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4
13화.
하지만 케일은 통쾌함 뒤에 왠지 모르게 뒷목이 서늘해졌다. 론이 너무 군말 없이 레몬차를 마셨기 때문이었다.
탁.
차탁 위에 찻잔 올려놓는 소리가 왜 이리 크게 들리는 것일까. 다행히 케일만의 착각이 아닌 듯싶었다. 조용히 차를 음미하던 최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드시려면 조용히 좀 드시죠?”
론은 최한이 힐끗 케일의 눈치를 보며 자신에게 말을 높이는 꼬락서니에 헛웃음을 삼켰다. 오늘 그는 최한이 쓸만한 칼을 구해다 주었다. 비크로스의 식칼을 만든 대장간에서 만든 검이었다.
`한 판 붙지?`
`요리하는 식칼로 사람을 베려는 놈을 상대할 수 없다.`
그 검을 든 최한에게 아들 비크로스가 끈덕지게 대련을 요구했다. 저번 짧은 공방으로 최한의 실력을 어느 정도 감 잡았고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한은 거부했다.
`허. 웃기는 자식이네. 왜 너처럼 피 묻은 검을 들고 와야 하는 건가?`
최한은 눈을 감았다 뜨더니, 다짐하듯이 아들의 말에 답했다.
`나는. 나는 이제 지키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도 할 수 있다고 그러셨다.`
`뭐라는 거야.`
론은 아들과 최한의 귀여운 투닥거림을 보다가 최한을 따라 케일에게 왔다. 그런데 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계속 망나니로 살 순 없잖아?`
론은 레몬차 대신에 그 말을 음미했다. 그 모습을 최한은 탐탁지 않게 바라봤다. 그 광경을 케일은 흐뭇하게 바라봤다.
`영웅의 탄생` 속 론과 최한의 사이가 저랬다. 서로에게 날을 세우면서도 언제나 함께 다니는 동료. 계약으로 얽혀있지만, 서로의 선을 지키는 사이.
케일은 얻어맞지 않으려는 자신의 행동 때문에 많이 틀어진 줄 알았는데 기본적인 인간 사이의 관계는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조금 틀어진 건 아쉽지만. 내 인생이 먼저니까. 내 인생인데 책대로 살 수는 없지.`
일단 나. 그리고 내 영역 안의 존재들만 편하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역시 단 차가 최고야.”
기분 좋게 케일이 내뱉은 말에 론이 멈칫했다.
폭우가 쏟아지는 광경 속에서 한가로운 세 사람의 티타임이 끝이 났다.
“다음에 뵙는 것은 수도가 되겠군요.”
티타임이 끝나고 3층에서 내려온 케일은 인사를 건네는 빌로스에게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당분간 매일 올 거다.”
“그렇습니까? 책 읽으러 오십니까?”
“내 마음이지.”
“언제든 오십시오. 공자님께 이 찻집은 늘 열려 있습니다.”
빌로스는 자신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지나치는 케일이었지만 이를 흥미롭게 바라봤다. 그리고 그 광경을 론이 가만히 응시했다.
플린 상단의 서자. 서자였지만 그 재능이 뛰어나 오히려 직계 혈족들에게 경계를 받았고 그래서 변방이지만 돈이 되는 장소인 헤니투스 영지로 와야 했던 빌로스.
그는 플린이라는 성도 받지 못했다.
론은 탐욕심이 큰 빌로스와 케일이 친해 보이자, 이를 관찰하다가 이내 혀를 찼다. 저 강아지 도련님이 빌로스와 친하든 말든 자신이 왜 이를 신경 쓰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쯧. 미운 정이 뭐라고.”
“난 그쪽이랑 결코 미운 정이 들기 싫은데.”
눈치 없는 최한의 말에 론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 말고, 이 놈아.”
론의 시선이 닿아있는 곳은 케일이었다.
어차피 론은 이번 참에 수도에 가야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았다. 최한이 어둠의 숲 악취를 묻혀온 날부터 론은 그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그가 이 영지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던 이유, 동대륙에서 도망쳐와야 했던 이유.
그 모든 것들의 이유가 되었던 이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알아보아야 할 것 같다.
그때까지 우리 강아지 도련님이 무사히 수도에 도착하고 다시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마지막 시종으로서 할 일로 적당하지 않을까.
겁먹는 꼴이 우스워 늘 곁에 있겠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암살자의 입에서 진실이 나올 리가 있겠는가.
`여행 동안 비크로스에게 우리 강아지 도련님이 좋아하실 음식들로 준비하라고 해야겠어.`
아들 비크로스보다 더 많이 돌본 놈이다. 얼마나 미운 짓만 하고 인성이 글러 먹었는지 론은 잘 알았다. 하지만 또한 그는 안다.
제 어머니가 죽었을 때, 제 아버지를 달래던 어린 케일의 모습을. 그리고 새어머니와 그 가족을 미워하지만 결코 술에 취해도 그들에게 행패를 부리지 않았던 케일의 모습을.
`망나니는 망나니인데, 쯧.`
18년. 걸리적거리게도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봐왔다.
* * *
저택으로 돌아오자마자 침실로 들어선 케일이 마주한 것은 둘이서 딱 달라붙어서 올망졸망한 눈동자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두 새끼 고양이였다.
“아, 너희가 있었지.”
작은 동물을 아끼는 최한을 데려올 것을 그랬다. 최한은 지키기 위해선 마음이 더 강해져야 한다며 제 방으로 가버렸다.
케일이 우스갯소리로 누굴 지킬 거냐고 물었을 때 더 강해지면 말하겠다는 최한의 말에 케일은 어찌나 소름이 돋던지. 도대체 강한 놈이 더 강해지면 뭐하려고 저러는지 케일은 도통 알 수 없었다.
“공자님.”
고양이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케일의 곁으로 한스가 다가왔다.
“공자님, 어떻습니까? 아주 한층 더 귀엽고 사랑스럽고 감동적이게 되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도도하신지 쓰다듬는 것도 못하게 하시더군요. 하하!”
그는 고양이들 옆에 쪼그리고 앉아 뿌듯한 얼굴로 케일을 올려다봤다. 그 표정이 얼마나 감동으로 가득 차 있던지, 케일과 론은 외면했다. 그 표정은 고양이의 귀여움과 무관했다.
“네? 그렇지 않습니까?”
강력한 집사 후보는 강력하게 고양이를 좋아하는 듯했다.
“어, 뭐, 그렇네.”
확실히 어디서 구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귀해 보이는 비단 쿠션 위에 올라가 앉아있는 두 고양이는 한층 배부르고 건강해 보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부집사는 무슨 마술을 부린 것일까.
하지만 두 고양이는 도도하게 한스의 시선을 외면했다. 본디 집사와 고양이의 관계는 그렇지 않았던가.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공자님, 다시 우리 고양이님들에게 할 일이 있다면 저를 불러 주십시오.”
“얼른 가라.”
어기적어기적 나가지 않으려는 한스를 론이 내보내는 것을 확인 후, 케일은 고양이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외면한 채 욕실로 들어갔다. 그 순간 대번에 고양이들의 귀가 축 처졌다.
그때였다.
“호오.”
한스를 내보낸 론이 고양이들에게 다가갔다. 침실에는 론과 새끼 고양이 두 마리 뿐이었다.
“묘족의 아이들이구나.”
고양이들의 금안에 날카로운 빛이 맴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론은 그런 눈빛을 하나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닫힌 욕실 문을 확인 후 고양이들 앞에 앉았다.
“잘됐군.”
론의 입꼬리가 삐뚜름한 미소를 그렸다.
가장 기척에 예민하고 주위 사람 파악이 빠른 종족이 묘족이다. 묘족에 대해 널리 알려진 동대륙과 달리 서대륙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수인족이었지만 암살과 관련된 론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광폭화되면 난폭해지는 다른 수인들과 달리 묘족은 더 은밀해졌고 더 날카로워졌다. 그래서 늑대나 호랑이, 사자 족에는 못하지만 무서운 종족이었다.
그런 묘족의 두 아이들을 보며 론은 단 한 가지를 생각했다. 갑자기 든 생각이고 아직 어리지만.
`가르치면 되겠어.`
론은 케일이 들어간 욕실 문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묘족은 인연을 중요시했다. 한번 믿으면 결코 배신하지 않았다. 경계심이 가득했지만 늑대족만큼 인연을 중시했다.
그런 묘족의 아이들이 먼저 케일을 찾아왔다. 우리 강아지 도련님에게 작별 선물을 하나 주어도 되지 않을까.
그는 묘족 아이들에게 조금 더 다가갔다. 덩치가 조금 더 큰 은색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었다.
탁. 은색 고양이는 야멸차게 그 손을 쳐내고는 붉은색 고양이를 데리고 구석으로 갔다.
“호오.”
론의 눈동자에 흥미가 스며들었다. 벌써 이 묘족 아이들은 자신을 파악한 듯했다. 하긴 자신과 같이 죽음과 가까운 이를 잘 알아채야 오래 살지. 고양이의 목숨은 아홉 개라 하지 않았던가.
묘족은 목숨이 질기기로 유명했으며 밤의 발걸음은 누구보다도 은밀하다고 들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한 아이는 안개이고, 한 아이는 독이구나.”
은색은 안개. 붉은색은 피 혹은 독. 살수는 아니더라도 그림자가 되기에 그 재목이 아주 좋았다.
그런 론을 보며 은색 고양이는 고개를 훽 돌렸고 붉은색 고양이는 콧방귀를 꼈다. 죽음의 냄새를 폴폴 풍기는 살수가 될 생각도 가까워질 생각도 없는 남매였다.
론의 속내를 알 듯 그에게 비웃음을 날리는 두 고양이였지만 그들은 이내 서로 찰떡같이 달라붙은 채 울망울망하는 눈동자로 케일을 올려다봤다.
“눈 깔아.”
그리고 케일의 말에 바로 눈을 깔았다.
“론. 비크로스한테 가서 내 밥 좀 챙겨와.”
“네.”
론이 나갔고 케일은 소파에 앉아 고양이들을 응시했다. 그는 자신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한껏 낑낑거리며 눈을 내리깐 두 고양이에게 물었다.
“너희 묘족이지.”
눈을 깐 채로 고양이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따라다닐 건가?”
그의 물음에 이번에는 어떠한 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붉은 색 고양이가 천천히 다가와 볼을 비볐다. 그리고 은색 고양이도 다가와 슬그머니 앞발로 케일의 발을 툭툭 찼다.
케일은 이미 이 두 남매에 대해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양이들의 거취를 결정했다.
“그러면 밥값 해라.”
고양이들은 바로 답했다.
냐야아옹.
냐아옹!
“사람 말로 답해라.”
은색 고양이, 남매 중 누나인 온이는 금안을 반짝이며 말했다.
“고기 먹고 싶은데. 배 아직도 고픈데.”
붉은색 고양이, 남동생 홍이는 케일의 다리를 툭툭 두드리며 채근했다.
“나는 케이크 먹고 싶은데.”
케일은 답했다.
“많이 줄 테니, 알지?”
“밥값!”
“밥값!”
고양이들은 곧바로 답했고, 그렇게 안개 묘족에서 도태되어 버려졌던 어린 후계자 남매는 헤니투스 백작가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4일 뒤, 케일은 오랜만에 아침 가족 식사에 참석했다. 데르트 백작은 평소보다 더 단출한 옷차림의 아들을 보며 미소를 그렸다.
“오늘이면 떠나는구나.”
케일은 오늘 영지를 떠나 수도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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