프 역시도 자연일 뿐.
타샤는 눈을 떴다.
나비가 보인다.
그녀는 바람 정령왕이 하는 말을 정답이라고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하얀 별 같은 놈 역시도 자연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잔악한 짓을 한 사냥꾼 놈들도, 그렇고. 타샤는 자신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존재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지만, 그녀가 깨달은 것은 하나 있었다.
‘다크엘프는 자연의 순리에 받아들여진 존재가 아니다.’
‘다크엘프 역시도 자연일 뿐.’
그녀의 입이 열렸다.
“…왜냐면 스스로 존재하니까.”
나는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이다.
-그러하다. 아이야.
나비를 바라보는 타샤의 눈동자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 이 세계의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지 못한다. 억눌리고 통제를 받고 있다.
보라 피 사냥꾼. 아피토유의 드래곤들이 벌인 짓 때문이리라.
나비는 부드럽게 물어왔다.
-그들이 스스로 존재할 수 있게 도와주겠니?
그리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나는 너에게 나의 힘 일부를 빌려주마.
타샤는 심장이 조금씩 뛰었다.
정령왕이 말했다.
자신의 힘 일부를 빌려주겠다고.
계약을 하자는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가진 힘의 전부를 빌려준다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일부만 빌려준다고 했다.
그럼에도 타샤는 심장이 점점 더 거세게 뛰었다.
왜냐면 정령왕의 힘이니까.
그 일부라도 겪어보면, 타샤는 몇 걸음이나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음.’
그럼에도 타샤는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자신이 곧 자연이라는 말을 받아들였음에도.
‘내가 그래도 될까?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런 큰일을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마지막까지 그런 생각이 들려는 찰나.
-주위를 보렴.
정령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타샤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상하게 주변이 조용하다는 것을.
‘분명 나는 싸우는 중이었는데?’
그것도 이단심문관 피터슨과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정신을 빼고 대화를 하고 있었다니!
아무리 정령왕이 나타났다고 해도!
타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쏴아아아—
그때, 바람이 불었다.
“아.”
타샤는 정령왕이 잠시 가려두었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콰아앙!
쾅! 콰아아앙!
거친 굉음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으아아아—!”
피터슨의 외침도 들려왔다.
“왜, 왜-! 왜 저 다크엘프 따위에게 바람이 향하냐고!”
그의 처절한 외침 사이로.
콰아앙!
쾅! 콰앙!
하나의 거대한 녹빛 바람을 막아내고 있는 작은 바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강하거나.
조금 더 딴딴하거나.
혹은 조금 더 유연하거나.
각기 다른 바람들이 어떻게든 이단심문관 피터슨을 막아냈다.
“너희들-”
바람 정령들이 타샤에게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다.
그 이유야 뻔했다.
‘정령왕이 나를 찾아왔으니까.’
정령왕을 만난다는 것.
이는 정령과 함께 싸우는 이들에게 엄청난 기회임을 정령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정령왕과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정령왕을 엄호하기 위해. 또는 정령왕이 타샤에게 말한 부탁을 듣고 타샤가 수락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타샤와 정령왕을 보호하며 군말 없이 몸을 내던져 싸우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때였다.
-타샤!
오랜 친우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녀와 함께 긴 시간을 공유해온 바람 정령. 그 녀석이 말했다.
-거절해도 돼!
정령왕의 말에 반기를 드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나의 친구. 그 녀석의 이어진 말에 타샤는 입을 꾹 다물었다.
-너도 자유로워져도 돼!
-다크엘프니, 엘프니, 순리니, 이딴 거 신경 쓰지 말자!
창을 쥔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나에게 너는 타샤야.
바람 정령, 내 친구에게 자신은-
-너는 너야.
그저 타샤일 뿐. 그 외의 수식어는 필요치 않았다.
“하, 하하-”
타샤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
친구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자유로워져야지.’
나는 나일 뿐.
다른 수식어를 붙이지 말자.
다크엘프니 뭐니, 그딴 거 다 놓고.
나도, 이 바람들처럼 한번 자유롭게 살아보자.
-그래, 그거야!
그리고 친우는 그녀가 말로 내뱉지 않아도 그녀의 마음을 알아채고 응원의 말을 건네왔다.
오랜 시간, 다크엘프들의 평판을 끌어올리려고 애쓴 타샤를 위해 친구가 해줄 수 있는 말이었다.
이제는 자유로워져라.
“하.”
짧은 웃음을 흘린 타샤는 나비를 바라봤다.
바람 정령왕.
이 작은 존재에게서는 거대한 바람이 느껴진다.
마치 거대한 폭풍을 앞에 두고서 이를 마주할 순간을 기다리는 작은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타샤는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녀는 툭 내뱉었다.
“아무래도, 확답은 못 하겠습니다.”
이 세계의 바람을 구하는 일.
“그걸 제가 어떻게 합니까? 깜냥이 안 돼요.”
서슴없이 말이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정령왕님.”
타샤는 지금 이 순간, 어떤 순간에도 제 할 말은 꼭 하고야 마는, 제 성질대로 꼭 행동하고야 마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케일 헤니투스. 그에게 옮은 것일까.
“힘 좀 많이 빌려주세요. 그래야, 드래곤들을 때려잡고 다닐 거 아닙니까?”
“그러면 일단 되는대로 해볼게요.”
아피토유의 바람을 구하겠다.
그런 거창한 확답은 할 수 없다.
그게 타샤의 성격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최선을 다하는 건 자신 있으니까요.”
싸아아—
바람이 불었다.
-좋구나.
나비는 그 말 한마디가 끝이었다.
대신 또다시 바람이 불었다.
쏴아아아—–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바람이었다.
타샤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때, 그녀는 저를 감싸는 바람을 느꼈다.
온화하지도 다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겨울의 찬바람처럼 서늘하고 무심했다.
‘아이야.’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 정령왕이다.
‘흐름을 만들려면 누구보다도 앞에 서야 하지. 선봉장이 되어야 하지.’
길을 만들려면, 누군가는 그 길을 먼저 걸어야 한다.
‘그리고 넌 그런 걸 좋아하는 것 같구나. 그에 어울리는 힘을 주마.’
정령왕의 목소리가 희미해져 갔다.
‘그러니 네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로이 날뛰어보렴.’
그녀를 감싸던 바람이 사라졌다.
타샤는 눈을 떴다.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장창이 사라졌다.
대신 그녀의 손등에서부터 시작해 팔을 타고 올라가는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새겨졌다.
콰아앙, 쾅! 쾅, 콰앙!
다시금 전투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니,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크하하! 드디어 닿았구나!”
타샤는 고개를 들었다.
바람 정령들을 뚫고서 그녀에게 다가오는 피터슨이 보였다.
녹빛 바람을 휘두른 그의 손에는 녹빛 바람으로 된 검이 들려 있었다.
“그 시건방진 눈빛도 이제 끝이다!”
그리고 그 검 끝이 타샤에게로 곧장 향했다.
-타샤!
그녀의 친구가 비명과도 같이 외치며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쏴아아—-
지친 회오리바람이었다.
그리고 타샤의 입이 열렸다.
“괜찮아.”
-응?
친우가 제대로 반응을 하기도 전, 타샤는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스스—-
서늘한 아침에 산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처럼.
차가우면서도 청량한 바람이 그녀의 손에서 뻗어져 나왔다.
-타, 타샤!
바람 정령이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콰아아아—-!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굉음이 울려 퍼졌다.
“크윽!”
그리고 뒤로 물러선 이는 이단심문관 피터슨이었다.
그의 동공이 흔들렸다.
“너-”
타샤.
그녀의 손에 장창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 장창은 검은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녀의 피부처럼, 아름다운 빛깔을 머금은 바람이었다.
“…….”
자신의 새로운 창을 바라보던 타샤는 시선을 돌렸다.
피터슨이 보였다.
그녀는 툭 내뱉었다.
“다 때려잡을 수 있겠는데.”
그 말과 함께, 그녀의 몸이 움직였다.
이를 따라 그녀의 검은 창도 함께 움직였다.
타샤의 귓가에 바람 정령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폭풍이다!
-타샤가 폭풍을 얻었어!
-아니야, 타샤가 폭풍이 된 거야!
바람 정령들은 그녀의 손에 쥔 것을 ‘폭풍’이라고 불렀다.
모든 것을 휩쓸어갈 정도의 거대한 바람.
타샤의 손에 쥔 바람의 정체였다.
***
“인간아, 인간아! 타샤 짱 센 바람 손에 쥐었다!”
라온이 타샤를 보며 놀라서 박수까지 쳤다가 이내 멈추고는 또 다른 의미로 놀라움을 담아 외쳤다.
그 안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
“인간아, 인간아! 똑똑한 로잘린이 왜 저러나?”
크윽!
신음과 함께 로잘린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음.”
이를 보던 케일이 입을 열려는 순간.
“뭐긴, 악착같이 싸우는 중인 거지.”
케일은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케일의 손짓에 라온이 투명화를 풀었고, 그는 다가오는 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에르하벤 님.”
그러나 에르하벤은 그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서 로잘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쯧.”
그러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금 용 할배야! 잘 갔다 왔나? 근데 로잘린 보고 그런 표정 짓지 마라! 로잘린 지금 엄청 열심히 하고 있다! 도와줘야 한다! 인간아, 구하러 가자!”
“구하긴 뭘 구해?”
에르하벤이 퉁명스럽게 대답하더니, 케일과 라온에게 말했다.
“놔둬.”
그러고는 시선을 돌려 눈과 흙먼지를 뒤집어쓴 로잘린을 바라봤다.
“저 녀석은 아마 우리가 도와주면 분에 겨워서 씩씩거릴걸?”
“금 용 할배야, 로잘린이 그런다는 거냐? 로잘린이 그럴 리 없다! 로잘린은 상냥하고 똑똑하다! 그리고 같이 싸우는 걸 안다!”
라온의 말에 에르하벤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금 용 할배가 지금 나 비웃는다! 인간아, 지금 봤나?”
라온이 볼을 빵빵하게 만든 채 외쳤다.
“금 용 할배보다 내가 로잘린 더 잘 안다! 더 오래 봤다! 로잘린 안 그런다!”
“흥.”
고룡은 콧방귀를 뀌었다.
“꼬맹이 너보다 내가 더 잘 알아. 왜냐면-”
그는 잠시 멈칫하고는 뒷말을 삼켰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로잘린은 분명 지금 도움을 주려고 하면 거절할 것이다. 자신은 이를 잘 안다.
‘왜냐면, 내 두 번째 제자니까.’
그리고 첫 번째 인간 제자니까.
에르하벤의 시선이 로잘린만을 응시했다. 그러다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너 왜 그렇게 웃냐?”
“저요? 안 웃었는데요?”
“지금 웃고 있는데?”
케일이 흐뭇한 표정으로 에르하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룡은 이상하게 기분이 찝찝했다.
그러나 이내 시선을 돌렸다.
콰아아앙—-
“크윽!”
로잘린이 다시 한번 땅을 구르고 있었다.
“허억, 허억.”
로잘린은 숨이 가빠왔다.
‘뭐 이렇게 빨라?’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전, 로잘린은 곧장 마법 캐스팅을 먼저 외쳐야 했다.
“실드!”
붉은 실드가 그녀의 앞에 드리운 순간.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붉은 화살이 로잘린의 실드를 덮쳤다.
주홍빛이 섞인, 태양 빛을 머금은 장미를 떠올리게 하는 로잘린의 붉은 마나.
그와 달리 잿빛 구름 아래 드리운 장미를 떠올리게 하는 좀 더 짙고, 낮은 채도의 붉은 마나.
둘은 비슷하면서도 그 빛깔이 전혀 달랐다.
쩌저적-!
“제길!”
로잘린은 또다시 자신의 실드가 부서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에게로 덮쳐져 오는 붉은 화살을 확인했다.
“실드!”
다시 한번 실드를 펼쳤지만.
쾅!
그 실드마저 붉은 화살은 깨부쉈다.
그러고 나서야 화살은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소멸되었다.
로잘린은 흩어지는 자신의 마나와 적의 마나를 느끼며 황급히 마법을 펼쳤다.
우우우–
주변의 마나가 진동하며 그녀에게로 모여들려는 찰나.
“느리다니까.”
무료한 기색이 깃든 음성이 들려옴과 동시에, 로잘린은 열기를 느꼈다.
앞을 바라봤다.
붉은 머리칼의 이단심문관. 어린 외양의 단발 소녀는 이미 거대한 말을 만들어 그 위에 타고 있었다.
그 말을 구성한 것은 붉은 마나로, 그 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에 로잘린은 절로 땀이 맺혔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