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06
105화.
“검투?”
“네.”
이거 뭔가 불길함이 밀려왔다.
최한은 케일의 굳은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마차 창 너머 영주성 성문에 시선을 고정하고 말을 이었다.
“어느 대회에 나가려는지는 몰라도, 특히 두 사람 실력이 상당하군요. 그들이 결승에 올라갈 것 같습니다.”
최한의 눈빛이 꽤 날카로웠다.
“음, 주로 사용하는 무기가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꼭 검으로만 싸우는 건 아닌가 보네요? 한 사람은 한쪽 어깨를 보면 활을 주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케일은 론을 쳐다봤다. 론이 씨익 웃어 보였다.
“시종하는 암살자도 있는데, 요리, 예술이라고 없겠습니까.”
케일은 잠시 이곳이 판타지 세상임을 잊었다.
이 세상은 평범하게 생긴 요리사가 극독 전문가였고, 수선집에서 일하던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철사를 뿌리며 가장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그런 세상이었다.
“최한.”
“네.”
“헤니투스 영지의 추수제에는 요리, 그림, 조각 대회만 있다.”
케일은 최한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아, 그렇군요! 무술은 취미로 했나 봅니다.”
별것 아니라는 듯 넘기는 최한의 모습에 케일은 역시 주인공다운 반응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 앞발만큼 강한 인간들은 아니다!”
“누나, 우리가 이길까? 대회 나가고 싶은데.”
“넌 요리도 그림도 조각도 할 줄 모르는데.”
자신의 옆에 있는 존재들을 보며 케일은 이 세상이 원래 이런 세상임을 인정했다. 마차는 영주성을 지나쳤고 곧 백작가 정문이 보였다. 케일은 론에게 물었다.
“대회 일정이 어떻게 되지?”
어차피 영지 안엔 강자가 많을수록 좋았다. 론이 일정표를 건넸다. 케일은 일정표를 보며 최한에게 물었다.
“얼굴 기억하지?”
“네.”
정말이지, 먼치킨 세상은 엄청났다. 강자들이 왜 이리 많은지. 약한 자신이 버티기에 참 힘든 세상이었다.
케일은 마차 구석에 앉아 있는 로잘린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그녀는 북쪽 연합에 대해서 말해주고 난 후로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공자, 일단 막내, 그러니까 4왕자를 만나보고 난 뒤 대화를 청해도 될까요? 물론 연합과 관련된 부분은 바로 동생에게 말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어제 로잘린이 찾아와 건넨 말이었다. 그 말에 케일은 편한 대로 하라고 하였다.
“워워워-”
마부석에 있는 부단장 힐스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차가 멈췄다. 백작가에 들어가지 않고 정문 앞에서 마차가 멈췄다. 케일은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리며 마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라온이 투명화했다.
“어디 가지?”
“오라버니!”
막내 동생 릴리가 정문 앞에 서 있었다. 7살의 아이는 여름 내내 햇볕을 많이 쬔 듯 많이 타 있었다.
“훈련을 열심히 했나 보네.”
“네! 열심히 했어요!”
아주 당당하게 열심히 했다고 말하는 릴리는 꽤 성장한 것 같아 보였다. 이렇게 탈 정도로 훈련했으니, 실력도 꽤 늘었으리라. 케일은 릴리의 허리춤에 목검이 하나, 그리고 등 뒤로 조금 기다란 목검이 사선으로 매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시선에 릴리가 멈칫하더니, 재빨리 입을 열었다.
“등에 맨 것은 그냥 긴 목검이 궁금해서 만들어본 거예요!”
“그래?”
목검에 여기저기 긁힌 흔적들이 있는데? 꼭 나무토막을 목검으로 내려친 자국 같은데?
“네! 그렇습니다!”
심하게 존대를 하며 릴리는 케일의 눈을 피했다. 그리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은 기사단 훈련이 다 끝나서! 놀러가는 길이에요! 어머니께 허락 맡아서 한 시간 동안만 나갔다 와요! 그리고 요 앞에 영주성 근처에 식당들 골목으로 가는 것이라 안전해요!”
7살은 아주 구구절절 케일에게 설명했다. 케일은 설명을 부탁하지도 않았고 그저 쳐다봤을 뿐인데, 마치 찔리기라도 하듯 열심히 설명했다.
“그래. 잘 갔다 와라. 저녁때 보지.”
“네, 네!”
케일은 가보라는 듯 손짓했고 릴리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면서도 아주 빠르게 영주성 앞 식당 골목으로 달려갔다. 그곳은 주로 영주성 고용인과 관리들이 식사를 하는 곳으로 가격도 저렴하면서 깔끔한 곳이었다.
케일은 마차에 올라타며 생각했다.
‘수상한데.’
꼭 어디 무협에서 은둔 고수와 인연이 닿아 스승으로 모시며 배우는 문인 가문의 막내 같지 않은가? 케일은 론과 시선이 부딪쳤다. 론의 왼팔은 아직 2주 정도는 더 있어야 완전히 완성이었다.
“알아봐.”
“네, 도련님.”
설명하지 않아도 론은 척하면 척이었다. 이 세상에 더 오래 산 음흉한 노인네는 케일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이미 백작 부인이 릴리에 대해 알아봤을 것 같지만, 자신도 알아보는 편이 나았다. 케일은 요리 대회 일정을 확인했다.
그는 일정표를 든 채 백작가로 돌아왔다. 현관을 통해 들어서는 그를 반긴 이는 예상 밖이었다.
“바센.”
“형님.”
“음, 기다리고 있었나?”
바센은 케일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손에 들린 서류를 펼쳤다. 케일은 현관문 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하고 애매하게 선 채 바센의 모습을 지켜봤다.
“축제 동안 머무신다 들었습니다.”
“그래.”
“축제 때 영지 대회 시상을 형님이 하셨으면 하는데, 될까요?”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바센의 손에 들린 서류는 영지 일이었다. 이제 바센이 영지 일을 할 정도가 된 것이다. 케일은 아직 제대로 된 영지의 서류 하나 만져본 적이 없었다.
좋은 신호였다. 하지만 의문이 생겼다.
“아버지는?”
“아버지는 축제 개회사는 할 예정이신데, 작은 대회들을 모두 챙기기에는 바쁘다고 저나 형님, 릴리 중에 하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심사 위원장이시라, 심사 위원상을 시상하십니다. 형님은 대상이고요.”
“네가 하지?”
케일은 썩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바센이 해야 사람들에게 바센이 더 기억되지 않겠는가.
“저는 영지 일로 바쁩니다. 현재 영지 행정 관련 일을 배우는 중이라 대회 시상을 하려면 참관도 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케일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바센이 영지 행정을 배운다고 바쁘다는데. 이런 걸 착실히 배워놔야 영주가 되지 않겠나. 까짓 한 해쯤 자신이 시상한다고 사람들이 깊이 기억하겠나? 그다음부터 영지 행정을 다 배운 바센이 하면 될 일이었다.
“그래. 네가 바쁘다니 내가 해야지. 앞으로 이 영지의 행정을 비롯한 전반은 네가 이끌어가야 하지 않겠어?”
군사는 릴리가 한다고 열심히고.
“든든하구나.”
케일은 바센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응원했다. 바센은 굳센 다짐을 담은 표정으로 신중히 말했다.
“네. 형님, 믿고 맡겨주십시오.”
그럼, 기꺼이. 이 영지는 너랑 릴리 거다.
케일은 오랜만에 기분 좋게 홀가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리하지 말고. 나는 이만 들어가마.”
그는 바센을 지나쳐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그 걸음은 느긋하면서도 사뿐사뿐 가벼웠다. 바센은 그런 형의 뒷모습을 보다가 케일 일행의 인사를 받고는 영주성으로 향했다.
그는 자신이 릴리처럼 무에 재능이 뛰어난 것도 아니기에, 최대한 열심히 행정을 배워 행정 전문가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열다섯. 꿈이 생긴 바센 헤니투스였다.
그 꿈을 온 가족이 응원해 주었다. 그 사실을 떠올리며 바센의 무뚝뚝한 얼굴 위로 미소가 맺혔다.
케일이 알면 기절을 할, 차마 응원해 주지 못할 꿈이었다.
***
케일의 얼굴 위로 지루함이 나타났다. 지긋지긋함에 가까웠다.
-그런 얼굴은 그만하지?
“저하도 같습니다만.”
왕세자 알베르도 지겨운 표정으로 케일을 쳐다봤다. 영상 통신구로 요즘 매일 마주하는 두 사람은 이제 서로가 지긋지긋했다. 그럼에도 할 일이 있어 계속 연락하게 되었다.
-4왕자는 결국 수행 기사 셋을 데리고 헤니투스 영지로 향할 것이라고 말하더군. 내일 내가 제국을 떠나니 그 일정에 맞춰 생각하면 될 거다.
“네. 로잘린 씨에게 전해두죠.”
늦어도 한 달 안에는 4왕자가 도착하리라.
-데르트 백작에게도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아버지가 로잘린이 왕녀였던 것을 알고 있었나? 말한 적 없었지만, 부집사 한스가 알고 있었기에 아버지 데르트 백작도 알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도 이름 있는 귀족 가문 수장인데.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케일의 귓가로 왕세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웃긴 얘기 하나 듣고 싶지 않나?
“전혀요.”
저도 모르게 속마음이 바로 튀어나와 버렸다.
-들려주지.
그리고 이를 가뿐히 무시하는 왕세자 알베르였다.
-태양신 교단 교황이 어떻게 죽었는지 아나?
“저하, 이런 얘길 지금 제국에서 저한테 막 하셔도 됩니까?”
-소리 차단 마법쯤은 해뒀지. 내가 누군가?
누구긴. 수많은 마법사들을 거둔 왕세자였다. 마법 장치야 많을 것이다. 케일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알베르는 말을 이었다.
-축제 시작을 알리는 황제의 말 다음으로, 태양신 관련 행사라 교황도 축사를 했지. 그 장소는 제국 수도 태양신 신전 앞 단상 위였어.
알베르는 그때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교단은 황제보다 낮았지만 황제 옆에 서 있던 황태자보다 높았다. 교황의 위상을 말해주는 단면이었다. 그건 쓴웃음을 지을 일도 아니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 단상이 날아갔지.
“네?”
-신전과 단상이 모두 날아갔다.
케일은 순간 하이스 섬 5가 떠올랐다.
“폭발입니까?”
-참, 잘 알아들어. 그래, 폭발이야.
미쳤네. 케일은 딱 그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황태자가 벌인 짓인 줄 알았는데, 황태자는 그런 티 나는 짓을 할 인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태양신 교단 쌍둥이가 범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와 비슷한 형태였지.
우리. 그 단어에 케일의 표정이 달라졌다. 알베르가 우리라고 칭할 만한 폭발은 수도 마법 폭탄 테러 사건뿐이었다.
-쌍둥이와 검은 옷을 입은 자들. 마법 폭탄. 그 파괴력은 수도에서 목격한 것과 같은 정도였어. 감이 오지 않나?
케일은 아무 말 없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이해한다는 듯 알베르는 말을 이었다.
-다행히 나는 마법사 실드 덕에 살았지만, 교단 앞에 있던 신도들은 엉망이 되었지. 교황만 죽은 게 아니란 소리야.
-난 그런 짓을 한 그 단체를 반드시 찾아내어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야. 우리 왕국에도 그런 짓을 할 계획이었단 소리였으니까.
알베르는 그 마법사를 아직도 잊지 못했다.
-이번에는 그 마법사가 아닌 다른 마법사였지만. 어쨌든 그 마법사 녀석을 잡아 꼭 벌을 줄 생각이네.
“음, 저하.”
-그래.
“그 마법사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뭐?
“죽었습니다.”
케일은 왕세자의 시선을 회피했다.
-…죽였나?
“제가 안 그랬습니다.”
그건 진실이었다. 비록 최한이 양팔을 자르고 두 눈을 뺏었지만. 그래도 죽인 건 최한이 아니었다. 그 미친 검사였다.
-하.
깊은 한숨이 들려왔다. 케일은 그 한숨에 신경 쓰지 않았다. 안 그래도 머릿속이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태양신 쌍둥이와 마법 폭탄. 이게 찝찝하단 말이야.’
하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새로운 사건이라 인과 관계 파악이 어려웠다. 그렇다고 론이나 일행 보고 알아오라고 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케일의 바람은 그저 자신에게 불똥이 튀지 않는 것이었다.
-…앞으로 그런 건 좀 말을 해주도록.
“네.”
아주 여유롭게, 느긋하게 대답은 잘했다. 알베르는 머리가 아파왔다. 그는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4왕자가 도착하면 연락하도록. 4왕자는 상당히 예의 바르고 점잖은 이더군. 얘기 나눠보면 좋을 거다.
싸가지 없다던데? 징징거린다던데?
케일은 로잘린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두 사람의 영상 통신은 끝이 났다. 케일은 한동안 통신할 일이 없는 영상 통신구를 마법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다음 날, 케일은 차양이 펼쳐진 자리에서 느긋하게 아래를 내려다봤다. 가운데 널찍한 공간을 두고 동그랗게 관중석이 세워져 있었다.
그곳에서 가장 높은 곳에 앉은 케일은 종이를 펼쳐 들었다.
-이제 대회 하나?
라온의 물음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부터 하루씩 대회가 열렸다.
-그런데 인간, 나중에 밤에 야시장 구경 가나?
케일은 오늘 아침 라온에게 화폐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내가 사달라는 거 다 사주나?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쯤이야, 사주고도 남았다. 케일의 머릿속으로 히히거리는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시선을 아래로 두었다.
고양이 온과 홍의 목에 주머니가 달린 목걸이가 각각 있었다. 용돈이었다. 검은 로브의 메리도 우두커니 앉아 검은 주머니를 들고 있었다. 역시 용돈이었다.
“난 참 어떨 때 보면 배포가 크단 말이야.”
-맞다! 착하다, 인간!
로잘린이 보았다면 다시 황당해했을 만한 말을 내뱉고는 케일은 옆에 선 최한과 론을 보며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 종이가 한 장 놓였다.
“이 셋이란 말이지?”
요리사. 화가. 조각가.
순서대로 적힌 인적 사항을 따라 최한이 설명했다.
“전직 기사단장, 궁사, 살수입니다.”
참나. 케일은 기가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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