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29
128화.
“피에 미친 마법사요? 그게 누군가요?”
정글의 여왕 리타나가 제일 처음으로 케일의 말에 반응했다. 뒤이어 성자도 한마디를 건넸다.
“이름 살벌하네요. 마법사가 피라니. 그런데 하나, 포션 한 개 더 마실래?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소드 마스터 하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그 입술 끝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케일은 여유로이 새로운 손수건을 성자에게 건넸다.
“하나 씨 땀 좀 닦아드려야겠어요. 어우, 이마에 식은땀이 많이 나네요.”
다정히 말하고선 케일은 리타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하나는 떨리는 손끝을 숨기며 모른 척했다.
“피에 미친 마법사라고, 그런 녀석이 있습니다. 저도 그 사람에 대해 들은 것뿐이지만, 아무튼 지금은 죽었죠.”
“그런 사람이 있군요.”
“네. 참으로 잔인하게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케일은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동료의 검에 베여서 죽었거든요.”
“…음, 끔찍하네요.”
리타나 수하의 반응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의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렸다. 죽은 마나의 검은 자국과 하얗게 질린 얼굴이 더욱더 대비되었다.
케일은 말을 이었다.
“저는 그런 이야기만 들어도 심장이 뛰더군요. 제 눈앞에서 사람 죽는 걸 보기 싫은지라.”
“그럼요. 공자의 마음씨를 제가 알아요. 사람 죽는 게 공자님께는 힘드실 거예요.”
정글의 여왕이 케일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그런데 복수를 돕는다니요.”
리타나는 케일이 가짜 성녀에게 했던 말이 그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케일이 누군가의 복수를 돕는다니. 저 쌍둥이들의 억울한 마음은 이해가 되었으나, 케일의 성정은 그런 잔혹함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케일이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짓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리나 씨, 최고의 복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최고의 복수요?”
케일은 리타나의 의문 가득한 얼굴에도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하얗게 질린 하나를 바라봤다.
“하나 씨.”
케일은 담담하지만 사려 깊은 어조로 말했다.
“제가 참견해서는 안 되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또 무슨 소릴 하려고?
혼란과 불안이 가득한 하나의 눈동자가 느껴졌지만 케일은 제 할 말을 했다.
“하나 씨, 오래 행복하게 사는 게 진짜 복수입니다. 오빠와 행복하게 사셔야지요.”
행복하게 사는 게 진짜 복수는 무슨.
당한 만큼 갚아야 진짜 복수였고, 복수를 해야 억울함 없이 두 발 뻗고 자는 법이었다. 하지만 케일은 속마음과 다른 말을 내뱉었다.
리타나가 감탄했다.
“아, 그런 뜻으로. 공자는 저와 달리 그릇이 크십니다.”
그리고 성자는 살짝 눈가의 눈물을 훔쳤다.
냐아아옹.
온이 케일의 품에서 벗어 나와 바닥에 내려앉으며 울었다. 리타나는 다정스레 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온도 케일 공자의 말에 동의하는군요.”
온은 동의는커녕 기가 차서 케일의 품을 벗어나 탄식을 흘릴 뿐이었다. 최한은 이미 동굴 내부를 외면하며 그저 동굴 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맞습니다. 그런 게 복수지요.”
그리고 론이 케일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케일은 동료들 간의 불협화음에도 굴하지 않았다.
“벌써 새벽이네요. 일단 환자분도 계시고 하니, 잠시라도 눈을 붙이는 게 어떻습니까?”
“그럴까요?”
리타나가 동굴 밖을 보며 답했다. 확실히 밤이 늦었다.
“네. 쌍둥이 두 분은 힘들어하실 테니, 저희 일행과 리나 씨 일행이 돌아가며 주위 순찰을 도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 혹시 적이 올지도 모르니까요?”
적. 제국군을 가리키는 리타나의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네, 혹시 모르니까요.”
“좋아요. 그러죠.”
리타나의 수긍에 케일은 두 쌍둥이, 특히 하나를 보며 말했다.
“두 분은 푹 주무세요.”
“감사합니다. 얼마만의 단잠이 될지 모르겠네요. 불안함 없이 잠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자는 감동한 목소리로 답했고 하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나, 또 기침이 나오려고 해?”
“…오빠는 좀. 하, 아냐.”
성자의 지극한 간호를 받는 하나의 머릿속이 복잡해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태연히 리타나에게 말했다.
“저희가 먼저 순찰을 돌죠.”
그렇게 길었던 대화가 잠시 멈추고 모두 휴식을 택했다.
케일 일행이 먼저 순찰을 돌았고, 그들이 돌아왔을 때 성자와 성녀는 피곤했던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리타나 일행이 안개를 조종하는 온을 데리고 주위 순찰 준비를 했다.
“공자, 순찰을 꽤 오래 도셨네요.”
“숲 입구까지 다녀온다고요.”
“우리도 그래야겠네요. 그러면 한두 시간 걸릴 듯해요.”
“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리타나는 피곤한지 눈을 붙일 준비를 하는 케일에게 미소로 인사를 대신하고는 온과 수하들을 데리고 동굴 밖으로 순찰을 나갔다. 물론 동굴 입구에서 경비를 서는 최한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쏴아아아.
빗소리와 모닥불이 타오르는 소리만이 적막한 동굴 안에 울려 퍼졌다. 고요했다.
그렇게 리타나 일행이 멀어졌을 무렵.
“넌 누구지?”
하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케일은 감았던 눈을 떴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소드 마스터 하나가 어느새 일어나 동굴 벽에 기댄 채로 케일 일행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케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와 그녀의 시선이 부딪치며 잠시간의 대치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 대치는 곧 깨졌다.
“…설마 네가 그 녀석들이야?”
하나는 반쯤 확신 어린 눈빛으로 케일을 바라봤다.
“그 녀석들이 뭐지?”
케일의 물음에 그녀는 상당히 찜찜한 얼굴로 답했다.
“…비밀 단체.”
저 단어를 내뱉는 그녀의 표정은 상당히 묘했다. 하긴 본인이 비밀 단체 소속이면서 다른 곳을 비밀 단체로 말하는 그 심정이 어떨지, 케일은 알 것 같았다.
그는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그걸 알면 도망쳐야지. 왜 안 도망치고 있어?”
케일은 미소를 그려 보였다. 하지만 그 미소는 다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는 등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의 시선이 힐끗 성자에게로 닿았다가 케일에게로 향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케일은 물었다.
“오빠가 걱정되나 봐?”
“…지금 협박하는 건가?”
그녀의 안광에 흉흉한 빛이 돌았다. 일순간 몸에 피어나는 검은 자국이 옅어졌다. 황금빛 오러가 그녀의 피부에 서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스릉.
최한이 겁집에서 검을 살짝 뽑았다. 그리고 론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케일 뒤에 섰다.
하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태평하게 자는 오빠의 손을 잡았다.
‘어떡하지?’
그녀는 머릿속이 복잡하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오빠와 자신을 이용하는 교단. 자신들을 개처럼 부리는 교황. 그들을 피하고 싶던 와중에 자신에게 다가온 단체.
그 단체는 자신을 가족처럼 대해주었다.
여기라면 오빠와 함께 교단을 빠져나와 살 수 있겠구나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배신을 당했다.
그리고 막다른 골목에서 또 다른 적을 마주했다.
미칠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였다.
그녀는 케일 헤니투스의 입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협박은 하지 않아.”
“…뭐?”
하나는 실소를 흘렸다. 죽은 마나 때문에 온몸의 핏줄이 터져 버릴 것 같았지만, 그녀는 오러를 최대치로 올렸다.
“지금 하는 행태가 협박이 아니라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같이, 하나의 기세는 흉흉했다.
그런 그녀에게 무심한 목소리가 닿았다.
“너에 대한 예의 같아서 말이야.”
“…뭐라고?”
무슨 소리야.
하나는 순간 케일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케일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보니까 암에서도 배신당한 것 아닌가?”
암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하나는 그 정보력에 놀랐다.
그리고 침묵했다.
“마창사가 너와 네 오빠를 찾는 것 같던데.”
그리고 이어진 케일의 말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제국군에, 교단에, 비밀 단체에. 그녀는 숨이 막혀왔다. 그녀는 얼굴을 일그러뜨린 그대로 케일을 노려보았다.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지?”
그녀는 입꼬리에 비웃음을 매달며 말을 이었다.
“궁지에 몰렸으니, 복종하고 모든 정보를 토하라는 건가? 왕국에서 영웅 대접 받고, 온갖 착한 척은 다 하더니.”
정중한 공자인 척했지만, 하나는 그가 정중함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사악한 편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그 이중적인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암도 그랬다. 가족처럼 대하면서 뒤로는 자신의 뒤통수를 칠 준비를 했다.
“네가 이런 놈이란 걸 남들은 모르고 있지? 여왕도 모르는 것 같은데 말이야.”
그녀는 케일을 노려보며 애써 비웃었다.
그런 그녀에게 담담한 목소리가 닿았다.
“넌 알잖아.”
“…뭐?”
“넌 내가 이런 놈이라는 거 알잖아. 난 내 두 모습 다 너에게 보였어. 이걸로 답이 된 거 아닌가?”
그녀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을 말하듯 태평한 목소리가 들렸다.
“배신당한 너에겐, 이게 내가 보여줄 기본 예의라 생각하는데.”
순간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너에 대한 예의 같아서 말이야.
하나는 방금 전 협박이 아니라며 케일이 했던 말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케일은 흉흉한 기세가 수그러드는 것을 가만히 바라봤다. 협박은 그다지 취미가 아니었다. 협박보다는 거래가 그의 취미였다.
그에게 하나의 목소리가 닿았다.
“…나와 대화를 하고 싶은 거야?”
“그래. 대화를 겸한 거래를 하고 싶은 거지.”
하나는 그가 기세가 수그러든 자신을 보며 미소 짓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제 대화할 준비가 됐네.”
아까 전 오싹하게 느껴지던 미소와 달리 한층 부드러운 미소였다. 하나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던 손에 힘을 풀었다. 그때였다.
“나는 너와 네 오빠를 동대륙에 보내지 않을 거다.”
“그게 무슨 소리야?”
다시금 이어진 그의 말에 하나는 얼굴이 일그러졌다. 분위기가 좋아졌다 싶었더니, 결국 진로를 방해한다는 소리였다.
그 순간 케일의 말이 이어졌다.
“나야말로 네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뭐?”
“암이 동대륙 뒷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걸 아나?”
하나의 몸이 순간 굳었다. 그녀는 말도 내뱉지 못하고 충격받은 표정으로 케일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한참 만에 작게 말했다.
“…몰랐어. 네가 더 알고 있구나.”
하나는 케일의 정보력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리고 자신이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나한테는 그냥, 그냥 북쪽과 연합한 작은 단체라고 했는데.”
음?
케일은 순간 멈칫했다.
뭐라고?
하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세상에 대해 잘 아는 척했지만, 결국 성자인 제 오빠처럼 세상을 아직 못 겪어봤다. 그래서 순진한 편이었다.
“나는 그냥 오빠와 나를 북쪽으로 보내준다고 해서. 북쪽 왕국과 손을 잡았다고 했으니까. 배신당한 지금은 동대륙에만 가면, 그러면 우리가 살 줄 알았어.”
케일은 슬쩍 고개를 뒤로 돌렸다.
론과 시선이 마주쳤다.
‘지금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지?’
론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도련님.’
케일은 다시금 하나를 바라봤다. 고개를 숙였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도 궁지에 몰린 그녀는 가여운 인간에 불과했다.
케일은 그 얼굴을 보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분명 북쪽이랬다.
지금 비밀 단체가 북쪽과 연관이 되어 있다고 했다.
케일은 목이 탔다. 하지만 그녀와 눈을 마주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북쪽 파에른 왕국과 암은 서로 협력 관계잖아.”
케일은 하나의 반응을 기다렸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마침내 하나의 대답이 들려왔다.
“응. 그래서 서대륙에서 도망갈 곳은 없어.”
오.
이런 제기랄.
북쪽이 비밀 단체에 뒷배였어? 아니, 협력 관계였어?
“크흠, 큼!”
최한이 사레라도 걸린 것인지,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어 댔다.
케일은 이를 가벼이 무시했다.
그 순간, 하나의 말이 이어졌다. 그녀는 괴로움을 겨우 삼키는 것처럼 짓씹듯이 말을 토해냈다.
“…그런데 북쪽과 제국이 협력 관계일 줄이야.”
이야.
케일은 욕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영웅의 탄생’에서 제국이 북쪽 3국 연합의 와이번 기사단 정보를 알고 있다고 했었다. 단순히 그냥 정보력이 뛰어나서 그런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미치겠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하나에게 담담히 답했다.
“그러게 말이야.”
그 맞장구에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넌 다 알고 있었구나. 나는, 나는 아무것도 몰랐어.”
그녀는 괴로움에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런 그녀에게 케일은 말했다.
“나도 다 아는 건 아냐. 나도 그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야.”
같기는 개뿔이.
북쪽 3국에 비밀 단체에 제국이라니.
이거 알고 보니 개판 1분 전이었다.
‘어떡하죠?’
최한이 그렇게 쳐다봤다.
…어떡하긴.
더 개판으로 만들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