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028
“그래, 자네 입장에서는 어이없을 수도 있겠군. 그간 억울하게 고생했던 시간이 허무할 테고. 나 아니면 이런 일을 겪을 일도 없었을 테니까.”
라이언은 씨익 웃어보였다.
“그래도 오늘 끝이네. 해방이야! 그러니 이 축제를 즐기게.”
“…즐기기에는 펼쳐질 광경이 지옥일 것 같은데.”
르타오는 자신이 꺼낸 말에 라이언의 미소가 더 짙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이 정말 흉폭한 짐승과 같아, 르타오는 저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이런 자를-’
그 인간은 이길 수 있을까?
지난 일주일.
그자에게서 연락도 없었는데.
과연-
‘그 인간을 믿어도 될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왜냐면 르타오는 펼쳐진 지옥을 알았음에도 이를 어찌 막아야 할지 확신할 수가 없었으니까.
“지옥이라- 좋은 표현이야, 르타오.”
미친놈.
르타오는 라이언을 속으로 욕했다.
오늘 광장에 모일 수많은 생명체.
그중 수인족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무대 광장에 설치된 구덩이로 밀쳐질 것이다.
도망도 못 갈 것이다.
모든 가족들이 다 나와서 구경하는 와중에 라이언의 병사와 수족들이 그들에게 죽음을 강요할 테니까.
그건 끔찍한 광경일 것이다.
도망가고 싶어도, 라이언의 앞에서 도망은 죽음뿐인 것을 아니까.
“르타오. 그래도 그 지옥은 자네의 지옥은 아니지 않은가?”
“!”
순간, 르타오는 분노가 치밀었다.
‘나를 제물로 바칠 것이면서!’
내 딸도 같이 바칠 작정이면서!
그러면서 뭐?
나의 지옥은 아니라고?
이 쳐죽일 놈!
우웅-
르타오의 주변으로 저도 모르게 마나가 요동쳤다.
딸이 걸린 일.
하지만 연락이 없는 상대방.
더불어 자신은 라이언보다 약한 상황에서 무엇 하나 쉬이 행동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딸을 찾지 못했다.
“르타오.”
그때, 나직한 라이언의 음성에 르타오는 멈칫했다.
“자네는 마음이 참 착해. 그러니 저 하찮은 것들의 죽음에 분노하는 것이겠지.”
라이언의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하지만, 내 앞에서 날을 세우면 곤란해.”
르타오는 라이언의 살벌한 눈빛을 피했다.
“…내가 순간 감정 조절을 못 했네.”
르타오는 치욕스럽지만, 수그리는 말을 내뱉어야 했다.
“그래. 역시, 자네는 말이 통한단 말이지.”
라이언은 다시 웃으며 르타오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끝까지 나를 도와주게. 알았지?”
그 말의 속뜻이 르타오는 제대로 들렸다.
‘너와 네 딸의 목숨까지 바쳐서, 나를 끝까지 도와줘야겠어.’
그럼에도 르타오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약속은 꼭 지켜.”
“당연하지.”
그 말을 끝으로, 르타오는 라이언의 방에서 빠져나왔다.
라이언이 개인적으로 할 일이 있다는 이유였다.
달칵.
문밖으로 나온 그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 길을 감시인이 따라붙었다.
르타오는 마음이 갑갑해져 왔다.
‘어떡하지?’
미칠 것 같았다.
무엇을 해야 하지?
혹시 몰라서 최대한 정보를 수집해두기는 했으나, 이를 어찌 써야 할지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후후. 나중에 뵙겠습니다.”
감시인은 노인 마법사였다.
그가 르타오에게 배정된 방 앞에서 인사를 건넸고, 르타오는 한숨과 함께 답도 없이 제 방으로 들어왔다.
쾅!
그리고 문을 닫았다.
제대로 된 가구 하나 없이, 침대와 옷장만이 덩그러니 놓인 방.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눈을 질끈 감았다.
‘폭주라도 해야 하나?’
그러면 적어도 딸은 어떻게 구해서 도망갈 수 있지 않을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마법이라도 쓸 수 있으면!’
그랬다면 어딘가에 있을 그 사람을 찾고 정보를 보낼 터인데!
똑똑.
‘어느 것도 여의치가 않아!’
똑똑.
“…….”
르타오는 멈칫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창밖을 바라봤다.
똑똑.
누가 창을 두드린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아니!’
뭐가 보인다.
작은 눈송이 같은 것이!
벌떡 일어난 르타오는 창문을 열었다.
휘이잉—
바람 한 줄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마법이 아니다.
그러니 감시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바람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휘이잉–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아!”
정령이구나!
르타오는 곧장 손바닥을 내밀었다.
하얀 눈송이는 종이쪽지였다.
작게 접힌 종이를 펼쳐 들었다.
“하, 하하-”
이제 겨우 두 시간도 남지 않았는데.
이제야 정보를 알려달라고?
“하긴.”
저쪽이 필요한 정보는 단 하나이리라.
‘무대.’
저 무대가 무엇인지 묻고 있을 터.
그는 종이의 빈 부분을 바라봤다.
‘펜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없군.”
쓸 만한 게 없다.
그렇다고 마법으로 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까득.
르타오는 제 손가락을 깨물어 상처를 냈다.
피가 흘러나왔다.
그는 그 피로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움직일 수밖에 없는 정보가 저 안에 적혀 있었으니까.
케일은 그저 가만히 있던 게 아니었다.
이미 바람 정령을 풀어서 모을 수 있는 정보를 모두 모았고, 르타오의 딸까지 찾고 있었다.
뚜욱, 뚝.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르타오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종이에 적어 내려갔다.
그는 케일이 전한 쪽지의 마지막 내용을 눈에 담았다.
“하, 하하-”
르타오의 눈이 반짝였다.
그의 눈동자에 희망이 깃들었다.
그래, 곧 펼쳐질 지옥은 나의 것이 아니다.
라이언.
너의 것이리라.
***
그리고 6시가 되었다.
5시 30분부터 모여있던 주민들이 무대 주위에 자리해 있었다.
서서히 노을이 지기 시작하자, 무대 주위에는 아름다운 마법 조명이 켜지며 제법 운치 있는 분위기를 풍겨냈다.
무대 뒤의 단상에 자리한 라이언이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라이언보다 조금 더 아랫단에 자리한 채 사람들을 바라보던 르타오는 저 멀리 조금씩 붉게 변하는 하늘이, 노을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미친……!”
드래곤 르타오는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으며 멍하니 한 곳을 바라봤다.
라라라—라라라—
공연을 앞두고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 퍼졌지만. 누구 하나 그 음악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콰앙! 콰아앙-
콰직, 쾅!
사방을 부수면서 다가오는 거대한 무언가를 바라볼 뿐.
드래곤만큼 오래 산, 이 땅에 존재하는 수인 중 가장 오래 산 존재.
가히, 영물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존재.
스스슷–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백사가 노을을 등지고서 라이언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언은 그 백사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그를 향해 날아오는 백금발의 남자.
“어디서 인성이 덜된 어린놈이 어르신을 꼬나봐?”
고룡 에르하벤은 한마디를 툭 내뱉더니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금빛 먼지가 그의 주위에 맴돌다가 그 손짓을 따라 움직였다.
콰아아아아아—!
무대 위에 공연이 아닌, 굉음이 울려 퍼졌다.
1071
휘이이—
바람이 불었다.
굉음이 사라진 무대 위에는 어느새 드래곤 라이언이 서 있었다.
그의 손에 펼쳐진 방어막이 에르하벤의 공격을 막아냈다.
피식.
고룡 에르하벤이 그를 내려다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라이언은 그런 에르하벤과 그 너머 백사 위샤를 눈에 담았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축제 공연을 앞두고 살짝 들떴던 분위기는 혼란으로 가득 찼다.
“주군!”
그는 제 수하 마법사의 다급한 음성 속에 서린 불안감도 읽어냈다.
마지막 집행, 위대한 대업을 앞두고 벌어진 돌발 변수가 불길함을 느끼게 만들었으니까.
라이언의 입이 열렸다.
“먹잇감이 더 들어왔구나.”
그 말을 들은 노인 마법사의 눈동자에 걱정이 사라졌다.
‘맞아, 그래!’
먹잇감이 더 늘었다.
제물로 바칠 것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라이언은 위대한 신이 될 터.
‘그 길을 놓칠 순 없지!’
노인 마법사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뿐만 아니었다.
라이언의 최측근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자마자 바로 행동했다.
“당장, 저 늙은 뱀을 잡아!”
“백사를 막아라!”
마법사와 기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행동이 허술하진 않았다.
“성기사와 이단심문관들이 잡지 못한 녀석이야!”
“방심하지 마라! 저 여자의 힘은 수인 이상이다!”
대업을 위해 은밀하게 배치해두었던 병력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특히 마법사들은 곧장 마정석을 꺼내들어 합동 마법진을 그리며 백사를 상대할 준비를 했다.
더불어 그들은 백사만 신경 쓰지 않았다.
“조용!”
“날뛰는 놈은 이 검이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곧 정리될 상황이다! 우리가 지정한 자리에서 대기하도록!”
백사와 드래곤의 등장.
그로 인해 혼란을 느끼는 거주민들이 경거망동하지 못하도록 곧장 제지에 들어갔다.
병사들이 움직였고, 그 뒤를 이어 기사들이 움직였다.
그 기사들 중 라이언의 레어, 지하로 향하는 입구를 지키던 엘프 기사도 빠르게 움직이다가 멈칫했다.
“뭐지?”
그의 시선이 자신의 등 뒤로 향했다.
수하들이 다른 기사들과 다르게 움직임이 묘하게 굼떴다.
엘프 기사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그는 제 수하들에게로 다가갔다.
“너희들, 죽고 싶나?”
그는 제 수하들이 왜 그러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백사와 싸우고 싶지 않나?”
그의 수하들 중 상당수는 수인족 출신이었다.
비록 광폭화를 제대로 못 한다지만, 오러를 사용할 수 없는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하면 그 신체적 능력이 뛰어나 기사로서 적격이었다.
“동족과 칼을 겨누고 싶지 않겠지. 하지만 그러다간 너희가 죽어. 그리고 너희 가족이 죽을 거다.”
그 역시도 고향 마을을 지키기 위해 억지로 이 일을 하는 중이었다.
때문에 그는 제 수하들에게 으름장을 놨다.
“움직여. 지금 너희를 주위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그들 외에도 다른 기사들과 마법사. 라이언의 수하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서 제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그 여파가 그의 수하와 수하들의 가족, 그의 마을에 죽음으로 나타날 터.
“대장.”
그때, 수인족 기사 중 한 명이 굳은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지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십니까?”
“…모른다.”
그는 수하의 얼굴을 외면했다.
‘보나 마나 수인족들을 데려다가 끔찍한 짓을 하고 있겠지.’
한동안 지하로 끌려간 수인족들 중 되돌아온 자는 없었다.
그들이 무슨 짓을 당했는지 그 이상은 알고 싶지 않았다. 모른 척하고 싶었다.
때문에 그는 이를 들쑤시는 수하에게 차갑게 말했다.
“너희도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나?”
그의 수하들 중 일부는 억지로 명령에 의해 기사로서 지내는 이들도 있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또 다른 일부는 라이언의 밑으로 들어가 한자리 차지하려고 이 일을 맡은 자들도 있었다.
그중 지금 그에게 말을 건넨 수하는 억지로 일하는 이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지하로 내려간 수인족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캐내려고 몇 번 움직이다가 엘프 기사에게 들켜서 주의를 받았던 녀석이었다.
그 때문에 이 녀석은 라이언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수인족 기사들에게 무시를 받거나 외면을 받기 일쑤였다.
‘…이상하군.’
그런데 지금 그가 앞으로 나서도 그 반대쪽 수인족 기사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두려움과 공포에 젖어 있었다.
무엇에 대한 공포인지는 몰랐다.
“…대장도 저와 같은 처지니까, 보여드리는 겁니다.”
“뭐?”
“일단 이거 보고 결정하십시오.”
“야, 인마!”
그는 결국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데, 뭔 쪽지를 보라고-”
하지만 펼쳐진 쪽지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 그는 멈칫했다.
쪽지는 2장이었다.
그 아래, 쪽지의 일부도 보였다.
먼저 온 쪽지가 아래에 있었고, 위에 있는 쪽지가 그 후에 온 쪽지였다.
엘프 기사는 움직일 수 없었다.
‘제물? 의식? 죽은 마나?’
그가 상상했던 끔찍한 일을 넘어선 정보가, 외면하고 있던 진실이 눈앞에 닥치자 그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갔다.
그의 귓가로 수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돌아가는 꼴로 봐서는 이 쪽지 내용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대장, 드래곤 두 마리에 우리 수인들까지 제물로 바치면 끝일까요?”
엘프 기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주위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하의 눈동자에 비친 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이야!’
그때, 바람 정령의, 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이언의 밑에서 일하고 난 후로, 제 부탁을 곧잘 들어주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던 친우가 나직이 말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엘프는 친우의 말이 가슴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말을 들은 이는 엘프뿐만이 아니었다.
“장로님.”
노인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답하지 않고서 손에 들린 쪽지를 바라봤다.
격변기 후에 태어난 그는 어느새 자신의 부족에서 가장 나이 많은 이가 되었다.
그의 부모는, 선조는 모두 사냥당해 남아 있지 않았다.
광폭화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자들만이 남은, 반쪽짜리 호랑이족.
그 때문인지 본디 오랜 수명을 지니는 호랑이 수인임에도 그는 이미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듯 늙어버렸다.
어쩌면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그 고생 끝에 그는 결국 라이언에게 수그리고 들어가야 했으며,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차라리 그리 지내면 마음이라도 편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얼마 전부터 레어로 끌려간 부족 수인들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그는 잠들지 못했다.
그럼에도 티를 낼 수 없었다.
‘약하니까.’
늙은 제 목숨이야 언제 죽어도 상관없지만, 이곳에 자리 잡은 후 노예처럼 살아도 쫓겨 다니지 않을 수 있음에 터를 내리고 살아가게 된 부족민들을 죽게 할 순 없었다.
‘그랬는데-’
늙은 마음에 이게 정답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런 그에게 오늘 축제라고 모두 신이 났을 때, 바람을 타고 쪽지 한 장이 전해졌다.
그리고 한 시간 후 새로이 전해진 내용까지.
라이언 레어에서 벌어지는 일이 모두 적힌 쪽지들.
마지막으로 전해진 쪽지의 밑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정보를 준 이는 무작정 믿으라고 따르라고 하지 않았다.
본 것을 토대로 생각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6시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호랑이족 족장은 어느 것 하나 쉬이 판단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백사 어르신-”
이 땅에 남아있는 수인족들에게 마지막 희망이자 자존심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백사였다.
다들 쉬쉬했지만, 어딘가에 살아있을 그녀가, 가장 오래 살아남은 그녀가 있는 한 수인족은 마냥 멸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 기대만큼이나 백사는 거대했다.
용에 버금가는 거대한 몸체를 지닌 뱀은 위압감이 엄청났다.
그녀를 공격하는 기사와 병사, 그리고 쏟아지는 마법 속에서도 그녀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