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003
로잘린은 기가 막혔다. 헛웃음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지만, 적은 그런 로잘린에게 조금의 틈도 주지 않았다.
콰앙!
말이 땅을 박찬 순간.
“빌어먹을!”
너무 빠르잖아!
저 붉은 단발의 엘프.
마법 캐스팅 속도가 정말 빨랐다.
‘정확히 말하면, 마나를 사용하는 속도가 아주 빨라.’
마법사들끼리 하는 말이 있다.
마나 친화력과 마나 지배력. 그 두 가지는 타고난 재능의 영역이며 같은 마법사끼리도 격차가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라고.
그리고 눈앞의 붉은 단발 엘프는-
‘나보다 두 가지 다 월등하다.’
그녀가 넘볼 수 없을 만큼.
“윽!”
붉은 말이 단박에 로잘린의 코앞까지 당도했다. 그리고 말은 두 앞발을 들어 올렸다.
로잘린의 몸체를 뛰어넘는 거대한 마법 말.
그녀의 몸은 거대한 붉은 말의 그림자에 가려졌다.
고개를 든 로잘린은 제 시야를 가린 거대한 붉은 말을 보며 생각했다.
‘최한, 이 자식!’
드래곤급이라며!
이단심문관의 실력이 드래곤급이란 소린, 그래도 드래곤은 아니란 소리였다.
하지만 눈앞의 엘프는 드래곤‘급’이 아니라, 드래곤이다.
그냥 드래곤 정도의 마나 친화력과 지배력을 지녔다.
로잘린은 결코 넘볼 수 없는, 종족의 차이로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을 이 엘프는 가졌다.
‘세계의 근원을 먹어서겠지.’
이 엘프는 세계의 근원을 먹고 드래곤과 같은 ‘마나 재능’을 가졌다.
‘정령은 쓰지도 않네.’
피식.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게 드래곤과 싸우는 건가?’
찰나의 순간들.
온갖 생각이 로잘린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딱 봐도 가장 강해.’
이 붉은 단발의 엘프는 세 이단심문관 중에서 가장 강했다.
로잘린은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둘러볼 순 없었지만, 대략적인 주변 상황은 파악 중이었다.
다크엘프 타샤와 싸우는 이단심문관. 저자가 가장 약했고.
그다음이 지금 고래족 위티라와 치고받고 싸우는, 아니, 처맞고 있는 엘프였다.
‘…그리고 이 엘프는 그 둘은 범접할 수 없이 강해.’
하.
뭘 믿고 이 엘프를 내가 맡겠다고 한 거지?
로잘린은 자꾸만 웃음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오만했어.’
그녀는 자신이 상황 파악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아니었다.
내심 타샤는 가볍게 이기고, 위티라와는 싸워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로잘린은 그런 자신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의 타샤 씨와는 대등.’
그리고 위티라는-
‘이길 수 없다.’
왜 고래족이 드래곤에 버금가는 강자라고 불리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위티라의 타고난 힘. 그건 드래곤에 버금갔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깨달은 사실인데.
‘진짜 제대로 용과 싸워본 적이 없네.’
곁에 에르하벤과 라온 등등 많은 용이 있었다.
그 덕에 그들의 어깨너머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고, 실력이 상승했다. 더불어 그들이 싸우는 것을 보며 자신의 실전 감각도 갈고닦았다.
그래서 이만큼 하면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야.’
그건 허튼 생각이었어.
제대로 용 정도의 강자와 부딪쳐 보니 알 것 같았다.
다 밀린다.
로잘린은 자신이 마법과 관련하여 그간 쌓아온 모든 것이 눈앞의 존재보다 한 걸음, 아니, 몇 걸음 뒤처지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는 결코 도달할 수조차 없다는 것도.
“…….”
붉은 말 너머 저를 내려다보는 엘프의 눈동자가 보였다.
비웃음도, 분노도, 짜증도 없다.
그저 무료함만이 남아 있었다.
저 엘프는 지금 이 순간이 지루했다.
“하.”
허무한 감정이 로잘린을 덮쳤다.
그리고 붉은 말의 앞발이 로잘린을 덮쳤다.
우우웅-
그때, 이단심문관 링링. 그녀의 양손에 마나가 맴돌았다.
말에 탄 채 로잘린을 내려다보던 그녀는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사아아–
허공에서 만들어진 초승달 모양의 검이 로잘린에게로 향했다.
콰아아앙—-!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붉은 말이 덮친 곳은 땅이 부서지며 그 잔해가 솟구쳐 올랐다.
이미 그 땅은 파괴된 것이 여실해 보였다.
사아아-
그 뒤를 이어 거대한 초승달 검이 공기를 가로질렀다.
흙먼지가 비산하는 그곳을 향해 검이 휘둘러졌다.
“쯧.”
링링이 혀를 찬 순간.
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붉은 초승달 검은 가고자 하는 길이 가로막혔다.
스스—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드러난 곳에는 로잘린이 있었다.
“허억, 허억.”
머리는 이미 산발이었으며, 마법사 로브는 이미 여기저기가 해져서 엉망이었다.
더불어 얼굴과 손은 자잘한 상처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녀의 두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으으으—
귓가를 찌릿하게 만드는 날카로운 소리.
로잘린의 덩치를 상회하는 거대한 초승달 검은 또 다른 붉은 검과 대치 중이었다.
로잘린의 손에 들린 붉은 검이 거대한 초승달 검을 막아서고 있었다.
‘제길!’
거대한 힘을 두 번이나 막아냈음에도 로잘린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기회는 무슨 기회야!’
그녀는 이번 싸움을 일종의 기회라고 여겼다.
첫 번째로 그녀가 드래곤급의 강자를 상대로 어떻게 싸울지 가늠해 볼 기회.
두 번째로, 최한과 케일 공자가 가진 그 아우라를 만들거나 혹은 실마리를 얻을 기회.
마지막으로 그간 마법사들과 준비해 온 새로운 공격 마법을 선보일 기회.
그렇게 여겼다.
여기서 로잘린은 문제가 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내가 다 이길 때의 얘기였어!’
왜 내가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지?
로잘린은 금세 답을 찾았다.
‘이겨왔으니까!’
이렇게까지 허무하게 밀리면서 싸워본 적이 없으니까!
‘왜?’
왜 내가 이렇게까지 밀리는 거지?
왜 내가 저 엘프를 따라잡을 수가 없지?
“으읏!”
로잘린이 입술을 깨물며 검을 휘두른 순간.
쾅!
굉음과 함께 로잘린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초승달 검도 밀려났다.
“또 막았네.”
링링은 한숨을 내쉬며 또다시 손을 휘저었다.
그러나 말투와 달리 그녀의 눈동자에는 이채가 감돌았다. 찰나여서 로잘린은 보지 못했지만.
‘점점 빨라지고 있어.’
눈앞의 인간.
인간치고는 상당한 마법 실력을 지녔음은 처음 그녀가 휘두른 마나를 보자마자 알았다.
그래서 여유 있게 상대하면서도 방심은 하지 않았다.
그것이 겉으로는 빈틈이 많아 보이는 링링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
그런데 지금은 그 방심도 거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죽여야겠어.’
왜냐면 이 여자는 성장하고 있으니까.
그것도 아주 빠르고 가파르게.
‘싸우는 와중에 강해진다라.’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링링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존재를 마주했던 적이 과거에 있었다.
‘…드래곤.’
그래, 용들은 싸우면서 강해졌다.
그러나 이는 알고 보면 강해지는 과정이 아니었다.
‘몰랐던 것이지.’
자신이 얼마나 많은 힘을 품고 있는지 몰랐던 자들이 서서히 상대와 싸우면서 그 힘을 사용할 줄 알게 되는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눈앞의 인간 여자도 그런 과정일까?
‘아니.’
분명 아니다.
그녀의 그릇을 제대로 가늠했던 링링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결과는 단 하나다.
이 여자, 링링의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그에 맞춰 발전하고 있다.
마나 친화력, 지배력 모두 링링보다 부족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천재군.’
이 인간도 천재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해력이 뛰어나.’
특히 마나에 대한, 마법에 대한 이해력이 아주 뛰어나다.
그러니까, 마나에 대해서만큼은 머리가 좋다.
그건 드래곤이라서, 엘프라서, 인간이라서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냥 저 여자만의 재능일 뿐.
‘재밌네.’
씨익.
로잘린을 마주하고 처음으로 링링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는 왠지 모르게 잔악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미소에 담긴 뜻도 잔혹했다.
눈앞의 인간.
아주 위험하다.
그러니 이만 처리하자.
타닥.
그녀는 말에서 내렸다.
스스-
말은 공기 중으로 바람처럼 흩어지듯 사라졌다.
그리고 로잘린이 멈칫했다.
스스스-
또 하나의 초승달 검이 나타났다.
두 개의 검은 서로 엑스 자를 그리며 공중에 떠올랐다.
딱!
링링의 두 손가락이 부딪친 순간, 거대한 검이 낙하했다.
그 방향에 있는 것은 로잘린이었다.
“호오.”
링링의 눈에 이채가 감돈 순간, 로잘린은 두 손으로 각각의 검을 가리켰다.
‘빌어먹을!’
자신이 생각했던 기회가 모두 날아갔다.
허무했다.
이런 대접도 살면서 처음 겪어본다.
‘그래서?’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순 없다.
그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다 무너져도 자존심만큼은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보자고.
“타올라라.”
로잘린이 거친 숨과 함께 내뱉은 말이 끝난 순간.
콰직, 콰직.
로잘린의 양 팔목에 걸려 있던 마정석 팔찌가 부서졌다.
콰직, 콰지직!
그녀의 목에 걸린 마정석 목걸이도 부서졌다.
이제 더 이상 그녀가 소지한 마정석은 없다.
모두 부서져 그녀의 곁에 마나로 머물렀다.
쿠오오오–
공기가 진동했다.
—!
그 소리마저 멈췄을 때, 이미 거대한 초승달 두 개는 로잘린의 몸을 노리고 코앞까지 당도했다.
하지만 그 순간, 붉은 불길이 로잘린의 두 손바닥에서 치솟아 올랐다.
처음에는 작은 실선이었고.
그다음에는 채찍 크기였고.
그다음은 그녀의 몸통만큼 거대한 무언가.
그것은 뱀과 비슷했다.
“가라!”
로잘린이 외쳤고, 두 뱀은 초승달을 향해 움직였다.
콰아아아아———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순간 아무 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로잘린은 제 귀와 코, 입, 눈. 모든 곳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하.
그럼에도 웃음이 먼저 나왔다.
서걱.
한 뱀이 잘렸다.
서걱.
다른 뱀도 잘렸다.
그녀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한 마법이 허무하게 부서졌다.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내가 사용하는 마나와 달리 저 엘프의 지시를 받는 마나의 힘이 더 촘촘하고 강대하다.’
마나가 그녀의 손발처럼 움직였다.
‘저 엘프의 지배력-’
이제야 눈치챘다.
마나 지배력. 그것은 마나 친화력과는 다르다.
용은 태어날 때부터 마나 친화력이 남달랐다. 그렇기에 마법을 배우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쓸 수 있었다.
마나는 그들의 공기 혹은 친구와 같았으니까.
그리고 지배력 또한 타고나서, 타 종족과 마법으로 싸울 때 더 월등한 힘을 보였다.
저 엘프의 마나 지배력-
‘드래곤급이 아니다.’
드래곤 이상이야.
로잘린은 적에게 물어볼 수 없었지만, 왠지 답을 알 것 같았다.
‘저건 타고난 재능이다.’
저 엘프의 마나 지배력은 얻은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비정상적일 정도로 마나 지배력이 뛰어날 리가 없다.
저 이단심문관이 세계의 근원을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알 것 같았다.
로잘린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사아아—
저를 향해 거대한 초승달 검 두 개가 다가오고 있건만. 로잘린은 물을 수밖에 없었다.
“너, 마나 친화력이 필요했구나? 지배는 할 수 있지만, 친화력은 없었지?”
너무 강한 마나 지배력.
그렇게 되면, 마나들은 겁을 먹고 피할 게 뻔했다.
그렇다면 그에 대등하거나 버금가는 친화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야 마나가 기꺼이 상대를 폭군이 아닌 믿을 수 있는 리더 혹은 보스라고 생각하고 따랐을 테니까.
로잘린의 귓가에 링링의 목소리가 닿았다.
“머리가 좋네.”
물음에 대한 답은 아니었지만, 로잘린의 말이 답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링링은 말했다.
“보답으로, 내 일부를 보여줄게.”
그 말을 끝으로 로잘린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
내 주위를 감싼 마나.
용과 같이 공기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친구처럼은 느껴졌다.
그런데-
‘내 편이 없다.’
내 주위를 감싼 마나들이 나에게서 돌아섰다.
나를 따르지 않는다.
나보다 더 강하고 친숙한 저 엘프를 따랐다.
‘…….’
로잘린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자신이 세상에서 외톨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로잘린은 지금 마법을 쓸 수 없다.
따르는 마나가 없으니까.
마정석은 이미 없지만, 그걸 부수고 나온 마나도 저 엘프를 따랐을 것이다.
허무함을 넘어서는 박탈감이 밀려왔다.
“…….”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초승달 두 개가 보였다.
이를 피해 도망칠 방법은 맨몸으로, 자신의 다리로 뛰거나 피하는 것뿐.
하지만 로잘린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나가 자신을 외면하는 상황.
이건 그녀가 살면서 겪었던 어느 상황보다도 충격적이었다.
그녀가 왕의 자리를 버릴 수 있었던 이유, 가족과 집, 고향을 떠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그녀가 마탑주가 되고 싶은 꿈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꿈의 가장 든든한 지원자는 무엇도 아닌 마법, 그리고 마나였다.
그 존재가 로잘린과 함께했기에 그녀는 늘 당당할 수 있었고, 두려울 것이 없었다.
‘…….’
그러나 지금 무서워졌다.
이 세계의 기운이 억제되어 드래곤 피어나 케일의 아우라 영역 안에서 마법을 쓸 수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두려움이 밀려왔다.
마나가 없는 것과.
마나가 나를 외면하는 것은 달랐다.
이건, 겪어보니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
로잘린은 가만히 서서 초승달을 바라봤다.
링링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고는 손을 휘저었다.
거대한 초승달 두 개가 로잘린의 위에 드리워졌다.
그녀는 초승달이 만든 그림자에 가려졌다.
“베어라.”
두 개의 초승달이 땅으로 내리그어졌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링링의 눈이 커졌다.
피어오르는 먼지구름 사이.
“야.”
로잘린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입을 열었다.
“…어.”
두 개의 초승달 검을 막아선 이들이 있었다.
첫 번째 초승달을 막아선 이는 로잘린에게 다시 말했다.
“괜찮아?”
최한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초승달을 막아선 이가 삐딱한 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