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6
15화.
그 보람의 끝을 위해 케일은 야영을 택해야 했다. 광룡의 사육지 근처에 있는 마을 도착 전까지는 마을이라고 할만한 곳이 없었다.
냐아아옹.
케일을 따라 마차 밖으로 나온 붉은 묘족 아이 홍이 신이 난 듯 코를 찡긋거리며 꼬리를 움직여댔다. 야영지를 가득 채운 맛있는 냄새 때문이었다.
하루의 보람은 맛있는 저녁 식사에서 오지 않을까. 케일은 그렇게 생각했다. 고단하고 지친 하루를 마감하고 편안한 밤의 시작을 알리는 따뜻한 한끼.
오늘 저녁은 토끼 고기가 들어간 수프가 메인이었다.
“제길.”
론이 저지른 짓은 아니었다. 케일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토끼를 여러마리 잡아온 장본인. 최한이 맛있게 수프를 먹고 있었다.
냐아아옹.
툭툭. 묘족 온과 홍이 먹기 싫으면 달라는 듯 케일의 다리를 툭툭 쳐댔다. 그런 두 아이들에게 한스가 헤벌쭉 웃으며 조심조심 다가갔다.
“우리 고양이님들 제가 준비한 육포 드시겠습니까? 어떠한 소금도, 조미료도 없는 건강한 음식이랍니다.”
당연히 온과 홍은 한스를 외면했다. 묘족임을 모르는 부집사 한스는 그 도도한 모습마저 위대하다며 그 옆에서 알짱거렸다.
첫 전투를 치른 것과 달리 여유롭고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기사들의 분위기는 묘했다. 그들은 케일의 옆에서 수프를 먹는 최한을 힐끗거렸다. 부단장은 고뇌에 가득 차 보였다.
“쯧.”
케일은 혀를 찼다.
오늘 수십명의 산적을 상대해야 했던 케일 일행. 그 속에서 제일 활약한 이는 당연히 최한이었다. 그는 산적들을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팔다리 하나는 깊은 상처를 내거나 베어버렸다. 그것도 무시무시할 속도로.
‘공자님, 전투가 끝났습니다.’
너무 빨리 끝나버린 전투에 놀란 얼굴로 부단장이 케일에게 보고했다.
산적들은 인근 다른 영지에서 세력전에서 밀려 넘어온 이들이었다. 어벙하다고 생각했던 이들은 한계에 부딪쳐 악에 받친 상태였고 기사 다섯에 병사를 합친 수보다 세 배 정도 차이가 났기에 믿고 덤빈 듯 했다.
그런데 하필 처음 건든 상대가 최한이 있는 우리 마차였다.
부단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이유는 그 산적들의 강함 때문이 아니었다. 최한이 다가와 부단장 옆에 서며 케일에게 덧붙였다.
‘가벼운 전투였습니다. 손 쉽더군요.’
그 때 케일은 잠시 흔들리던 부단장의 동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부단장을 보며 씩 웃던 최한의 모습도 보았다.
역시 당하고만 있는 놈이 아니라니까. 백작가 아들을 패는 놈이 마냥 바보처럼 당하면서 착할 인간은 아니었다.
“입맛이 없으십니까?”
케일은 론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자,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론과 토끼고기 수프를 번갈아 바라보며 확신했다. 이 노인네는 자신을 놀리는 것이 즐거운 것이다.
“어. 없어.”
그 말에 최한이 반응했다.
“속이 안 좋으신 겁니까?”
“뭐, 그건 아니고.”
네가 잡아온 토끼만 아니면 다 먹을 것 같은데. 케일은 최한을 보며 신경 끄라는 듯 대충 손을 휘휘 저어보였다.
그런데 최한은 진지한 눈빛으로 케일을 응시했다.
“뭘 그렇게 쳐다 봐?”
“…전투가 처음이셨습니까?”
심각해진 얼굴로 묻는 최한을 보며 케일은 무심히 말했다.
“무슨 전투? 오늘 산적 일 말이야?”
“네.”
“처음이지. 이렇게 많은 산적을 본 적은 없으니까.”
“그렇군요.”
최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목숨이 오가는 순간이 처음이시겠군요.”
하. 병사 중 누군가가 탄식을 흘렸다.
하! 그리고 케일이 기가 차다는 듯 탄식을 흘렸다.
‘목숨이 오가는 순간이 처음이긴. 네 놈 때문에 그 동안 얼마나 간이 조마조마 했다고.’
어디 그 뿐인가. 론이 최한이 잡아온 토끼를 보고 웃던 모습이나, 식칼을 가는 비크로스의 모습이나. 케일은 늘 간이 조마조마 했다. 그는 영지에서부터 지금까지 조마조마 했던 순간들을 되새겼다.
‘입맛이 더 떨어지는데.’
입맛이 뚝 사라졌다. 챙. 케일의 손에 들려있던 스푼이 힘을 잃고 수프 접시 위에 아무렇게나 담겨졌다. 그렇기에 그는 병사들이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도, 최한이 과거를 떠올리듯 회상에 잠기는 것도 알지 못했다.
“케일님.”
“왜?”
케일은 얻어터지지 않고 거기다가 방패의 힘까지 얻는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며 이제는 그만 조마조마해도 된다고 뿌듯해하던 중 최한의 부름에 그를 쳐다봤다. 아까부터 자꾸 왜 말을 거는 거야.
“처음은 견디기 힘든 법입니다.”
“뭔 소리야?”
케일이 퉁명스럽게 되물었지만 최한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가 이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물음을 던지는 그의 눈빛은 진지했다.
“케일님은 무예 수련을 안하십니까?”
“안해도 돼.”
“본인을 지킬 힘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지함 속에 걱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케일은 갑자기 진지해지는 최한이 왜 이러나 싶으면서도 일단 답했다.
“많은데?”
케일은 최한에게서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보다 강한 병사 15명에,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기사들 5명. 거기다가 수행원들은 적었지만 론, 비크로스. 그리고 묘족이나 부집사 한스도 공격력은 자신보다 훨 나았다.
케일은 자신을 바라보는 일행들과 한번씩 시선을 마주하다가 마지막으로 최한을 보며 물었다.
“네 눈에도 보이지?”
돈 많은 백작가 아들 호위가 이 정도야. 케일은 괜히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저들이 다 나를 지켜줄 것이다. 물론 론과 비크로스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남한테 죽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저들이 끝이 아니지.’
케일은 입을 꾹 다문 채 바라보는 최한에게 조금 더 솔직하게 답해주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제 가슴 위를 툭툭 두드리며 답했다.
“나는 내 심장을 믿는다. 나는 살아.”
아무렴. 심장을 감싼 부서지지 않는 방패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다. 물론 최한과 같은 놈들만 피하면 이라는 가정이 필요하지만.
최한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케일을 바라봤다.
냐아아옹.
냐야옹.
“음? 왜 이래.”
온과 홍이 다가와 케일의 다리를 그 작은 앞발로 꾹꾹 눌렀다. 고양이의 꾹꾹이는 아팠기에 케일이 인상을 팍 찡그렸지만 묘족 남매는 음식도 내버려두고 케일에게 얼굴을 비벼댔다.
탁. 최한이 빈 수프 그릇을 내려놓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검술 훈련을 가야 겠습니다.”
“먹고 바로?”
“더 강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무시무시한 놈. 더 강해져서 나중에 아예 이 행성을 날려버리게? 케일은 질려서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에게 비크로스가 다가와 새로운 접시를 내밀었다.
“많이 드십쇼.”
“오! 고마워.”
케일은 최고급 향신료와 최고급 소고기 스테이크가 담긴 접시를 자신 전용 테이블 위에 놓아두며 미소를 그렸다.
“입맛에는 레모네이드와 같이 신 음식이 좋습니다.”
론이 저번 찻집 이후, 처음으로 레모네이드를 건넸다. 케일은 스테이크에 혹해 좋은 게 좋은 거라 레모네이드를 무시했다.
“다들 식사를 완료했다면, 조금 뒤 바로 저녁 훈련을 한다.”
부단장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케일은 생각했다.
‘부단장이 최한한테 자극을 많이 받았나 보네.’
열정적인 기사와 병사들을 보며 케일은 스테이크는 물론이거니와 토끼고기 수프도 맛있게 다 먹었다. 토끼고기 수프도 막상 먹으니까 참 맛있더라. 물론 고양이들이 내민 육포는 과감히 거절했다. 간이 하나도 되지 않아 줘도 안 먹을 것들이었다.
* * *
‘3일.’
마을로 들어서며 케일은 계산했다.
‘3일 뒤에 광룡이 마나 폭주를 일으키지.’
이 곳은 헤니투스 백작가 영지 바로 옆에 있는 자작가 소유의 영지였다. 그리고 이 마을의 오른편에 위치한 산 아래에 특이하게도 자작가 소유의 별장이 몇년 전에 생겼다.
당연히 그곳은 겉으로는 자작가 소유의 별장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광룡을 만들어버린 스텐 후작가 소유의 별장이었다. 이 영지의 자작은 후작가의 개나 다름 없었다.
‘그리고 그 별장 뒷산에 있는 동굴에 우리의 검은 용이 있지.’
검은 용은 마나 폭주를 일으키며 그 동굴과 함께 산을 날려버린다. 케일은 자신이 넘어왔던 산의 오른쪽에 위치한 뒷산이라 불리는 산을 보며 혀를 찼다.
스텐 후작가의 베니온. 후작가의 차남이 떠올랐다. 제 형을 불구로 만들고 후계자 자리에 오른 미친 사이코. 그 사이코가 저 별장에 가끔씩 들리며 심심풀이로 검은 용에게 고문을 가했다.
“쯧.”
혀 차는 소리에 흠칫하며 한스는 재빨리 최한을 데리고 와 입을 열었다.
“공자님. 제가 최한님과 함께 빨리 가서 여관을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현재 마차는 마을 입구에서 멈춘 채 잠시 서 있었다.
“그러든가.”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케일은 한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최한을 관찰했다. 향수에 젖은 눈빛이었다. 그가 왜 마나 폭주를 하는 존재와 싸웠을까. 이 작고 한적한 마을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리스 마을. 최한에게 애정과 복수 모든 것들을 깨닫게 해주었던 그 마을과 이 마을은 닮아있었다. 그렇기에 최한은 안면도 없는 이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움직였다.
케일은 미간을 찌푸린 채 최한을 불렀다.
“최한.”
“…네?”
“얼른 갔다 와라.”
아. 최한의 입에 작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수십년을 살았지만 아직은 17살인 소년 최한의 입가에 순수한 미소가 맺히더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녀오겠습니다.”
케일이 귀찮다는 듯 손짓했지만 최한은 꾸벅 고개를 숙여보이곤 한스와 마을 안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넋을 놓고 있는 모습보다는 빠릿빠릿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 이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케일의 미간이 순간 찌푸려졌다.
저 멀리 아주 빠르게 이 쪽을 향해 달려오는 마차가 보였다.
‘왠지 기분이 이상한데?’
케일은 꼭 누군가 땀으로 범벅이 된 손으로 독사과를 집어서 건네주는 기분이 들었다. 아주 찝찝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기분의 정체를 그는 온전히 모두 목도할 수 있었다.
“이런-”
케일은 탄식했다.
거침 없이 길을 달리는 마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넘어진 노인이 보였다. 그리고 그 노인을 향해 뛰어가는 최한이 보였고 멈추지 않는 마차가 보였다.
‘이런 클리셰!’
그 마차에는 깃발이 하나 달려서 펄럭이고 있었다. 붉은 뱀. 스텐 후작가의 상징이었다. 케일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일어난다. 사건이 일어난다.
쿵!
최한이 몸을 날려서 노인을 구했고, 그 뛰어가던 속도를 견디지 못해 건물 벽에 최한이 부딪치며 큰소리가 났다. 그리고 마주오던 스텐 후작가의 검은 마차는 멈춰섰다.
“하.”
케일은 한숨을 내쉬며 마차 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저 클리셰 현장에 가봐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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