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66
165화.
수많은 시선들이 케일에게로 향했지만 그는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인간.
다만 라온의 말이 신경 쓰였다.
-장하다. 뿌듯하다. 우리는 해냈다.
케일은 감격에 겨워하는 검은 용을 애써 무시했다. 대신 자신보다 한 단 위에 선 황제를 바라봤다.
마주하는 것조차도 이렇게 허락된 경우에만 가능한 위치가 황제였다. 하지만 황제를 바라보는 케일의 감정은 시큰둥했다.
‘몸이 약하다고 했던가.’
황제는 현재까지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 할 만큼 몸이 약하다고 했다. 전대 황제도 그러했다.
‘황태자를 아낄 만하네.’
‘영웅의 탄생’에서 황태자 아딘에 대해 설명하는 문장들 중 하나가 있었다.
황태자는 건강한 신체를 타고났으며 검술도 뛰어났다. 황제가 바라던 것을 가진 아딘은 이를 이용해 황제가 자신을 지지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아딘은 2대에 걸친 연약한 황제들의 기피로, 상대적으로 약해졌던 무가의 힘을 흡수했다.
“케일 헤니투스.”
서대륙 유일 제국 황제가 케일의 이름을 불렀다.
케일은 정중히 예를 표했고 황제는 이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 태양궁 폭발 사건에서 그대가 보인 행동은 용감했으며 아름다웠다.”
마법 확성기를 통해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제국 사람이 하기도 힘든 일을 타국의 그대가 몸소 실천했고, 그 덕에 많은 사람들이 살았으며, 태양궁은 무너지지 않았다.”
케일의 행동을 칭찬하는 말이 흘러나오는 동안 케일은 황제의 안색을 살폈다. 상당히 건강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래봤자 도긴개긴이지.’
황제와 황태자는 신체 건강은 달랐으나 생각은 판박이였다.
케일은 이내 감동을 애써 억누르는 젊은 귀족이 되어 황제를 바라봤다. 황제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그대에게 모고르 훈장 3등급을 수여하며, 그에 따른 보물을 내리고자 한다!”
케일의 옷깃에 은색의 훈장이 달렸다.
와아아아-
함성이 들려왔다.
황제가 케일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했네.”
그의 호의가 보였다. 그러니 3등급을 내렸으리라.
수많은 훈장 중 제국의 이름을 딴 모고르 훈장 3등급이면 상당히 높은 등급이었다.
1등급은 왕조의 공신들에게.
2등급은 전쟁의 영웅들에게.
그리고 3등급은 국가를 위해 중요한 일을 한 이들 중에 뽑혔다.
타국 출신이 받을 수 있는 최고가 3등급이었고, 케일은 그들 중에서도 가장 최연소였다.
‘아마도 요즘 제국에서 잘한 일이 없어서겠지.’
요 근래 남들이 보기엔 실패만 겪는 제국이었다.
마이플 성을 빼앗기고, 궁 기둥도 부러지고, 부탑주가 황궁에서 암살 시도를 겪고.
그 상황에 케일이라는 좋은 건수가 나타났다.
-인간, 나는 네가 아주 자랑스럽다! 약하지만 넌 심성이 곱다!
케일은 라온의 말은 가볍게 무시했다.
“짧게 소감이라도 말하게.”
황제는 케일에게 그의 등 뒤 광장 쪽을 가리켰다.
보물이 주어지기 전, 이 또한 예정된 순서였다.
케일은 황제에게 깊이 고개를 숙이며 천천히 광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인간! 3시 방향 분수대 근처에 빌로스 있다!
케일의 시선이 자연스레 라온이 전해준 쪽으로 향했다. 일부러 빌로스보고 그곳으로 오라고 지시한 케일이었다.
‘다 왔군.’
빌로스, 그 옆의 연금술사, 더불어 최한과 그의 품 안 고양이까지. 멀어서 표정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형상은 알 수 있었다.
케일은 광장을 쭉 훑어보았다.
환호하고 기대하는 사람들.
케일의 입이 열렸다.
“기쁩니다.”
젊은 귀족은 정말로 기뻐 보였다.
제국민들은 제국의 훈장을 받고 기뻐하는 젊은 귀족의 모습에 환호를 보냈다. 그들은 젊은 귀족이 영광처럼 여기는 듯해 보여 괜히 기분이 좋았다.
제국민들은 지금 단상 위의 저 귀족이 한 일을 전해 들었다.
태양궁 기둥이 테러를 당했다니, 태양신 교단이 떠오르는 일에 간담이 서늘했다. 하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고 궁도 무너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물론 자신과는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일이었다. 구해진 이가 대부분 귀족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환호를 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이걸 케일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을 구할 수 있어서. 그리고 제 책임을 다할 수 있어 기쁩니다.”
이어진 케일의 말에 제국민들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훈장을 받아 기쁜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 말이 끝이었다.
너무나도 짧은 말에 묘한 아쉬움이 남았을 때, 케일은 황제를 바라봤다.
“…이제 보물 차례군.”
황제는 손짓했고 시종장이 기다란 상자를 들고서 다가왔다. 황제는 벨벳으로 감싸인 상자를 바라보는 케일의 눈빛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망설임이 느껴졌다.
기쁘다고 말하던 표정이 조금 굳어져 있었다.
그리고 황제 자신의 눈치를 보았다.
딱 젊은 귀족이 할 말이 있는데 황제가 어려워 말하지 않고 망설이는, 그가 흔히 겪었던 광경이었다.
“할 말이라도 있는가?”
황제는 찬바람에 살짝 나오려는 기침을 참으며 물었다.
“…아닙니다.”
“두 번 묻겠네. 편히 말하게.”
두 번 묻는다.
그 말에 케일 헤니투스는 망설이는 얼굴에 결단을 내린 표정으로 바뀌며 입을 열었다.
“저는 보물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렇지.”
황제는 몇몇 젊은 귀족들이 자주 보이는 용기 가득한 얼굴이 보였다.
“폐하, 이 보물을 다른 것으로 바꿔도 되겠습니까?”
아.
황제는 이 상황이 무엇인지 바로 감이 잡혔다.
그의 시선이 단상 바로 아래에 서 있는 황태자 아딘에게로 향했다.
‘아바마마, 정의로운 젊은 귀족이라고 여겨지는 자입니다.’
‘여겨진다?’
‘타인의 판단으로는 말입니다.’
정의로움과 젊음, 그 두 가지가 합쳐지면 무엇이 나타나는지 황제는 잘 알고 있었다.
“무엇으로 바꾸고 싶은가?”
황제는 자신의 부드러운 물음에 대번에 밝아지는 케일의 표정이 보였다. 케일은 화사한 미소를 그렸다.
-인간, 그 미소가 찜찜하다!
라온의 말을 무시하며 케일은 말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광장에 전해지고 있었다.
“제 친우가 그랬습니다.”
친우?
갑작스러운 단어에 사람들의 눈동자에 물음표가 나타났다.
황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케일의 입이 열렸다.
“빛은 어두운 곳을 비춘다.”
사람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대부분의 사람들 머릿속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태양은 어둠조차 찾아내어 비춘다.
태양신 교단의 기초가 되는 유명한 태양신 교리.
분명 다른 말인데, 그 말이 떠올랐다.
“또한 제 친우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케일이 말하는 그만 아는 친우.
당연히 성자 잭이다.
“빛은 나눠도 줄어들지 않는다.”
태양은 모든 생명에 빛을 비출 만큼 거대하다.
묘하게 교리가 떠올랐다. 같은 말이 아닌데, 늘 교리를 되새기던 태양신 신도들에게는 그 말이 자연히 떠올랐다.
아무리 태양신 교단이 폐단을 저질렀어도, 그래도 태양신을 믿는 이들이 제국에는 아주 많았다.
교단 수뇌부들은 교리와 반대되는 짓을 저질렀다. 그리고 지금, 태양신 교단과 상관없는 자가 교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케일의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그래서 나누고 싶습니다.”
기쁨이 담긴 들뜬 음성이었다.
“그래도 빛은 변함이 없으니까요.”
이 말이 태양신 교도들에게는 다르게 들렸다.
그래도 태양은 변함이 없다.
단상 위를 쳐다보던 한 제국민이 탄성처럼 중얼거렸다.
“오랜만이네.”
오랜만에 교리가 머릿속이 아닌,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러나 이 교리를 머릿속으로 생각한 이들도 있었다.
황제.
그의 눈이 일순간 날카로워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용기 있게 말하고 자신의 반응을 기다리는 젊은 귀족은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흔한 착각에 빠진 덜 여문 귀족 같아 보였다.
‘의도한 건 아닌 것 같은데.’
태양신 교리를 의도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의도했든 아니든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황제는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입이 열렸다.
“이 보물을 쓰지 않고 다른 이들을 위해 나누고 싶은가?”
“가능하다면 그러고 싶습니다.”
황제는 기분 좋다는 듯 웃으며 제국민들에게 크게 들리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케일 헤니투스의 청을 받아들인다! 식량 창고를 열어 이 보물의 값어치보다 더한 식량을 어려운 제국민들에게 나누도록 하겠다!”
제국민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들이 함성을 지르기 전에 황제는 케일에게 말했다.
“그리고 기특한 생각을 한 케일 헤니투스에게, 보물도 그대로 하사한다!”
황제는 통 큰 황제를 연기했고 제국민들은 이에 환호했다.
와아아아-
전보다 더 열정적인 함성이 광장 안을 진동시켰다.
제국민들은 황제와 타국의 젊은 귀족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교단이 무너지고 패전 이후 조용하던 광장에 밝은 기운이 넘쳤다.
제국민은 박수를 치며 입을 열었다.
“저 귀족이 우리 제국 사람이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그러게. 하지만 우리 황제 폐하도 저렇게 통 크게 쓰시잖아!”
“그렇긴 하지. 아무튼 저 귀족 참 괜찮네!”
여기저기 케일을 칭찬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저 귀족 이름이 케, 뭐라고?”
“케일 헤니투스래.”
“호오, 그렇군. 태양신 교단인가?”
“…그건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 같은데. 용기 있고. 저런 귀족이 잘 없잖아?”
“그렇지!”
주정뱅이 연금술사 레이 스테커는 들뜬 광장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케일을 바라봤다.
레이는 케일이 그 백발 신관임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렉스 경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묘족 렉스 역시 단상 위의 케일을 쳐다봤다. 그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때, 레이와 렉스 두 사람에게 빌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은 로운 왕국에서도 지금처럼 저러하셨죠. 변함이 없으시네요.”
“로운 왕국이요?”
연금술사 레이의 물음에 빌로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로운 왕국 마법 폭탄 테러 때, 홀로 모든 것을 막으신 그때도 구할 수 있음에 기뻐하고 다른 명예를 원하지 않으셨죠. 그저 다른 힘든 이들만을 걱정하셨어요.”
주위에 그 목소리를 들은 제국민들이 멈칫했다. 케일을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동시에 빌로스가 데리고 나온 수하들이 광장 곳곳에서 케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마법 폭탄 테러 때도 몸을 던져 사람들을 구했던 귀족.
더불어 이번 진상 조사에 참가하기 위해서 온 사람.
그 이야기들이 광장에 점점 퍼졌다.
빌로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연금술사 레이는 감탄처럼 내뱉었다.
“…대단하신 분이군요.”
그때 무뚝뚝하게 서 있던 최한의 입이 열렸다.
“케일 님은 원래 저런 분입니다.”
원래 그렇다고 말하는 최한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뿌듯함이 보였다. 또한 신뢰가 보여 레이와 렉스는 단상 위의 케일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케일은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황제의 짧은 연설이 시작되고 있었다.
단상 아래에는 황태자 아딘이 보였다.
웃는 얼굴이었지만 썩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얘기되지 않은 케일의 행동 때문이었다. 황태자가 케일에게 그 일에 대해 말하려는 듯 다가오다가 걸음을 멈췄다.
왕세자 알베르 때문이었다.
“미리 말을 해주지 그랬나?”
“갑자기 울컥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죄송합니다.”
왕세자의 질책 섞인 음성에 케일이 알베르와 황태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행동에 황태자는 미소를 띠며 케일의 어깨를 두드렸다.
“죄송할 것까지야. 제국민들을 생각해 주는 마음이 고맙군.”
“그리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행이라는 듯 웃는 케일을 관찰하던 황태자는 왕세자 알베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저번 수도 테러 때도 그러더니, 자네는 늘 이렇게 백성들을 먼저 생각해서 탈이야.”
저번에도 이랬다는 말에 황태자의 눈빛이 조금 무뎌졌다.
케일은 자신을 향해 씩 웃어 보이는 왕세자 알베르에게 마주 웃어 보이며 조용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오늘 일을 황제와 황태자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왕세자 알베르에게는 미리 말했던 케일이었다.
사신단 위치로 돌아온 케일의 어깨를 외교관 달타로가 두드렸다.
“수고했네. 정말 멋졌어.”
달타로는 흐뭇함과 애정을 담아 케일을 바라봤다.
“내일 떠날 때까지 푹 쉬게.”
달타로의 말대로 내일 사신단은 떠난다. 예상 밖의 일정으로 급히 돌아가야 했기에 안토니오의 기예르 영지도 그저 잠시 텔레포트를 위해 들렀다만 갈 예정이었다.
케일은 달타로의 심할 정도로 흐뭇해하는 눈빛을 무시하며 보물 상자를 매만졌다.
라온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상자에서 사특한 기운이 느껴진다! 금 용 할배한테 물어보자! 아니다, 메리한테 물어보자!
무서운 짱돌이 말했다.
-희생하려는 건가?
역시.
황태자 아딘이 준 보물은 좋은 게 아니었다.
살짝 열어본 보물은 보석이 박힌 가벼운 호신용 중검이었다.
‘…마음에 안 드는데.’
케일은 보물을 준다고 해놓고 쓸데없는 걸 준 황태자 아딘 때문에 결심했다.
그리고 그는 이 결심을 떠나기 전날 밤 몰래 찾아간 빌로스의 은신처에서 내뱉었다.
“난 기필코 연금술 종탑을 박살 낼 거다.”
빌로스가 흠칫했다.
“…박살이요?”
“그래. 박살 내고 새로 지을 때, 빌로스 자네가 주 거래처가 되면 돈을 많이 벌겠지?”
“박살 찬성입니다.”
빌로스는 빠르게 케일의 말에 찬성을 보냈다.
연금술사 레이와 묘족 렉스가 케일을 긴장 어린 기색으로 바라봤다. 더불어 케일 옆의 최한도 힐끗거리며 그를 쳐다봤다.
연금술사 레이의 입이 열렸다.
“…귀족이실 줄이야.”
“그게 문젠가?”
케일의 물음에 레이는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그저 귀족이면 이런 일은 무시하고 편하게 살 수도 있을 텐데, 거대한 세력인 연금술, 황궁과 맞서서 빈민들과 제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려주려는 케일이 신기했다.
“나는 내일 떠난다. 떠나기 전에 몇 가지 전하려고 왔다.”
케일의 말에 레이는 다시 그에게 집중했다.
묘족 렉스는 고양이 모습으로 가만히 케일을 응시했다.
케일은 두 시선에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어차피 경계가 강해진 지금 렉스와 조직원들을 움직이는 건 힘들었다. 연금술사 레이에게 시킨 밑 작업에 은둔한 연금술사를 모으는 일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케일은 쥐 죽은 듯이 있다가 북 3국이 쳐들어온 후, 제국이 제일 안심할 때 움직이고자 결심했다.
그래야 거하게 뒤통수를 치지 않겠나?
그러기 위해선 이들에게 구심점을 만들어줘야 했다.
“성자와 성녀가 살아 있다.”
아.
연금술사 레이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케일이 한 말의 의미를, 둘은 알아들었다.
살아 있다.
더불어 어디 있는지 안다.
그게 속뜻이었다.
두 사람은 이미 최한을 통해 교단이 연금술 종탑의 비밀을 밝히려다가 폭탄 테러를 겪었음을, 제국이 성자와 성녀를 범인으로 누명을 씌워 죽이려 했음을 모두 자세히 들었다.
케일은 저를 쳐다보는 눈빛들에게 말했다.
“올해 안으로 나는 다시 돌아온다.”
그는 두 사람에게 지시했다.
“그때까지 버텨.”
그리고 대가를 말해주었다.
“버티기만 하면 너희들이 원하는 것은 내가 가져다주겠다.”
원하는 것.
레이와 렉스의 표정이 대번에 달라졌다.
빈민가의 술주정뱅이 연금술사와 쫓기게 된 암살미수범 기사.
이 둘이 원하지만 가지기 힘들다고 생각한 것을, 눈앞의 이 남자는 가져다주리라.
어차피 이제 이들에게는 죽음 아니면 은둔뿐이었다.
“버티겠습니다.”
연금술사 레이는 결연하게 답했다. 그는 자신을 쳐다보는 케일의 입가에 맺힌 미소를 보았다.
“술 냄새 안 나니 좋네.”
레이도 미소를 그렸다.
허름하지만 깔끔한 옷을 입은 채로, 수염을 밀고 머리도 정리한 레이는 이전과 달리 학자 특유의 명석한 눈빛이 보였다.
“저도 버팁니다.”
렉스가 뒤이어 답했다. 그리고 케일의 시선을 마주했다.
어차피 자신은 이제 평생 도주 혹은 죽음뿐이다. 그럴 바에 버텨서 한번이라도 더 시도할 수 있는 쪽이 나았다.
케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렉스는 자신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케일의 모습에 멈칫했지만, 곧 똑바로 마주했다.
“렉스 경.”
렉스는 나지막한 목소리에 긴장했다.
그때, 케일은 마법 주머니에서 꺼낸 것을 렉스 앞에 쌓았다.
쿵. 쿵. 쿵.
꽤 무게 있는 물건들이 렉스의 눈앞에 쌓였다.
“모두 읽도록.”
렉스의 눈이 커졌다.
책이었다.
상당히 두꺼운 책들이 렉스 앞에 쌓였다.
책의 제목들이 보였다.
…제왕학? 정치학? 군사학?
“…이걸 제가 왜?”
당황한 고양이 렉스가 케일을 올려다봤다. 하지만 케일은 그 물음에 답해주지 않았다.
“읽으라면 읽어. 공부하면 더 좋고.”
렉스는 케일의 눈빛에 일단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케일은 만족한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황태자의 빈자리를 누가 채워야 할까?
케일은 일단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흐뭇한 눈빛으로 고양이의 붉은 털을 쓰다듬었다. 렉스는 멈칫했지만 가만히 있었다.
라온의 목소리가 케일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인간, 왜 또 그렇게 웃나? 다 끝난 거 아닌가?
다 끝나긴.
이제 출발선이 정해졌다.
케일이 성자, 성녀, 신물과 함께 돌아오는 날.
그날이 시작이었다.
***
“인간, 나 이제 여섯 살이다! 키도 컸다!”
“그래, 그래.”
라온이 짧은 앞발로 케일을 가리켰다.
“인간 너도 스무 살이다!”
“그래, 그래.”
케일은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마부석을 향해 말했다.
“최한, 다 와가나?”
“네, 곧 해리스 마을입니다.”
새해가 되었다.
케일은 제국에서 돌아온 후 영주성에서 뒹굴다가 오랜만에 외출을 나왔다.
호랑이 마을을 지나, 고래 마을을 지나 북 파에른 왕국까지 둘러볼 꽤 긴 외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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