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08
107화.
분명 케일은 예의 바른 자세로 앉아 있었다. 쿠키를 먹는 자세마저도 귀족다워 보였다.
오독. 오독.
최대한 예의에 맞게 소리를 최소로 줄였음에도 쿠키 부서지는 소리는 잘 들렸다.
-쿠키 맛있나, 인간?
케일은 라온이 침을 꼴딱꼴딱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하, 하실 말씀이라도?”
“아, 아니다.”
질질 짜던 4왕자 펜은 황급히 케일을 외면했다.
로운 왕국의 왕세자 알베르 크로스만은 케일에 대해 ‘유능하고 예의 바른 이’라고 소개해 주었다.
‘장차 왕국의 보물이 될 거라 생각하는 이가 케일 헤니투스지요.’
하지만 펜은 브렉 왕국의 별이었던 큰누나를 모시는 이로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펜은 처음 케일을 마주했을 때는 얼굴 반반한 귀족 정도로 보았다. 헤니투스 영지도 영주성과 성벽이 공사 중이라 어수선했고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뭐야?’
펜은 로잘린과 케일의 관계가 자신의 예상과 다르다는 것을 대번에 눈치챘다. 로잘린과 케일은 동등해 보였다.
“크흐흑, 누나.”
그 사실에 펜은 울컥거렸다.
“누나, 왜 이런 사서 고생을, 크흑.”
“펜, 여긴 네가 운다고 달래줄 누나가 없단다.”
로잘린은 미소와 함께 상냥한 목소리였지만 살벌했다.
“펜, 왜 왔니?”
“누나 보고 싶어서. 누나는 우리 왕국의 자랑이었잖아.”
아름답고 똑똑하고 멋지고. 특출한 것이 없는 브렉 왕가에서 로잘린은 늘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현재 왕세자인 형도 열심히지만, 그저 성실한 사람일 뿐이었다.
펜은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다. 황금 왕관이 어울리는 이는 붉은 머리칼과 붉은 눈동자의 누이. 그녀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사람들 데리고 와서 다 부수고!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해?”
다 부수었다는 말에 로잘린은 멈칫하며 케일을 쳐다봤다. 오늘따라 다가서기 힘든 분위기의 케일이 묘한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바라봤다.
케일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왕실의 궁 하나를 날려 버렸던 로잘린과 최한이었다.
“크흑, 누나는, 나 매일 매일 누나가 보고 싶었단 말이야. 그런데 이렇게 돌덩이만 있는 모자란 시골구석에 있으면!”
참고로 펜과 케일은 동갑이다.
저러는 놈이 18살이다. 케일은 그게 조금 충격이었다. 그것도 책임과 의무가 중요한 왕족 놈이 저런다는 게 놀라웠다.
‘왜 왕세자는 저놈을 진지하고 괜찮은 놈이라고 했을까?’
케일은 알베르 크로스만의 사람 보는 눈을 의심했다. 그 와중에도 펜은 쉬지 않고 입을 놀리고 있었다.
“누나, 누나가 부순 대공가 뒤처리는 내가 다 했어. 깔끔하게 정리되었고, 내가 누나 궁도 다시 복구시켰어. 재정 문제는 걱정 마. 내 궁에 배분된 예산이랑 조달청 일을 잘 관리했거든.”
오. 은근히 능력은 있나 보다.
가당치도 않을 울음을 그친 펜의 얼굴은 멀쩡해 보였다.
“누나, 여전히 누나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아.”
사실이었다. 빛나는 화려함을 가진 그녀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았다.
“넌 내가 다시 원하지도 않는 후계자 위에 앉으라는 거니? 그리고 네 형의 꿈을 짓밟고 싶니?”
로잘린의 표정이 완전히 서늘해졌다.
1왕녀인 자신의 동생인 1왕자이자 현 왕세자. 동생은 왕세자를 원하지 않았다. 다만 로잘린에게 늘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을 함께 돕고 싶다고 말한 순수한 이였다.
그 말을 듣고 그녀는 자신보다 1왕자가 왕에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도 로잘린과 1왕자의 의사를 존중해 주었다.
“…그건 아냐. 그런 말은 아니고! 하지만.”
펜은 우물거리듯 말하며 제대로 말끝을 못 맺고 있었다. 케일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냥 애네.’
뒤이어 이어지는 펜의 말에 확신했다. 4왕자이자 6남매의 막내인 펜은 로잘린을 보며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누나는 이 시골에서 뭐 하는 거야? 마법사가 꿈이라며? 그럼 대마법사 정도는 되든가. 왕위 계승자였던 사람이 이런 작은 영지에서 마법사로 얹혀서 지내는 게 말이 돼? 무슨 마탑주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영지 마법사로 만족하는 거야?”
위퍼 왕국 마탑에 가보겠다고 떠났던 누이였다. 그런 이의 지금 이 모습을 펜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누이의 붉은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로잘린의 눈동자가 깊이 가라앉아 갔다.
그때, 남매는 무덤덤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마탑주가 될지 안 될지 누가 압니까?”
로잘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펜을 보고 있던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여유로워 보이는 한 남자에게 닿았다.
케일은 흘러가는 일상을 얘기하듯 담담했다.
“전 충분히 될 것 같습니다만. 왕녀로서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로잘린 씨라면 할 것 같습니다.”
마법사로서의 로잘린. 그녀는 미래 차기 마탑주로 떠오르는 이였다. 곧 최상급 마법사에 오를 것이다. 케일은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브렉 왕국과 로운 왕국이 연합하게 된다면 그 마법사들을 이끌 사람은 그녀뿐이라 생각했다.
‘물론 우리 안전부터지만.’
케일은 적어도 자신의 일행들 능력에 대해서는 확신했다. 그는 이어 말했다.
“로잘린 씨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성장하실 겁니다.”
케일은 4왕자 펜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펜의 어깨가 살짝 흠칫했다. 제국의 황태자. 그 인간을 마주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내가 작아지는 기분.
“로잘린 씨를 못 믿습니까?”
그렇게 묻는 눈빛은 믿음이 보였다.
순간 펜은 말문이 막혔다. 케일은 이 징징대고 투정 부리는 막내 왕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믿죠?”
차분한 물음을 던지는 그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당연히, 당연히 믿는다.”
이미 정해진 대답이었다. 펜은 누구보다도 누나를 믿었다.
케일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분명 예의 바른데, 자신이 아래에 놓인 것 같았다. 펜은 눈가를 찡그렸다. 그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며 압박감과 같은 두려움을 벗어나려 외쳤다.
“감히 작위도 없는 귀족 자제가 나에게 누나를 두고 질문을 하는 것, 컥!”
촤악.
펜의 머리 위로 한바탕 물이 쏟아졌다. 로잘린의 손에 들린 워터볼이 펜의 머리 위에서 터졌다. 로잘린은 갑자기 쏟아진 물로 정신이 없어 보이는 동생에게 상냥히 말했다.
“오랜만에 너와 대화를 해야 할 것 같구나. 펜, 일어나렴.”
“누나, 내가 뭘 잘못했다고 갑자, 커헉!”
촤아아악.
펜이 로잘린을 돌아보려는 순간, 전보다 더 큰 물세례가 그에게 쏟아졌다. 펜은 물을 잘못 삼켰는지 헛기침을 해댔다. 조그맣던 워터볼과 달리 혼자 파도를 한번 뒤집어쓴 것처럼 홀딱 젖어 있었다.
-마음에 안 든다. 저 찔찔이는 우리 마법사 로잘린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고, 감히 우리 집을 비웃고 약한 인간을 하찮게 본다!
케일은 머릿속에 울리는 라온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신이 번쩍 들으라고, 아주 차가운 물로 했다! 나는 잘했다!
로잘린이 케일을 쳐다봤다. 케일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녀의 작은 워터볼과는 차원이 다른 물 폭탄이었다.
펜은 이것 또한 누나가 한 줄 안 듯, 기침을 하며 로잘린을 쳐다봤다.
“커헉, 큭. 누나, 아무리 그래도 이러면!”
“펜, 입 좀 닥치렴.”
서늘한 눈빛에 펜은 입을 다물었다. 로잘린은 케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덩달아 시선을 돌렸던 펜은 케일에게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분위기에 괜히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케일 공자, 연무장 좀 빌려도 될까요?”
뭐를 하려고 연무장이라는 단어에 펜의 얼굴이 하얘집니까.
“오랜만에 동생과 대련과 대화를 함께 하려고요.”
상냥하게 웃는 로잘린에게 케일은 당연히 답했다.
“남매 간의 대화신데, 싹 다 비워 드리죠. 충분히 즐거운 대화를 하시길 바랍니다.”
로잘린은 작게 웃음을 흘렸다. 케일 성격상, 제 동생을 좋게 보지 않고 있으리라.
‘나도 마찬가지고.’
서늘한 표정의 로잘린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그녀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영상통신 담당 마법사가 방문하셨습니다. 왕세자 저하께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케일과 로잘린의 시선이 마주쳤다. 로잘린은 펜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와.”
곧 문이 열리고 마법사가 영상 통신구 장비를 들고서 들어왔다. 한스도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당황했다. 펜의 꼴이 엉망이었기 때문이었다.
“어- 음, 연결할까요?”
“네. 연결하세요.”
로잘린이 그렇게 말하며 손을 휘저었다. 펜은 순식간에 건조 마법으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을 면했다. 영지 마법사는 그 마법 캐스팅 실력에 흠칫했다가 황급히 영상 통신을 연결했다.
곧 왕세자 알베르의 얼굴이 나타났다.
“알베르 왕세자 덕에, 무사히 누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군요.
케일은 인정했다.
지금 펜은 점잖고 괜찮아 보였다.
“한 며칠 머무르다 떠날 것 같군요.”
-그렇습니까.
대화를 이어가던 알베르는 펜의 뒤에 서 있는 케일이 보였다. 펜을 쳐다보는 케일의 표정은 평범했지만 동류인 알베르는 저 눈빛과 표정에서 아니꼬움을 느꼈다.
케일과 알베르의 눈이 마주쳤다.
‘뭐가 점잖은 왕자라는 겁니까?’
그런 눈빛이었다. 어디서 이런 망아지 같은 걸 데려왔냐는 눈빛이었다. 알베르는 그 눈빛을 외면했다.
‘엉망인가 보군.’
알베르는 펜이 연합에 대해 말할 대상이 아님을 알아챘다. 그는 펜보다는 케일의 시선을 신뢰했다.
-로운 왕국 안에서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통신이 끝났다. 로잘린은 곧바로 펜에게 말했다.
“대련복으로 갈아입고 연무장에 가 있어.”
“하…….”
펜은 인상을 구기면서도 로잘린의 말을 따랐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저하.”
그는 순간 케일이 부드러이 건네는 말에 흠칫했다. 자신의 싸가지 없음 정도는 아는 펜이었다. 펜은 케일이 자신을 쳐다보며 웃는 모습에 뒷골이 서늘해져 왔다.
“돌밖에 없는 영지라서 그런지 연무장 바닥도 돌이랍니다. 아주 딱딱하니 튼튼해서 좋습니다, 하하.”
속 좋게 웃어 보이는 케일의 모습을 펜은 외면했다. 그러자 서늘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누나가 보였다. 펜은 깨달았다.
‘비슷했던 거야!‘
비슷하니까 같이 다니는 거다. 펜은 그걸 자신을 둘러싼 케일과 로잘린의 미소에서 깨달았다. 황태자보다 더 압박을 주는 케일에게 벗어나고 싶었다.
펜은 케일을 말을 다 무시하며 황급히 응접실을 떠났다.
그제야 로잘린이 케일에게 다가왔다.
“사실 펜보다는 첫째 동생과 이야기를 해야 할 문제 같아요.”
그녀는 연합에 대해 언급했다. 고민이 많아 보였다. 브렉 왕국 왕세자를 만나려면 그녀가 직접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왕족 지위는 필요 없다며 모든 걸 버리고 나온 그녀였다.
로잘린은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왕국에 다시 가도 될까?
“로잘린 씨.”
케일은 그런 고민을 대번에 알아챘다. 그는 로잘린이 직접 움직였으면 했다. 그래야 보안과 더불어 모든 것이 편히 이루어질 확률이 높았다.
“꼭 꿈을 이룰 때 다른 소중한 걸 포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로잘린은 케일을 바라봤다. 평소처럼 담담하지만, 그 담담함이 어쩔 때는 그를 어려워 보이게 만들었다. 그녀는 오늘 그의 분위기가 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처럼, 또 언제 대하기 어려웠냐는 듯 그 안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다.
“마법사로서 가족에게 다녀오셔도 됩니다.”
왕녀가 아닌 마법사로서의 자신. 로잘린은 케일의 말에 안심이 되었다. 그때 라온이 투명화를 풀고 나타났다.
“맞다! 넌 마법사로서 꽤 대단하다! 다 대단하다고 할 거다!”
로잘린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갔다가 돌아올게요.”
“당연하다. 갔다가 집에 와야 한다!”
검은 용의 말에 로잘린은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은 그녀에게 무심히 말했다.
“올 때 기념품 사 주시면 더 좋을 것 같네요.”
올 때 기념품. 로잘린은 결국 소리 나게 웃음을 터뜨렸다. 언젠가 최한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집이 있지만, 그곳은 갈 수가 없어. 하지만 이제 나에게도 다른 우리 집이 생겼지. 홀로 시간을 부유하는 것 같은 기분에서 벗어난 그 기분은, 참 설명하기 어려워.’
하지만 로잘린은 이제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자신의 능력을 믿어주는 이들이 있는 집.
“그럼요. 기념품 많이 들고 우리 집에 다시 와야죠.”
그녀 입에서 처음으로 집이란 단어가 나왔다. 이를 케일은 몰랐다. 다만 케일은 연합이 수월하게 이루어질 것 같아 안심했다.
일주일 뒤 로잘린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넋이 나간 펜을 데리고 브렉 왕국으로 떠났다. 케일은 일행에게 지시했다.
“돌아가자.”
어둠의 숲 해리스 마을. 그곳에서 내년 봄까지 보낼 그들이었다.
케일은 라온의 시답잖은 물음에 답했다.
“인간, 여기 겨울에 눈이 오나?”
“올걸?”
“그럼 봄 되면 숲에 꽃이 많이 피나?”
“필걸?”
케일의 답대로 라온은 겨울에 눈이 오는 걸 보았고, 초봄에 꽃이 피는 걸 보았다.
***
19살. 어느새 시간이 흘러 케일은 한 살 더 나이가 들었다.
“도련님, 이제 일어나셔야지요.”
시종 론이 케일을 깨웠다. 케일은 이불 안에 웅크려서 얼굴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런 그의 위를 많이 큰 온과 홍이 앞발로 꾹꾹 눌렀다.
“인간, 13시간째 잔다! 겨울잠 자나? 넌 곰이 아니다! 이제 봄도 끝났는데 그만 자도 될 것 같다!”
한 10㎝는 큰 듯한 검은 용 라온이 케일을 보챘다. 침대 위를 뒹굴던 케일은 눈도 뜨지 않고 말했다.
“하, 시간 빠르네.”
벌써 늦봄이라니.
열 손가락 산. 마지막 고대의 힘이 있을 그곳으로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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