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10
109화.
케일은 지나가는 시민 1처럼 주변을 둘러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의자를 넘어뜨리며 벌떡 일어선 로브. 그 로브를 또 다른 로브가 일어서며 붙잡았다.
“놔, 놔라!”
팔을 붙잡힌 이가 순간 목소리를 높였다. 중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케일은 왠지 중후한 중년의 엘프가 당황하는 얼굴이 그려졌다.
케일은 천장을 바라봤다.
-인간, 나는 빙글빙글 돈다!
라온이 1층 식당 위를 빙글빙글 도나 보다. 케일은 시선을 내려 식당을 쳐다봤다. 엘프 추정 인물의 곱고 하얀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럴 수가!”
드래곤을 만나봤을 것 같은 그 로브의 주인공은 주춤주춤 걸음을 옮겼다. 후드를 푹 눌러쓴 고개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방황하고 있었다.
툭. 투둑. 방황하던 중년의 엘프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쳤다.
“뭡니까?”
“뭐야?”
그럴 때마다 엘프는 무시했다. 아니, 무시했기보다는 충격을 받아 답을 못 하는 것 같았다. 또 다른 로브가 부딪친 이들에게 연신 사과하며 엘프를 뒤따라갔다.
긴장되었다.
오지 마라.
케일은 슬쩍슬쩍 곁눈질을 하며 방황하는 로브를 관찰했다. 동시에 케일은 한스를 툭 쳤다. 카운터 주인과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굼뜬 한스에게 어서 일하라는 신호였다.
-인간, 언제까지 빙글빙글 도나? 나 계속 돈다!
라온은 도는 게 재밌는지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케일은 이제 5살이 된 라온의 활달함을 모른 체했다.
‘다크엘프야 왕세자와 연관이 되어 있었고 존재를 아는 타인이 우리뿐이라 모르쇠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최대한 잡아떼야 했다.
엘프가 얼마나 드래곤을 숭배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영웅의 탄생’에서 한 줄 나왔다.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다크엘프는 엘프에 비교하면 아마 새 발의 피일 것이다. 라온이 파닥이기만 해도 엘프들은 뒤로 넘어가리라.
끔찍하다.
그러나 케일의 얼굴은 서서히 굳어갔다.
‘왜 이쪽으로 오는 거지?’
여기엔 라온도 없는데? 케일은 쿵쿵 심장이 뛰어왔다.
그때 다행히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공자님!”
부집사 한스는 케일을 불렀다가 그의 환한 미소를 볼 수 있었다.
“그래! 한스!”
한스는 이렇게 자신을 환대하는 케일은 처음 보았다. 왠지 모르게 찝찝해져 왔지만, 그는 할 말을 했다.
“좋은 방은 3층 이상에만 있다고 하는데 괜찮.”
“아주 좋아.”
나직하게 강한 긍정을 내뱉는 케일에게서 얼른 그 방으로 가자는 의사 전달이 또렷하게 전해져 왔다. 한스는 어서 끝내라는 듯 압박을 주는 케일의 분위기에 바로 여관 주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3층에 있는 특실을 다 드리면 되겠지요?”
이제 한스가 대답만 하면 케일은 3층으로 사라질 수 있었다.
“어디 가십니까?”
“3층 가게.”
케일은 이미 3층 계단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최한은 의아한 얼굴로 뒤쫓았다. 어지간히도 피곤했는지 케일의 안색은 굳어 있었다.
-인간 나 두고 어디 가나? 안색이 안 좋다! 아프나? 내가 갈까?
아니, 절대 오지 마.
케일은 고개를 조심히 가로저으며 3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드디어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그때였다.
바로 뒤.
“아, 이 아저씨가 술에 취했나? 자꾸 왜 이리 부딪치고 다녀?”
“죄송합니다. 원래 이러는 분이 아닌데.”
그래, 바로 등 뒤.
케일의 등 뒤로 살짝 부딪치는 소리와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계단 난간을 잡는 케일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정령도 있으면서 왜 나한테 오는 거지?’
의아했다. 정령은 빙빙 도는 라온을 알아차릴 텐데, 왜 여기로 오는가? 워낙 라온이랑 붙어 다녀서 라온 냄새가 묻은 건가?
케일은 재빨리 계단에 올라섰다.
“혹시-”
중후한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렸다. 등에 소름이 돋았다. 뒤돌아서야 할까. 케일의 머릿속으로, 오도 가도 못 하게 엘프들에게 둘러싸여 찬양 받는 라온과 그 옆에 쭈그리고 있는 자신이 나타났다. 찰나의 고민이 이어지던 순간이었다.
“누구십니까?”
“뭐지요?”
최한과 론이 다가오던 로브와 케일 사이를 가로막았다.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맞다. 얘들이 있었지.
케일은 천천히 뒤돌아섰다.
계단 아래, 최한과 론에게 가로막힌 엘프가 보였다.
엘프 특유의 귀는 보이지 않았지만 살짝 들려진 로브 속 눈동자가 보였다. 케일은 그 눈동자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엘프가 살짝 멈칫했다. 그때, 뒤따라오던 이가 엘프의 팔을 잡았다.
“아저씨! 도대체 왜 이러십니까?”
그런데 뒤따라온 그 엘프의 얼굴도 후드 사이로 슬쩍 보였다.
‘미친.’
주위를 꼴뚜기로 만들어 버릴 만큼 잘생긴 것 따위는 하나도 문제가 아니었다. 눈가에 Z자 모양의 상처가 있었다.
‘쟤가 왜 여기에 있어?’
힐러 펜드릭이었다.
엘프 중에서도 가장 잘생겼다고 알려진 그 인물.
케일은 벌써부터 집에 가고 싶어졌다.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펜드릭이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같이 다닐 만한 인물이 누구지?
책에서 엘프들은 다 잘생겼다고 해서 얼굴 구분이 힘들었다. 족장과 펜드릭은 묘사를 자세히 해주어서 보면 대번에 알아챌 것 같았지만, 나머지는 어려웠다.
케일의 걸음을 붙잡았던 엘프는 펜드릭의 행동에도 꿈쩍도 않고 케일을 보며 혼란스러워했다.
“그, 그-”
엘프는 떨리는 목소리로 케일에게 말했다.
“그, 혹시 마나를 믿으십니까?”
무슨 도를 아십니까인 줄 알았다. 케일은 황당해서 실소를 흘렸다. 그 한쪽 입꼬리만 올라가며 짓는 미소에 중년의 엘프는 흠칫했다. 저 여유로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하등하고 하찮게 보는 저 지독한 눈빛.
용의 그 위대한 눈빛과 꼭 닮아 있었다.
‘공중을 떠도는 드래곤의 기운.’
드래곤이 방정맞게 빙글빙글 돌아다닐 리 없다. 여기에 있는 생명체들을 놀리듯 분명 자신의 기운을 그냥 빙빙 돌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드래곤은 그러고도 남았다.
그렇다면.
‘저분에게서 자연의 향기가 가장 많이 나.’
이 식당 안엔 강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자연의 향기는 강자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중년 엘프의 손이 떨려왔다. 엘프는 드래곤을 제외하면 가장 자연에 가까웠다. 그래서 다크엘프보다 몇십 배 자연의 힘에 민감했다.
‘타고난 바람, 나무, 물의 향기가 나. 인간은 한 번에 이 정도 향을 풍기는 건 불가능해.’
중년 엘프는 생각했다. 인간이 평생의 모든 운을 쏟아도 하나 얻기 힘든 고대의 힘을 몇 개나, 그것도 다른 속성으로 소지했을 리 없다고.
마나와는 다른 자연 본연의 힘. 그 힘을 이렇게나 품은 존재는 단 하나였다.
드래곤.
감히 입 밖으로 내뱉기도 어려운 그 존재.
‘정령만, 정령만 지금 내 곁에 있었다면!‘
마을에 두고 온 정령만 있었다면, 확실히 알아챌 수 있었을 텐데.
중년 엘프는 통탄스러웠다. 그러나 자신 대신 마을을 위해 노력 중인 정령을 함부로 불러들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여기엔 평생의 운 따위 쓰지 않아도 고대의 힘을 다른 속성으로 몇 개나 소지한 인간이 있었다.
그 소지자 케일은 단호하게 답했다.
“마나 따위 안 믿는다.”
분명 자연 친화적인 용이라면 마나를 믿는다고 답했을 것이다. 그러니 케일은 안 믿는다고 답했다.
케일은 엘프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런 자신의 의사를 확실히 표현했다.
엘프의 눈동자가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갔다.
“…그 마음대로 이행하겠습니다.”
음? 뭔가 대답이 이상한데? 케일은 엘프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의아했다. 이행이라니? 케일은 찝찝함이 밀려왔다.
그렇다고 ‘나 드래곤 아니다’, ‘나는 인간이다’ 이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케일은 정령도 있는 엘프가 왜 이러나 싶은 의문이 커져갔다.
“아저씨, 무슨 일입니까?”
“별것 아니다. 우리는 우리 하던 대로 하면 된다.”
“네? 당연히 그래야죠?”
“그래.”
펜드릭과 대화하던 중년 엘프는 케일을 보며 부드러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중년 엘프는 역시 잘생겼다. 그 엘프는 케일을 보며 말했다.
“우리는 조용히 우리 하는 일을 하면 돼.”
그걸 왜 날 보고 말해?
케일은 황당했다. 황당함에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 순간 엘프는 흠칫하더니 이제는 허리까지 숙였다.
“안락한 여행을 방해해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모른 척하겠습니다. 부디, 기분이 상하지 않으셨길 바랍니다.”
…이상한데. 아무리 봐도 이건 유희 나온 드래곤 취급이었다. 분명 드래곤을 만나본 정령이라면 케일 자신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려줄 텐데?
케일은 찝찝했지만, 일단 모른 척했다.
“볼일이 끝난 듯하니 이만 서로 갈 길 가도록 하지.”
케일은 뒤돌아섰다. 조금의 틈도 주지 않는 냉정한 모습이었다. 최한과 론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로브들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케일의 미련 없는 행동에 뒤를 따랐다.
-인간, 인간! 나 10분만 더 돌다가 따라 가겠다! 재밌다!
라온은 꿀벌처럼 8자를 그리며 빙빙 돌았다. 그 속도가 점점 증가했다. 중년 엘프는 점점 빠르게 식당 안을 오가는 드래곤의 기운에 두려움을 느꼈다.
“아저씨, 도대체 이유가 뭡니까?”
“아니다, 얼른 나가자.”
펜드릭은 답답함에 한숨을 삼켰다. 그는 중년 엘프 쪽으로 몸을 숙이며 낮게 속삭였다.
“수호 전사님. 괜찮으신 거죠?”
수호 전사. 중년 엘프는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 괜찮다. 얼른 가자구나. 마을에 가서 힘을 보태야지.”
“네.”
펜드릭은 굳은 얼굴로 일행이 있는 테이블을 바라봤다. 일행이 일어섰다. 인간 세상에 나왔지만 소득이 없었다. 얼른 다시 돌아가서 마을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태야 했다.
“나 때문에 지체되어 미안하다. 서두르자.”
수호 전사 중년 엘프의 말에 엘프들은 식당을 빠져나와 빠르게 열 손가락 산으로 향했다. 각기 다른 높이의 열 봉우리. 그중 그들의 마을이 있는 곳이 지금 위험했다.
***
며칠 뒤, 이른 아침. 케일은 라온만을 데리고서 열 손락산 산의 열 봉우리 중 세 번째 봉우리를 올라서고 있었다.
“인간! 산책은 좋다!”
산책은 얼어 죽을. 케일은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정상을 향해 바람의 소리를 펼치고 빠르게 올라갔다.
이 열 봉우리들 이름이 왜 하필 열 손가락 산이겠나. 그 열 개의 모양이 손가락과 닮아서였다.
그래서 세 번째와 여덟 번째 봉우리가 유독 높았다. 사람처럼 중지가 길다는 소리였다. 구름에 가려질 정도로 높아 한여름 전까지는 눈이 녹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 봉우리가 녹고 있지.’
마지막 고대의 힘 ‘파괴의 불’.
다른 사람들은 아직 모를 것이다. 이 고대의 힘은 한 2주 뒤, 이 세 번째 봉우리의 절반을 녹여 버린다.
“인간! 덥다! 여긴 뭔가?”
“아이고.”
케일은 곡소리와 함께 정상에 올라섰다.
“이건 용암 아닌가? 책에서 봤다! 정글의 그 어긋난 불보다 뜨겁다! 희한한 힘이다!”
케일과 라온의 눈앞에 용암이 나타났다. 엄청난 크기는 아니었지만 꽤 큰 용암 구덩이였다.
물론 이 봉우리는 화산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용암이 산을 녹이고 있었다. 엄청난 열기가 느껴졌다.
다만 불을 지배하는 물이 담긴 목걸이를 소지한 케일은 ‘심장의 활력’ 재생과 더불어 그 영향을 덜 받았다. 그는 용암이 들끓는 구덩이 중앙을 바라봤다.
“하!”
기가 찼다. 황금색 돼지 조각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라온.”
케일은 라온을 불렀다. 라온은 희한한 광경을 보다가 케일을 쳐다봤다. 라온의 앞에 마법 주머니가 펼쳐진 것이 보였다.
“왜 그러나, 인간?”
“돈 내놔.”
라온은 눈을 멀뚱이 껌벅이다가 돈을 내놨다.
케일의 입꼬리가 스멀스멀 위로 올라갔다. 오랜만에 남한테 피해 안 주고 통쾌한 일을 해볼까 싶었다.
스트레스 푸는 데는 돈지랄이 제격이었다.
“하, 하하하!”
케일은 크게 웃고 있었다.
“…인간, 왜 그러나?”
라온이 뒤로 물러섰다. 웃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저렇게 웃는 건 신기했지만 보기 좋았다. 하지만 다른 광경은 이상했다.
찰랑, 촤르르-
케일은 마법 주머니에서 청량한 소리를 내는 은화를 한 주먹 집어 올렸다. 그리고 제 앞에 뿌렸다.
“인간! 이 돈이면 닭꼬치가! 맛탕이 몇 갠데! 인간, 왜 그러나! 불만이 있으면 말해라, 인간!”
“하하하하!”
케일은 라온의 말을 듣지도 않았다. 그 순간 신비한 광경이 나타났다.
우우우웅.
불구덩이에서 울리는 소리와 함께 은화가 녹지 않고 용암 표면 위에 들러붙었다.
욕심 많은 부자이자 전사였던 자가 주인이었다는 고대의 힘.
그가 남긴, 돈이 많이 드는 마지막 힘.
역시 돈은 물 쓰듯이 쓰면 좋은 법이다.
“하하하하!”
대영웅처럼 호쾌한 웃음소리를 터뜨리며 케일은 자신의 앞길에 마구마구 돈을 뿌렸다.
돈길이, 은길이 펼쳐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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