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14
113화.
-케일!
케일은 머릿속으로 라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프다.
이 세상에 와서 이렇게 아픈 건 처음이었다.
“크윽.”
검은 피가 멈추지 않고 케일의 입에서 그의 손을 타고 성벽 바닥을 적셨다. 그는 허리를 펴지 못하고 계속해서 피를 게워냈다.
“커헉.”
“케, 케일 님!”
허리를 구부린 케일의 몸을 다급하게 잡는 손길이 있었다. 최한이었다. 당장이라도 성벽 바닥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케일의 모습에 최한은 저도 모르게 케일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그런 그의 행동을 저지하는 이가 있었다.
“그만.”
“…뭡니까?”
시종 론과 최한의 시선이 부딪쳤다. 론은 냉정한 얼굴로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 입술 끝이 창백했다.
“피가 역류할 수도 있어. 기도로 들어가면 어쩌려고 그러나?”
케일을 일으켜 세우려던 최한의 움직임이 힘을 잃었다. 그때, 최한은 제 팔을 잡는 피 묻은 손을 볼 수 있었다. 케일이었다.
괴로운 얼굴로 케일은 최한과 론을 쳐다봤다.
“어, 얼른 가서- 크윽.”
이놈의 피!
자꾸 입에서 피가 나왔다.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왜 이리 자꾸 피가 나오는 거야?’
불벼락을 내린 후, 순간 허리가 저절로 앞으로 고꾸라질 만큼 아팠다. 하지만 일 분 정도 지나자, 심장의 활력이 치유를 시작한 것인지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가 둘 있었다. 입에서 피가 자꾸 나왔고.
‘배고파.’
모든 힘을 다 쓴 듯 배가 고팠다. 오래 굶어서 위가 쓰리는, 명치가 아픈 그런 통증이 왔다. 김록수가 어릴 적 굶주림에 익숙해지기 전 느꼈던 그 통증과 비슷했다.
“최한… 얼른 가서!”
“무슨 말씀을 자꾸 하시는 겁니까! 몸부터 챙기셔야 합니다!”
가서 빵 좀. 정말 배고프다.
케일은 그 말을 하려고 했지만, 살벌한 최한의 충혈된 눈동자에 웅얼거리듯 말했다.
“테이머 처리해. 얼른 가.”
그 순간 케일의 귓가에 닿는 비명 소리가 있었다.
“으아아아악! 내, 내 피부가!”
걸걸한 노인의 목소리. 그 테이머가 틀림없었다. 살아남은 듯했다. 허리를 들지 못하고 피를 토해내는 케일은 지금의 광경을 볼 수 없었다.
그저 비명 소리와 타는 냄새만이 들렸다.
하지만 최한은 그 광경이 보였다.
붉은빛이 내리친 자리. 땅은 검게 변했고 그 위에 거대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불 위의 생명체는 보이지 않았다.
벼락의 범위는 어마어마했다. 방벽을 향해 달려오던 비밀 단체 단원들 중 뒤에 있던 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내, 내 아기 피부가! 으아악!”
최한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테이머와 마창사는 블링크를 간발의 차로 성공했는지 벼락 범위 밖에 나타났다.
하지만 벼락의 영향을 받았는지, 마창사의 갈색 머리칼이 다 타버렸고, 그의 창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오른손도 화상을 입은 듯했다.
“다, 다 죽여! 아파, 아프다고!”
하지만 테이머만 하지 않았다. 테이머는 블링크가 잘못된 것인지, 팔에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고 얼굴에는 화상을 입었다.
최한은 엘프 마을로 향하기 전에 케일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고대의 힘을 하나 얻었다. 그래서 사용해 보려고. 그러니까 나중에 다 뒤로 좀 빠져.’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그도 이런 광경을 한 번에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최한은 엘프들이 방벽 아래를 멍하니 보며 서 있는 광경을 이해했다.
“뭐 해? 얼른 안 가고?”
최한은 자신의 팔을 잡는 손힘에 고개를 돌렸다. 그는 피를 멈추지 못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냉정한 케일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그 눈동자는 이성적이었다.
피를 토하며 그는 최한에게 명했다.
“얼른 가. 동물들을 저리 둘 건가?”
케일은 손등에 핏줄이 불거질 만큼 최한의 팔을 꽉 잡았지만, 아귀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것이 최한의 얼굴을 더 굳게 만들었다.
‘수도 테러 때도 그렇고.’
꼭, 꼭 자신을 다치게 하면서 다른 생명을 구하려고 하는 이였다. 피를 묻히는 일도, 힘든 일도 꼭 자신이 함께하려 했다. 이렇게 아파하고, 힘들어하면서 말이다.
강한 힘이면 뭐 하나? 아픈데.
하지만 최한은 그런 케일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그의 귓가로 케일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뿐이다.”
케일은 제 어깨에서 손을 놓은 최한을 볼 수 있었다.
정말 최한뿐이었다.
라온에게 시킬까 했는데, 지금 라온이 조금 이상했다.
케일의 머릿속에 라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이! 피, 피!
뭐라는 거야.
라온은 제대로 말을 못 하고 계속 외쳐댔다. 그때, 최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갔다 오겠습니다.”
최한은 케일의 대답도 듣지 않고 곧바로 눈앞에서 사라졌다.
으아악! 커헉! 곧 이어 수많은 비명 소리들이 들려왔다. 최한의 짓이리라.
케일은 전보다 줄어든 피를 닦아내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는 빠르게 지시했다.
“론, 죽은 마나.”
“…네.”
네크로맨서 메리가 준 왼팔. 론의 왼팔은 살아 있지 않기에 죽은 마나 회수가 가능했다. 케일은 저 귀한 죽은 마나를 다크엘프들과 왕세자에게 팔 생각이었다.
‘돈은 포기할 수 없지.’
무상 노동은 딱 질색인 케일이었다.
케일은 배가 고프고 기력이 딸려 힘이 없는 몸에 힘을 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라크와 고양이들이 보였다.
“가.”
무심한 목소리에 멈칫할 법도 하건만, 라크는 바로 최한의 뒤를 따라 방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온과 홍은 케일에게 다가왔다.
냐아아아옹.
냐아아옹.
케일의 다리에 제 몸을 비벼대려고 했다. 케일은 그걸 피했다. 저 검댕이 지워지면 어쩌려고?
케일은 얼른 가라는 듯 피를 닦아낸 손으로 툭툭 쳤다. 온과 홍은 그 모습에 몇 번 더 울고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빠르게 라크의 뒤를 따라갔다.
케일은 그 광경을 보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제야 방벽 아래가 보였다.
‘음?’
케일은 멈칫했다. 순간 시야가 흐려졌다.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탓인지 혹은 눈앞의 광경이 충격적이었던 건지, 케일은 순간 비틀거렸다.
‘파괴의 불이 이렇게 셌어?’
검은 땅 위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보였다.
파괴의 불. 그 모든 힘을 온전히 흡수한 결과는 케일의 상상을 넘어섰다.
케일은 비틀거리면서도 생각했다.
‘좋은데?’
20억 값어치는 하는 힘이었다. 그러나 만족스러움을 느끼는 것과 반대로 케일은 모든 기력을 소진해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뒤로 쓰러지려는 몸을 일으킬 힘이 그에게 없었다.
“공자님!”
“제길!”
그런 그에게로 펜드릭과 비크로스가 손을 뻗었다. 하지만 케일은 그들의 손이 닿지도 않았건만 뒤로 넘어지지 않았다.
-안 된다, 케일! 너는 쓰러지면 안 된단 말이다!
케일은 제 등을 받치는 머리를 느낄 수 있었다. 검은 용, 라온이었다.
라온의 동글동글한 머리 촉감이 느껴졌다. 케일의 등이 축축하게 젖어갔다. 우는 것 같다.
케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안 되는데.’
용이 내려왔다. 케일은 제 곁으로 다가오는 펜드릭 너머의 엘프들을 바라봤다. 엘프들은 멍하니 굳어서 방벽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두 엘프, 수호 전사와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족장의 시선이 천천히 케일이 있는 곳을 향해 돌아왔다.
그리고 그 두 엘프의 곁에 있던 정령, 반투명하게 실체화된 푸른 정령과 하얀 정령이 덜덜 떨기 시작했다.
“괜찮으십니까?”
펜드릭의 손에 하얀빛이 맴돌고 있었다. 치유의 힘이었다. 그 손이 곧바로 케일의 등으로 향했다.
툭. 하지만 그 손은 허공에서 무언가와 부딪쳤다.
“뭐야?”
펜드릭이 순간 당황해 중얼거렸다.
뭐기는 용 몸이지. 케일은 시선을 돌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이전만큼 피를 흘리진 않았지만, 여전히 소량의 피가 미미하게 그의 입가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테이머를 처치하고 난 후, 동물들 일은 엘프들이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만. 너희들과 함께 살던 존재 아닌가.”
펜드릭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는 케일을 바라보고는, 차분한 표정에 다시 한번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케일이 붉은 벼락, 자신을 희생하면서 써야 했던 그 힘을 동물들에게 사용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는 배려하고 있었다.
동물들과 함께 자연 속에서 살아가던 엘프들이 그들을 편히 보낼 수 있게, 인사를 할 수 있게 굳이 힘들고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면서 일을 진행했던 것이다.
케일은 펜드릭의 시선을 대충 흘려보냈다. 배도 고프고 힘든데 이게 뭔 고생인가 싶었다. 케일은 방벽 아래를 내려다봤다.
“하.”
펜드릭은 전장을 보며 탄식과도 같은 웃음을 토해내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힘든 길을 택했어.”
최한을 비롯한 일행은 아주 잘 싸우고 있었다. 케일은 테이머의 배를 베는 최한의 검은 오러를 볼 수 있었다.
“피, 피가! 브라운! 와서 날 보호하란 말이야!”
“제길!”
쾅! 최한은 유유히 마창사의 검을 피했다. 창이 다 타버린 마창사는 시체가 된 부하의 검을 빼 와 최한을 공격했다.
“금색 쌍둥이 때문에 일도 많아졌는데! 이것들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마창사는 울분을 토하듯 검을 휘둘렀으나, 그의 검은 결코 최한에게 닿지 못했다.
케일은 표정 하나 없이 싸우는 최한 외의 다른 이들도 바라보았다. 자신이 없으니 라크와 고양이들, 론은 아주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잘 날뛰었다.
사실, 살벌하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최한도 그렇고, 아주 죽을 듯이 앞뒤 재지 않고 싸우고 있었다. 피가 낭자했다.
케일은 그 광경에 살짝 무서워하며 반성했다.
‘괜히 나댔어.’
그래, 나댔다. 설쳤다. 괜히 힘든 길을 갔다.
파괴의 불 실험을 한다고 나섰다가 이게 무슨 꼴인가. 케일은 한탄스러웠다. 유능한 놈들이 있으면 그냥 써먹으면 될 것을.
케일은 점점 기력이 부족해 힘들어져 왔다. 당장에라도 자고 싶었다. 아픈 곳은 없었지만 빵이라도 먹고 싶었다.
심장의 활력이 있음에도, 처음으로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케일의 씁쓸한 미소를 다르게 해석한 펜드릭은 복잡한 얼굴로 몇 번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공자님과 다른 분들의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케일은 펜드릭의 말에 답할 수가 없었다.
“미친 새끼들이!”
가까이 다가왔던 비크로스가 거칠게 외치며 장검을 휘둘렀다. 뒤돌아서던 케일의 눈에 흰 붕대가 보였다.
1호. 그 살수였다.
붉은 벼락이 내리치는 와중에도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린 듯했다. 얼마나 은밀했던지, 비크로스에게 들키지 않았다.
케일은 붕대 사이로 드러난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서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울음기가 가득한 목소리였다.
-죽여 버린다.
그리고 그 흰 붕대는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케일은 자신에게 닿지도 않고 튕겨 나가 버린 존재를 멍하니 바라봤다.
비크로스가 장검을 휘두를 필요도 없었다. 라온이 힘을 썼다. 공중에 띄워진 흰 붕대는 당황하며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뭐, 뭐야? 마법산가?”
케일은 흰 붕대의 물음에 본인을 대신하여 마음속으로 답해주었다.
‘아니, 용이다.’
그의 머릿속으로 살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저것들을 나는 결코 용서 못 한다.
저것들이 누굴까.
-인간, 네 말대로 안 나타난다. 그 대신 너는 보지 마라. 약한 너에게 힘든 일이다.
케일은 기꺼이 라온의 말을 따랐다. 그는 혹시 몰라 날뛸지도 모를 라온에게 말해두었다.
“그래, 좀 잔다.”
케일은 눈을 감았다.
도저히 힘들어서 못 버틸 것 같았다. 케일은 제 몸을 받치는 동글동글한 파충류의 머리와 앞발을 느끼며 서서히 잠에 빠졌다.
“크아아아악!”
처절한 비명 소리가 아득한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팡!
뭔가 터지는, 꼭 사람 몸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눈을 떠서 볼까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승기가 잡힌 상황. 여기로 오는 길에 지시를 해두었으니 저보다 잘난 이들이 다 알아서 할 터.
“위, 위대한 분의 가호……!”
처음 듣는, 경이에 찬 목소리로 내뱉는 말을 마지막으로, 케일은 정신을 잃었다. 그는 서서히 밑으로 꺼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간절히 바랐다.
부디 눈을 떴을 때, 빵 조각 하나라도 먹었으면.
***
하지만 케일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상당히, 매우 부담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꽃밭에 고이 누워 있었다. 그의 머리에는 웬 이상한 나뭇잎 화관이 씌워져 있었다.
세계수 나뭇잎으로 만든 화관이었다.
케일은 당황스러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