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51
150화.
새벽이 밝아왔다.
폭풍우가 멎은 바다는 고요했다. 케일은 하이스 섬 절반을 뒤덮었던 거대한 비구름이 사라진 새벽하늘을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한 가지를 생각했다.
‘…무서운 놈들.’
케일은 당황했다.
다 부숴졌다.
수십 척의 배들 중 섬에 닿은 것을 빼고는 소용돌이와 고래의 공격에 반파되어 물 위에 떠다니고 있었다.
군데군데 검은 점과 같은 시체들도 보였다.
“인간… 충격받았나?”
케일은 검은 용 라온을 쳐다봤다.
“인간, 너무 놀랐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검은 용은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으며 진중하게 세상사에 대해 말했다.
“한쪽이 살면 한쪽이 죽거나 크게 다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오는 법이다. 심약한 마음가짐을 단단히 해야 앞으로 올 혼돈을 견딜 거다. 금 용 할배가 그랬다. 너처럼 박복한 인간도 없다고.”
“라온.”
“그래, 난 너의 박복함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위대한 나를 믿고.”
“내려가자.”
“…알았다.”
케일은 라온의 말을 가뿐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아래로 내려갔다.
해가 진 후부터 다시 해가 떠오르기까지.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펼쳐진 전투는 당연히 케일 측의 승리였다.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고래족에 호족에, 케일 일행까지. 어느 누가 이런 강자들이 한데 모여서 싸우겠다고 생각하겠는가.
툭.
케일의 두 발이 모래사장에 닿았다.
하이스 섬 6.
지난밤 소드 마스터 하나가 싸웠던 섬이었다.
“아주 난장판으로 만들어놨네.”
케일의 시선이 사선 아래로 향했다. 모래사장에 아무렇게나 앉아 있는 하나가 보였다. 피범벅이 된 그녀의 검은 모래사장에 박혀 있었다.
하나는 케일의 말에 반응하듯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보기 좋지 않아?”
아주 피 칠갑을 했네.
케일은 금발과 검은 흉터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피로 뒤덮인 하나를 보며 질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녀가 누군가를 죽인 피를 묻혔기 때문이 아니었다.
케일은 품 안에서 포션을 꺼내 그녀에게 던졌다.
“네 몸 상태나 보고 좋아해라. 성자님이 보고 넘어가시겠다.”
하나는 포션을 받아 들고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어댔다. 케일은 화살과 검에 베인 상처에서 피가 나오는데도 웃어대는 하나를 외면했다.
‘역시 제정신이 아냐.’
성자도 그렇고 이 쌍둥이들은 어딘가 이상했다.
케일은 그녀를 외면한 채로 떠오르는 해와 함께 하나둘 하이스 섬 6으로 오는 동료들을 바라봤다.
“야, 케일 헤니투스.”
“왜?”
케일은 뒤돌아보지 않고 하나의 부름에 답했다. 그녀는 광기가 가신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난 아직 피가 모자라.”
“…안다.”
네가 피에 환장했다는 것쯤은 이제 나도 안다.
그래서 케일은 그녀에게 바라는 바도 있었다.
“공자!”
위티라가 해안가로 빠르게 다가왔다. 그녀의 외침과 함께 하나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맙다. 약속을 지켜줘서.”
살려준다는 약속도, 복수의 기회를 준다는 약속도. 케일은 모두 지켰다. 하나는 제 말을 모른 척하며 위티라에게 다가가는 케일을 보면서 포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케일은 위티라와 마주했다.
“공자, 바다 위에 살아 있는 인간은 없어요.”
산뜻한 미소와 함께 다 죽였다고 말하는 위티라를 보며 케일은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는 기뻐하기보다는 진중한 모습에 역시 케일답다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일단 1조 조원들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해안 절벽 틈새나 동굴 등 곳곳에 숨어버린 잔당 몇몇을 처리 중입니다. 아마 오늘 낮까지는 처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압도적인 힘을 지녔지만 수적 열세로 꽤 힘들었던 지난밤을 떠올렸다.
“시체들은 모두 저희 쪽에서 처리하겠습니다. 난파된 배 조각들도요.”
가만히 있던 케일의 입이 열렸다.
“난파되지 않은 배들은?”
그 말에 위티라는 하이스 섬 6에 박혀 있는 배를 쳐다봤다.
하이스 섬들 곳곳에 정박한 배들 중 꽤 멀쩡한 배들도 많았다.
“글쎄요. 이 배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딱히 우리는 필요가 없는데, 다른 왕국에 줘야 할지…….”
말끝을 흐리는 위티라에게 케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가져도 되나?”
“네?”
케일은 담담하게 요구했다.
“멀쩡한 배들은 내가 끌고 갔으면 하는데. 안 되겠나?”
위티라는 수많은 소용돌이를 만들어내었던 케일의 노고를 떠올렸다. 그녀는 가만히 보니, 진지한 케일의 모습에서 지친 기색이 보이는 듯했다.
“아뇨, 됩니다. 저희가 가지고 있어봤자 쓸데도 없고 다른 왕국들보다는 케일 공자가 좋죠.”
“그래.”
케일은 씰룩이려는 입가를 최대한 제어했다.
황금 거북이 배와 함께할 배들이 넝쿨째 굴러왔다.
비밀 단체 배를 타고 북 3국의 배들을 맞이하면 그것도 또 괜찮은 그림일 것 같았다.
케일의 머릿속으로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투명화도 하지 않았건만 머릿속으로 말했다.
-인간, 잘했다! 공짜로 배 생겼다!
확실히 라온 눈치가 늘었단 말이야.
케일은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는 용의 머리를 대충 쓰다듬었다. 그리고 로잘린, 메리와 함께 다가오는 또 다른 사람, 론을 보며 입을 열었다.
“어때?”
“조용히 마무리했습니다.”
“고생했어.”
론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물러섰다.
케일은 최한까지 도착한 것을 보며 고개를 들었다.
까악까악.
까마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우우-
동시에 맹수의 울음소리가 조용한 바다 위 섬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친족, 동족을 잃었던 호랑이들의 울음소리였다. 환호와 울분, 분노가 뒤섞인 소리였다. 케일은 가샨이 끝났다는 신호로 보낸 까마귀를 보며 입을 열었다.
“하이스 섬 9로 가지.”
하이스 섬 9.
그곳에서 지난밤 전투의 모든 인원들이 모이기로 하였다.
***
방심했다.
케일은 자신의 안일함을 깨달았다.
호족 스무 명.
하이스 섬 9에 도착하자, 맨 앞 가샨을 중심으로 뭉쳐 서 있는 호족이 상당히 과한 호의가 가득한 눈빛으로 케일을 쳐다봤다.
남녀노소.
어린아이도 노인도 한 덩치가 하는 거구의 호족들이 케일을 보며 저들이 지을 수 있는 밝은 미소를 한껏 지어 보이고 있었다.
가샨이 눈을 감은 채 다가왔다. 인자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노소를 제외한 남녀 모두 피 칠갑을 하고 있었다. 저 피는 모두 비밀 단체 암의 피였다.
가샨이 케일에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공자님.”
“안 된다.”
어둠의 숲은 안 된다.
케일은 일단 잘라 말했다.
“그게 아니고, 감사합니다.”
케일은 미덥지 못한 눈길로 가샨을 쳐다봤다. 주술사는 부드럽게 말했다. 세월의 흐름이 담긴 목소리는 동화책을 읽어주는 할아버지 같은 다정함이 가득했다.
피를 잔뜩 묻힌 입으로 말해서 그렇지.
“공자님의 힘 덕분에 저희가 제대로 된 혈족의 복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사냥을 할 수 있었어요.”
어린 호족. 아직은 거구가 되지 않은 아이가 똘망똘망한 눈으로 인사했다.
“공자님, 감사합니다!”
갸산이 아이 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씁쓸한 미소와 함께 이어 말했다.
“일단, 동대륙에 있으면 계속 암과 부딪칠 것 같고 서대륙으로 데려가야 하는데. 어디 작은 땅이라도 저희가 머물 곳이 있다면 좋을 것을. 이 아이들이 적어도 어른이 될 때까진 편히 지낼 터전이 필요하고. 또 우리는 아직 혈족의 복수를 다 하지 못했는데.”
케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때 가샨이 말했다.
“신세 질 땅에 제공할 재물도 챙겨왔는데.”
재물?
케일은 가샨을 쳐다봤다.
가샨이 슬쩍 품에서 보석을 꺼내 보였다.
“호족은 염치를 아는 종족입니다. 호족 가족들은 모두 각자의 산을 떠나면서 각종 약재와 귀한 물건들을 다 털어서 왔지요.”
케일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크흠, 큼.”
케일이 헛기침을 했다. 어린 호족이 외쳤다.
“저도 챙겨 왔어요!”
호족 아이는 도복과 같은 넓은 소맷자락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이거 우리 산 동굴에 있던 이백 년 묵은 뱀의 비늘들이에요! 엄청 강한 화살촉이 될 수 있대요!”
…호족은 꽤 좋은 종족 같은데.
케일은 잠자코 호족에 대한 인식을 개선시켜 나갔다. 라온이 머릿속으로 말했다.
-인간, 쟤네 착한 것 같다.
그렇지?
케일은 어둠의 숲에 호족을 데려갈 경우 비밀 단체와 더 깊게 얽히게 될 확률을 떠올렸다. 동시에 한 가지 생각을 더 했다.
‘언제 내가 피한다고 안 엮였나?’
4 왕국 1종족 회담에 참관한 이상 케일은 비밀 단체를 피할 수 없었다.
케일은 가샨을 바라봤다. 주술사의 감은 눈을 응시하며 그는 입을 열었다.
“조건이 있다.”
그때였다.
“으, 으으으-!”
케일은 멈칫했다.
저 노인네가 왜 저래?
“으으, 으!”
갑자기 가샨이 눈을 번쩍 떴다.
흰자위 가득한 눈이 크게 확대되었다. 그는 덜덜 떨며 나무 지팡이를 든 손을 하늘로 가리켰다. 거구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무서운데.
케일은 무서워서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 순간이었다.
“자, 자연이 말씀해 주십니, 다!”
가샨이 덜덜 떨며 외쳤다.
‘허.’
케일은 그 광경에 기가 찼다. 이건 또 뭐란 말인가.
그러나 이어진 가샨의 말에 케일은 생각을 고쳤다.
“자, 자연께서 내년 봄에 우리 호족이 서대륙에서 차가운 검과 맞서 싸운다고 하십니다!”
이야.
케일은 감탄했다.
이런 영험한 주술사가 다 있나.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호족이 북 3국 기사단과 싸우게 만들 걸 알았지?
케일은 점점 떨림을 멈추고 진정하는 가샨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진정한 가샨은 흰자위를 케일에게 고정했다. 케일은 입을 열었다.
“나와 함께하면 그런 미래가 올 거다. 그래도 괜찮나?”
가샨은 제 동족들에게 묻지도 않고 망설임 없이 답했다.
“우리 호족은 그간 너무 조용히 살았습니다. 우리의 복수와 관련이 되어 있다면 기꺼이 날뛸 수 있습니다.”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환영이지.”
케일이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을 주술사가 맞잡았다.
어둠의 숲은 넓다.
스무 명의 호랑이들이 살 곳은 충분했다.
“정말 잘됐습니다.”
위티라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를 건넸다. 그녀는 케일 공자가 왜 지금까지 호족들을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호족이 북 3국과 싸우는 것을 원치 않으셨구나.’
케일이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깟 호족들의 약재와 재물에 혹했겠는가.
위티라는 케일이 알아주는 부자 가문의 자제라 들었다. 재물을 탐낼 이가 아니다.
탐욕이 많은 이라면 가장 큰 재산인 자신의 몸을 던져 아무 이익 없는 일에 나서겠는가.
위티라는 케일에게 말했다.
“호족과 배 이동은 저희가 돕겠습니다.”
아무 이득도 없는 이번 일을 기꺼이 도와준 케일에 대한 감사 표시였다. 케일은 당연히 그 감사를 받아들였다.
“그래주면 고맙고.”
“네. 그리고 해상로 문제도 논의해야 하는데.”
동대륙으로 향하는 해상로.
북쪽의 고래들이 장악한 길의 사용권이 케일에게 있었다. 케일은 그 문제에 대해 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인간, 인간!”
라온이 아공간에서 영상 통신구를 꺼내어 케일에게 다가왔다.
영상 통신구가 붉은색을 뽐내며 통신이 왔음을 알렸다.
미간이 찌푸려진 케일에게 라온이 말했다.
“왕세자다! 빨간색은 왕세자다!”
왕세자 알베르의 연락이었다.
“연결할까?”
케일은 라온의 물음에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일단 목조 건물 안에서 연결하도록 하지. 위티라, 가샨. 다른 문제는 나중에 얘기했으면 하는데.”
“그러시죠. 왕세자의 연락부터 받으세요.”
위티라가 흔쾌히 답했고 가샨도 고개를 끄덕였다. 케일은 두 우두머리의 대답에 바로 목조 건물 안으로 들어가 라온에게 영상 통신구 연결을 부탁했다.
그리고 영상 통신구 맞은편 나무 의자에 앉았다.
평소 부드러운 소파와 달리 딱딱한 촉감이 느껴졌지만 케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알아서 푹 쉬라던 왕세자 알베르 크로스만.
그가 갑자기 연락을 했다.
상당히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케일은 영상 통신구 위에 떠오른 왕세자 알베르를 마주했다. 알베르는 케일의 떫은 표정을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잽도 없이 바로 스트레이트가 들어왔다.
-너 황태자 얼굴 모르지?
황태자.
제국 모고르의 황위 계승자.
케일은 말문이 막혔다.
불길하다.
케일은 띄엄띄엄 답했다.
“그, 눈 색이나 머리색이나 알아야 할 건 압니다. 음, 보면 알걸요?”
-알기는. 실제로 본 적은 없다는 소리네.
왕세자는 케일의 생각을 빤히 다 안다는 듯 제 눈을 피하는 케일에게 말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하더군. 갔다 와라.
케일은 입을 열었다.
“…저하, 제가 귀가 안 좋은 건지 끝에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습니다만.”
갔다 오라니.
제국에?
내가 왜?
케일은 자신의 성격을 잘 아는 왕세자가 그런 말을 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 잘못 말했다. 수정하지.
왕세자 알베르는 손을 들어 보이며 순순히 제 실언을 인정했다.
-다시 말하지.
더 큰 스트레이트가 들어왔다. 왕세자는 케일에게 제안했다.
-나랑 좀 갔다 오자.
왕세자랑 같이 갔다 온다고?
-한 건 하러.
…뭘 하러? 한 건?
그제야 케일의 시야에 음흉하게 웃고 있는 왕세자가 보였다. 케일의 찌푸려진 미간이 풀어졌다.
케일은 나무 의자에 편히 기대며 입을 열었다.
“한 번 들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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