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025
-내가 원래 이런 오지랖 잘 안 부린다! 하지만, 나도 고생해봐서 안다!
고생?
이리 행복해 보이는 용이?
-우리 용 혼혈도 나처럼, 갇혀서 살았고. 제대로 생명체로서의 존중을 받지 못했다는 거 듣고 나니까. 나도 용 혼혈도 뒤늦게 가족을 만났으니까.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갇혀 살았다고?
뒤늦게 만났다고?
누구를? 가족을?
교황의 눈빛이 점점 더 기묘하게 일렁였다.
-아무튼 미안하다! 교황아, 네 인생을 모르는 내가 헛말 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렇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준 용이 있었던가?
용 혼혈을 걱정하는 용이 있었던가?
조금 멍해진 눈빛으로 케실리아가 라온을 바라보고 있던 때였다.
계속 그 눈빛을 받고 있는 라온은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냅다 또 마법으로 말을 전했다.
-어, 그리고 사실, 교황 네가 드래곤 로드 정보를 전하겠다고 했을 때, 혼스나 1주교 눈빛이 슬퍼 보여서 끼어든 거다!
아.
교황은 입을 열었다.
-저들도 네 가족 아닌가? 맞지? 서로를 보는 눈빛이 우리 가족들이랑 같다! 나는 안다! 내가 사고 치려고 하면, 우리 인간이랑 최한이랑 론이랑 누나랑 저렇게 본다!
교황의 입이 열렸다.
“하, 하하-”
그녀는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 이 자리에서 교황은 이 대륙의 운명이 결정지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케일 헤니투스 쪽과 손을 잡고 보라 피 가문과 싸운다. 즉, 드래곤들과 싸운다.
그 결과로 어느 쪽이 이길지 모른다.
사실 어느 누가 이겨도 상관없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이 대륙을 망쳐버릴 작정이었으니까.
때문에 3주교 혼스가 케일 헤니투스를 끌고 왔더라도, 그 속내가 자신을 막기 위함임을 알아도 일단 케일 헤니투스 쪽과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용생 7년! 이런 눈빛은 잘 안다!
케실리아의 웃음에 조금 신이 난 어조로 말하는 어린 용.
‘7살이라.’
정말 어리네.
‘…어머니.’
그때까지 케실리아는 인간 어머니가 살아있었다.
‘아.’
그래, 내 부모는 어머니뿐이다.
문득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케실리아는 눈을 감았다. 희미한 기억이 떠오른다.
인간과 용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
‘우리 아가.’
어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자. 알았지?’
어릴 적이었지만, 그녀도 어머니도 알고 있었다.
용 혼혈은 용만큼 오래 살 수 없다는 것을.
더불어 용의 피가 강해질수록 그녀의 몸에 고통이 서릴 것이란 것도.
그럼에도 어머니는 늘 케실리아에게 행복하게 살자고 말했다. 오래 살자고.
왜 그 말이 지금 떠오르는 것일까.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데.’
드래곤 로드와 드래곤들에게 이용만 당하다가, 존재를 인정받지도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데.
어찌하여 어머니의 목소리가 지금에서야 들리는 것일까.
케실리아는 손을 들어 올려 제 얼굴을 더듬었다.
얼굴.
이것만큼은 어머니를 닮았다.
케실리아는 떨리는 손으로, 눈을 감은 제 얼굴을 매만졌다.
눈, 코, 입-
“쿨럭-!”
케실리아의 몸이 들썩였고.
“교황 성하!”
3주교 혼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뚝뚝하고 늘 무게를 잡는 혼스. 그답지 않은 태도였다.
케실리아는 저의 어깨를 붙잡는 혼스의 손을 느꼈다.
그리고-
“교황아! 괜찮나?”
눈을 뜬 그녀의 앞에 냅킨을 들고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어린 용이 보였다.
기침과 함께 토해낸 피가 그녀의 손과 입가에 가득했다.
죽어가는 몸은, 용의 피를 견디지 못하고 이따금 발작을 일으켰다.
그런 그녀를 알기에 모든 주교들이, 용 혼혈들이 그녀의 뜻을 따라주고 있었다. 물론 이 세상을 부수고 싶은 마음에, 그 울분에 동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녀를 위해, 뒤이어 죽을 자신들을 위해서일 터.
‘이미 세상을 망치는 데 일조한 몸.’
수많은 피를 뒤집어쓰고 살아온 자신이기에.
이왕 악인이라면, 더 큰 악인이 되어 죽어야 하지 않을까.
좋게 죽을 생각도.
착하게 살 생각도.
용서받을 생각도.
무엇도 없는 케실리아였다.
그녀는 착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악 중의 악. 죽어가는 순간조차 과거의 악행을 후회하기보다는 자신의 울분과 원망만 생각하며 이 모든 것을 풀기 위해 전쟁을 일으킬 생각만 하니까.
“…….”
케실리아는 검은 용이 내민 냅킨을 말없이 받아 들었다.
혼스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교황은 이를 모른 척하며 제 입가에 묻은 피와 손의 피를 냅킨으로 닦아냈다.
“아플 땐, 이거다!”
라온이 아공간에서 꺼낸 사과파이를 그릇 위에 올려 교황에게 내밀었다.
교황은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몸이 좋지 않군요.”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어차피 서로 목표하는 바는 같고, 갈 길을 조율하는 것은 차차 이야기를 나누면 될 것 같습니다만.”
“그렇죠.”
케일은 라온과 케실리아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온이 뭔 짓을 했네.’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일단 신경 껐다.
교황 측과 손을 잡는다.
그건 달성했으니까.
“라이언성을 무너뜨릴 것이란 말을 들었습니다.”
교황의 말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혼스를 바라봤다. 혼스는 드래곤 라이언의 핏줄이었다.
혼스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나보다 더 쓰레기에 탐욕으로 미쳐버렸더군요.”
그 말에 케일은 뒤이어 말했다.
“라이언을 상대한 후에는 3성 드래곤을 상대할 생각입니다.”
그곳에 세계수와 닿는 길이 있다고 했다.
“그다음에 드래곤 로드를 상대할 것이고요.”
교황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3주교 혼스가 부축했다.
“드래곤 로드가 돌아오기 전에, 최대한 그의 수하들을 정리해두는 편이 좋겠군요.”
그 목소리는 냉정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이단심문관 쪽은 제가 묶어두도록 하죠. 3성 드래곤을 상대할 때까지는 그들이 당신을 방해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좋네요.”
“그 외의 전력이 필요하다면 말해주세요. 주교들을 파견할게요.”
“네.”
가장 최우선적으로 맞출 내용이 정리되자, 교황은 자리를 떠났다.
“혼자 갈 수 있어요.”
혼스의 부축을 마다하고 홀로 떠나는 그녀를 지켜보던 케일은 그녀가 제 침실로 쓰는 신전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구까지 안내하겠습니다.”
혼스가 안내역을 자처했다. 그때, 라온이 입을 열었다.
“응?”
케일과 교황의 대화에 집중하느라 잊어버렸던 것을 떠올린 것이다.
“사과파이 사라졌다!”
그릇에 올려둔 사과파이. 그게 갑자기 없어졌다.
교황이 먹는 모습도 못 봤는데!
라온이 눈을 동그랗게 뜰 때.
케일이 무심하게 내뱉었다.
“아까 교황이 떠날 때, 갑자기 사라지던데.”
라온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은밀한 마법 실행력.
“누가 아공간에 챙겨간 것 같더라.”
케일은 그 누가 누군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진짜냐?”
그 말에 라온이 반응하려는 순간이었다.
라온의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릴 만한 일이 벌어졌다.
삐이이-
라온이 영상통신구를 꺼내 들었다.
“인간아! 연락이 왔다!”
라온이 저렇게 반응할 만한 일은 하나뿐이었다.
케일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수이 칸이다!”
팀장 수이 칸.
최정건을 만나러 간 이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삐이이이–
“긴급 신혼데!”
그런데 영상통신구 색이 시뻘겋게 깜박이고 있었다.
위험 상황일 때 보내는 신호였다.
혼돈의 신.
그 신전에 최정건을 찾으러 간 팀장과 동료들.
“연결해.”
케일의 표정이 굳어졌다.
1068
우웅-
영상통신구를 중심으로 마나가 진동했다.
교단을 빠져나와 마차에 올라탄 케일은 팔짱을 낀 채 영상통신구를 응시했다.
빨갛게 물든 영상통신구.
마차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너무나도 대조를 이루었다.
파앗!
화면이 떠올랐다.
-케일아.
“팀장님.”
케일의 눈동자에 수이 칸이 비쳤다.
‘음.’
평소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케일은 그 안에 깃든 이질감을 발견했다.
‘화났군.’
팀장이 화났다.
-좌표를 밀라 님이 전달할 테니, 곧장 이쪽으로 왔으면 한다.
“알겠습니다.”
아.
잠시 멈칫한 케일이 통신을 끊으려는 수이 칸에게 물었다.
“최한, 최정수 데려갑니까?”
-…….
잠시 말이 없던 수이 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 수도입니다. 최한, 최정수 두 사람 다 데리고 움직이도록 하죠.”
통신이 끊겼다.
그리고 뒤이어 드래곤 밀라가 전해준 좌표가 메시지로 도착했다.
“인간아, 검은 성이랑 토굴. 둘 다 가는 건가?”
라온의 물음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좀 빠르게 움직여야겠다.”
그는 고개를 돌려 클로페를 바라봤다.
“수도는 너에게 맡긴다.”
교황과 교단.
그리고 황제.
마지막으로 하르 왕국의 대니스 왕까지.
세 세력이 현재 수도에 머물고 있다.
케일은 그들의 중심에서 조율하는 일을 클로페에게 맡기고자 했다.
불굴 연합.
대륙을 불태울 뻔했던 그 집단을 만들고 막강한 지지를 받았던 클로페 세카.
케일의 동료 중 이 정도의 스케일을 감당할 사람은 클로페 세카뿐이었다.
“가능하지?”
케일이 툭 내뱉은 말에 클로페 세카는 미소를 짓더니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케일 님.”
…뭐야?
케일은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했다. 그리고 고개를 든 클로페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드디어 저에게도 제대로 된 임무가 주어졌군요. 저의 모든 피 한 방울까지 쏟아부어 일을 잘 해내겠습니다.”
“…….”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케일은 처음으로 아군 걱정이 아닌, 클로페 세카를 상대할 자들을 걱정했다.
‘그래도 일은 잘하니까.’
케일은 애써 불안한 마음을 감추며, 진지하게 말했다.
“적당히. 드러나지 않게. 알지?”
보라 피 사냥꾼. 그놈들의 이목을 끌어서는 안 된다.
특히, 지금은.
적들이 우리의 존재를 명확히 아는 것은 1성 드래곤 라이언의 레어를 부수고 난 후가 적절했다.
“후후.”
클로페가 이제 소리내어 웃었다.
“당연히 잘 압니다. 그림자는 겹치고 또 겹치면 구분이 불가능한 법. 걱정 마십시오.”
뭐라는 거야.
케일은 일단 바쁘니,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 믿는다.”
툭툭. 케일이 클로페의 어깨를 두드렸다.
클로페는 고개를 숙였다.
‘아직 나를 완전히 안 믿으신다.’
케일 님은 아직 나를 믿지 못한다.
이해한다.
나의 시작은, 그의 발걸음을 막는 돌멩이에 불과했으니까.
‘그래도, 전보다는 믿고 있지.’
그러니 이렇게 큰일을 맡기는 것일 터.
무엇보다도 동료들 간의 연락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드디어-’
드디어 나도 전설의 한 귀퉁이에 스며들 기회가 왔다.
클로페의 눈빛이 번뜩였다.
‘케일 님은 신도 상대하신 분.’
봉인된 신이라도 신을 상대했다.
‘그런 분이 성가시게 탐욕과 권력, 정치판에 끼어들게 할 수는 없는 법.’
그런 사소한 것들로 심력을 낭비시키고 싶지 않다.
그런 것은 그림자의 몫.
“후후.”
클로페는 흥겨운 마음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케일은 떨떠름한 얼굴로 클로페의 어깨 위에 올려놓았던 손을 떼어냈다.
조심스럽게.
‘미친놈은 피해야지.’
케일은 라온에게 눈짓했다.
-알았다, 얼른 가자! 클로페 세카가 이상하다! 또 한 10도 돌 기세다!
떨떠름한 얼굴로 라온이 얼른 텔레포트 마법진을 펼쳤다.
케일과 평균 10살은 곧 수도를 떠났다.
“하아.”
그리고 텅 빈 마차 안, 클로페 세카는 고개를 들며 짧은 숨을 내뱉었다.
푸른 하늘이 보인다.
그는 중얼거렸다.
“드래곤과 케일 님에 대한 황제의 욕심과 질투를 자극하면서, 휘두르면 되고.”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대니스 왕처럼, 자존심보다 신념을 택하는 자는 영웅 혹은 선한 신념을 강조하면 알아서 따를 것이고.”
그의 입가에 미소가 짙어져 갔다.
“교황은 죽을 때가 되어서 그런지, 마음이 약해져 있어. 그 틈을 노려야겠군. 라온 님이 훌륭하게 흔들어놓으셨어.”
씨익.
마차 안의 그림자에 몸이 덮인 클로페 세카는 마치 뱀처럼 혀로 입술을 축였다. 그의 시선이 푸른 하늘에 고정되어 있었다.
“재밌군.”
역시.
“칼질보다 정치질이 재밌단 말이지.”
곧 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매단 기사는 마차 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문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푸른 하늘 아래 신성 제국 속으로 스며들었다.
***
파아앗-!
검은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자리에, 케일은 눈을 떴다.
대륙의 남쪽은 거대한 정글이었다.
이곳엔 제대로 된 나라가 세워지지 못했다.
“왔구나.”
팀장 수이 칸이 기다리고 있었다.
케일과 함께 온 최정수가 입을 열었다.
“음? 여긴 신전은 안 보이는데요?”
능글맞은 미소를 지은 채 말을 건네는 최정수의 모습은 여유로웠다.
케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높게 치솟은 나무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식물들.
숲보다는 정글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환경이 펼쳐져 있었다.
졸졸졸-
옆에는 작은 시냇물도 흘렀다.
그곳에서는 드래곤 밀라가 과일을 씻고 있었다.
“왔니?”
싱긋 웃어보이는 그녀는 라온에게 과일을 내밀었다.
“여기 세계의 과일인데, 아주 달더구나. 라온아, 먹으렴.”
라온이 케일을 쳐다봤고,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갔다 와.”
“먹고 오겠다! 인간 것도 챙기겠다!”
라온이 히히 웃으며 밀라의 곁으로 간 순간, 드래곤 밀라의 목소리가 케일의 머릿속에 닿았다.
-라온은 내가 데리고 있을게.
그 순간, 케일은 확신했다.
‘역시, 뭔가 벌어졌구나.’
그것도 아주 좋지 못한 형태로.
최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초프 님은 보이지 않는군요.”
과거를 보는 용.
그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
팀장 수이 칸은 최정수와 최한을 보다가 케일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따라와.”
시냇가 옆에 자리한 좁은 길이 있었다.
울창한 나무와 식물 때문에 어둡게 보이는 정글 속으로 통하는 길.
케일은 잠자코 그 뒤를 따랐다.
“밀라 님하고 놀고 있어.”
물론 라온은 떼어두고.
그는 팀장의 바로 뒤에 섰고, 그 뒤를 최정수와 최한이 따랐다.
“아.”
팀장은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케일에게 부탁했다.
“네 아우라 좀 피워봐.”
“왜요?”
“그래야 쓸데없이 짐승들이 공격을 안 하거든.”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여긴, 아주 난장판이야. 조금만 틈을 보이면 공격을 하거든. 그래도 드래곤 피어를 쓰면 도망가더라고. 케일아, 네 아우라도 비슷하지 않겠어?”
“그렇죠.”
케일은 냉큼 아우라를 피워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