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24
123화.
하지만 케일의 긴장 가득한 마음과 달리 라온은 태연했다.
“나 용 맞다!”
라온의 대답에 금발 엘프의 표정이 더욱더 기이해졌다. 용이 맞냐고, 명백히 용이라는 정체성을 부정하는, 용 사이에서 싸우자는 것과 다름이 없는 말을 걸었음에도 대답이 해맑았다.
“…그래, 네가 용이지.”
금발 엘프의 입에서 힘없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라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리고 너도 용이다. 그러니까 반갑다! 인사도 모르나?”
“…인사를 알긴 알지?”
용 사이에 서로 얼굴을 보며 신랄한 비꼬기를 하면 몰라도, 인사라니. 금발 엘프는 고룡이 되기까지 처음 겪는 상황에 살짝 힘이 빠졌다.
아름다운 금발 엘프, 중성적인 외모의 엘프에게 라온이 앞발을 내밀었다. 그 앞발을 보며 엘프는 입을 열었다.
“지금 악수하자는 거냐?”
“그렇다!”
“허, 참. 내 천 년 가까이 살면서 이런 꼴은 처음인데.”
내 참. 거참. 허어.
연신 탄식을 흘리며 골드 드래곤은 라온의 앞발을 찝찝한 얼굴로 쳐다봤다. 몇 초간 쳐다보던 골드 드래곤은 그 앞발을 잡지 않고 진지하게 물었다.
“너… 두뇌 지수가 낮나?”
파닥이던 라온의 날개가 멈칫했다.
쿡. 쿡! 케일이 세게 최한의 등을 찔러댔다. 언제 저러다 싸울지 알 수 없었다.
스릉.
아주 작은 소리와 함께 최한의 검집에서 검이 살짝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금발 엘프의 시선이 최한 쪽을 향했다.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음? 왜 나를 봐?’
드래곤의 시선은 최한 등 뒤에, 아주 작게 고개를 내민 케일에게 닿았다.
그와 드래곤의 시선이 부딪쳤다. 금발 엘프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드래곤은 실로 오랜만에 지금은 없어진 직업의 기운을 느꼈다.
위대한 용들의 유일한 호적수.
그 직업을 이어가는 유일한 가문의 후계자에게서만 풍겼던 기운이 느껴졌다.
‘지금은 이 기운을, 이 힘을 아는 자가 없을 텐데.’
오랜 향수가 드래곤의 얼굴 위를 스쳐 지나갔고 그 순간, 금발 엘프의 눈동자에 기이한 빛이 맴돌았다.
‘음!’
파충류 특유의 기다란 동공이 금빛을 띠었고, 케일은 순간 거대한 해일이 자신을 덮쳐오는 느낌을 받았다.
‘드래곤 피어인가?’
생명체들에게 공포심을 안겨준다는 드래곤 피어. 그 단어가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공포는 밀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단어를 떠올린 순간 몸이 반응했다.
쿵.
케일은 제 심장이 거세게 뛰는 것을 느꼈다.
지배하는 아우라.
검은 늪, 뼈만 남은 용 위에서 발견했던 그 힘이 심장의 활력과 함께 움직이며 케일의 몸에서 기세가 일어났다.
“음?”
그리고 케일은 당황했다. 거대한 해일이 덮쳐올 것만 같았는데, 따뜻한 공기가 그의 몸을 감쌌다.
오들오들 추워서 떨던 몸과 훌쩍이던 코가 말끔히 멈췄다.
‘…드래곤 피어가 아니고 보온 마법인가?’
아까 그 힘은 뭐지?
용이 착한 짓을 했다.
케일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긴장감을 놓지 않았고, 이에 아우라가 커져갔다.
“아!”
그때 최한은 감탄과 함께 검집에서 손을 떼며 뒤돌았다. 케일이 올곧이 서서 드래곤과 시선을 마주하는 것이 보였다.
언제 떨었냐는 듯 평온한 들판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케일은 아주 담담히 드래곤과 마주했다.
‘역시. 내가 아는 케일 님은 이런 분이셨지.’
매일 겁 많은 척하지만, 늘 무슨 일이든 당당히 맞섰다.
최한은 다시 한번 케일의 기세에 감탄했다. 역시 사람의 기운은 단순히 무력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검고 동그란 물체가 케일의 시야를 가렸다. 라온이었다.
“이 금 용아!”
케일은 순간 저가 헛소리를 들었나 싶었다. 무슨 용? 금 용?
“우리 약한 인간은 그렇게 강하게 쳐다보면 안 된다! 간이 얼마나 작은 줄 아나!”
뒤이어 케일의 머릿속에도 라온의 말이 울려 퍼졌다.
-인간, 지금 앞발만큼 강해 보이지만, 내가 지켜주니 놀라지 마라. 긴장 안 해도 된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저 금 용이 순간 약한 인간 너를 째려보길래 한판 붙을까 했는데, 보온 마법 해준 걸로 봐서 싸가지는 있는 것 같다.
이런 대화를 듣지 못한 골드 드래곤은 정말로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라온을 쳐다봤다.
“저자가 약하긴 하지만. 그것보다 인간 보고 ‘우리’라고? 정말 머리가 나쁜가?”
케일은 라온이 다시 한번 파닥이는 것을 멈추고 골드 드래곤을 쳐다보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라온은 두 번이나 머리 나쁘다는 소리를 들었다.
싸우려나. 보온마법을 했음에도 괜히 한기가 돌았다.
그 순간, 라온이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나는 두뇌 지수가 낮은 게 아니라, 사회성이 높은 거다. 이 악수도 할 줄 모르는 사회성 낮은 황금 용아.”
황금 용이라니. 그래, 금색 용이기는 하지.
역시. 라온이 말싸움에서 그냥 질 녀석은 아니지.
케일은 왠지 모를 흐뭇함을 느꼈다. 역시 라온을 강하게 키운 보람이 있었다.
그 와중에 케일의 귓가로 펜드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에, 드래곤 님들이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대화를 한다니! 이건 영상 마법으로 남겨놔야 하는데. 정령을 볼 수 없어 저주받은 엘프라 생각했던 저에게 이런 행운을 내려주시다니. 자연계의 별이신 두 드래곤 님의 은혜로운 광경을…….”
엘프이자 힐러인 펜드릭은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맞잡고 있었다. 케일은 흰 눈 위에서 창백하지만 수려한 얼굴의 엘프가 중얼거리는 말을 들으며 확신했다.
이놈도 정상은 아니구나.
가만히 보면 제 주위에 있는 생명체들은 희한한 구석이 있었다. 케일은 정상적이고 평화를 사랑하는 자신이 참 살기 힘든 환경이라 생각했다.
케일은 슬그머니 펜드릭에게서 한 발짝 멀어졌다.
그 덕에 라온이 가리고 있던 골드 드래곤, 금발의 엘프가 보였다. 기가 막혀 하는 표정이었다. 라온은 그 표정에 대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나의 위대함에 놀랐나! 황금 용아!”
금발 엘프의 입에서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러나왔다. 드래곤은 여유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 때문에 많이 놀랐, 쿨럭!”
…뭐야?
케일은 당황했다.
금발 엘프가 갑자기 입을 막으며 기침을 해댔다. 그리고 입을 막은 손 사이로 액체가 흘러내렸다.
라온의 놀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뭔가! 왜 그러나! 황금 용아, 피다! 피 토하지 마라!”
용이 피를 토한다.
뚜욱. 뚝. 금발 엘프의 손을 타고 흘러내린 핏방울이 하얀 눈 위를 붉게 물들여 갔다.
케일은 그 붉은 피를 보며 당황했다.
저 정도면 기력이 달리는 수준이 아니라, 심각한 거 아냐?
“쿨럭, 크윽, 쿨럭!”
금발 엘프는 앞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럴 정도로 격렬하게 기침을 하며 동시에 피를 토했다. 라온이 날아가 그런 엘프의 몸을 부축했다.
“하, 하하.”
“황금 용아, 웃지 마라!”
금발 엘프는 라온을 보며 허탈한 얼굴로 웃었다. 골드 드래곤은 기침을 하는 와중에도 말을 이었다.
“용이 다른 용 걱정을 하다니. 쿨럭.”
“말하지 마라! 금 용아!”
금발 엘프의 눈동자. 금안에 일순간 빛이 감돌았다. 조금 떨어져 있음에도, 그 금빛이 순간 케일의 시선을 확 사로잡았다. 그때, 펜드릭이 골드 드래곤을 향해 뛰어갔다.
“에르하벤 님!”
동시에 골드 드래곤, 에르하벤은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꼬맹아, 내 이름은 금 용이 아니라 에르하벤이다.”
“그러나? 반갑다. 그리고 나는 꼬맹이 아니다.”
불퉁한 목소리로 꼬맹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라온은 여전히 에르하벤의 몸을 부축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에르하벤이 묘한 눈길로 바라봤다.
케일은 두 용의 그 모습에 둘이 싸우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최한의 등을 두드렸다.
“우리도 가자.”
물론 당연히 케일은 최한을 앞세웠다.
케일은 옐리아 산 정상에 솟아오른 동굴 앞에 당도했다. 동굴은 그 높이가 상당했고, 저 끝에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보였다.
“에르하벤 님, 괜찮으십니까?”
펜드릭이 치료의 힘을 담은 손으로 골드 드래곤 에르하벤을 부축하고 있었다. 에르하벤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공간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입가의 피를 닦아냈다.
“그래, 기침은 멎었구나. 펜드릭, 어릴 적 보고 처음이구나.”
“네. 다시 뵈어 영광입니다.”
케일은 엘프 펜드릭을 대하는 에르하벤의 모습이 사뭇 다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 다정한 모습이 신기해 골드 드래곤과 엘프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때, 에르하벤의 시선이 케일 일행으로 향했다.
라크, 로잘린, 론, 비크로스, 온, 홍. 그리고 최한. 모두를 훑어보던 무심한 눈동자가 마지막으로 또다시 케일에게 닿았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왜 이래?’
케일은 드래곤이 저러는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당황스러웠다. 정말로 이번엔 아무 짓도 안 했으니까.
그때였다.
“그만 봐라!”
검은 용이 휙 날아와 케일의 앞에 서며 시야를 가렸다.
“우리 약한 인간은 간이 작아서 그런 눈빛은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 강하게 쳐다보지 마라!”
…간이 작은 건 맞다만, 쳐다본다고 기절할 정도로 간이 작은 건 아닌데.
케일은 라온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굳이 에르하벤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에 가만히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에르하벤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내뱉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간이 작다고?”
묘한 웃음기가 담긴 목소리였다.
“재밌네.”
케일은 불안함이 점점 뒤통수를 어루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뭐가 재밌지? 알려주면 안 되려나?
스릉. 최한이 다시 검을 살짝 뽑았다. 케일은 제 옆에서 언제든 마법 캐스팅을 할 수 있게 손을 푸는 로잘린이 보였다.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 긴장감은 곧 사라졌다.
금발의 엘프, 에르하벤은 다시 몸을 똑바로 세우며 일행들에게 말했다.
“따라와라.”
에르하벤은 먼저 레어 안으로 걸음을 옮기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것도 인연인 것 같으니.”
케일은 에르하벤, 골드 드래곤의 레어에 초대를 받았다. 그는 들어가고 싶어 하는 라온과 심각한 얼굴의 최한을 앞세우고 레어 안으로 들어섰다.
***
“세계수를 노린다라.”
“네. 케일 님에게 듣기로는 그들은 하나의 단체로 다른 왕국이나 그만큼 큰 단체의 후원을 받으면서 움직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골드 드래곤 에르하벤의 레어 중 응접실로 꾸며진 곳에서 펜드릭과 에르하벤은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나 케일은 그 대화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현재 기다란 타원형 테이블에는 모든 일행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물론 골드 드래곤만 한 단 높은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그 상황도 케일이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그는 다른 게 눈에 들어왔다.
‘골드 드래곤이라더니.’
케일은 자신이 앉은 의자와 테이블을 쳐다봤다. 의자는 쿠션을 빼면 다 금이요, 테이블은 금에다가 번쩍이는 보석들로 치장되어 있었다.
응접실 천장은 화려한 샹들리에로 꾸며져 있었다. 레어가 동굴이라서 그냥 동굴 천장일 줄 알았더니.
‘이 드래곤 부자구나.’
케일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때 그의 귓가로 에르하벤의 목소리가 닿았다.
“그 비밀 단체의 진짜 대가리는 모르고?”
이야, 대가리라니. 용의 어휘 선택이 엄청났다. 역시 용다웠다.
케일은 펜드릭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네. 아직 모릅니다.”
톡. 톡. 에르하벤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이상한데.”
의문이 가득한 목소리에 케일은 저도 모르게 에르하벤에게 시선이 닿았다. 골드 드래곤은 의문을 그대로 내뱉었다.
“그 정도 단체가 짧은 시간 안에 생겼을 리도 없고. 동대륙 뒷세계도 지배했다면 적어도 몇십 년 동안 준비를 했다는 소린데. 찝찝하네.”
“에르하벤 님의 생각이 어떠하신지 알 수 있을까요?”
펜드릭의 조언을 구하는 청에 에르하벤은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내가 근 백 년 동안 레어에서 움직이지 않아 대륙 정세를 자세히 모르지만, 동대륙과 서대륙 모두에서 사건을 일으키는 단체는 단순히 인간 개인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해.”
“그럼 설마 인간 말고도?”
펜드릭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지만, 에르하벤은 대답하지 않고 고민에 빠진 듯 손으로 턱을 쓸었다.
펜드릭은 지금까지 벌어졌던 일을 떠올렸다. 아주 잔인하고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들이었다.
세상의 혼란. 그는 저도 모르게 떠오르는 종족이 있었다.
“에르하벤 님, 그, 설마. 그럼 설마 마족들이?”
마족?
최한과 로잘린을 비롯한 이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그 단어가 주는 여파 때문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가설에 당황한 얼굴로 케일을 쳐다봤다.
그리고 안심했다.
케일이 뭐 이런 헛소리가 다 있냐는 표정으로 펜드릭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표정에 안심한 최한은 곧 에르하벤도 비슷한 얼굴로 펜드릭을 쳐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펜드릭, 너는 예전부터 상상력이 참 뛰어나구나.”
“그럼 아닌가요?”
“당연히 아니지. 마족이 움직이면 신계에서 우리에게 계시를 줘.”
“그럼?”
에르하벤은 무심히 답했다.
“너희 추정대로 한 국가가 주도적으로 몇십 년간 그 단체를 지원했거나, 혹은 알 수 없는 자연계의 강한 존재들이 그들을 후원했거나. 아니면 둘 다거나.”
흐음. 에르하벤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툭 내뱉었다.
“궁금하네.”
그리고 하필 그 순간 케일과 에르하벤의 시선이 부딪쳤다.
‘왜 나를 보고 궁금하다고 해?’
케일은 불길함을 억누르며 얼른 손을 움직였다.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다, 인간!”
케일은 제 옆의 푹신한 소파에 드러누운 라온의 동그란 머리를 열심히 쓰다듬었다. 라온과 온, 홍은 아주 고급스러워 보이는 푹신한 소파에 누워 있었다.
‘이러면 안 시키겠지?’
그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에르하벤에게 자신에게는 라온이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애달픈 의미를 담은 쓰다듬을 계속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보통 소설책을 보면 이럴 때 용들은 굳이 자신이 움직이지 않고 꼭 레어를 찾은 인간들에게 시키지 않던가?
정체를 알아오라.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케일은 그 상황을 피하고 싶어 최대한 열심히 라온을 쓰다듬었다. 그때 라온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인간, 나중에 내 별장도 저런가?
아차. 다른 위험이 발생했다.
어린 드래곤이 진짜 레어를 봐버렸다. 케일은 라온을 쳐다봤다. 그 눈동자에서 무엇을 본 것인지 라온은 한숨을 폭 내쉬며 날개를 파닥였다.
-괜찮다, 인간. 돈 걱정 하지 마라. 내가 벌어서 짓겠다. 기다려라.
케일은 짠한 눈빛으로 라온을 쳐다봤다.
10실버 용돈 받는 녀석이 무슨 돈을 번다고. 케일은 라온이 스스로 번다는 말을 흘려들어 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힐끗 에르하벤을 쳐다봤던 케일은 살짝 당황했다.
에르하벤이 여전히 케일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시키려고?
케일은 천천히 에르하벤의 입이 열리는 것을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봤다.
마침내 에르하벤이 말했다.
“뭐, 내 알 바도 아니고.”
음?
“다 늙어서 기력도 달리는데 나서기도 귀찮고, 지지고 볶고 싸우든 말든 내 신경 쓸 바도 아니고.”
오.
이 용 마음에 든다.
케일은 처음으로 에르하벤이 조금 괜찮게 보였다. 고룡이라서 그런지 꽤 성격이 괜찮았다.
에르하벤은 펜드릭을 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세계수 방어 마법진은 조금 더 보강해야겠어.”
“네.”
“너희 엘프 마을에 설치할 방어 마법 장치도 하나 만들어줄 테니 들고 가도록.”
“감사합니다, 에르하벤 님.”
상당히 감동한 얼굴로 펜드릭은 감사 인사를 전했고, 에르하벤은 당연하다는 듯 인사를 받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래, 다시 케일을 쳐다봤다.
‘왜 자꾸 쳐다봐?’
이제 케일은 물론이고, 라온도 의문을 품었다.
“에르하벤, 내가 우리 연약한 인간 담도 약하다고 했다!”
“꼬맹아, 에르하벤 님이라고 해야지. 내가 너보다 몇백 배 살았어.”
꼬맹이라는 단어에 라온의 미간이 구겨졌다. 케일은 라온이 에르하벤을 쳐다보는 시선이 꼭 사고 치기 일보 직전 같아 슬슬 불안해졌다.
하지만 에르하벤의 이어진 말에 그런 불안함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거참 희한한 놈이네. 아니, 대단한 건가?”
내가 희한하다고? 대단하다고?
케일은 의아한 마음에 에르하벤을 바라봤다. 골드 드래곤은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고대의 힘을 그렇게 품었는데, 어떻게 안 죽고 살아 있지?”
…음?
“보통 터져서 죽을 텐데.”
…뭐?
불안함 따위 한 번에 날려 버리는 폭탄 발언이 케일의 귓가를 후려쳤다. 다급한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이 금 용아, 뭐라고 했나!”
라온이 놀랐다.
케일도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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