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018
하지만 마법사는 멈칫했다.
“왜 그러십니까?”
곁에 있던 수하가 반응했다.
“뭔가 이상한데.”
마법사가 중얼거린 순간이었다.
쏴아아-
바람이 일었다.
엘프가 난색을 표했다.
“죄송합니다. 오늘따라 정령이 장난을 쳐서-”
“아, 괜찮습니다.”
마법사는 오히려 엘프의 대답에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정령 때문이었군.’
왠지 모를 꺼림칙함이 느껴져서 신경이 곤두섰는데, 정령의 장난이라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너무 예민했어.’
마법사는 미안해하는 엘프 기사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이내 수하들을 이끌고 바삐 걸음을 옮겼다.
데앵- 뎅-
종이 여전히 울렸지만, 곧 끝날 시간이었다.
쏴아아아–
바람이 다시 한 바퀴 돌았고, 엘프는 잠시 후 입을 열었다.
“폐문.”
끼이이이— 쿵!
문이 닫혔다.
이제 이 문은 마법사들이 돌아와야 다시 열릴 터.
데앵-
때마침, 종소리도 끝이 났다.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이었다.
***
-인간아, 모두한테 전했다!
투명화한 케일은 제 등에 닿는 통통한 앞발을 느꼈다.
-라크와 위샤는 1층!
라온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총 3층으로 이루어졌다고 알려진 지하 공간.
-최한이랑 코튼은 2층이다! 물론 라크랑 최한한테 신호탄 보냈다! 위험하면 언제든 도망가라고 했다!
케일은 제 다리에 닿는 보드라운 털의 감촉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이랑 같이 간다!
평균 10살은 케일과 함께 지하 3층으로 간다.
그는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가자.”
휘이이-
작은 바람이 케일의 발끝에 맴돌았다.
고대의 힘이었다.
타닥.
그의 발이 가볍게 땅을 박차는 것을 시작으로 케일은 빠르게 나아갔다.
지하 공간은 어둡지 않았다.
음습한 일을 꾸미는 곳이라, 동굴과 같이 어둡고 거친 공간일 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신전 같군.’
아니지.
‘연구소인가?’
신전과 연구소가 합쳐진 듯한. 순백의 공간.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복도와 계단.
그리고 다양한 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더불어 그 공간의 넓이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내성 외성, 다 합친 크기보다 거대한 지하라.’
이 지하 공간 자체가 하나의 도시였다.
마치 다크엘프들의 지하도시처럼.
물론 여기는 삭막했다.
생명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인간, 조심해라!
케일은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아래로만 향했다.
시간이 없었으니까.
그가 조심할 것은 또 다른 드래곤뿐이었다.
“응?”
이론 마법사로 추정되는 이가 의아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이미 케일은 그를 지나쳐 계단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케일과 평균 10살은 주변의 시선을 피하며 빠르게 아래로 향했다.
다행히 이곳에는 각 층마다 지키는 문지기가 없었다.
오히려 너무 감시 인원이 없었다.
각자 일을 하느라 바쁜 이들만 보일 뿐.
‘이상하네.’
피 냄새도 나지 않았다.
누군가의 고함도, 신음도 들리지 않았다.
신전처럼.
경건하고 조용한 분위기만 흐를 뿐.
더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밝았다.
‘…찝찝한데.’
꺼림칙하다.
분명 수인족들이 이곳으로 끌려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리고 최한이 들은-
‘검은 절망과 비슷한 울음소리들은-’
누군가의 고통과 절망이 담긴 것일 터.
-…인간아.
그리고 마침내, 지하 3층으로 발을 내디딘 케일은 걸음을 멈췄다.
그는 정면을 바라봤다.
거대한 유리 벽이 보였다.
그 너머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3층에는 어떠한 시설도 없었다.
다만 유리 벽 너머 거대한 공동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공동의 중앙.
거대한 구멍이 존재했다.
순백의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시꺼먼 구덩이.
그 구덩이 앞에 서 있는 한 존재가 보였다.
-누가 있다!
드래곤인가?
-아직 안 들켰다.
다만 유리 벽 너머의 존재는 투명화한 우리를 알아채지 못했다.
‘하긴 라온의 마법은 이제 에르하벤 님에 근접하니까.’
웬만하면 못 알아채야 맞다.
더불어 이곳의 기운에 영향도 받지 않는 라온이지 않던가.
그러나 케일은 쉬이 움직이지 못했다.
-케일.
짠돌이.
파괴하는 불이 반응했다.
-느껴지나?
죽은 마나.
그것에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고대의 힘.
-지금 저 구덩이에서 절망이 느껴진다.
멀리 있는 케일은 구덩이 안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느껴졌다.
케일은 제 팔을 매만졌다.
손등에 소름이 돋아 있었다.
-검은 절망. 그걸 넘어선 무언가다. 분명해!
검은 절망.
과거 모고르 제국의 아딘 황태자가 연금술 종탑과 함께 만들었던 끔찍한 액체.
죽은 마나에 죽은 자들의 절망을 담아내었던 검은 액체.
그것보다 더 끔찍한 무언가가 저 구덩이 안에 자리하고 있다.
‘제길.’
예감이, 너무, 너무 안 좋다.
-여기 다 태워야겠는데?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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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일, 일단 안에 들어가서 저 구덩이 안을 살펴봐야 할 것 같구나.
파괴하는 불, 짠돌이의 말이 맞다.
‘하지만 안으로 진입하는 게 쉬울 것 같지는 않은데.’
유리로 된 입구 문이 케일의 시야에 담겼다.
‘저걸 여는 순간, 곧바로 저 안에 있는 사람한테 들킬 거야.’
그때,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아, 드래곤인 거 같다!
역시, 사람이 아니고 드래곤이었다.
‘드래곤이면 무조건 들킨다.’
문을 여는 기척을 조금이라도 보이는 순간, 저 드래곤은 외부인의 침입을 눈치챌 것이다.
‘으음.’
일단 문 안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구덩이를 살펴보는 건 가능할 것 같았다.
‘엄청 크니까.’
구덩이의 크기는 웬만한 집을 몇 채 넣어도 될 만큼 둘레가 컸다.
드래곤이 서 있지 않은 반대 방향으로 향해서 구덩이 안을 들여다보면 충분할 터.
-인간!
라온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케일은 멈칫했다.
-누가 온다!
라온의 말대로, 케일이 들어왔던 계단 쪽에서 누군가 내려왔다.
‘마법사군.’
꽤 나이가 든 마법사였다.
그는 홀로 들어섰는데, 케일은 대번에 그가 누군지 알아챌 수 있었다.
-인간아! 저 마법사는 마나를 다룰 줄 안다!
라이언의 레어에 머무는 여러 명의 마법사 중 마나를 실질적으로 다룰 줄 아는 자는 단 2명이었다.
그중 한 명이 조금 전에 지하로 들어오며 마주쳤던 이였고,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이는 나머지 마법사란 소리였다.
‘음.’
수하들을 여러 명 이끌고 다녔던 조금 전의 마법사와 달리, 그는 홀로 거침없이 움직였다.
‘오.’
마법사는 문 앞으로 갔다.
우웅-
그의 손에서 마나가 피어올랐고, 이를 유리문에 댄 순간 마법진이 피어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법사가 마나로 마법진을 그렸다.
-인간아! 나 저 마법진 외웠다!
역시 영리한 7살 용이다.
물론 케일도 기록해두었다.
삐빅!
가벼운 신호음과 함께 유리문에서 마법진이 사라졌고, 그제야 마법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고는 유리문을 밀었다.
-인간아, 여기 마법 양식을 내가 다는 모르지만, 저 마법진은 문을 여는 장치다!
끼이익-
문이 천천히 열렸고, 노인은 문고리에서 손을 놓았다.
그럼에도 문은 멈추지 않고 완전히 열렸다.
이를 본 노인 마법사는 여유롭게 안으로 들어섰다.
-지금이다!
-지금!
7살 용과 짠돌이의 말을 들으며 케일은 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노인이 움직이는 방향을 바라봤다.
그는 드래곤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케일은 그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나도 같이 간다!
물론 케일을 직접 투명화시킨 라온은 그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의 뒤를 잘 따라왔다.
-인간이 제일 느리다!
당연히 온과 홍은 이미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섰다.
-방음 마법 해둔다!
더불어 적절하게 인기척도 나지 않게, 방비를 해두는 똑똑한 7살 용이었다.
왠지 평균 10살에게 뒤처지는 기분이 드는 케일이었다.
‘!’
그 순간이었다.
우우웅—
공기가 진동했다.
케일은 진동이 시작된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심상치 않은데.’
드래곤이 고개를 돌려 노인 마법사를 바라봤다.
-우린 안 들킨 것 같다!
라온의 말대로 케일 쪽은 들키지 않았다.
-그리고 인간아, 저 드래곤은 10신 드래곤만큼 강하지 않다!
라온이 만난 10신 드래곤은 총 2명이었다. 켄달과 시스코. 그들보다 약하다면 일단 안심이었다.
-그리고 저 드래곤은 세계의 근원 힘을 안 먹은 거 같다!
오.
-저 드래곤이 피워올리는 마나에서 그 느낌이 안 난다! 나 이제 두 신 드래곤들 겪으면서 세계의 근원 구분할 줄 안다! 그리고 세계의 근원도 대충 안다!
늘 느끼지만, 라온은 상대의 기운을 파악하는 걸 참 잘한다.
알베르 크로스만 왕세자의 비밀스러움도 단번에 눈치채지 않았던가.
은근히 눈치가 없는 듯 눈치가 있는 용이었다.
“르타오 님을 뵙습니다.”
노인은 드래곤의 마나에도 굴하지 않고 예의 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쯧.”
드래곤, 르타오는 그 시선을 외면하며 고개를 돌렸다.
‘음.’
케일은 구덩이 안을 보기 전에 일단 멈춰 서서 그들의 대화를 들을까 고민했다.
이대로 움직이면 거리가 멀어져서 더 듣기 힘들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혹여 라온을 저들 가까이로 데려갈 순 없다.’
우우웅-
노인 마법사마저 마나를 피워올리며, 드래곤과 마법사 간의 마나가 잠식한 주변에 라온을 보냈다가 혹여나 위험에 빠지면 곤란했다.
‘그렇다고 내가 갈 수도 없고.’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지.’
마나의 영향을 받지도 않고, 은근슬쩍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존재.
케일은 품에서 황금색 팽이채를 꺼내 들었다.
그는 아까부터 자신을 졸졸 따라오는 녀석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
‘…해방……!’
그 녀석이다. 바람 정령.
케일은 방음 마법이 되었기에 입을 열었다.
“너 혹시, 저기 이야기 들을 수 있어?”
능력이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자유……!’
잠시 고민하는 듯 침묵하던 바람 정령이 입을 열었다.
‘가능하다.’
응?
갑자기 침착하게 말한다.
‘내가 듣고 너에게 전달을 해도 되지만, 그러면 복잡할 테니. 내가 바람에 실어 그들의 대화를 너에게 전달하겠다.’
아니, 너무 멀쩡하게 말하는데?
“…드래곤도 근처에 있는데, 할 수 있겠어?”
약간 이상한 바람 정령인 줄 알았는데.
‘나, 최상급 정령. 자유다. 이름은 격을 나타내는 법. 나는 정령왕님께 이름을 받은 위대한 바람 정령. 걱정 마라.’
“어, 어. 그래. 그럼 부탁한다.”
…바람 정령왕한테 이름을 받았다고?
나 조금 전에 바람 정령왕 이름 들먹이면서 협박했는데? 괜찮으려나?
그때,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에게 정령왕님의 향기가 묻어있다. 너의 부탁을 최우선적으로 수행한다.’
음. 타샤의 근처에 있었던 덕인가?
다크엘프 타샤를 떠올리던 케일은 그냥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 부탁해.”
살랑.
꽤 자라, 케일의 볼에 닿는 붉은 머리칼 몇 개가 흔들거렸다.
아주 미세한 바람이 케일을 지나쳤다.
바람 정령이 움직였으리라.
‘어쩐지, 아까 문 앞을 지키던 정령이 강하다고 들었는데. 단박에 끌고 오더라.’
대단하지만 조금 미친 정령, 자유.
그에게 일을 맡긴 케일은 곧장 구덩이로 향했다.
-인간아, 잘 해결됐나?
“어.”
-그런데 괜찮나?
케일은 라온이 무엇을 말하는지 명확히 느끼고 있었다.
그는 손등을 매만졌다. 아직도 소름이 그대로였다.
검은 절망과 비슷한 무언가.
구덩이에서 느껴지는 것에 가까워질수록, 소름이 돋았고 속이 좋지 못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온몸이 무겁게 짓눌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터질 것 같단 말이지.’
이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찌그러지는 게 아니라.
반대로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터질 것 같았다.
마치 터지기 일보 직전의 화산처럼.
‘화산……?’
문득 떠오른 생각에 케일이 멈칫했을 때.
-태우고 싶다……!
짠돌이의 목소리가 들렸고.
“진정하자.”
케일은 짠돌이를 진정시키며 투명화해서 보이지 않는 라온에게 말했다.
“라온, 너는 힘들면 거기 있어. 온, 홍. 너희도.”
-인간아, 나는 괜찮다!
냐아아옹!
“괜찮은데.”
평균 10살의 태연한 대답이 들려왔다.
스윽.
케일은 제 등 뒤에 닿는 촉감을 느꼈다.
-난 진짜 괜찮다!
라온이 케일의 등 뒤에 찰싹 달라붙었다.
-히히.
그러면서 웃었다.
‘허이구.’
케일은 답지 않게 라온이 어리광을 부리는 모양새에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진짜 괜찮나 보네.’
냐아옹!
홍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뒤이어 홍이 케일의 다리에 몸을 비벼댔다.
케일은 투박하게 그 등을 쓰다듬었다.
‘진짜 괜찮나 보네?’
홍도 멀쩡하다.
남은 다리에 닿는 촉감에 손을 뻗었다. 온도 멀쩡했다.
‘…나만 그런 건가?’
그러고 보니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반응을 보인 사람은 케일뿐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파괴하는 불도.
평균 10살과 바람 정령은 태연했다.
“일단 가자.”
케일은 평균 10살이 멀쩡하면 괜찮은 것이라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케일의 손등에 돋은 소름도 가라앉아있었다.
물론 압박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케일은 소름 끼치는 감각이 사그라든 것도 모른 채 평균 10살의 온기를 느끼며 제법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역시 우리 인간은 느리다!
라온의 평가는 무시한 채.
휘이-
그때, 귓가에 작은 바람이 맴돈 순간.
‘자유!’
정령의 외침 뒤에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여기 올 때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