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01
100화.
포옥. 폭. 폭. 연달아 솜 더미에 일행이 파묻혔다가 벌떡 일어나고를 반복했다. 그들은 일어서면 다 같은 반응을 보였다.
“와.”
냐아아옹!
“이야.”
감탄이 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지하 도시. 들었을 때는 어둡고 침침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도시는 반짝이고 있었다.
닿을 수 없을 듯 아주 높은 곳에 자리한 공동 천장에는 반짝이는 빛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쪽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그 시냇물 양옆으로 밭과 논이 있었다.
나무들도 높이 자라나 숲을 이루는 곳도 있었다.
“어떻게 이런 곳이.”
마법사 로잘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다크엘프에 대한 선입견은 없는 편이었지만, 처음 죽음의 땅에 숨겨진 도시가 있다고 했을 때 쉽게 수긍했다.
다크엘프는 죽은 것들이 존재하는 곳에서 힘을 얻는다고 들었으니까. 자연계 마나를 사용하는 로잘린은 태생적으로 죽은 마나가 꺼림칙했다.
그때 그녀의 귓가로 케이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죽음도 자연이네.”
그녀는 케이지를 바라봤다. 케이지는 이 광경을 당연시 여기는 듯했다. 그리고 케일에게도 당연했다.
“정령인가?”
케일은 타샤를 바라봤다.
“자연의 힘이죠.”
정령의 힘이란 소리였다.
죽은 마나로 힘을 얻지만, 다크엘프는 자연계의 존재였다. 어둠의 종족이자 엘프족. 그들은 정령을 다룰 수 있으며 죽은 마나를 사용할 수 있었다.
타샤는 멀리서 케일 일행 쪽으로 다가오는 다크엘프들에게 두 팔을 벌렸다.
“오랜만!”
시원한 미소와 함께 그녀가 가볍게 건넨 말에, 다가오던 다크엘프 세 명이 뛰어왔다.
“이 자식!”
“5년 동안 편지 한 통도 없어놓고, 뭐 오랜만?”
두 명이 타샤를 심하게 타박했다. 다른 한 명은 케일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일단 숙소로 먼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숀, 오랜만이다!”
“따라오시면 됩니다.”
숀이라는 자는 타샤가 다가와 인사를 했지만 못 들은 듯했다.
“에이, 숀. 삐졌어?”
“짐이 있으신가요? 짐이 있다면 저희가 운반하도록 하죠.”
아니, 못 들은 척이 아니라 무시였다. 케일은 피식 웃으며 숀의 말에 답했다.
“짐은 없습니다. 안내 부탁드리죠.”
숀은 케일을 빤히 바라봤다. 부드럽게 미소 짓는 케일이 보였다.
“…귀족이라 들었는데 말씀 편히 하셔도 됩니다.”
“그래. 그러도록 하지.”
거절하는 법이 없는 케일이었다.
케일은 일행과 다크엘프 세 명과 함께 다크엘프의 터전, 죽음의 도시로 들어섰다.
도시 안으로 들어서자 조금 더 제대로 보였다. 거대한 지하 공동에 자연이 자리해 있어서 놀라웠던 것과 또 달랐다.
“웬만한 도시들보다 발달했죠?”
타샤는 자랑스럽다는 듯 케일에게 물었다.
도시는 상당히 문물이 발달해 있었다. 로운 왕국의 웬만한 대도시들 수준이었다.
하지만 케일은 그에 대해 답하지 않았다. 그는 도시 안의 다른 광경이 먼저 보였다.
“사람도 있네.”
타샤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랬군.’
도시 안에 들어서자 다크엘프들이 보였다. 그런데 사람들도 조금 보였다. 10명 중에 1명은 사람이었다.
5대 불가사의 중 하나. 죽음의 땅.
그곳으로 간 사람은 어느 누구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그들의 죽음으로 피같이 붉은 모래알들이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곳. 어쩌면 네크로맨서의 저주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으스스한 이야기가 존재하는 땅.
케일은 입을 열었다.
“사막에 도망간 이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어.”
그의 말에 곁에 호위 겸 안내하던 다크엘프들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타샤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죽게 둘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는 도망 다녀온 역사를 지닌 다크엘프니까요.”
도망 다녀봤기에, 살기 위해 이 죽음의 땅이라 불리는 곳으로 도망쳐 온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도망쳐야 했던 간절함. 다크엘프는 이를 알고 있었다.
케일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대단하군.”
대단한 일이었다.
딱히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다크엘프는 그들이 살아가는 장소가 죽음과 연관이 되어 있어 인간에게 지탄받으며 도망치던 종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을 포용할 줄 알았다.
확실히 다크엘프는 인간과 섞이기 싫어하는 엘프와 달랐다.
그럼에도 이런 점을 보면 그들은 엘프다웠다. 자연이, 정령이 그들을 버리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자연이 다크엘프를 사랑하는 이유를 알겠어.”
자연친화적인 엘프와 다른 의미로 자연은 제 품에 다크엘프의 자리를 내어주었다.
케일은 지하 공동에서 보이는 인간들의 표정이 밝은 것을 놓치지 않았다.
“뭐, 이것도 모두 이 땅의 특성 덕이죠.”
케일은 숀이라는 다크엘프를 바라봤다. 그는 살짝 안경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의 시선이 잠깐 마법사 로잘린에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이곳은 죽음의 땅입니다. 저희도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이 사막에는 죽음의 기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 년에 한두 번 저 사막 모래들 사이로 소량의 죽은 마나가 피어오릅니다.”
케일은 미친 신관 케이지에게 눈짓했다. 그녀는 케일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 사막에는 죽음의 기운이 가득해요. 하지만 악하지는 않아요. 자연의 순리대로 떠나야 할 죽음의 기운이 다만 머물러 있을 뿐이에요.”
“죽음의 신 신관님이신가 봅니다.”
“파문당했어요.”
숀은 말을 걸었다가 해맑은 케이지의 대답에 멈칫했다.
반면 케일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감상을 내뱉었다.
“어쩌면 죽음의 신이 내려준 땅일지도 모르겠네. 죽은 마나가 필요한 어둠의 종족이라고 해서 꼭 악한 이만 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
케일은 저를 바라보는 다크엘프들에게 말을 이었다.
“인간 중에도 미친놈이나 악한 놈이 많거든. 비슷하지 않겠어?”
“맞습니다. 도련님.”
론이 동의했다. 숀은 이를 힐끗 보았다가 론의 인자한 척하는 미소에 어색한 미소를 그려 보였다. 타샤는 그들을 모두 바라보다가 아름다운 결론을 내었다.
“여하튼, 살기 좋은 도시죠.”
정답이었다.
케일은 숙소에 도착했다. 꽤 좋은 여관이었다.
“여기에 손님이 머무는 건 처음입니다.”
“그래?”
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다크엘프 마을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만든 손님 전용 여관인데, 못 찾은 상태거든요. 그리고 여기로 오는 사람들은 여관에 머물 상태가 아닌지라.”
“어떤 상태인데요?”
최한이 무심코 내뱉은 물음에 숀은 담담히 답했다.
“영양실조 상태나 탈수 상태, 혹은 다크엘프와 죽음의 땅을 마주한 공포 상태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바로 병동으로 옮기죠.”
숀은 여관 주인에게 다가갔다.
“첫 손님 오셨다.”
“오, 형님. 드디어 손님분을 모셔보네요.”
여관 주인은 인간이었다. 7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백발의 노인은 박수까지 치며 케일 일행을 반겼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손님. 제가 이래 봬도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산 인간입니다. 제가 지리를 다크엘프 형님들만큼 잘 알지요!”
타샤가 일행에게 속삭였다.
“참고로 숀은 저와 동갑입니다.”
케일은 여관 주인과 악수를 나누었다.
“머무는 동안 잘 부탁하네, 주인장.”
“암요. 생명의 도시에 온 걸 환영합니다.”
“생명의 도시?”
의아해하는 케일에게 노인은 밝게 웃으며 답했다.
“네. 저희는 그리 부릅니다.”
“이 이름이 더 어울리네.”
케일은 짧게 답하며 숀에게 물었다.
“숙소를 알았으니 바로 시장을 봤으면 하는데.”
“안 그래도 기다리십니다.”
***
시장은 3층짜리 건물에 머물고 있었다.
타샤와 숀, 둘만이 그곳에서 케일과 최한을 안내했다. 나머지 일행은 숙소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물론 투명화한 라온이 따라오고 있었다.
“이 도시의 행정을 담당하는 관리들이 일하는 건물입니다.”
관료도 관직도 없이 자연 속에서 도사들처럼 살아가는 엘프와는 확실히 달랐다. 상당히 인간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다크엘프들이었다.
관리로 일하는 이들 중에서도 다크엘프와 함께 인간들이 몇 보였다. 대부분 젊었다.
타샤는 케일의 시선이 닿는 곳을 눈치챘다.
“여기에 온 인간들은 글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죠. 글보다는 농사나 기술을 원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어요. 하지만 이 땅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다 어린 다크엘프와 같은 교육 과정을 밟아요.”
케일은 서대륙에서 가장 지구와 비슷한 곳이 어디일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여기군.’
그나마 이 지하 도시가 가장 지구와 비슷했다.
권력의 세상에서 도망친 자들이 모여서 그럴 수도 있었다.
“시장실입니다.”
평범한 나무 문이 보였다. 숀은 그 문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희 도시는 보통 가장 연장자분이 시장을 역임하십니다. 현재 계신 시장님은 521세로서.”
그때였다.
달칵, 달칵, 달칵.
급하게 문고리 돌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내,
벌컥!
시장실 문이 다급하게 열렸다.
“시, 시장님?”
까만 피부와 달리 하얗게 센 수염과 멋들어지게 정리한 흰 머리칼이 돋보이는 늙은 다크엘프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 깔끔한 옷차림에 멋들어진 수염, 머리칼과 달리 다크엘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 이 기운은!”
숀의 얼굴에 당황이 서렸다. 그는 케일 일행을 힐끗 보다가 시장에게 다가갔다.
“시장님, 왜 그러십니까?”
타샤도 시장에게 다가갔다. 숀과는 그 태도가 조금 달랐다.
“할아버지, 왜 그래요?”
할아버지? 그 단어에 케일은 잠시 멈칫했다. 시장이랑 친해서 할아버지라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친족 관계일까?
친족 관계라면, 왕세자와 꽤 사이가 깊어 보이는 이 다크엘프 도시가 이해되었다.
“손녀가 오랜만에 왔는데! 왜 그렇게 놀라신 얼굴이에요?”
역시 타샤는 손녀였다.
‘…역시 왕세자 정도 되면 그 배경이 약할 리가 없지.’
알고 보니 알베르 왕세자 뒷배경도 만만치 않았다. 아니, 엄청났다. 케일은 황당한 표정으로 타샤와 시장을 바라봤다. 그때 시장과 케일의 시선이 부딪쳤다.
시장은 아까부터 케일만 바라본 듯했다.
시장이 입을 열었다.
“호, 혹시.”
그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거 왠지 감이 안 좋은데?
늙은 다크엘프는 떨리는 손으로 손수건을 꺼내어 제 이마를 닦으며 연신 침을 삼켜댔다.
“그, 죽은 드래곤 마나를 갖고 있었다고 하시던데.”
이상하다.
케일은 아무리 귀족이라도 도시의 수장급 인사에게 존댓말을 들을 위치는 아니었다.
“그 혹시나 공자님이 드래곤-”
숀과 타샤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최한의 동공이 흔들렸다.
“아닙니다.”
케일은 단호히 말했다.
“저 용 아닙니다.”
그 태연함과 황당함까지 담긴 단호함에 숀과 타샤가 그러면 그렇지, 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시장은 달랐다.
“분명, 드래곤 님의 기운이 느껴집니다만! 공자님 근처에서 드래곤 님의 힘이 느껴집니다. 그 자연을 관장하는 힘이요!”
역시 짬밥은 어디 가는 게 아닌 듯했다.
-저 늙은 다크엘프, 꽤 감이 좋다.
투명화한 채로 케일의 등 뒤에 떠 있던 라온이 흥미로워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사실을 명확히 말해주었다.
“전 드래곤 아닙니다.”
“…이상하군요.”
다크엘프는 이제야 조금 진정된 듯했다. 그는 연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제가 예전에 드래곤 님을 한 번 뵌 적이 있었는데. 그때와 같은 기운입니다. 그때 드래곤 님을 처음 뵈었던 제 정령도 그때와 비슷하다고 말하는데.”
이번엔 케일이 멈칫했다. 뭘 봤다고? 그것도 정령이 같이 봤다고? 사기 치기 제일 어려운 존재가 정령이었다.
-뭐? 용?
라온이 급격히 관심을 보였다.
521세. 충분히 살면서 용 한 번쯤 봤을 법한 나이였다.
그때였다.
“시장님, 부르셔서 왔습니다.”
케일은 순간 네비게이션 목소리인 줄 알았다. 등 뒤로 차분하지만 묘하게 기계 음성 같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대기하고 있을까요?”
케일은 뒤돌아섰다. 검은 로브로 발끝부터 머리까지 모두 칭칭 휘감겨 보이지 않는 사람이 서 있었다.
그 순간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인간인데 왜 어둠 속성이지? 저 인간은 완전한 인간인데?
역시.
백 퍼센트 인간이 어둠의 속성을 가지는 방법은 몇 없었다.
촉이 맞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결할 것이 있었다.
“정말, 정말로 드래곤 님이 아니십니까?”
“네.”
케일은 진심으로 못 믿겠다는, 무엇보다도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로 쳐다보는 시장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케일은 시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 뒤를 일행이 어정쩡하게 따라왔다.
그는 최한을 쳐다봤고 시선을 받은 최한은 문을 닫았다.
조용한 시장실 안에서 케일은 입을 열었다.
“라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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