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28
127화.
그건 바로, 이들의 상태와 왜 정글의 여왕이 성자의 입에서 나왔나 하는 점, 그리고 제국이 왜 공적이 될지도 모를 죽은 마나를 사용하냐는 점이었다.
“…오빠.”
소드 마스터, 하나는 잠긴 목소리로 성자를 불렀다. 하지만 하나의 눈동자는 케일과 최한, 론을 보고 있었다.
또한 케일도 하나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죽은 마나 중독 초기 상태군.’
몸에 자잘한 상처들이 보였고 상처들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아마도 그녀가 당한 죽은 마나 폭탄은 액체의 형태인 듯싶었다. 상처에 죽은 마나 액체가 닿아 중독된 것 같았다.
‘소드 마스터라 버티나 보네.’
소드 마스터는 생명력이 질기다. 아마 몸 안 오러의 힘으로 최대한 죽은 마나의 확장을 막는 중일 터.
하지만 이 소드 마스터는 약한 상태다.
케일은 절로 부드러운 미소가 입가에 머금어졌다. 이를 여자는 경계했다.
“…이자들은 누구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지만 여전히 땀범벅인 그녀는 힘겨워 보였다. 말 한 마디, 한 마디 내뱉는 것을 겨우겨우 해냈다.
“내가, 쿨럭, 하아.”
누워 있는 소드 마스터는 어깨를 들썩이더니 검은 피를 토해냈다. 성자가 다급히 손을 그 입가로 가져갔다.
“하나! 말하지 마!”
“…내가 아무나 들이지 말랬지?”
여자는 성자를 매섭게 노려보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때, 그녀의 입가에 새하얀 천이 닿았다.
“피 흐릅니다. 다 설명드릴 테니, 진정하세요.”
다정한 목소리가 하나의 귓가에 닿았다. 케일은 그녀의 입가에 묻은 검은 피를 닦아내었다.
‘검은 피는 수집해 놨다가 나중에 드래곤한테 물어봐야겠어.’
그는 고룡 에르하벤에게 물어보기로 마음먹으며 경계심 가득한 적에게 부드러이 말했다.
“오빠분이 동생분을 어찌나 간절히 살리려고 하시는지, 보는데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러니 일단 몸부터 생각하세요.”
“여기 포션입니다, 도련님.”
때에 맞춰 론이 새 포션을 하나 더 내밀었다. 케일은 언제 서늘한 눈빛이었냐는 듯 걱정과 염려가 가득한, 인자한 노인 연기를 하는 론을 보며 감탄했다.
‘이렇게 손발이 맞을 수가.’
최한, 로잘린, 그리고 평균 8세들과 다닐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케일은 편안한 마음으로 포션을 성자에게 건넸다.
하나는 이 모습에 혼란스러워졌다.
나올 수 없는 길, 그곳에 이런 귀족 도련님 같은 자와 시종이 있다는 게 이상했다.
“…이자들은 뭐야.”
그때, 오빠의 다정한 질책이 들려왔다.
“하나, 이자들이라니. 이분들은 그렇지 않아.”
하나는 저를 책망하는 듯한 오빠의 목소리에 그를 바라봤다. 자신이 정신을 잃은 새에 이 순진하다 못해 맹한 오빠가 무슨 짓을 벌였을지 걱정되었다.
그러나 성자의 표정은 오랜만에 밝았다.
“하나, 너도 아는 분이야. 케일 헤니투스라고 호이크 마을에서 들었던 분 있잖아. 그분과 시종, 기사분들이야.”
“…케일 헤니투스?”
하나의 눈동자가 붉은 머리칼의 남자에게로 향했다. 성자는 신이 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 네가 얼굴을 안다고 설명해 주었잖아. 그, 로운 왕국 테러 사건 때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나섰던 위대한 영웅이라고!”
하나의 눈동자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빛을 띠며 일렁였다.
케일은 자신을 뚫어질 듯 바라보는 그녀에게 쑥스럽다는 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위대한 영웅은 얼어 죽을. 저 여자한테는 짜증 나는 적이었겠지.’
비밀 단체 소속인 저 여자 입장에서 케일은 로운 왕국 영웅이 아니라 일을 망친 주범 중 하나 일 것이다.
그리고 이 정보로 케일은 한 가지를 파악했다.
‘저 성자는 비밀 단체 소속이 아니군.’
그렇지 않고는 저렇게 맹하게 행동할 리 없었다.
“그래서 케일 공자님이 포션도 주시고, 지금 기사분에게 부탁해 우리 호위도 서주셨어.”
“…정말 그 케일 헤니투스?”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는 그녀에게 케일은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네, 쑥스럽지만 그 케일 헤니투스입니다.”
“…은빛 방패 공자?”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그 낯부끄럽고 창피한 이름이 소드 마스터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케일은 여기서 믿음을 주어야 했다.
파아앗.
은빛과 함께 아주 작은 크기의 방패가 나타났다.
“…오!”
성자는 맹하게 감탄했고, 소드 마스터는 살짝 안심한 듯했다. 케일은 그녀를 보며 말했다.
“이제 믿으십니까?”
“…뭐, 그렇죠.”
“그럼 위험하신 상태니, 안정을 취하십시오.”
케일은 듬직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오늘 밤 경계를 서겠습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나, 아프고 힘드신 분들은 지켜 드리는 것이 귀족 된 도리 아니겠습니까.”
성자는 감탄했고, 소드 마스터는 잘됐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론이 맞장구쳤다.
“맞습니다, 도련님. 우리는 수도에서 테러를 저질렀던 그런 극악무도한 놈들과는 다르지요. 이렇게 사람을 구하려 노력해야지, 죽이려 드는 놈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소드 마스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맞아요.”
오, 맞장구를 칠 줄은 몰랐는데?
케일은 론의 말에 그녀가 동의를 할 줄은 몰랐다. 그러나 뒤에 이어진 말에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그런 단체의 놈들은 피를 다 뽑아내 말려 죽여 버려야 해요.”
…살벌하다.
케일은 아무래도 이 여자가 그 단체에 배신을 당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케일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얼굴로 태연하게 물었다.
“그런데 어쩌다 이 나올 수 없는 길에 들어오셨습니까? 길을 잃으면 큰일인데.”
그리고 정적이 내려앉았다.
성자는 당황한 얼굴로 제 동생 눈치를 보았고 소드 마스터는 가만히 천장을 바라봤다.
그 모습에 케일은 하나 추측할 수 있었다.
‘리타나를 만나러 가는 길인가 보군.’
정글의 여왕. 그녀가 괜히 성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게 아닐 터.
뻔했다.
그리고 그 추측은 곧 결과로 다가왔다.
냐아아옹.
비크로스를 숲의 입구까지 데려다주었던 온이 종종걸음으로 동굴 안에 들어섰다. 하지만 온은 케일에게 직진해 오더니, 그의 팔을 맹렬히, 그리고 다급하게 툭툭 두드렸다.
그와 동시에 동굴 입구에 있던 최한이 케일에게 말했다.
“공자님, 멀리서 빛이 하나 다가옵니다.”
“뭐?”
케일은 놀란 얼굴로 동굴 입구로 갔다.
다시 비가 거세진 한밤중. 동굴로 다가오는 빛.
케일은 비로소 왜 성자가 아픈 동생과 함께 숨어야 하는데도 동굴에 불을 피워놓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때, 최한이 작게, 빗소리에 묻힐 만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엘프 전투 때 들었습니다.”
최한은 마창사와 싸웠을 때, 마창사가 울분에 가득 차 했던 말을 떠올렸다.
‘금색 쌍둥이 때문에 일도 많아졌는데! 이것들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그리고 이를 그대로 케일에게 말했다. 케일은 최한의 어깨를 두드리며 뒤돌아섰다. 그의 시선이 두 남매에게 향했다.
“두 분의 손님 같으시군요. 맞습니까?”
성자는 소드 마스터의 눈치를 보았고, 소드 마스터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우며 검은 마나가 군데군데 물든 얼굴을 들어 케일을 쳐다봤다.
“네, 아마 우리 손님일 겁니다.”
그 대답과 동시에 케일은 동굴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케일 공자!”
“오랜만입니다. 리나 씨.”
정글의 여왕 리타나. 그녀가 찬란하게 빛나는 구슬을 하나 쥐고 서 있었다. 당황한 그녀를 보는 대신 케일은 그 구슬에 새겨진 문양을 보았다.
태양신의 문양이었다.
그 안에 담긴 빛이 성자가 있는 방향을 화살표로 가리키고 있었다.
케일은 천천히 뒤돌아서서 성자를 바라봤다.
“태양신 교단 문양이네요. 그게 왜 당신을 가리키고 있습니까?”
“그게, 케일 공자.”
“그러고 보니 두 분은 남매, 아니, 쌍둥이 같은데.”
대답 없이 난감한 표정만 짓는 성자를 보던 케일이 돌연 탄식을 흘렸다.
“하, 어떻게 리나 씨가 이 숲에서 길을 잃지 않고 여기까지 왔는지 알겠군요. 그리고 두 분이 누구인지도요.”
“…케일 공자.”
리타나가 케일에게 다가갔다. 케일의 표정이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혼란을 억누르는 듯한 케일의 표정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케일은 다가오는 그녀에게 시선을 두지 않은 채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나는 선의로 도운 일인데, 도운 자들이-”
괴로움이 케일의 얼굴에 드리워졌다.
“하필, 태양신 교단에 테러를 일으킨 자들이라니. 어떻게 나에게 이런.”
“아닙니다!”
그때, 성자의 목소리가 동굴 안을 울렸다.
“오빠, 진정해.”
소드 마스터가 성자를 진정시켰고, 케일은 성자와 시선을 마주했다. 억울함과 분함이 가득한 그의 눈빛을 보던 케일은 리타나를 바라봤다.
그녀를 보며 케일은 입을 열었다.
“무슨 사정이 있겠지요?”
“…공자.”
“제가 아는 리나 씨라면, 제가 상상하는 끔찍한 일에 동조하실 분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케일의 손이 남매를 향했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를 생각하는 애틋한 남매가 그런 짓을 했을 리 없다고 생각, 아니, 믿고 싶습니다.”
성자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그건 감동이었다.
리타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공자. 나는 공자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맞습니다, 공자님. 저희는 나쁜 의도로 나온 게 아닙니다.”
리타나의 충직한 수하가 말을 덧붙였다. 케일은 그 말들에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행동에 리타나는 안심한 듯 남매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 케일과 론의 시선이 부딪쳤다.
시종 론이 슬그머니 엄지를 들어 올리며 흐뭇한 눈빛을 지었다. 그리고 최한이 멍한 얼굴로 케일을 쳐다봤다.
‘이쯤이야.’
케일은 이 정도 쯤이야, 라는 눈빛을 일행에게 보내고는 리타나의 목소리에 그녀를 바라봤다.
“공자도 함께 들어요.”
“…괜찮습니다. 제게는 버거운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일단 한 번 거절했다. 일개 귀족가 자제에게는 버겁다는 듯이.
“공자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라 그런 게 아니에요. 원래 공자를 만나면 알려 드리려던 이야기일 뿐이에요.”
도움이 필요 없다는 말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알아야 할 일이라도 있습니까?”
“공자, 정글의 불 기억하지요?”
갑자기 불 이야기가 왜 나올까.
“…기억납니다. 끔찍했지요.”
“맞아요. 그 불의 범인을 알아냈습니다.”
쌍둥이가 뭘 빌미로 정글의 여왕에게 접근했는지 알 것 같았다.
황태자가 정글에 불을 질렀다.
이 사실로 여왕을 불러냈으리라.
하지만 케일은 모른 척했다.
“설마 그 범인이 저 남매분들은 아닐 테고?”
“네. 공자 예상대로일 겁니다. 저분들이 범인이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해주었죠.”
케일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쌍둥이 남매를 쳐다봤다. 그때 소드 마스터가 성자에게 말했다.
“오빠, 다 말해.”
“그래.”
결연한 표정의 성자가 말을 시작했다.
“사실 성자와 성녀로 알려졌지만. 저는 반쪽짜리 성력을 지닌 성자로 태어났고 제 동생 하나는 성녀가 아닙니다. 다만 검에 재능이 있어 검사로 자랐습니다.”
성자는 교단에 대한 분노도 드러냈다.
“교단에서는 저희 둘을 이용해 둘 다 성력을 타고났다는 듯 선전했고, 저희를 성자와 성녀로만 살게 만들었지요. 그래서 제대로 세상 구경도 못 했습니다.”
케일은 실소를 참았다. 세상 구경 못 하긴.
그는 아프지만 꼿꼿한 자세로 동굴 벽에 기대고서 앉아 있는 소드 마스터 하나, 비밀 단체 소속원의 천연덕스러운 표정 연기를 보며 기가 찼다.
그사이 성자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다.
“어떤 단체가 마법 폭탄을 교단에 터뜨렸고, 교단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제국에서는 그 단체와 저희를 한패로 몰며 저희를 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들이 테러를 일으킨 게 아니란 건가요?”
리타나의 물음에 성자가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희는 아닙니다. 하지만 제국은 우리를 없애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했을 겁니다.”
“왜죠?”
성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교단 측에서 그 축제 때 발표하려던 정보 때문이죠.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을 제외하고 그 정보를 지닌 이들은 테러로 죽었습니다.”
“무슨 정보죠?”
리타나가 기다리던 정보인 듯 성자를 살짝 재촉했다. 하지만 그 대답은 소드 마스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제국은 연금술을 이용해 죽은 마나로 폭탄을 만든다. 그리고 정글에서 일어났던 그 거대한 불은 제국의 짓이다.”
성자가 이었다.
“교단 측은 그 발표로 황실을 억누르려고 했지요.”
케일은 왜 태양신 교단이 태양신을 기리는 축제와 연금술을 기리는 축제를 함께하려고 했는지 이해되었다.
노리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폭탄 테러가 일어났고, 우리는 그 범인으로 몰렸지요. 발표 전에 말입니다! 분명 제국은 우리가 그 정보를 손에 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억울하게 쫓기게 되었고, 하나는 다치고! 크흑!”
울분이 치미는 듯 성자는 눈가가 벌겋게 물들었다.
케일은 이 모든 걸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갔다.
‘언뜻 제국과 교단의 일 같은데, 왜 비밀 단체가 그 사이에 끼어들어 있지?’
둘 중 한 곳과 연관이 된 건가?
그럼 저 여자는 뭐지?
케일의 시선이 여자에게로 향했다. 성자는 그간의 설움을 토해내고 있었다.
“우리는 이용만 당했습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소드 마스터 하나가 담담히 중얼거렸다.
“그래. 다 이용하지. 모두에게 다 당했어. 가족처럼 생각했더니.”
모두에게 다.
케일은 저 단어에 교단, 황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더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때, 리타나의 입이 열렸다.
“그럼 그 정보를 대가로 우리에게 신변 보호 요청을 하는 건가요?”
성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현재 연금술 종탑에 대한 정보가 있습니다. 이걸 드릴 테니, 우리를 동대륙으로 떠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원래 태양신 쌍둥이의 도주 계획은 둘이서 동대륙으로 떠나 그곳에서 사는 것이었다.
그때, 하나의 목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오빠만 데려가세요.”
“그게 무슨 소리야! 하나, 너는!”
성자가 당황한 얼굴로 제 동생을 바라봤다. 하지만 소드 마스터의 얼굴은 담담했다.
“나는 어차피 죽을 몸이야.”
본래의 계획과 달리, 하나는 죽은 마나에 중독되어 버렸다. 이대로 동대륙을 건너다가 죽을 판이었다.
“죽는다니! 그런 말 하지 마! 하나, 내가 널 살릴 거야!”
성자의 절박한 목소리에도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 동굴 천장만 응시했다. 리타나는 복잡한 시선으로 남매를 바라봤다.
그때, 차분한 목소리가 동굴에 울려 퍼졌다.
“복수라도 하게요?”
케일이었다.
동굴 천장을 보던 소드 마스터의 시선이 케일에게로 향했다. 그 얼굴을 보며 케일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지금 그럴 얼굴인데.”
여자는 실소를 흘리며 답했다.
“그렇다면요?”
부정하지 않았다. 죽어가는 몸이었지만 그 눈동자에는 분노와 배신감이 가득했다.
“하나! 제국에 복수라니! 너는 나한테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
“그래, 제국에 복수라니. 그러면 안 돼.”
“안 된다면서, 왜 너는!”
하나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케일은 그녀의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기에 가능했다.
저 여자는 제국에 복수를 하려는 게 아니다.
다른 쪽에 복수를 하려는 거다.
케일은 최한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마창사가 금색 쌍둥이 때문에 일이 많아졌다고 그랬습니다. 아무래도 저 둘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저 여자는 비밀 단체에도 배신을 당했다.
“하나, 말 좀 해봐! 우리 둘이 같이 살아야지. 안 그러면 의미가 없어!”
성자의 애달픈 목소리에도 하나는 입을 다물고서 눈을 감았다. 그때, 다시금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음, 하나 씨?”
왕국의 영웅이자 선하고 정중한 자, 케일 헤니투스.
그의 목소리도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복수 한번 효과적으로 해볼 생각 없습니까?”
케일은 하나가 놀란 얼굴로 눈을 떠 자신을 보자, 미소를 그렸다.
어제의 적이 꼭 평생의 적일 필요는 없었다.
“…그게 무슨.”
“죽은 마나로 어차피 죽을 몸. 더 오래 살게 해줄게요.”
동굴 안이 조용해졌다. 하나만이 케일의 말에 반응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케일은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에게 더 짙은 미소를 그려 보였다.
그는 정글의 여왕 리타나도, 저 성자도 모를 말을, 오직 소드 마스터인 그녀만 알아들을 말을 툭 던졌다.
“피에 미친 마법사처럼 죽으면 안 되잖아?”
하나.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흔들림을 케일은 놓치지 않았다.
어제의 적을 동료로 들일 수는 없으나, 부려먹을 수는 있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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