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54
153화.
하지만 케일의 뒷목 서늘함과 관련 없이 일은 착착 진행되어져 갔다.
-인간, 가만히 있는 것도 재밌다.
라온의 말에 케일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렇고말고. 가만히 있는 게 최고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케일은 왕세자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신단 행렬을 따라 그저 강물에 떠내려가듯 여유로이 따라갔다.
당연히 케일의 호위기사 역을 맡은 동료들도 잠자코 같이 움직였다.
그때 그들 근처로 낮은 직급의 관리 한 명이 다가왔다.
“케일 공자님, 곧 텔레포트 진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굳이 왜 알려주러 오지?
케일은 이런 것까지 알려주지 않아도 되는데 그를 찾아온 관리가 의아했지만, 그 친절에 매끄럽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그래서 왕세자 저하께서 얼른 앞으로 오시랍니다.”
“…네?”
“…네?”
케일이 되묻고 관리도 되물었다. 관리는 두 눈을 깜박이는 케일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 왕세자 저하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셨습니까?”
“…무슨 이야기 말씀입니까?”
살짝 당황한 관리가 맨 앞을 쳐다봤고 케일의 시선도 사신단 맨 앞을 향했다.
사신단을 호위하는 기사단. 그 뒤에는 당연히 주인공 왕세자가 있었다. 왕세자와 케일의 시선이 부딪쳤다.
알베르가 환하게 웃었다.
케일은 멈칫했다.
“케일 공자, 어서 오게!”
알베르는 어서 오라는 듯 손짓했고, 관리도 틀린 안내를 한 게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케일을 쳐다봤다.
“…일단 가죠.”
케일은 호위기사들을 둔 채로 어기적어기적 알베르에게 다가갔다.
알베르는 자신이 불렀음에도, 자신의 곁에 사신단 중 높은 관리들이 줄줄이 있음에도 너무나도 여유롭게 걸어오는 케일을 보며 미소를 그렸다.
“…저하, 부르셨습니까?”
“그래. 자네는 텔레포트 진이 있는 곳까지 나와 함께 가도록 하지.”
케일은 상냥한 척하는 왕세자의 모습에 불길함을 참고 물었다.
“왕궁 내 텔레포트 진 말입니까?”
“아니. 이번에는 성벽 근처의 텔레포트 진으로 갈 걸세. 백성들에게 우리의 사신 행렬을 보여주고자 하거든.”
하, 진짜.
케일은 알베르의 생각이 빤히 보였다.
테러 사건에 대한 조사를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 왕세자. 더불어 그는 참여하는 국가 행정 업무마다 보통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었다.
그런 능력 있는 이가 정의롭기까지 했다.
그 정의로운 왕세자가 제국의 초대를 받아 떠난다.
진실을 밝히러.
그런 그의 옆에 테러 사건의 영웅 케일 헤니투스가 함께한다. 왕실 입장에서는 민심을 잡을 수 있는 이벤트였다.
케일은 벌써부터 짜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알베르는 그런 그의 마음을 모르는 척하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은빛 공자를 찾는 왕국민들을 볼 수 있겠어! 하하하하!”
은빛 공자. 방패 공자.
그 말이 참 싫은 케일이었다.
하지만 싫은 건 별개로 이런 왕국의 판단은 옳다고 생각했기에 왕세자에게 답했다.
“우리 왕국의 별이신 저하만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케일은 다른 관리들을 보며 예의 바르게 물었고 관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케일 공자 말대로 왕국의 별이시죠!”
“별! 그 말 참 좋습니다!”
이번 사신단에는 왕세자를 따르는 귀족이 절반이고, 그 나머지에는 다른 왕자를 따랐던 중소 귀족들과 중립 귀족가 출신 관료들이 섞여 있었다.
왕세자의 힘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중소 귀족과 중립들은 알베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저마다 왕세자에게 아부의 말을 한마디 덧붙였다.
케일은 왕세자의 상냥한 척하는 입꼬리가 살짝 떨리는 것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그의 귓가에 한 관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 공자는 왕세자 저하께서 상당히 아끼시는 인재인 것 같군요.”
그 말과 함께 탐색하는 시선들이 닿았다.
점점 세를 넓혀가는 왕세자가 찾은 케일 헤니투스. 그는 백성들에게 호감인 귀족이었다.
장차 어떻게 연이 닿게 될지 모르는 귀족가 자제를 보는 관료들의 시선은 저마다 다른 뜻을 품고 있었다.
케일은 그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생각했다.
‘제국 수도에 뭐가 맛있다고 했더라.’
한 건 하러 가지만, 힘들게 다녀올 생각은 없는 케일이었다.
왕세자는 사신단에 지시했다.
“그럼 가지.”
사신단이 이동을 시작했다.
***
케일은 텔레포트 진을 통해 기예르 영지에 도착했다.
“푸흐, 큼, 크흠.”
그는 바로 앞에 선 왕세자가 황급히 웃음을 삼키며 헛기침을 했지만 모른 척했다. 라온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인간, 네 방패를 흉내 낸 방패를 들고 있던 아이가 상당히 잘 자랄 것 같다! 그 아이는 성공한다!
케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가 풀어졌다.
사신단과 왕세자를 향한 환호가 엄청났다. 그중 희미하게 은빛 공자를 외치는 목소리들도 들려왔다.
‘까먹지도 않나?’
그중 백미는 한 아이가 ‘저는 공자님처럼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했을 때였다.
아이는 아빠의 품에 안겨 높이 들려져 말을 탄 케일과 눈이 마주쳤다.
그 아이가 외친 말에 케일은 저도 모르게 툭 내뱉었다.
‘나를 닮으면 하나도 안 멋져.’
흔들리는 아이의 동공과 아차 한 케일, 그리고 순간 웃음을 참는 왕세자. 더불어 당황한 아이 아버지.
케일은 그 아버지를 보며 나오는 대로 대충 내뱉었다.
‘나보다 너의 아버지를 닮거라. 너를 이렇게 안고 들어 올릴 수 있는 멋진 사람은 네 부모님뿐이니까.’
감동한 아버지와 아빠가 멋지다는 말에 신난 아이.
흐뭇해하는 사신단 책임 외교관 달타로.
케일은 그 뒤로 입을 꾹 닫고 행렬을 따라 텔레포트를 했다.
‘…힘들었어,’
희한하게 목적 없이 연기를 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목적이 있었다.
케일의 표정이 예의 바른 귀족가 도련님이 되었다.
왕세자를 위시한 사신단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무리가 있었다.
“왕세자 저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중 가장 앞에 선 노인.
백작 부인 바이올란을 떠올리게 할 만큼 잔머리 하나 없이 틀어 올린 하얀 머리칼이 보였다.
기예르 공작가를 이끌고 있는 토대. 철혈의 여인이자 비운의 여인으로 불리는 소나타 기예르.
팔십을 목전에 둔 그녀가 공작가의 수장이었다.
‘남편도, 하나뿐인 늦둥이 아들 부부도 암살당했지.’
기예르가 전대 공작은 오래 살았다.
때문에 후계자 지정이 장남과 차녀가 50대가 되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스텐 후작가처럼 후계위를 놓고 갖가지 일이 벌어졌다.
그 여파로 막내였던 소나타의 남편과 아들 부부가 마차 전복 사고로 죽게 된다. 그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소나타와 손자 안토니오만이 목숨을 부지했다.
그때가 안토니오가 태어난 지 일 년도 되지 않았을 때로, 소나타는 그때부터 철혈의 여인으로 바뀐다.
‘결국 후계자로 소나타만이 살아남았지.’
형제들 중 살아남은 이는 소나타뿐이었다.
유일한 다음 대 직계인 그녀가 공작위에 올랐고, 그녀는 스텐 후작가와 달리 남은 혈족들을 모두 품는다.
그리고 안토니오를 차기 공작으로 내정해 키웠다.
“오랜만이오. 기예르 공작.”
“네. 작년 제국 방문 때 이후로 처음 뵙는군요.”
왕세자 알베르는 소나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안토니오 기예르를 바라봤다.
말끔하다.
이 말이 어울리는 이가 안토니오였다. 그는 알베르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하.”
“그래, 안토니오 공자.”
소나타는 안토니오를 가리켰다.
“지금 안내는 제가 할 예정이지만, 그 후 내일 떠나시기 전까진 안토니오가 저하와 사신단을 맡을 예정입니다.”
알베르는 툭 던지듯이 물었다.
“안토니오 공자가 곧 가문을 이어받을 예정인가 보군.”
백발의 여인은 미소를 그렸다.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2왕자를 밀고 있는 기예르 공작가. 그랬던 공작가의 차기 후계자가 1왕자 알베르를 모실 것이라 말했다. 꽤 중요한 일을 맡기면서 왕세자와의 친분도 다지게 할 속셈이었다.
그러나 아직 기예르 공작가는 2왕자에 대한 지원을 놓지 않았다.
‘그게 세상 사는 법이지.’
케일은 기예르 공작가의 그런 행동을 이해했다. 케일은 왕세자와 소나타 공작으로 향했던 시선을 돌려 안토니오를 바라봤다.
‘음?’
그런데 안토니오와 눈이 마주쳤다.
‘왜 쳐다보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케일은 안토니오 공자에게 한껏 호감이 듬뿍 담긴 미소를 지어보였다. 안토니오가 살짝 멈칫했다가 씨익 미소 지어 보였다.
-인간, 왜 또 그렇게 웃나?
매번 알면서 묻긴.
케일은 라온의 말을 가볍게 흘리며 소나타 공작의 안내를 받아 움직이는 왕세자를 확인했다.
케일도 슬슬 텔레포트 진을 벗어나 기예르 영주 성으로 이동할 준비를 했다.
공작이 안내하는 왕세자 외의 사신단은 안토니오 공자가 맡았다.
그는 왕세자 곁에 바로 있던 사신단 주요 관리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케일은 행진 때문에 왕세자 바로 뒤에 있었던지라 그 관리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케일 헤니투스 공자, 반갑군요.”
안토니오 기예르. 그는 사신단 관리들과 인사를 한 후 케일 헤니투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원래의 그라면 자신보다 낮은 가문의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하지 않았다.
안토니오. 그는 자신이 세운 잣대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여 움직이는 편이었다.
‘그런 면에서 케일 헤니투스는 합격이지.’
망나리라는 소문과 달리, 작년 수도에서 봤을 때 그는 꽤 귀족다운 자였다.
더불어 고대의 힘과 명성도 지녔다.
‘무엇보다도 왕세자가 아끼는 인재지.’
음흉한 1왕자가 아끼는 사람이라면 분명 능력이 있을 터. 안토니오는 1왕자가 선하게 웃는 것과 달리 음흉하다는 것을 할머니인 공작 소나타에게 끊임없이 들었다.
‘1왕자는 만만한 이가 아니란다. 안토니오, 쉽게 보이면 당해. 이 할머니의 말을 알아들었지?’
그랬기에 안토니오는 케일과의 만남을 꽤 기대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안 것인지, 케일은 안토니오의 마음에 상당히 흡족한 자세를 보였다.
당당하면서도 예의 바른 자세로, 케일 헤니투스는 안토니오의 손을 맞잡았다.
“안토니오 기예르 공자,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왕국의 서남부 국경을 지키는 가문을 뵙게 되어 정말로 기쁘군요.”
“나야말로 어둠의 숲으로부터 왕국을 지키는 헤니투스 가문을 뵈어 기쁩니다.”
리더가 없는 동북부. 그중에서 가장 강한 가문인 헤니투스 백작가의 장남.
서남부의 변함없는 우두머리 기예르 공자가의 후계자.
둘을 향한 시선이 은밀하게 감돌았지만, 어느새 케일 주위를 둘러싼 세 기사들로 인해 주변 이들은 대화를 들을 수 없었다.
케일은 아주 은밀히 속삭였다.
“언제 한번 안토니오 공자와 술 한잔하며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화 말입니까?”
안토니오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의 시선이 케일에게로 향했다.
케일은 밝은 미소로 답했다.
“네, 즐거운 대화요.”
그럼 즐거운 대화지.
케일 자신에게만.
케일은 안토니오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 변했음을 알아챘다.
“케일 공자는 듣던 것과 조금 다르시군요.”
“음? 설마 망나니라는 소문 말입니까?”
안토니오는 어깨를 으쓱이며 케일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케일을 보며 생각했다.
‘정의롭고 선량하다더니, 이자도 권력을 탐하나 보군.’
결국 모두 비슷한 족속인 법이었다.
어릴 적 할머니는 후계위를 정식으로 공포한 날 그에게 말했다.
‘안토니오, 내가 본 귀족들은 모두 비슷하단다. 결국 제 안위와 탐욕을 위해 움직이지. 그리고 그게 귀족 이전에 인간의 본능이라 나는 생각한단다.’
안토니오는 그 말에 반만 동의했다. 그는 케일에게 속삭이듯이 답했다.
“대화는 언제든 좋지요.”
그 말과 함께 안토니오는 케일의 손을 놓았다. 케일도 깔끔하게 물러섰고 두 사람은 짧은 대화를 끝냈다.
케일은 멀어지는 안토니오를 보며 생각했다.
‘다음 즐거운 대화 때는 정의롭고 왕국을 생각하는 귀족인 척하면 되겠지?’
‘영웅의 탄생’.
그 책 속에서 악연인 스텐 후작가와 달리, 조력자도 동료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으로 소개되었던 안토니오 기예르.
그의 성향은 짧게 묘사되었다.
거기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안토니오는 복잡하면서도 참 쉬운 사람이었다.
케일은 미소를 감추며 배정된 침실에 머물다가, 왕세자의 부름으로 그의 방에 들어섰다.
왕세자는 방 밖으로 기사들을 물렸다. 물론 그의 심복들은 은신 중이었다. 변신한 다크엘프들이었다.
“너 왜 그렇게 웃어?”
“저하.”
“…갑자기 왜 목소리를 깔고 그러지?”
케일은 찝찝해하는 왕세자에게 부드러이 말했다.
“저하, 충직한 신하가 더 늘면 좋겠지요?”
왕세자는 케일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누군데?”
“이 집 주인이요.”
알베르는 빤히 케일을 쳐다보다가 툭 던지듯이 말했다.
“알아서 잘해봐. 내 이름 막 팔아도 되니까.”
“네, 알겠습니다. 성공하면 7 대 3 어떻습니까?”
알베르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 집 주인이면 그 정도는 아깝지도 않지. 그런데 말이야.”
“네.”
“모고르 제국 황태자는 널 알겠지?”
케일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은빛 공자로. 그리고 정글에 불 끈 놈으로 알겠죠.”
대놓고 정글 1구역 불을 끈 케일 헤니투스였다.
더불어 로운 왕국 테러도 막았다.
“황태자가 나보다 널 더 반기는 거 아냐?”
“그럴 리가요.”
케일의 대답에 알베르는 실소를 흘렸다. 전혀 동의하지 못한다는 반응이었다.
***
그러나 며칠 뒤, 케일이 모고르 제국 수도에 도착했을 때.
왕세자의 예상과 달리 황태자는 케일을 제일 반기지 않았다. 왕세자 알베르를 가장 반겼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다음이 케일이었다.
“오! 내 자네의 이야기는 들었다네. 폭탄 테러를 막은 젊은 영웅이라고 말이야!”
어디 대형견을 떠올리게 하는 헤실헤실한 덩치 좋은 사내.
그가 모고르 제국의 황태자 아딘이었다.
“반갑습니다. 황태자 저하.”
“그래, 그래. 요즘 같은 때에 자네 같은 영웅이 있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네!”
반갑긴 개뿔이.
케일은 확신한다.
이 눈앞의 소시오패스 같은 놈이 이 사신단 중에서 왕세자 다음으로 자신을 꼴불견으로 여긴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인간, 저놈 웃고 있는데 느낌이 싸하다.
그러니까.
케일은 라온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나 케일은 쑥스럽다는 듯, 하지만 강한 신념을 지닌 사람처럼 고고하게 답했다.
“아닙니다, 영웅이라니요. 저는 그저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정의로운 척하는 케일이 제국 수도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