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020
“어서 대답하지 못할까!”
르타오는 드래곤 피어를 더 강하게 피워올리며 상대를 압박했다.
‘인간이다.’
분명 저자는 인간이다.
누구지?
누구길래, 이럴 수 있지?
혼란이 가중되어 가던 순간이었다.
“글쎄.”
붉은 머리칼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의 입가에 삐뚜름한 미소가 걸렸다.
“마지막 만찬의 제물이 될 자에게 나를 소개할 필요가 있을까?”
뭐?
지금 저자가 뭐라고 한 것이지?
르타오의 눈동자에 혼란이 서린 그때.
“허억.”
그는 숨을 들이마셨다.
쿠웅.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우우우-
공기가 진동했다.
저 남자.
적발의 남자에게서 가공할 만큼의 기세가 피어올랐다.
르타오의 드래곤 피어를 모조리 밀어내고, 그의 모든 것을 억누르는 기세.
‘어, 어떻게 이런-’
그는 입을 열 수조차 없었다.
그럴 여유가 있다면, 자세라도 똑바로 유지하는 데에 신경을 쏟는 편이 나았다. 그는 어떻게든 무릎을 꿇지 않으려고, 주저앉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여기서 조금만 긴장감을 놓으면, 저 남자의 앞에서 무릎을 꿇어버릴 것 같았다.
‘…지배.’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를 마주하면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일까.
르타오는 라이언을 마주했을 때도,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지배의 신 드래곤 라이언.
특성이 ‘지배’인 용을 만났을 당시에도 이런 무력함을 느끼지 못했건만.
‘드래곤 로드가 이러할까?’
로드를 만나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르타오는 숨이 막혀왔고.
털썩.
결국 한쪽 무릎을 꿇어야 했다.
“허억, 헉!”
그리고 그를 감싸던 가공할 압박이 거둬졌다.
그때까지도 그는 적발의 남자에게서 시선조차 뗄 수 없었다. 그가 허락하지 않았으니까.
“헉, 허억. 허억.”
그는 두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고개를 숙여 숨을 몰아쉬었다.
고개를 숙인 그에게로 남자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어떻게, 인간이 이럴 수가 있지? 아니, 인간이 아닌가? 저자는 누구지?’
지금 이건 무슨 상황이고. 어떤 일이 일어나려는 거지?
머릿속은 혼란스러웠지만, 생각을 이어갈 수조차 없었다.
모든 것을 지배하는 기운이 그의 가까이로 다가왔으니까.
‘…….’
남자의 발이 보인다.
르타오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빌어먹을!’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어쩌다가-’
어찌하여 내가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
그는 마음속에서 절망과 무력감이 피어올랐다.
이백여 년 전.
격변기.
그때, 막 딸이 알을 깨고 나왔다.
때문에 르타오는 혼란스러운 세상을 피해 숨어서 딸을 기르는 데에 집중했다.
드래곤들이 파벌을 나눠서 싸우고, 결국 드래곤 로드 쪽이 절대적 다수로서 승리할 때도. 그는 숨어있었다.
드래곤 로드에게 붙으면 세계의 근원을 얻어 기존보다 더 강해진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원하지 않았다.
‘나는 딸을 안정적으로 키워야 돼.’
부인이 실종된 상태에서, 그는 딸보다 중요한 것이 없었다.
그리고 딸에게 세계의 근원을 먹이고 싶지도 않았다.
‘저건 원래 드래곤이 먹는 게 아니다.’
아무리 강해져도 미래를 알 수 없는, 그런 위험한 것을 어찌 딸에게 준단 말인가.
때문에 더 꽁꽁 숨어있던 르타오와 딸은 어느 날, 딸이 근처에 숨어 살던 수인족 친우들과 놀다가 라이언에게 들켜 잡혀가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게 되었다.
르타오는 비밀 레어 근처에 수인족 한 무리를 숨겨주었다. 딸이 홀로 자라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수인족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다.
“…하…….”
탄식이 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르타오.”
그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저를 쳐다도 보지 못하는 르타오를 내려다봤다.
‘확실히 시스코보다 한참 약하다.’
10신 드래곤 중 상위로 평가되는 투쟁의 신 시스코.
그녀조차도 아우라로 누를 수 있던 케일에게 눈앞의, 세계의 근원을 먹지 않은 르타오는 쉬운 상대였다.
케일은 입을 열었다.
“그간 네가 죽였던 수인족들처럼, 마지막 집행 때 제물로 네가 바쳐질 예정이다.”
“아니-!”
르타오가 고개를 팍 들었다가 눈이 마주치자 멈칫했다. 하지만 그는 입을 열었다.
“난 수인족을 죽이지 않았-”
하지만 그 목소리는 힘을 잃었다.
“아니지. 나도 똑같은 놈이지.”
케일은 전에 들었던 대화 내용을 떠올렸다.
‘르타오 님이 마나를 제공해주신 덕분에 그간 있었던 집행들을 잘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단계에 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인 마법사가 한 말을 떠올리며 그는 말했다.
“네 마나로 무엇을 한 것이지? 네가 한 일은 무엇이지?”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쉰 르타오는 입을 열었다.
물론 단순히 적발 남자의 힘에 눌려서만은 아니었다.
‘내가 마지막 집행의 제물이라고?’
그 말을 허투루 놓칠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면 내 딸은?’
그는 이 대화를 이어가야만 했다.
그렇기에 순순히 답했다.
“집행 때, 신물이 크게 반발을 할 때가 있다. 그걸 내 마나로 억눌러왔다. 그리고 이곳은 알겠지만, 일반적인 이들을 경비로 세울 수가 없다.”
“왜 그렇지?”
“웬만한 존재는 이 공간에서 하루 이상 머물기 힘들어했다. 심할 경우, 저 검은 늪이 뿜어내는 절망에 동화되어 그 늪에 자발적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케일은 문득 ‘검은 절망’을 마주하고 힘들어했던 최한을 떠올렸다. 그는 그 절망을 이겨내고 한층 성장했지만, 그건 무척 힘든 과정이었다.
“그래서 드래곤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던 건가?”
“그렇다.”
흐음.
케일은 제 눈을 피하지 않는 르타오를 보며 생각했다.
‘애매하네.’
나쁜 짓을 했지만, 마냥 적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녀석이었다.
그리고-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르타오. 이 드래곤의 최대 적은 라이언이다.
그렇기에 케일과 같이 일을 해볼 여지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르타오.”
케일은 쪼그리고 앉아, 르타오와 시선의 높이를 맞췄다.
“나는 일주일 뒤 마지막 집행을 막고, 지배의 신을 무너뜨릴 생각이다.”
“!”
라이언, 그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들릴지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라이언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일주일 뒤에 지배의 신은 모든 것을 잃게 돼.”
케일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는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 나중에 라크에게 이걸 어떻게 전달해야 하냐가 더 고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말이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왜냐면 내가 그렇게 할 거니까.”
르타오의 입이 저도 모르게 열렸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하지만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마지막 집행 때, 너와 딸도 제물이다.”
그 순간이었다.
쿠웅!
공간이 거세게 진동했다.
르타오의 드래곤 피어가 한계까지 치솟아 올랐다.
물론 케일과 투명화한 평균 10살에게는 닿지 못했지만, 그 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농도가 깊은 짙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내, 내 딸도?”
르타오의 목소리는 떨렸다.
케일은 순식간에 실핏줄이 터져서 벌겋게 변한 르타오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딸도.”
케일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르타오. 어떻게 하겠나?”
자신뿐만 아니라, 딸마저 제물로 바쳐질 것이라는 적발 남자의 말.
르타오는 저 말의 진실성을, 사실을 확인해야겠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진실이라면-
‘라이언은 그럴 놈이다.’
사실을 확인하지 않아도, 그놈은 그러고도 남을 것이란 속마음이 르타오에게 말을 건네왔다.
그의 귓가로 적발 남자가 말했다.
“네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신을 꿈꾸는 놈의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고 싶지 않나?”
라이언을 이기는 거대한 기운을 가진 남자.
르타오는 손을 뻗었다.
라이언의 세상을-
“…그러고 싶소.”
지옥으로 만들고 싶다.
르타오는 남자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맺히는 것을 보았다.
“반갑다. 나는 케일이야.”
그가 자기소개를 했다.
르타오는 그의 손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마치 그것이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마냥.
***
다음 날, 케일은 텔레포트 마법진 앞에 섰다.
“인간아, 황제 보러 가나?”
“어.”
이제 황제를 보러 갈 시간이다.
1063
“일주일 뒤에 뵙겠습니다.”
백사 위샤가 굳은 표정으로 케일을 배웅했다.
케일은 일행에게 그가 지하 3층에서 얻게 된 정보에 대해 가감 없이 모두 전달했다.
“준비, 부탁합니다.”
“네.”
백사를 중심으로 수호자 엘프를 포함한 수뇌부 사이에 결연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케일은 그들을 훑어보다가 끝에 서 있는 라크와 눈이 마주쳤다.
라크의 곁에는 족장과 사냥꾼 코우칸이 함께하고 있었다.
케일의 머릿속에 동료들이 지하 1층, 2층에서 얻은 정보들이 떠올랐다.
‘케일 님, 수인족을 이용한 인체 실험을 자행하고 있었습니다.’
‘수인족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행하고 있었습니다!’
라이언, 이 미친 새끼.
‘드래곤을 신으로 모시는 기도 장소가 있었습니다.’
‘지하 2층에는 감옥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아직 살아있는 수인족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아이, 청년, 중년, 노인. 나이대별로 성별에 따라 분리시켜서 가둬둔 상태였습니다.’
케일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던 라크를 떠올렸다.
드래곤 르타오의 이야기까지 모두 들은 라크에게 케일은 물었다.
‘수도에 갈래?’
그 말에 라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에 있고 싶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저도, 저도 일주일 뒤 마지막 집행 때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 바람을 케일이 들어주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이번 수도행은 케일과 평균 10살만 함께하기로 했다.
그는 최한을 보며 말했다.
“쉐리트 님께 연락을 넣어두었으니, 일주일 안으로 다 모일 거다.”
“네.”
위티라와 아치를 비롯하여, 이곳에 없는 케일 쪽 수인족들을 모조리 이곳으로 불러들일 계획이었다.
갇힌 수인족들을 구하는 일은 수인족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광폭화가 가능한 케일 쪽 수인족들이 하는 편이 좋았으니까.
‘더불어 수인족은 내 지배하는 아우라의 영역 밖에서도 싸울 수 있다.’
아피토유. 이 세계의 억눌린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라이언의 성.
거대한 마을과 같은 이곳을 뒤집는 데에 그들만큼 적합한 존재는 없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최한의 인사를 끝으로, 케일은 라온에게 눈짓했다.
“알았다, 인간아!”
우웅-
가벼운 진동음과 함께 텔레포트 진이 검은빛을 뿜어냈다.
파앗!
빛이 사그라든 후, 케일과 평균 10살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잠시 뒤에, 회의 때 뵙죠.”
최한이 라크를 비롯한 일행을 데리고 자리를 먼저 빠져나갔다.
위샤를 비롯한 수뇌부는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굳어져 갔다.
“위샤.”
수호자 엘프가 말했다.
“이번에는 잠든 자들을 깨워야 해.”
잠든 자.
그들은 아직 교단에게 사냥당하지 않은 채, 격변기 이전부터 존재해 온 수인들을 가리켰다.
백사만큼은 아니지만 하나같이 강대한 자들로, 그들은 광폭화가 가능했다.
물론 그 수는 소수였지만, 하나하나가 용 혼혈 기사단을 상대로 살아남을 정도는 되었다.
아피토유.
이 세상에선 살아남은 자들이 곧 강한 자라고 할 수 있었다.
“…….”
위샤는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들었다.
토굴의 천장이 보였다. 라이언성 지하에서 보았던 고풍스러운 신전과도 같은 연구소에 비교하면, 아니, 비교할 수도 없이 초라하고 지저분하고 허름했다.
“하-”
탄식이 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세계의 근원에게 닿기 위해, 생명력이 빼앗겨 몸이 좋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래.”
그녀의 눈동자는 어느 때보다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 판국에도 자고 있는 새끼들이 있으면 모조리 깨워야지.”
그녀는 수호자 엘프에게 말했다.
“전령들이 있나?”
고개를 끄덕이는 수호자 엘프에게 백사는 전서구에 띄울 내용을 내뱉었다.
“모두 내 앞으로 집합하라고 해.”
덧붙였다.
“피하면, 내가 쳐죽인다고.”
살벌한 백사의 기세에 수호자 엘프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최한의 뒤를 따르고 있던 라크는 고개를 들었다. 최한의 뒤에는 족장 니아와 사냥꾼 코우칸이 있었다.
그들의 어깨는 잔뜩 굳어 움츠러든 상태였다.
가샨과 타샤는 이곳 기지 요원들과 함께 숲 곳곳을 탐색하는 중이었다. 케일 배웅마저 미룬 채 일주일 뒤를 대비해서.
‘하, 하하-’
기가 차다는 듯 웃던 호랑이족 주술사 가샨. 그의 눈에 서린 분노를 라크는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더불어 눈앞에 위축된 자들이 내뱉은 말도 기억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아무리, 아무리 수인족을 사람 취급도 안 한다지만. 그런 짓을-!’
절망하는 족장과 코우칸.
그들이 정신을 차린 후, 또 다른 걱정을 담아서 했던 말들.
‘신물이 오염되었다니, 그 신물은 못 쓰겠군요. 유일하게 남아있는 푸른 늑대님의 신물이었는데. 광폭화에 대한 희망은 버려야겠습니다.’
‘…신물보다,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생각이 먼저죠.’
‘맞습니다, 족장님.’
신물이 있단 말에, 광폭화에 대한 희망을 품었던 이들이 희망을 잃어버렸다.
동족을 구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분노, 절망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라크는 위축된 늑대족들의 등을 보며 생각했다.
‘방법이 없을까?’
수인족들의 걱정을 눈치챈 케일이 신물을 정화시킬 방법을 찾아본다고 했다. 다른 이들도.
하지만 라크는 왠지 그 방법만이 정답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나도 광폭화를 했는데!
한때, 두려움에 휩싸여 제대로 광폭화를 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죽음의 협곡.
그곳에서 라크는 일시적으로 광폭화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광폭화를 해냈다.
더 성장한 모습으로.
‘겁 많고 소심한 나도, 결국은 광폭화를 해냈어.’
그렇다면 이들도 할 수 있을 텐데.
라크는 자신이 다시 광폭화를 할 수 있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건 신이나 누군가를 향해 부탁하던 때가 아니었다.
케일과 라온.
소중한 둘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 하나뿐이었던 때였다.
물론 이곳의 수인족과 자신은 경우도 다르고, 세상도, 살아가는 방식도 모두 달랐지만.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신을 통해서만 광폭화를 제대로 이뤄낼 수 있다니.
그렇다면-
‘그 신은 좋지 못한 신이지 않을까?’
불손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진정으로 수인족을 아끼는 신이라면, 방법을 그것만 두지 않을 것 같았다.
‘푸른 늑대는, 나쁜 신이 아닌 것 같단 말이지.’
푸른 늑대 신에 대한 일화를 몇 가지 들은 라크였다.
케일과 일행들이 바쁜 와중에 늑대족과 대화를 많이 한 라크는 자연적으로 푸른 늑대에 대해 케일 일행 중 가장 자세히 알 수밖에 없었다.
‘푸른 늑대께서는 수인족이 광폭화 때 아픔을 겪는 것을, 이성을 잃는 것을 안타까워하셨죠.’
‘그분은 본디, 이 땅의 최초의 늑대왕이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때, 수인족은 인간에게도 동물에게도 배척받던 순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들을 지키기 위해 나선 분이 푸른 늑대셨다고 합니다.’
‘신도가 아닌 자들도 푸른 늑대께서는 광폭화를 잘 해낼 수 있게 했습니다.’
라크는 깊어지는 생각을 잠시 멈췄다.
‘일단은, 일주일 뒤만 생각하자.’
라이언성.
그곳에서 벌어질 마지막 집행. 그 일을 막는 것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맨 뒤에서 걸음을 옮기는 라크의 걸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하지만 그의 어깨는, 몸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위축된 늑대족들을, 최한을 가릴 만큼 어느새 커져 있었다.
***
신성 제국의 황제 알트는 회담장으로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자네 생각에는 하르 왕의 의도가 무엇인 것 같나?”
그림자처럼 그의 곁에 머물던 심복이 입을 열었다.
“신이 모자란 까닭에 명확한 의도는 모르겠으나, 다분히 좋지 못한 의도로 온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렇겠지.”
흐.
황제 알트는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썩 좋지 못했다.
“갑자기 수도로 직접 온다고?”
하르 왕국.
그곳을 알트는 망국이라고 부르며 비하를 서슴지 않고 행했지만. 실질적으로 하르 왕국을 만만하게 보지는 않았다.
‘정말 망국이었다면, 신경조차 쓰지 않았겠지.’
하르 왕국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왕국인 동시에, 언제 갑자기 들고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왕국이었다.
본디 제국이었으며, 드래곤과 교단의 압박 속에서도 살아남았으니까.
‘그 와중에도 절대로 수호자인 백사를 끌어들이지도 않았지.’
하르 왕국은 숨겨진 힘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