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46
145화.
병사들은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런 그들에게 서릿발 같은 명령이 내려앉았다.
“모두 물러나!”
대장군 툰카였다.
병사들은 황급히 마이플 성에서 멀어졌다.
툰카는 전사들에게 지시했다.
“마법 내성 전사들이 앞서도록!”
마법 내성을 지닌 부족민들이 병사들보다 앞에 서며 진을 형성했다. 그 행동은 신속했지만 묘하게 어색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르르르.
쏴아아아아-
벼락과 장대비, 거센 바람.
그 모든 것들이 휘몰아치는 마이플 성.
적막한 그믐. 그곳이 폭풍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 더 시야를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취이이이익-
“부, 불이-”
병사는 저도 모르게 창을 세게 거머쥐며 중얼거렸다.
불이 꺼지고 있었다.
하늘에 닿을 듯 성보다 더 높이 치솟아 있던 불기둥이 점점 낮아졌다.
비와 수증기, 그 모든 것들에 뒤섞여 병사들은 제대로 성이 보이지 않았다.
“이, 이런 괴이한!”
부족 출신 전사가 탄성을 흘렸다. 마법인가? 그는 마이플 성만을 휘감은 폭풍우를 보며 두려움과 함께 전율이 일었다.
그는 고개를 높이 들었다.
비 사이로 두 사람이 보였다.
검은색으로 휩싸인 두 사람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저절로 전사의 시선도 그들을 따라갔다.
“아.”
전사의 시야에 성 높이보다 줄어든 불기둥이 보였다.
펄럭펄럭.
모고르 제국의 깃발이 나부끼는 지붕이 보였다.
성에서 가장 높은 기둥, 그 기둥 위를 덮은 붉은 지붕.
지붕 위에 깃발이 묶인 깃대를 잡고 서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검은 야행복으로 모든 것을 까맣게 물들인 사람.
전사는 깃대를 잡지 않은 그의 손을 멍하니 바라봤다.
휘이이잉-
거대한 바람이 그 남자의 손에서부터 시작되어 하늘로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이 비구름을 저 사람이 조종하는 것 같았다.
제국의 마법사나 기사들을 만났을 때와는 다른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 순간 전사는 한 존재가 생각났다.
자연.
자연을 믿는 부족민이었기에 전사는 자연의 힘을 알고 있었다. 마법 따위, 인간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저 한낱 미물로 만들어 버리는 자연의 지배력.
주춤. 전사의 걸음이 뒤로 밀려났다.
그때 전사는 자신의 어깨를 한번 잡고는 앞으로 나서는 이를 볼 수 있었다.
대장군 툰카였다.
전사는 그제야 손에 힘이 들어갔다.
대장군 툰카. 그는 어릴 때부터 모든 자연과 맞서며 살아온 강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부족민들은 자연에 굴하지 않는 그를 따랐다.
“너희들은 누구냐!”
대장군 툰카가 거침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지붕 위의 사람, 케일은 생각했다.
‘목소리 하나는 우렁차네.’
비바람에 케일은 으슬으슬 추워졌다. 심장의 활력도 추위를 사라지게 하지는 못했다. 케일은 이제 슬슬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냐!”
툰카가 한 번 더 외쳤다. 순간,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음성 마법으로 변조된 목소리.
“그러게. 우리가 누굴까?”
로잘린이었다.
그녀의 놀림 가득한 목소리가 위퍼 왕국군에게 닿았다. 케일은 역시 로잘린이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며 한 손으로 주섬주섬 마법 주머니 안을 뒤졌다.
그때, 최한이 외쳤다.
“우리는 비밀 단체다!”
오러가 실린 기합 가득한 목소리.
최한이 잘했냐고 케일을 쳐다봤다. 이번엔 케일이 시켰다. 케일은 한숨을 내쉬며 툰카 쪽을 내려다봤다.
“뭐? 비밀 단체?”
툰카가 미간을 찌푸리는 연기를 펼쳤고 병사들이 술렁였다.
전사들은 병사들을 진정시켰다. 그러면서도 갑자기 나타난 괴이한 이들에게서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그때였다.
“어?”
병사가 눈을 크게 떴다.
깃대를 잡고 있던 사람이 움직였다.
“헉!”
전사는 저도 모르게 경악을 내뱉었다.
찌이익-
마이플 성 꼭대기에서 펄럭이던 모고르 제국 국기.
그 제국기가 깃대에서 잘렸다.
지붕 위의 남자는 깃대에서 제국기를 잘라낸 단검으로 모고르 제국 상징을 꿰뚫었다. 그리고 단검을 툰카 쪽으로 던졌다.
휘이이이-
소용돌이와 함께 단검은 빠르게 툰카에게로 날아왔다.
“대장군님!”
전사 중 몇이 놀라 툰카를 불렀다. 하지만 툰카는 요지부동으로 지붕 위의 사람만을 응시했다.
푸욱.
단검이 땅에 박혔다.
툰카 바로 앞이었다.
그 광경을 놀라서 지켜보던 이들에게, 제국기를 잘라 버린 남자의 변조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은 꺼졌다.”
취이이익-
불기둥이 완전히 사라졌다.
투둑. 투둑.
비가 조금씩 내렸다.
바람에 실린 물방울들이 병사들의 뺨에 닿았다.
그때, 병사들은 툰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크하하하하!”
폭풍우가 멈춘 자리를 채우는 웃음소리였다.
쫘아아악.
툰카가 두 손으로 모고르 제국기를 찢었다.
찢겨진 제국기는 바닥에 짓밟혔다.
툰카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으로 진군해라.”
불이 꺼졌다.
“저 녀석들도, 제국도, 남아 있는 것들도 모조리 잡아라.”
툰카가 명령했다. 그리고 그는 가장 먼저 달렸다.
툰카의 싸움은 늘 그러했다.
그는 수증기가 서서히 사라져 가는 마이플 성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성의 1층 문. 나무로 만들어진 가장 큰 정문을 손에 들린 쇠몽둥이로 내려쳤다.
콰아아앙-
문이 부서졌다.
오러 따윈 없어도 되었다. 타고난 신력이면 충분했다.
부서진 문 안으로 성 내부가 보였다.
“다들 움직여라! 앞으로 나아가라!”
툰카가 외쳤고 그의 오른팔 격인 펠리아가 창을 높이 들었다. 뒤이어 툰카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전사 몇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우아아아!
펠리아를 비롯한 전사들이 성 정문으로 뛰어갔다.
휘이이-
다시 한번 거대한 바람이 불었다.
“크윽!”
펠리아를 비롯한 전사들을 뒤로 밀리게 만든 거센 바람이 마이플 성을 휘감았다. 그 바람을 맞으며 멀쩡한 이는 툰카뿐이었다.
“대장군님, 위를!”
전사 중 한 명이 외치자 툰카도 위를 바라봤다.
그 위엔 케일이 있었다.
그는 어느새 최한, 로잘린과 함께 공중에 떠 있었다.
“라온, 투명화 좀.”
바로 옆에서 라온의 대답이 들려왔다.
“알았다.”
케일 일행의 몸이 점점 투명해졌다.
“저, 저!”
“도망치는 것이냐!”
케일은 아래에서 뭐라 뭐라 외치는 소리들을 말끔히 무시했다. 그는 투명해진 채 빠른 비행마법으로 자신의 숙소인 천막으로 향했다.
“사라졌다!”
“대장군님, 어떻게 합니까?”
“일단 성으로 들어가 샅샅이 뒤진다! 일대 수색도 시작하도록!”
케일은 툰카의 화가 잔뜩 난 척하는 거친 음성을 뒤로하며, 유유히 천막에서 투명화를 풀었다.
“아, 추운데.”
케일은 많이 추웠다. 괜히 깃발 그거 때문에 똥폼 잡는다고 비를 너무 많이 맞았다. 그런 그의 앞에 수건이 두 장 나타났다.
“케일 공자, 여기 수건요. 건조 마법 해드릴게요.”
“케일 님 감기 드시면 쓰러지십니다.”
쓰러질 것까지야.
케일은 떨떠름한 얼굴로 수건 두 장을 받아 들었다.
“음?”
그런 그의 몸을 건조한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 케일의 머릿속으로 라온이 외쳤다.
-인간, 감기 걸리면 큰일 난다! 또 피 토하면서 쓰러지면 안 된다!
건조 마법으로 케일은 어느새 비 맞은 흔적도 없이 말끔해졌다. 그는 야행복 위에 신관복을 차려입고 동료들을 쳐다봤다.
모두 복면을 벗고 야행복 위에 신관복을 입고 있었다.
케일은 그 모습에 천막으로 가 입구 천을 걷었다.
참모장 헤롤, 그가 서 있었다.
그의 뒤에는 참모장을 호위하는 전사이자, 툰카의 수족이 함께였다.
“신관님, 갑자기 소란스러워져서 놀라지 않으셨는지요?”
헤롤의 물음에 케일은 하얀 가면을 쓴 채로 미소를 그렸다.
“괜찮습니다. 잠에서 깬 김에 다시 치료를 시작할까 합니다. 혹시 다친 환자분이 더 있을지요?”
“없습니다.”
“그렇군요.”
늦은 밤 소란에 잠에서 깬 세 신관은 다시 환자들이 있는 천막으로 가 밤을 새웠다. 이 광경을 병사들이 모두 보았지만, 불이 꺼진 성 때문에 정신없이 움직이느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병사들은 신관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물론 가장 고마워한 이들 중 하나인 헤롤이 케일에게 속삭였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케일은 천막 안에서 일하는 동료이자 신관들을 보며 헤롤에게 말했다.
“빚이야. 기억해 둬.”
“잊지 않겠습니다.”
***
마이플 성 꼭대기. 위퍼 왕국의 왕국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가시는 겁니까?”
“가야지요.”
“크흑, 감사합니다.”
성자 잭의 손을 잡고서 한 병사가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미친 신관 케이지의 곁도 비슷했다. 그리고 케일의 앞에도 병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불기둥이 사라진 지 이틀 뒤. 다섯 명의 하얀 가면 신관들은 떠날 채비를 하고 성 앞에 있었다. 병사들이 그들의 곁에 머물렀다.
그사이로 툰카가 다가왔다.
“성에 들어가서 며칠 푹 쉬다 가지 아쉽군.”
“아닙니다. 대장군님.”
케일이 툰카의 말을 사양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병사 한 명,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백발 신관의 입이 열렸다.
“호사는 저희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고 괴로운 이들이 있을 터.”
케일은 맑게 갠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곳이 저희가 있을 곳이겠지요.”
그의 뒤에 서 있는 일행도 그 말에 동조하듯 각자 반응을 보였다. 툰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병사들을 보며 말했다.
“길을 터라. 신관님들 앞을 막지 말거라!”
병사들은 아쉬워하면서도 길을 텄다. 며칠 동안 제대로 잠도 자지 않고 치료를 한 신관들. 그들은 위퍼 왕국군에게 다치지 말라며 포션까지 넘겨주었다.
그리고 아주 놀라운 치료의 힘으로 죽어가던 환자들을 살렸다.
병사들은 지나가는 신관들의 모습에서 경건함을 느꼈다. 한 병사는 저도 모르게 외쳤다.
“신관님!”
맨 앞, 백발 신관의 시선이 병사에게로 향했다. 병사는 그 시선에 힘을 얻었는지 간절히 말했다.
“신관님이 모시는 신이 궁금합니다. 제가 비록 신은 믿지 않지만, 그래도 알고 싶습니다!”
자연을 조금 더 믿는 부족민 출신 병사였지만, 그는 자신을 살리려 땀을 흘리던 신관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의 신에게 감사 기도를 올리고 싶었다.
그리고 병사는 신관이 가리키는 신을 볼 수 있었다.
신관은 하늘을 가리켰다.
태양이 보였다.
병사는 태양을 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신관은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 신관은 걸으면서 한마디를 남겼다.
“태양은 생명에 차별을 두지 않고 비추지요.”
아.
병사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제국이 숭배하는 태양신 교단. 현재는 무너지는 중이지만 그래도 국교나 다름없었다. 병사들은 그제야 가면을 쓴 신관들이 이해되었다.
그때 툰카가 담담히 말했다.
“저들이 고맙다면 그 뒷모습을 기억해라. 우리 역시 마법으로 차별을 당하다가 차별을 이겨내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섰다. 그것 또한 잊지 마라.”
병사들은 툰카의 말을 되새기며, 다섯 신관의 모습이 멀어져 희미해질 때까지 바라봤다.
그리고 다섯 신관들도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가면을 벗어 던졌다.
케이지는 케일을 보고 말했다.
“공자님, 무슨 생각으로 태양신 이야기를 하신 거예요?”
“다 생각이 있습니다.”
나중에 성자와 성녀에게 흰 가면을 씌우고 제국에 입성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케일은 이를 말할 필요가 없었다.
미친 신관은 궁금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은 채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공자님, 나중에 교황 하시면 잘하시겠는데요?”
잭이 선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반짝이는 눈동자로 케일을 바라봤다.
“맞습니다. 꼭 신성력이 없어도, 케일 님은 누구보다도 선하고 따뜻한 분이시니 충분히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위대한 교황이 되실 겁니다. 생명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니. 이번에 또 하나 배웠습니다.”
미친 신관 케이지는 잭을 보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투명화를 해제한 라온에게 말했다.
“집에 가자.”
“알았다, 인간!”
***
초겨울.
케일은 영상 통신구를 끄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성녀의 방으로 향해 방문을 두드렸다.
달칵.
가짜 성녀이자 소드 마스터 하나가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가자.”
“…어디로?”
케일은 담담히 말했다.
“복수하러.”
‘암’의 전투단 1조. 그들이 곧 바다로 향한다.
소드 마스터 하나. 그녀의 입가에 지독한 미소가 조금씩 맺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