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67
166화.
달칵.
멈춰 선 마차의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보다 더 큰 자극이 케일을 반겼다.
“고, 공자님!”
두 팔을 펼친 채로 아주 반가워하며 달려오는 이가 보였다.
드워프 쥐족 혼혈 뮐러. 그가 외투도 제대로 입지 않은 채 울 것 같은 얼굴로 케일을 향해 달려왔다.
“…왜 저래?”
케일은 최한을 쳐다봤다. 하지만 최한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사이 뮐러는 케일의 앞에 당도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고, 공자님.”
“왜?”
평소라면 케일의 앞에서 움츠러들어야 할 뮐러였다. 케일은 평소와 달리 저돌적인 뮐러의 행동에 멈칫했다.
그리고 멈칫한 순간, 케일의 바짓가랑이는 뮐러의 손에 잡혔다.
“공자님, 제발 저도 데려가주세요!”
…왜 이래?
절박해 보이는 뮐러의 모습에 케일은 일단 다리를 털어 뮐러를 떼어냈다.
‘이상한데.’
성벽 개조에 황금 거북을 형상화한 배까지. 뮐러의 가치는 수직 상승 중이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도 빳빳하게 굴어야 할 놈이 겁에 질려 있었다.
“차라리 공자님 따라가는 게 낫지, 이건, 이건!”
케일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뮐러를 최한에게 일단 챙기라고 눈짓하고는 해리스 마을로 들어섰다.
해리스 마을에는 현재 영지군이 없었다.
이전에 경비를 서던 병사와 남아 있던 기사들도 모두 영주 성으로 돌아갔다.
케일이 해리스 마을에 호족을 이주시키는 건 비밀이었기에 그렇게 했던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호족에게 마을을 지킬 병사들은 필요치 않았다.
더불어 그 기사와 병사들은 현재 영주 성에서 기사단장의 지휘 아래 동계 훈련 중이었다.
케일은 뮐러가 참여한 듯한 마을 목책을 살펴보며 해리스 마을 입구를 지났다. 그러자 하얀 눈밭 사이로 해리스 마을이 보였다.
-재밌겠다!
라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더불어 케일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으음.”
눈밭을 뒹구는 어린 호랑이들과 늑대들,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가 보였다.
-나도 논다!
“그러든가.”
허공에 라온이 나타났고, 검은 용은 눈밭을 뒹구는 애들에게로 날아갔다.
“허억!”
케일은 뒤에서 숨넘어가는 목소리가 들렸다. 뮐러였다. 라온을 보고 놀란 듯한 하프 드워프는 케일에게로 다가와 다시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케일은 이번에는 쳐내지 않았다. 그는 저를 올려다보는, 소년 같은 외모지만 서른 살의 어른에게 안쓰럽다는 듯 말했다.
“호랑이도 고양이과였지.”
뮐러는 턱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케일은 뮐러가 제 뒤에 숨어도 그러려니 했다. 달려오는 고양이와 호랑이들이 보였으니까.
“우아! 오랜만인데!”
“드디어 왔는데!”
온과 홍이 케일에게로 제일 먼저 달려왔다. 최한은 케일의 옆에 섰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케일의 씰룩이는 입꼬리가 보였기 때문이다.
“보고 싶었는데!”
따뜻한 옷을 입은 붉은 고양이 홍이 케일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뮐러는 슬그머니 최한의 뒤로 피신했다.
“다쳤다고 들었는데.”
은빛 고양이 온은 이제 12살이 되어 조금 커진 체격으로 케일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하지만 12살이래 봤자 아직 어린이였기에, 케일은 제 걱정을 하는 어린이에게 답해주었다.
“어, 피 토했지.”
온과 홍, 주변에 있던 어린 호랑이와, 마찬가지로 어린 늑대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덩달아 라온의 표정도.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저 멀리 다가오는 이를 보며 침음을 삼켰다.
“오셨습니까, 공자님.”
“어. 오랜만이야.”
한겨울, 꽁꽁 싸맨 케일과 달리 한 겹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다가온 주술사 가샨은 여전했다. 가샨은 눈을 감은 채로 미소를 띠었다.
“한스 부집사에게 공자님께서 제국에서 한 일을 들었습니다.”
제국에서 한 일.
그것 때문에 온갖 곳에서 연락을 받았던 케일이었다.
갑자기 동북부 모든 귀족가뿐만 아니라 왕국 곳곳에서 연회 초대장이 왔다. 물론 동북부 귀족 중 에릭은 근심 가득한 장문의 편지를 보냈지만.
케일은 여러 번 들었던 화제였기에 대충 답했다.
“그래? 자연은 다른 말씀이 없으시고?”
흐.
케일은 가샨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에 멈칫했다.
괜히 자연에 대해서 말했다. 케일은 후회했다.
그는 지팡이를 움켜쥐는 가샨을 떨떠름하게 바라봤다. 그때, 가샨이 조금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자연께서… 이번 겨울, 북쪽에 따뜻한 공기가 맴돈다고 하더군요.”
이야.
케일은 속으로 탄성을 흘렸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무표정에 가샨은 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북 3국은 우리와 적 사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 차가운 곳에 따뜻한 공기가 맴돈다니. 그들에게 좋은 일이 생길까 걱정입니다.”
“신경 쓸 것 없어.”
단호한 음성에 가샨과 함께 온 전사들은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린 우리 할 일을 하면 돼. 우리 뜻대로 될 거니까.”
“…그렇군요. 닥치지 않은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요.”
주술사 가샨은 고개를 끄덕였고 케일은 생각했다.
‘신통방통하네.’
톡톡. 케일이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고개를 돌리니 놀란 얼굴의 검은 용이 보였다. 여섯 살은 신기해하는 눈빛으로 가샨을 보고 있었다.
케일의 머릿속으로 라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간! 우리 ‘용의 분노’를 저 호랑이 주술사가 모를 텐데, 신기하다!
용의 분노.
에르하벤이 만든 불기둥 개량형이었다.
케일은 그저 라온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또 저 미소다!”
라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온과 홍의 곁으로 날아갔다. 이제 평균 9세가 된 애들끼리 뭔가를 쑥덕쑥덕거렸지만 케일은 신경을 끄고 걸음을 내디뎠다.
“집으로 가지.”
“네.”
집.
케일이 내뱉은 말에 최한이 뒤따랐다. 그리고 가샨도 은근슬쩍 따랐다. 물론 뮐러는 가샨과 최대한 떨어져 최한의 바짓가랑이를 잡고서 따라왔다.
***
집은 당연히 짱돌 저택이었다.
케일은 짱돌 저택으로 향하는 동굴 입구 앞에서부터 마중 나온 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본 순간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음흉한데!”
“뭔가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데.”
“맞다. 또 저 미소다!”
홍, 온, 라온. 셋이 연달아 내뱉는 말을 케일은 가볍게 무시하며 동굴 입구에 나온 이들을 빤히 응시했다.
평소라면 케일은 늑대 소년 라크와 한스, 로잘린이 마중을 나왔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마중을 나온다면 그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동굴 입구 앞에 있는 이들은 전혀 예상 밖의 인물들이었다.
“왔어?”
소드 마스터 하나였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동굴 입구에 기대어 있었다. 그녀의 뚱한 인사를 케일은 대충 흘려보내고, 소드 마스터 하나를 움직이게 한 두 사람을 쳐다봤다.
달달달.
미친 신관 케이지. 그녀는 짝다리를 짚은 채로 한쪽 다리를 달달 떨며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녀는 혼자 생각에 빠져 케일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미친 신 같으니라고. 왜 맨날 꿈에 나와서 쳐 우냐고! 케일 공자 바짓가랑이라도 잡으라니, 도통 뭔 소린 줄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케이지는 몇 주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꿈에 맨날 죽음의 신 목소리가 들렸다. 질질 짜는 소리를 하며 코를 훌쩍여 댔다.
세상에, 신이 그런 찌질한 행동을 한다니!
거기다 맨날 중얼거렸다.
‘드디어, 드디어! 케일, 그 인간은 역시나였어! 이제 세상에 아름다운 죽음을 전파할 수 있어!’
그건 그저 그랬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 기가 찼다.
‘성녀 해볼래?’
케이지는 그때마다 잠에서 깨어나며 외쳤다.
‘개소리하네! 내가 미쳤다고!’
그러다가 오늘은 그렇게 외쳤을 때,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죽음의 신 목소리가 들렸다.
‘네 마음대로 하렴. 그게 길이니.’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그게 더 찝찝했다.
“케, 케이지 님.”
성자 잭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성자 잭. 그는 요 근래 이상하게 잠이 안 오고 심장이 떨리고 머리가 아프다고 했었다. 신의 목소리를 들은 것도 아니건만, 그냥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케이지는 잭의 부름에 그를 바라보려다가 흠칫 몸을 떨었다.
오싹한 기분이 온몸을 사로잡았다.
“미친!”
그녀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오싹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오싹한 기분.
그녀가 처음 다른 이들과 함께 신관이 되겠다며 죽음의 신 앞에서 단체 맹세를 했을 때, 자신을 스쳐 지나간 기운과 흡사했다.
아니, 더 깊었다.
그리고 이 기운은 그 수많은 초짜 신관들 사이에서 자신만이 느꼈던 비밀이었다.
“보자마자 욕입니까? 반가운 인사네요.”
고개를 돌린 곳에는 케일이 서 있었다.
순간 케이지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는 케일이 제국에서 했던 대단한 일에 대해서 들었다. 그에 대한 말로 인사를 시작할까 했지만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그녀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이었다.
“공자님, 뭘 들고 온 거예요?”
말하고 나자 케이지는 머릿속이 명확해졌다.
“도대체 무슨 기운을 들고 온 거죠?”
이 오싹한 기운.
죽음의 신 교단에서는 죽음을 따뜻하게 포장하려 하지만 케이지는 안다.
죽음만큼 공평하면서도 불공평해서 잔인한 존재는 없다고.
돈이 적으나 많으나, 권력이 많으나 적으나 죽음은 생명에게 반드시 찾아온다.
그래서 공평하다.
그러나 착하기만 한 어린아이의 숨을 거둬가고 추악한 권력가가 노인이 될 때까지 살게 만드는 불공평도 죽음이다.
케이지는 케일이 무언가를 들고 왔음을 직감했다. 그때, 그녀의 귓가로 잭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성자 잭, 그가 어벙한 얼굴로 케일을 응시하고 있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다는 얼굴로 제 가슴 위를 두드려 댔다.
케일은 그 모습에 더 짙은 미소를 그렸다.
‘역시.’
역시나 미친 신관 케이지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성자 잭보다 케이지가 진짜배기였다.
제국에서부터 이곳까지.
케일은 지나가는 길에 죽음의 신과 태양신 두 교단의 어느 신관에게도 발걸음을 붙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성자 잭은 희한한 표정으로 케일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었고, 케이지는 성큼성큼 케일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공자, 위험한 기운을 왜 품고 옵니까? 몸에 안 좋아요!”
케일 걱정을 하며 얼른 연유를 말하라는 듯 그를 응시했다.
“케이지 씨, 그리고 잭 님.”
케일은 여유로운 손짓으로 두 사람에게 동굴 입구를 가리켰다.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죠.”
케일은 앞장서서 동굴 안 지하 저택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뒤, 케일의 앞에 찻잔이 놓였다. 부집사 한스는 다과까지 올려두고는 조용히 케일의 방을 빠져나갔다.
케일은 저택 5층, 오랜만에 제 방의 소파에 몸을 느긋하게 기대며 입을 열었다.
“일단 속이 차가우니 마시세요.”
케이지와 잭은 케일을 응시하다가 천천히 찻잔을 집어 들어 차를 마셨다. 케이지는 속을 데우자 조금 마음이 편안해져 왔다.
그때, 탁자 위에 물건이 두 개 놓였다.
낡은 콤팩트형 거울 하나.
그리고.
“푸핫!”
케이지 입안에 있던 차가 뱉어졌다.
책 한 권.
지은이, 마음이 여린 죽음.
뚜욱. 뚝.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찻물이 턱을 타고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케이지도 케일도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케일은 긴장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신의 물건.
그것에 대해 케일은 아는 것이 적었다.
“어떻습니까?”
하지만 미친 신관 케이지는 답 대신 책을 향해 손을 뻗었다. 케일은 망설이는 그녀에게 말했다.
“보세요.”
그 말에 그녀는 바로 망설임 없이 책을 집었다.
그 순간이었다.
스스스-
스산한 소리와 함께 하얗던 책이 까맣게 물들어갔다.
탕탕.
케일은 5층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인간! 뭐 하냐? 아주 무서운 기운이다!”
유리창에 호빵처럼 눌린 얼굴로 외치는 라온이 보였다. 밖에서 온, 홍과 논다더니 어느새 날아왔다.
그 빠른 속도에 놀란 케일에게로 미친 신관 케이지의 음성이 들렸다.
“…이거…….”
케일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케일은 마음이 두근두근 설렜다.
얼마나 대단할까?
케이지가 침을 삼키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입이 열렸다.
“…이거, 일회용인데요.”
음?
케일은 잠시 당황했다.
“네? 케이지 씨, 뭐라고요?”
내가 잘못 들었나?
케일은 다시 케이지를 응시했다.
그녀는 죽음의 신이 질질 짜면서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케일은 열리는 입을 보며 다시 기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저도 모르겠어요.”
“…네?”
정말이다.
케이지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저에게는 이 책이 한 문장으로 도배되어 보입니다.”
그녀의 말에 케일은 자신이 봤던 책 내용을 떠올렸다.
해괴했던 내용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케이지에게는 모두 한 문장이라고?
케일이 이전과는 다른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도 케일을 바라보며 몇 주간 죽음의 신이 울면서 했던 말들 중 어젯밤 흘러가듯이 했던 한마디를 떠올렸다.
‘신도 알 수 없는 존재가 영웅이야. 이제 영웅이 탄생할 때가 되었어.’
영웅의 탄생.
미친 신관 케이지는 그 생각을 묻어두며 자신이 책에서 본 한 문장을 말했다.
“죽음을 죽이는 방법이 궁금한가?”
수백 페이지의 책은 이 한 줄로 도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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