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02
101화.
라온?
다크엘프들의 얼굴 위로 의문이 나타났다. 꽤 진지한 얼굴로 최한에게 문을 닫게 하고는 내뱉은 말이 익숙하지 않은 단어여서였다.
“나 나타나도 되는 건가?”
다크엘프 숀은 흠칫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 근처였다.
“허, 허허.”
시장의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숀은 헛웃음을 연신 흘리며 손수건으로 제 손바닥의 땀을 닦아내는 시장을 볼 수 있었다. 정말인가? 정말, 용이야?
그때 그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나타났다.”
케일의 등 뒤.
“오, 세상에!”
타샤는 두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안 나오고 뭐 해?”
케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크엘프들의 시선은 케일의 등 뒤로 빼꼼 튀어나온 얼굴에 박혀 있었다.
라온은 케일의 등 뒤에서 얼굴만 슬쩍 내밀었다. 케일은 한숨을 내쉬며 옆으로 한 걸음 옮겼다. 그러자 서서히 검은 용 라온의 모습이 모두 드러났다.
“아니, 이게-”
타샤는 너무 놀라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숀을 바라봤다. 제 친구에게 자신이 지금 제대로 보는 건지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숀은 이미 눈만 뜨고 있지, 굳어버렸다. 말을 걸어도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에 타샤는 자신의 할아버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크엘프 시장은 침착했다. 제일 놀랄 것 같았던 이는 연신 땀을 흘려서 그렇지 침착했다.
“할아버지-”
타샤는 입을 열려다 말고 멈췄다.
다크엘프 시장은 경건한 얼굴로 라온에게 말했다.
“이, 두 다리로 선 채로 드래곤 님을 뵐 수는 없습니다.”
노인은 침착하게 무릎을 꿇으려고 했다. 케일은 그 난장판에 한숨을 내쉬었다.
엘프들이 드래곤에 환장하는 건 알았지만, 다크엘프들도 저럴 줄 몰랐다.
‘그렇다고 정령이 봤다는데,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자연 속성의 정령은 기운에 민감했고 정확했다.
다크엘프 시장의 정령이 드래곤을 봤고 케일 근처에서 드래곤 기운을 확신했다면, 다크엘프 시장은 케일이 용이 없다고 해도 평생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정령은 한 번 감지한 기운은 복사를 하듯 기억했다. 그것도 드래곤의 기운이니, 말 다한 셈이었다.
케일은 문가를 쳐다봤다. 최한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수문장처럼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검은 로브를 써서 무슨 표정일지, 어떤 사람일지 알 수 없는 사람이 허수아비처럼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때였다. 라온이 다크엘프 세 명의 앞에 섰다.
뭐 하려고 저러지? 케일은 의아한 얼굴로 라온을 쳐다봤다.
“나는 위대한 라온 미르다!”
어이구야. 케일은 라온이 어깨를 쫙 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기소개를 알아서 잘 했다.
“나는 올해로 위대한 4살이다!”
굳이 나이까지 말할 필요가 있을까.
“오오, 그러시군요!”
다크엘프 시장은 벌써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라온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경이롭다는 듯 반응했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케일은 머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라온의 자기소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케일 헤니투스가 약해서 돌보고 있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케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계속 구구절절 자기소개를 할 것 같은 라온에게로 다가가 머리를 툭툭 쓰다듬었다. 그제야 라온은 입을 다물었다.
케일은 타샤에게 말했다.
“시장님 일으켜 세워야 할 것 같은데.”
“아.”
타샤가 정신을 차린 듯 탄성을 흘렸다. 그때, 시장이 말했다.
“아닙니다. 전에 뵈었던 드래곤 님이 그러셨습니다. 자신의 앞에서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은 전투를 하자는 소리라고. 저는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드래곤을 본 거야?
케일은 문득 이 시장이 존경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일어나도 된다. 나는 그런 거 싫다!”
하지만 라온의 말에, 시장은 2초도 안 되는 시간 만에 벌떡 일어섰다. 케일은 두 손을 들었다.
짝!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진정합시다.”
케일은 마치 제 집무실인 양 소파를 가리켰다.
“앉아요, 다들.”
시장을 위한 상석을 제외하고, 케일은 소파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 3인용 소파 하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장은 차분한 얼굴로 뒤따라왔다. 그는 이제 땀을 안 흘리고 있었다. 시장은 라온에게 말했다.
“드래곤 님, 여기 앉으십시오.”
케일이 시장을 위해 비워뒀던 상석이었다. 케일은 기가 찬 얼굴로 시장을 바라봤다. 하지만 라온은 시장에게 말했다.
“싫다. 너나 앉아라!”
라온은 케일의 옆으로 날아가 앉았다. 그리고 제 얼굴을 케일의 무릎 위에 떡하니 올려놨다. 시장은 드래곤의 말을 따르기 위해 잽싸게 상석에 앉았다.
케일은 이제야 분위기가 진정되는 것 같아 숀에게 물었다.
“물 한 잔 마실 수 있을까? 목이 타는데.”
“내어 오겠습니다.”
숀도 목이 탔다. 가장 차분한 얼굴이었지만 가장 창백했다. 케일은 나가는 숀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용 본 건 비밀이야.”
“비밀이다.”
라온이 뒤이어 낮게 읊조렸다. 숀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정령과의 인연을 걸고 비밀로 하겠습니다.”
다크엘프가 정령과의 인연을 건다는 소리는 죽음의 맹세와 비슷했다. 정령과 닿지 못하는 엘프는 깊은 절망감으로 평생 괴로워하며 살게 된다.
라온이 시장과 타샤도 쳐다봤다. 그 시선에 둘도 정령을 걸었다.
“정령과의 연을 걸고 비밀로 하겠습니다, 드래곤 님.”
“…저도 제 정령과의 인연을 걸고 비밀로 할게요.”
케일은 그 답에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져 느긋하게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곧 숀이 물 한 잔 수준이 아닌 초호화 다과상을 빠른 속도로 준비해 왔다.
차를 한 모금 마신 시장은 입을 열었다.
“저는 오반테라고 합니다.”
“전 케일 헤니투스입니다.”
시장은 케일에게 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용과 함께하는 이였으니까. 거기에다 상당히 친밀한 관계로 보였다.
시장 오반테가 아는 용은 경이로운 존재인 것과 별개로 순식간에 극과 극을 오고 가는 변덕을 지녔다. 세상에 그런 이기주의자는 없을 것이다. 그런 용만 아는 오반테였다.
“케일 공자, 알베르가 압니까?”
알베르. 왕세자의 이름을 편히 부르는 시장의 모습에 케일은 역시나 친족관계라는 쪽에 생각의 추가 기울었다.
“저하는 모르십니다.”
“허- 알베르가 저도 모르는 새에 이런 귀한 분을 알고 계셨군요. 알베르에게도 말하면 안 되겠지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알아서 할 테니 정령의 맹세를 지키란 소리였다. 시장 오반테는 아쉬워하면서도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반드시 맹세를 지키겠습니다. 공자, 물건은 무엇인지 자세히 듣지 못하고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참고로 형태는 팔찌입니다.”
역시 521세의 관록은 어디 가는 게 아닌지 아직까지 라온의 눈치를 보는 타샤, 숀과 달리 시장은 본론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케일은 자세히 알 생각이 없었다.
“시장님, 전 몰라도 됩니다.”
전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궁금해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 표정에 순간 오반테는 말문이 막혔다. 케일은 그런 그에게 물었다.
“그럼 인간은 여러 명 손을 대어도 됩니까?”
“…그걸 왜 묻습니까?”
경계심이 오반테의 얼굴에서 피어올랐다.
“제 일행 중 죽음의 신 축복을 행할 줄 아는 이가 있습니다.”
시장 오반테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이를 눈치챈 케일은 씩 웃으며 덧붙였다.
“왕세자 저하께 전해 드리기 전까지 그 팔찌에 죽음의 신 축복을 매일 중첩으로 내렸으면 합니다. 그래서 저와 그 신관 두 사람만 손을 대고자 합니다.”
“그런 이유라면 저야 감사하지요. 알베르가 들킬 일이 더 줄어들 겁니다. 그리고 혹시 위험한 상황이 닥쳐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테니까요.”
파문당했지만 미친 신관 케이지, 그녀의 축복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성자와 성녀가 없는 죽음의 신 교단. 케일의 예상으로는 태양신 쌍둥이만큼의 축복이, 그녀는 가능할 것이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케일 공자, 부탁드립니다.”
시장 오반테는 케일에게 일정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물건은 내일이면 가공이 모두 끝납니다.”
“내일 이후 언제든 떠나면 되겠군요.”
“그건 곤란할 것 같습니다.”
오반테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음? 할아버지, 무슨 일이 있어요?”
최대한 빨리 떠나길 원하는 타샤는 가만히 있다가 의문을 드러냈다.
“케일 공자가 설명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사막에는 일 년에 한두 번 불규칙적으로 죽은 마나가 모래알들 사이에서 소량으로 피어오릅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저희도 가까워져야 알게 되죠.”
지하 공동의 천장. 사막을 받치고 있는 지반의 기운을 통해 다크엘프들은 며칠 전에야 그 시기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 시기입니까?”
케일의 물음에 시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2일 뒤, 3일간 일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시기 동안 인간은 위험했다. 타샤야 사막을 건너도 되지만 케일 일행은 일주일 정도 뒤에 떠나는 게 건강에 좋았다.
“액체 형태입니까?”
“연기입니다.”
그러면 더 난감했다. 액체에서 흘러나오는 죽은 마나 향이 아니라 죽은 마나 자체가 연기처럼 떠돈다는 소리였다.
건강에 안 좋은 정도가 아니라, 혈액에 바로 죽은 마나가 유입되어 심각한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음.”
케일은 침음을 흘리며 고민에 빠진 듯했다. 그 표정에 오반테는 미안함과 난감함을 얼굴에 드러냈다. 그때 케일의 입이 열렸다.
“그럼 일주일 동안 놀아야겠군요.”
“네, 상심이 크시- 네?”
“지하 도시의 관광 지도 있습니까?”
태연한 케일을 보며 오반테는 한참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있습니다. 숀에게 가이드를 하라고 하지요.”
여관을 만들며 관광 지도를 만들어둔 다크엘프들이었다. 케일은 그에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을 둘러싼 소파들 구석을 바라보고 물었다.
“그런데 저분은 누구십니까?”
“아, 저 아이는-”
차분히 앉아 있는 검은 로브 인간.
“이번에 보내는 팔찌 가공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 아이입니다.”
어둠 속성과 관련된 물건을 만드는 인간. 케일은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꾹 눌렀다.
찾았다.
신체에 대해, 죽음에 대해 가장 해박한 인간.
“물건에 대한 설명을 하려고 불렀는데.”
오반테는 말을 잇지 못하고 뒷말을 흐렸다. 그에게서 망설임이 보였다. 그는 슬쩍 타샤를 쳐다보았다. 그 행동에 케일은 시장이 타샤에게 무언가 볼일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때였다.
“무엇이 문젠가?”
케일은 순간 신이, 황제가 말하는 줄 알았다. 딱 그 어조였다. 케일은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아주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한껏 미간을 찌푸린 채 위엄 있는 표정을 짓는 용이 보였다.
그래 봤자 짜리몽땅해서 하나도 위엄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 드래곤 님. 그게 말이지요.”
그럼에도 오반테는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그 순간, 다른 이가 입을 열었다.
“세상이 궁금합니다.”
무미건조한 어조. 조금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마치 내비게이션 같은 목소리였다.
검은 로브 사람이었다. 케일의 시선이 검은 로브에게로 향했다.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습니다.”
“…뭐?”
하지만 그 말에 숀과 타샤가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하아.”
오반테는 한숨을 내쉬며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아댔다. 521세의 나이가 순간 600세로 보일 만큼 그는 더 늙어 보였다.
타샤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저 검은 로브를 아는 듯했다.
“메리, 그게 무슨 소리야?”
메리. 검은 로브 여성의 이름인 듯했다. 타샤는 이내 화난 얼굴로 오반테를 바라봤다.
“할아버지.”
책망과 화가 뒤섞인 목소리였다. 그러면서도 타샤는 케일과 라온을 보며 멈칫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남들이 본다면 세상 밖을 나가고 싶다는 사람에게 화내는 것처럼, 안 된다는 것처럼 말하는 것같이 보일 테니까.
그리고 그게 사실이기도 했다.
숀의 입이 열렸다.
“메리, 위험해. 알잖니?”
검은 로브는 답했다.
“그래서 저 혼자 나갈 겁니다.”
“혼자는 더 안 돼!”
타샤가 벌떡 일어나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이 함께 다니는 것도 위험해질 수 있어 안 되는데, 혼자라니! 그건 더 안 된다.
그녀의 외침 뒤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누구 하나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의문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안 되나? 저 인간은 아주 강한데? 내가 아는 마법사보다 강하다.”
호오. 케일은 티 나지 않게 감탄을 삼켰다.
로잘린보다 강하다 이 말이지?
검은 로브가 고개를 들었다. 물론 고개를 든다고 해도 검은 후드로 가려져 있어 그 얼굴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검은 로브, 메리의 고개가 케일과 라온 쪽에서 멈췄다.
검은 로브가 움직였다.
“메리!”
숀이 놀라서 손을 뻗었다. 하지만 검은 로브가 조금 더 빨랐다.
검은 로브, 메리는 자신의 한쪽 팔을 걷어냈다.
그녀의 팔이 빛 아래에 드러났다.
“음.”
문 앞에 서 있던 최한이 침음을 흘렸다.
“하.”
숀은 뻗었던 손으로 그대로 자신의 머리를 짚었다. 타샤는 당황한 얼굴로 케일과 최한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리고 케일은 드러난 팔과 손을 보며 눈동자에 이채를 띠었다.
검은 로브 밖으로 드러난 팔과 손.
화상, 혹은 거미줄처럼 검은 선들이 기괴한 형태로 끝이 없게 뒤덮고 있었다.
처음 보는 이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릴 만큼 흉한 상처였다.
케일은 그 상처를 빤히 바라봤다.
진짜다.
론에게 팔을 만들어줄 수 있게 되었다.
진짜, 네크로맨서다.
검은 거미줄 인간.
과거 적들이 네크로맨서를 부를 때 쓰는 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