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029
콰아앙! 콰앙!
굉음 속에서도 그녀는 마법을 피하거나 혹은 몸으로 막으며 앞으로 전진했다.
노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늑대, 사자, 곰.
주로 맹수 계열의 수인들이 보였다. 물론 아닌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 대부분이 라이언에게 목숨줄이 잡힌 신세였다.
노인은 그들 사이로 자신과 같은 처지, 즉, 족장 혹은 그만한 위치에 있는 이들과 시선을 마주쳤다.
‘너희도 받았구나.’
그들도 이 쪽지를 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다만 누구 하나 쉬이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을 뿐.
하긴 2시간 전에 받은 정보에 당장 움직이기에는 그들이 그간 받은 고난이 가볍지 않았다.
“뭐 하는 거지?”
그때, 날카로운 창끝이 노인의 앞에 나타났다.
기사가 눈을 부라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저기로 가! 허튼 생각하지 말고!”
백사를 보고 괜히 희망을 가져 날뛰지 마라.
기사의 말에 담긴 속뜻을 노인은 너무나도 잘 알아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있어도 될까?’
그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어르신.”
이 쪽지를 본 몇 안 되는 호랑이족 수인. 그는 다음 대 족장이 될 자였다.
그의 눈동자 속에 서린 분노와 열기를 읽었다.
‘하지만 광폭화도 제대로 못 하는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싸우라면 싸울 수 있다.
하지만, 라이언을 상대하는 저쪽은 아직 드래곤 한 명과 백사 어르신 한 명이 고작이었다.
저들로 이길 수 있을까?
라이언을 설사 죽인다고 해도, 그 뒤에는 드래곤 로드와 다른 용들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결국, 쫓기고 죽임을 당하는 신세로 살아갈 텐데?
‘그렇다고 싸우지 않아도 죽는 신세 아닌가?’
제물로 바쳐질 텐데?
노인은 기가 막혔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이지?
어디로 가나 결국 끝은 죽음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지금 명령이 안 들리나?”
기사가 창끝으로 그의 손을 툭 찔렀다.
“너, 그 손에 쥔 거 뭐지?”
쪽지를 본 기사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콰아아앙! 콰앙!
굉음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야, 넌 뭐냐?”
그리고 노인은 제 앞을 막아서는 족장 후보를 볼 수 있었다.
노인을 지키기 위한 행동일 터.
노인은 그 등을 보는 순간, 주변의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이동 안 하나?”
“이것들이, 왜 갑자기 말을 안 들어! 죽고 싶어?”
수인족들이 말을 안 듣고 있었다.
특히 일반 수인족들이 아니라, 노인처럼 쪽지를 받아본 게 틀림없는 수뇌부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안 움직이는 게 아니라, 못 움직이고 있다.
이런 정보를 손에 쥐었는데.
진실을 알게 되었는데.
어찌, 저들의 말을 듣는단 말인가.
노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쪽지가 구겨졌다.
광폭화를 제대로 못 하는 수인족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약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래 봬도, 노인은 호랑이족이다.
맹수 계열의 수인족들은 기본적인 천성이 어느 정도는 공격적인 면이 강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같을지도 모르겠구나.”
노인의 중얼거림을 들은 기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 노인네가!”
반대로 그의 앞을 막아서던 호랑이족 청년은 웃었다.
“하하!”
후련함을 담은 웃음이었다.
청년은 말했다.
“할까요?”
노인은 쪽지 속 마지막 당부를 기억했다.
도망칠 준비?
그런 거 없다.
평생 도망만 치다가 온 그들은 언제든 도망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짐 없이, 몸만 내빼기도 힘든 세상이었으니까.
한 몇 년 여기서 노예처럼 살았다고 해도, 도망친 경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할까요?
그 물음에 노인은 답했다.
“그래. 하자꾸나.”
어디 도망쳐보자.
어떻게든 살아야 하지 않겠나.
다만, 그들의 도망은 반드시 수반되는 것이 있었다.
“이, 이놈이-!”
콰직.
청년이 기사의 창대를 붙잡았다.
더불어 그의 몸에 미세하게 털이 자라났다.
반쪽짜리 광폭화.
도망을 치려면 일단 시간을 벌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부족민을 위해 적과 싸워야 했다.
노인은 저를 향한 부족민들의 눈동자를 보며 말했다.
“도망쳐야 한다!”
일순 부족민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와 눈을 마주치는 다른 수인족 수뇌부들.
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도 마주 끄덕여주고는 움직였다.
“비키거라.”
“어르신?”
투둑. 투둑.
그의 몸이 커졌다.
그가 지금껏 족장인 이유는 다른 이들보다 그래도 광폭화를 어느 정도 해내었고, 가장 강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늙은 몸.
다음 대를 위해, 시간을 벌어야 할 존재는 자신이 되어야 맞았다.
그리고 이는 다른 부족의 수뇌부들 역시 마찬가지인 듯싶었다.
“크큭.”
노인네들이 다 나서고 있구만.
그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래, 백사 어르신이 나서는데 나이 든 우리가 그다음으로 나서야 예의에 맞지 않겠나!
콰지직!
노인이 창대를 쥔 순간, 그 창대는 가볍게 찌그러졌다.
이조차도 본래의 호랑이족에 비하면 형편없는 힘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아직 강했다.
“이것들이!”
기사가 분노를 토해낸 순간이었다.
삐이이이—
날카로운 신호음이 울려 퍼졌다.
“허.”
노인은 탄식을 흘렸다.
라이언의 레어 문이 열리며 병력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 저자는 1성 드래곤.
드래곤 로드의 심복이었다.
그런 자의 병력은 그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았다.
레어에서 끊임없이 병사와 기사가 나왔고.
끼이익!
닫혀있던 성문들이 열리며 성 밖에서 수많은 병사와 기사, 그리고 마법사들이 등장했다.
‘역시 수인을 모두 몰살시키려 했구나.’
하긴, 드래곤 두 마리를 잡으려면 병력을 엄청 준비해야겠지.
성 밖으로 도망쳐도 지옥이겠구만.
노인은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의 기세는 더 강해졌다.
이런 상황이면-
더 싸워야지.
그리고 더 도망갈 틈을 만들어야지.
그의 주먹이 움직였다.
쾅!
기사의 허리춤에서 뽑아낸 검과 그의 주먹이 부딪쳤다.
“하! 죽고 싶어서 환장했군!”
기사가 비웃음을 날리며 검을 다시 휘두르는 순간이었다.
노인은 예비 족장에게 말했다.
“어서, 길을 뚫어!”
그때였다.
‘어?’
그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아직 노을이 지는 와중에 드리운 그림자.
고개를 들었다.
‘새-’
새가 보였다.
한 마리가 아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까마귀들이 노을을 등지고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촤르르르-
그리고 갑자기 물소리가 들렸다.
콰아아아아아—
뒤이어 굉음이 울려 퍼졌다.
드래곤들이 싸우는 쪽에서 들렸던 굉음에 버금가는 큰 굉음에 고개를 돌린 노인은 무너지는 성벽을 볼 수 있었다.
그 성벽 위에 자리한 한 여인.
“……!”
노인은 저 존재의 정체를 보자마자 알았다.
물을 휘감은 여인.
“고래 수인-!”
멸종된 줄 알았던 고래가 나타났다.
하지만 노인은 그 여인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부서진 성벽.
그 잔해를 밟으며 넘어오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의 옷과는 다른, 넓은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들어서는 이들은 하나같이 여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덩치나 모양새를 본 순간, 노인의 동공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호, 호랑이-!”
호랑이 수인들이 틀림없었다.
그것도 제대로 광폭화를 한, 호랑이 수인이었다.
“어떻게, 아니, 저들은, 아니-”
노인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인간의 범위를 훌쩍 넘어선 거대한 덩치. 그리고 온몸을 뒤덮은 털과 날카로운 손발톱. 모두 어릴 적 그가 보았던 제대로 광폭화를 했던 호랑이족의 모습이었다.
“네놈들은, 커억!”
새롭게 나타난 그들에게로 향했던 기사 한 명이 호랑이족 수인의 손아귀에 가볍게 잡혔다.
“…….”
호랑이족 수인은 그 기사를 빤히 보다가 그대로 내리쳤다.
콰앙!
성벽에.
기사의 갑옷이 찌그러지고, 그의 손발이 뒤틀렸다.
하지만 호랑이족 수인은 가볍게 손을 털더니, 고개를 들었다.
“싸우면 되오?”
그때였다.
삐이이-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까마귀들이 무리를 나뉘어 흩어졌다.
그 순간, 노인은 까마귀들 위에 서 있는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인간도 있었고, 엘프도 있었고, 드워프도 있었다.
그리고-
“저분이-”
호랑이족 수인이 피리를 불고 있었다.
“아-”
노인은 감격에 겨워 외쳤다.
“호랑이가 돌아왔구나!”
그리고 가샨은 입을 열었다.
“가자.”
그 말을 시작으로 호랑이족 전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 그 수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죽음의 협곡에서 그러했듯이, 그들은 수가 적다고 얕볼 존재가 아니었다.
특히 분노로 가득 찬 그들을 막기에는 오러도 마법도 쓰지 못하는 이곳 존재들은 약했다.
“아.”
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다른 수인족들은 그저 감탄을 흘렸다.
어찌 되었든 같은 수인족들이, 그것도 제대로 광폭화를 한 존재가 나타난 것에 그들의 온몸에는 힘이 감돌았다.
그들 중 늑대족 수인들이 모여 있는 곳.
라이언성에 있는 맹수 계열 수인족 중 가장 많은 개체 수를 차지하는 쪽은 늑대였다.
그들 역시도 이 상황을 이용해 도망가려던 찰나, 그들의 대장 격인 안센은 까마귀 위에 올라탄 이들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쾅!
콰앙!
쾅!
아래로 떨어진 그들은 굉음을 내며 가볍게 착지했다.
그리고 늑대족 수인들 앞에 떨어진 한 명이 그들 앞으로 다가왔다.
“아, 안녕하세요?”
호리호리한 젊은 청년이었다.
늑대 수인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챈 안센은 뭐라 입을 열려다가 흠칫했다.
“지금은 급하니까, 일단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소년에 가까운 청년은 그리 말하고는 그들에게서 등을 보이며 뒤돌아섰다.
“아.”
안센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청년의 등이 점점 더 커졌다.
호리호리하고 위축되어 보였던 모습이 사라져갔다.
“설마-”
하지만 청년은, 라크는 안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쿵. 쿵. 쿵.
그는 제 심장의 소리에 집중했다.
분노와 책임감, 싸우고 싶은 마음, 모든 것을 바꾸고 싶다는 다짐.
그 모든 것들에 답하듯 심장이 더 더 격렬하게 뛰었다.
쿵. 쿵. 쿵.
라크의 덩치는 지금 제대로 광폭화를 한 호랑이족 전사들을 가뿐하게 넘어섰다.
소년처럼 보이는 청년의 칙칙한 회색 머리칼은 그 얼룩을 벗어던지고 은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의 온몸을 은빛 털이 뒤덮었다.
그리고 그 은빛 털은 은은하게 푸른빛을 내뿜었다.
마치 노을이 지고 찾아올 밤에 드리운 별빛처럼 자라난 은빛 털은.
밤을 지난 새벽에 찾아오는 푸르스름한 하늘과 같은 푸른 빛깔을 머금었다.
그리고 맑은 눈동자는 한낮의 태양을 품은 하늘처럼 청량했다.
족장 안센의 눈동자는 라크를 보며 떨리고 있었다.
어린 청년이 어떻게 제대로 광폭화를 했는지, 물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 했다.
“…푸, 푸른 늑대-”
그는 저도 모르게 자신이 믿는 신의 이름을 읊조렸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나타난 광폭화한 수인족 중 라크가 가장 컸으며 존재만으로도 빛나고 있었으니까.
푸른 늑대.
그 이름 그대로의 존재가 눈앞에 나타났고, 이를 안센은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라크는 맑은 눈동자로 한 곳을 바라봤다.
케일이 있을 곳을 잠시 본 그는 눈을 감았다.
‘라크. 수인족들을 도망 보내는 일을 너도 도와라.’
케일의 명령을 기억하며, 라크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웅크렸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밥값은, 내 몫은 해야 하는 법이다.
그는 뒤를 돌아 안센에게 말했다.
“곧 길을 안내할 동료들이 올 겁니다. 그들을 따라가십시오.”
동료?
정신없는 와중에 안센이 그 말에 멈칫했을 때.
“이제 나도 제대로 싸워도 되겠네?”
백사가 얕은 웃음을 내뱉으며 방어만 하던 행동을 바꿨다.
그녀는 꼬리를 들어 올렸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기사들이 있는 쪽을 내리친 꼬리에 땅이 진동했다.
쓰스스스–
백사가 입을 벌렸다.
그녀의 입가 주위에 녹빛의 연기가 피어올랐다.
“독이다!”
백사가 독을 뿜어내기 시작했으며, 그녀의 녹빛 눈동자가 살벌한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안센을 비롯한 수인족들은 또 다른 동료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땅이 들썩이더니 곳곳에 구멍이 생겼다.
백사보다는 젊지만 오래 살아남은 광폭화가 가능한 수인들.
그들 중에 맹수 계열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그럼에도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은 여러 의미로 강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이 백사의 ‘집합’을 듣고 모두 모였다.
“찍, 찍!”
작은 덩치의 쥐 수인이 두더지 수인과 함께 나타났다.
“이리로 와!”
가샨의 까마귀 사이에 있던 참새, 벌새 수인이 슬그머니 땅으로 내려서더니, 수인들에게 말했다.
“길을 안내하마!”
“따라와!”
지난 일주일.
비밀 기지의 토굴을 이용해서 사막 밖으로 나갈 통로를 십여 개 이상 만들었다.
그리고 지하뿐만 아니라 밖으로 나갈 길도 마련해두었다.
이를 위한 호위는 수인족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사막은 우리 전문이지.”
다크엘프 타샤가 동료들을 이끌고 성 밖에 자리한 기사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 곁에는 당연히 아치와 위티라가 함께였다.
콰아아앙!
물채찍 한 번에 성벽에 금이 가거나 심하면 무너져갔다.
성이 무너지면 도망갈 곳이 더 많아질 터.
그렇게 수인족들의 도망을 돕는 이들은 혼란에 가득 찬 거주민들도 도왔다.
가샨이 까마귀를 통해서 끊임없이 케일의 지시를 전했다.
“무대에서 다 멀어지게 해.”
수인족이건 인간이건.
이 싸움과 상관없는 이들이 라이언에게서 멀어지게 해라.
제물을 더 늘리면 안 되니까.
그리고 가샨은 성벽뿐만 아니라, 이 성을 옭매는 족쇄를 하나 더 무너뜨릴 방법을 케일에게 들어두었다.
그렇기에 동료들에게 지시했다.
“이름을 부르게.”
간단한 말이었기에 모두 알아들었다.
“크하하!”
범고래 수인 아치는 큰 웃음을 터트리더니, 성안으로 들어갔다.
쏘옥, 성안에 한 발을 걸친 그는 외쳤다.
“라이언!”
불러서는 안 되는 그 이름을 부른 순간.
삐이이–
이 성을 감싼 마법이 발동했다.
감히 라이언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타나면 곧장 발동되는 마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