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58
157화.
첨탑을 턴다.
첨탑을 털어먹는다.
이쯤 되면 최한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반응이 나왔다.
‘말을 저리 표현해서 그렇지 또 어디 선한 일에 쓰시겠지.’
지금껏 케일은 그 과정이 어떻든 결과적으로 늘 남을 돕거나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갔다. 최한은 그런 케일을 믿었다.
그렇기에 답했다.
“준비하겠습니다.”
“어. 가짜 옷 입고 간다.”
또다시 조잡한 비밀 단체 옷을 입는다는 말에 최한은 멈칫했지만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
케일은 태양신 교단과 교황청에 대해 생각했다.
태양신 교단은 오랫동안 대륙에 종교로 존재해 왔다.
그러다가 몇백여 년 전 모고르 제국에 교황청이 들어서며 대륙에 꽤 힘센 종교가 되었고, 지금으로부터 백오십여 년 전 국교로 채택되며 그 세를 더 확장하였다.
‘그리고 교황청이 들어서며 이 첨탑도 세워졌다고 했지.’
케일은 팔짱을 낀 채, 첨탑을 매만졌다.
한겨울의 한밤중.
첨탑의 벽면은 차가웠다.
쿵. 쿵. 쿵.
그리고 바람의 소리가 날뛰었다.
-인간, 왜 그렇게 무섭게 웃나?
라온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이를 깔끔히 흘려들으며 케일은 입을 열었다.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새거네.”
최한이 그 말에 반응했다.
“제국에서 새로 단 듯합니다.”
“그래. 원래 자물쇠를 부수고, 아무것도 없으니 새로 단 것이겠지.”
케일은 새 자물쇠를 가리켰다.
“부숴.”
스윽.
검은 오러가 작게 피어올랐고, 소리 없이 자물쇠를 부쉈다.
첨탑의 꼭대기로 향하는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그 틈 안으로 라온은 날아들었다.
-사람도, 마법 장치도 없다. 인간, 여기는 정말 버려졌구나!
케일은 라온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고 문안으로 들어섰다.
꼭대기 15층. 그곳에 난 작은 창을 제외하고는 창 하나 없는 공간.
파아앗.
작은 광구가 케일의 앞에 나타났다.
뒤따라 들어선 최한이 입구 문을 닫았고 아주 미세한 틈을 남겨둔 채 입을 열었다.
“여기 있겠습니다.”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현재 황궁에는 에르하벤이 케일의 머리색으로 물들인 채 이불을 얼굴까지 덮고서 편히 자고 있을 터였다.
케일의 침실로 숨어든 정보원은 복도에서 문 앞을 지키는 진짜 힐스만과 침실 안 문가에 서서 경비 중인 허상 최한을 보고 있을 것이다.
에르하벤은 교대하고 숙소에 자러간 줄 알 터.
-인간, 빨리 올라가자!
케일은 라온의 재촉에 답하지 않고 느긋하게 탑을 올라갔다.
타닥. 타닥.
벽을 따라 놓인 원형 계단을 하나하나 밟으며 올라가는 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경비가 동쪽 별관에 다 몰려 있었어.’
상시 경비원 수는 동쪽 별관, 서쪽 행정원, 중앙 건물 순이었다. 물론 후원은 상시 경비도 없었다.
케일은 공중에서 한참 동안 순찰 경로를 확인한 후, 후원에 순찰 오는 틈이 대략 한 시간임을 알 수 있었다.
‘동쪽 별관에 비밀의 방이 있다고 아주 광고를 하는 꼴이야.’
내막을 아는 케일은 그 작태가 우스웠다.
그는 소드 마스터 하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교단에서 순찰 돌 때와 지금 제국에서 순찰을 돌 때 패턴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일단 도움이 될 테니 설명해 줄게.’
가짜 성녀는 순찰 패턴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후원은 거의 안 돌아.’
‘아, 하나. 그래도 후원에는 교황이 자주 가지 않았어?’
잭의 물음에 하나는 실소와 함께 덧붙였다.
‘그렇지. 잠도 없는 노인네 같으니라고. 시도 때도 없이 후원에 돌아다녔지. 본인 후원 산책할 때는 다른 이들이 들어오지도 못하게 했어. 웃긴 놈. 후원이 지 건가?’
케일은 비로소 교황의 그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교황은 이 첨탑에 대해 알고 있었나 보네.’
신물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그 신물을 왜 성자에게 안 줬는지 모르겠네.’
반쪽이라도 성자다. 잭이라면 그 신물을 사용할 수 있을 터. 그렇게 되면 신도들은 더 열광하며 열렬히 따랐을 것이다.
물론 교황은 성자에게 신물까지 주면 컨트롤이 어렵다고 생각해 신물의 존재를 숨겼을 수도 있다.
-인간, 왜 자꾸 웃으면서 계단 오르나? 얼른 가서 우리 거 가져오자!
케일은 조금 걸음을 빨리했다.
휘이이이-
바람의 소리가 케일의 발끝에 맴돌았다. 그는 힘들이지 않고 빠르게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15층에 다다랐다.
“인간, 자물쇠 내가 부순다!”
라온은 소리를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는지 직접 입으로 말했다.
검은 용은 아주 작고 낡은 철문에 달린 새것 같은 자물쇠를 부수고는 그 문을 옆으로 밀어 열었다.
“인간, 기어가자!”
케일의 키 반보다 더 낮은 높이의 문이었다.
라온이 날개를 접고 엉금엉금 기어 들어갔다. 라온은 철문 속으로 들어갔고, 곧 고개를 내밀었다.
“인간, 왜 안 들어오나?”
어휴.
케일은 한숨을 내쉬며 문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15층. 꼭대기의 좁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케일은 일어섰다.
“…인간, 그런데 너무 아무것도 없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낡은 철제 침대, 다 낡아 부서질 듯한 테이블, 철제 의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인간, 왜 제국이 그냥 놔뒀는지 알겠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말 그대로 버려진 감옥 같았다.
라온은 문득 제가 갇혔던 어두운 동굴을 떠올렸다. 그곳처럼 삭막했다.
“…인간, 이상하게 여기는 삭막하고 무서운 기운이 느껴진다.”
검은 용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케일이 아무 말이 없었다.
그때, 희미한 소리가 라온의 귓가에 닿았다.
휘이이이-
바람 소리였다. 라온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톡. 톡. 톡.
감옥의 바닥을 이루는 울퉁불퉁한 석판.
케일 헤니투스가 쭈그린 채로 석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물론 라온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용은 인간과 눈이 마주쳤다. 인간의 입이 열렸다.
“여기다.”
케일의 주위에서 회오리들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덜컹. 덜컹.
낡은 철제 침대와 의자가 작게 덜컹거렸다. 휘몰아치는 회오리에 비하면 감옥 안은 조용했다. 라온은 이렇게 강하게 응집된 바람의 힘은 처음 보았다.
케일은 감옥 안에 들어서자마자 바람의 소리를 사용했다.
그리고 곧 ‘고대의 힘’에 담긴 감정이 느껴졌다.
이건 처음이었다.
‘환호.’
고대의 힘 ‘바람의 소리’가 환호하고 있었다.
케일은 라온을 바라봤다. 검은 용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마법으로 케일이 두드린 석판을 드러냈다.
몇백 년 동안 그 자리를 버틴 석판은 꽤 힘겹게 들어 올려졌다.
휘이이이-
그 자리에 저절로 바람이 몰려 흙을 치워냈다.
“…찾았다.”
검은 상자가 보였다.
오래되어 열쇠로 돌려도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자물쇠가 채워진 상자였다. 그 크기도 작았다.
케일은 곧바로 바닥에 묻혀 있는 상자의 겉면을 털어냈다.
쿵. 쿵. 쿵.
상자의 흙을 털어내는 그에게 날뛰는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태양의 단죄.
그것이 손에 들어온다.
이것만 있으면 계획보다 더 빨리 제국 황실을 난장판으로 만들 수 있다.
케일에게 다가오던 라온은 회오리 때문에 케일 곁으로 더 가까이 가지 못한 채 자물쇠를 부쉈다.
파직.
자물쇠는 힘없이 부서졌다.
케일은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끼이익, 달캉.
상자 안이 몇백여 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그리고 케일은 당황했다.
휘이이이-
회오리들이 이제 안심이라는 듯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제야 라온은 냉큼 케일 옆에 바짝 다가와 상자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응? 인간, 이거 아주 무섭고 삭막하다!”
케일은 라온의 말에 아무 답도 하지 못했다.
그는 천천히 상자 속 물건을 꺼내 들었다.
책이었다.
하얀 책이 마치 새것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케일은 제목을 읽었다.
…싸한데.
아무래도 이건 태양의 단죄가 아닌 것 같다.
그 순간이었다.
-희생하려는 건가?
짱돌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케일은 흠칫하며 라온을 쳐다봤다.
“라온, 이거 저주 마법 걸려 있냐?”
“아니다! 그냥 삭막하고 무서운 기운만 있다!”
케일이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아까부터 라온은 삭막하고 무섭다고 했다.
이 책 때문인가? 무서운 짱돌 주인이 또 말하는 걸로 봐선, 정말 무서운 게 맞는 것 같은데.
케일은 슬그머니 책을 내려놓았다.
“응? 인간, 우리 거 아닌가?”
“…아냐. 이건 조금,”
휘이이이-
갑자기 바람이 나타났다. 케일은 바람의 소리가 바람 속에서 외치는 소리 없는 분노가 느껴졌다.
“하아.”
케일은 하얀 책을 집었다.
바람이 멎었다.
‘신물은 신물이란 소린데. 저주도 아니고.’
물끄러미 책을 보던 케일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왜 로운 왕국어지?’
케일에게 보이는 책의 글자는 로운 왕국어였다.
“라온, 이거 제목 로운 왕국어지?”
“인간, 룬어인데?”
“…뭐?”
라온에게는 책의 제목이 룬어로 보인다고 하였다. 케일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책을 펼쳤다.
그는 하얀 책의 첫 장을 넘겼다.
다음 장을 넘겼다.
케일의 옆에서 목을 쭉 빼고 이를 구경하던 라온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했다. 그런 용에게 케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라온.”
“왜 그러나, 인간?”
“케이지 씨가 죽음의 교단이지?”
미친 신관 케이지.
라온은 이상한 표정으로 케일을 쳐다봤다.
“…그렇다?”
“거기 성자 성녀 없는 지 꽤 됐지?”
“…그렇다?”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검은 용의 눈동자에 의문이 서렸지만 케일은 묵묵히 책장을 넘기다가 다시 책의 표지로 돌아왔다.
그의 눈에 지은이가 보였다.
하, 진짜.
케일은 기가 찼다.
이거 아무래도-
‘죽음의 신 신물 같은데.’
신물을 만난 것은 놀랍지 않았다. 다만 의문이 들었다.
‘이게 왜 여기 있어?’
왜 태양신 마지막 성녀의 감옥에 죽음의 신 신물이 있단 말인가?
케일은 뿌연 안갯속에 갇힌 듯 퍼즐이 맞춰지지 않았다.
케일은 일단 상자 속에 하얀 책을 도로 넣었다.
그리고 흙 속에서 상자를 들어냈다.
“…이건 또 뭐야?”
그 밑에 철판으로 위아래를 덮은 책이 보였다. 케일은 놀라서 철판과 함께 책을 꺼냈다.
툭. 책이 철판에서 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낡아서 다 헤진 책이 바닥과 부딪치며 펼쳐졌다.
다 지워져서 흐릿해진 페이지에 몇 개의 글자들이 보였다.
“인간, 이거 제국어다!”
제국어가 새겨진 글자였다.
이번에 제국에 오는 김에 기본적인 제국어를 배웠던 케일에게 몇 글자가 보였다.
욕이다.
케일은 욕은 다 외워왔다.
욕이다.
몇 개 남아 있는 글자들 대부분이 욕이다.
“인간, 이거 아무래도 이 방 주인이 쓴 것 같지 않나?”
케일은 조심스럽게 책의 첫 장을 펼쳤다.
일기장의 첫 장에 적힌 제국어가 보였다.
“라온, 읽어줘.”
“알았다. 위대한 나는 대륙 말 다 안다!”
라온은 페이지에 적힌 것 중 보이는 부분을 읽었다.
“교황, 쳐 죽일 놈의 새끼. 날 이렇게 가둬? 이런 태양신의 빛 하나 못 받아 처먹을 새끼.”
케일은 라온을 쳐다봤다. 라온은 진지한 얼굴로 케일을 바라봤다.
“라고 한다.”
“…그래.”
케일은 이어지는 라온의 번역에 귀를 기울였다.
“이 귀하신 몸을 이런 좁은 감옥에 가두다니! 백날 천날 가위 눌려도 시원찮을 새끼! 절대 용서 못 해! 나쁜 놈들! 믿은 내가 바보지! 똥멍청이!”
…그래. 사람이니 가둬두면 화나지.
케일은 성녀의 마음을 이해했다. 이 일기장은 누가 봐도 성녀가 남긴 일기장이다.
라온은 일기장을 넘기며 계속 번역했다.
“내 힘을 억누르려고 죽음의 신 신물과 같이 가둬놔? 두고 봐! 내가 신물 밑에 이거 놔두고 언젠가 후대에 알릴 테니까! 음?”
“음?”
멍하니 욕과 한탄을 듣던 케일, 그리고 실감 나게 욕을 구사하던 라온이 서로를 쳐다봤다. 라온이 하얀 책을 가리켰다.
“인간, 이거-”
“그래, 그래. 일단 읽어봐.”
“알았다!”
라온은 케일이 다시 웃는 모습에 입꼬리를 씰룩이며 일기장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멈칫했다.
“바보들. 태양신 신물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 감히 황제를 꿈꾸는 날 이런 데 가둬놓- 인간, 이거 이상하다.”
“…일단 읽자.”
“알았다.”
라온은 제국어로 적힌 일기장을 바라봤다.
그 글자들이 고스란히 케일에게도 전해졌다. 라온은 계속 읽어 내려갔다.
“죽음의 신 교단이 무섭다고 그들의 신물을 훔쳐? 그것이 어찌 고고한 태양신의 뜻이란 말인가! 이런 후려쳐 맞을 놈들!”
케일은 조금씩 퍼즐이 맞춰져 갔다.
몇백여 전 마지막 성녀는 유력한 황권 계승자였다.
‘2왕자는 아마도 그다음으로 강했던 계승자겠지.’
2왕자와 당시 차기 교황이 결탁해 성녀를 이곳에 가둔 듯했다.
또한 성녀와 함께 상극인 죽음의 신 신물을 함께 묻어둔 것 같다.
‘그래서 교황이 여기 산책을 자주 했구나.’
교황이 태양의 단죄 때문에 산책을 한 것이 아니었다.
훨씬 더 비밀로 부쳐야 하는, 홀로만 알고 있어야 하는 치부이자 폭탄 때문이었다.
‘이해는 되네.’
태양신 교단은 대륙에서 유명한 종교 중 하나다.
그에 비하면 죽음의 신 교단은 세가 약하다.
그러나 죽음은 태양보다 강했다. 충분히 이를 경계할 만했다.
그때, 번역 중이던 라온의 말이 케일의 귓가를 두드렸다.
“멍청이들! 나를 가두면서 내 궁도 다 태웠지? 그러면서 웃는 나를 미쳤다고, 이단이라고 비웃었지? 내가 왜 웃었을까?”
헙.
라온이 숨을 들이마시며 빠르게 말했다.
“바보들. 그 안에 단죄가 있는 줄도 모르고.”
뭐?
“그 불타 무너진 궁 아래에 네놈들이 그토록 찾던 신물이 있다고!”
케일은 라온을 쳐다봤다. 라온은 일기장의 문장을 하나 더 읽었다.
“아, 웃겨.”
…진짜 웃긴데?
케일은 라온을 쳐다봤다. 라온은 웃는 케일을 보며 말했다.
“인간, 황궁도 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