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69
168화.
폭발음과 함께 집이 부서지고 사람이 날아간다.
그런데 평온하다.
케일은 충분히 이상하다고 여길 만하다 생각했다.
“음.”
그것보다 무거운데.
케일은 슬쩍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눈이 마주친 라온이 슬며시 눈길을 피했다.
이제 거의 키가 1m 15㎝가 되어 작년보다 5㎝나 커진 바람에, 한층 더 무거워진 라온이었다.
“에취!”
기침을 하며 시선을 회피하는 라온의 입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가는 게 보였다. 케일은 기가 찬 심정으로 먼 산, 아니, 먼 저택을 응시했다.
그때, 위티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날아간 이는 대왕고래입니다.”
오.
케일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대왕고래. 이름처럼 몬스터와 드래곤을 제외하면 지상 생명체 중에 가장 커다란 몸집을 지니고 있는 동물이었다.
위티라는 케일의 반응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설명했다.
“고래족 중 가장 크죠. 그리고 강하고.”
그녀를 따라 케일의 시선도 대왕고래 수인이 날아간 쪽을 향했다.
“쿨럭, 쿨럭!”
기침과 함께 일어서는 사람이 보였다. 아주 멀쩡하게 일어서서 옷에 묻은 얼음 가루들을 털어냈다. 케일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저 고래 웃는다!”
그러게.
케일은 라온의 말대로 웃고 있는 대왕고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위티라가 눈이 마주치자 살짝 웃어 보였다.
“조금 특이해요.”
“…그렇군.”
케일은 그냥 그러려니 하며 화제를 돌렸다.
“조용하네.”
고래족 마을은 상당히 조용했다.
얼음으로 만든 집들도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지만, 외관 자체는 소박하고 집 크기도 평범했다.
케일은 위티라의 평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바다 위니까요.”
그러니까.
케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드넓은 바다 위의 거대한 빙하.
그 얼음 덩어리 위에 집들이 지어져 있었다.
케일은 빙하 주위의 고래들과 펭귄들이 보였다.
“위티라, 펭귄족도 있나?”
혹시나 싶어서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재무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시죠. 최고의 집사감이에요. 모두 검은 정장을 선호하시고, 다들 팔자걸음을 걸어요. 만나고 싶으시면 소개시켜 드릴까요?”
라온과 온, 홍이 반응했다.
“펭귄 궁금하다!”
“나도 궁금한데.”
“친구 되고 싶은데.”
그러나 케일은 단호했다.
“아니. 전혀 만나고 싶지 않아.”
더 이상 동물을 알고 싶지 않았다.
케일은 단호히 거부 의사를 표하고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바다 건너 희미하게 파에른 왕국 땅이 보였다.
서대륙 가장 최북단의 왕국 파에른.
그 파에른보다 더 위. 바다에 존재하는 거대한 빙하들 중 일부가 고래족의 땅이었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와이번이 안 보이는데?”
작년 10월부터 파에른 왕국의 와이번 조종사들이 일주일에 한두 번씩 이쪽으로 왔다가 돌아간다고 했다.
그래서 작년 11월, ‘암’ 전투단 1조를 처리하기 위한 고래족 이동 당시 위티라는 은밀히 왔어야 했다.
물론 고래족은 지금 이 와이번 조종사의 감시를 용인 중이었다.
봐주고 있단 소리였다.
케일은 자신의 물음에 시원한 미소를 짓는 위티라를 볼 수 있었다.
“한 며칠은 안 보일 거예요.”
확신에 찬 어조였다.
“그래?”
“네. 우바르 영지로 가기 전에 와이번 조종사가 보이더라고요.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데 눈이 마주쳤다는 느낌이 들길래.”
“들길래?”
“옆에 있던 작은 빙하를 하나 부숴 버렸죠.”
위티라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랬더니 도망가더라고요. 아마 놀라서 한 며칠은 안 올걸요?”
케일은 할 말을 잃었다.
빙하를 부쉈단다.
하긴 혹등고래가 꼬리로 후려치면 작은 얼음 덩어리는 부서졌을 것이다.
다만 케일은 ‘작은 빙하’의 기준을 알 수 없었다. 그는 품 안의 라온을 꽉 붙들어 매었다.
“공자가 봐주란 소리를 하지만 않았으면, 저나 아치 돌격대장이 이미 파에른 왕국에 찾아갔을 것 같아요.”
위티라가 상큼하게 건네는 말에 케일은 라온을 더 꽉 안았다.
‘살벌한 고래들 같으니라고.’
역시 고래는 권위적이다.
자애롭다고 알려진 혹등고래지만, 결국 그것도 자신들이 바다의 최고이기에 보일 수 있는 자애로움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갑자기 와이번과 등대, 배를 이용해 알짱거리며 감시를 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우습고 걸리적거리겠는가.
북 3국은 작년부터 동대륙에서 넘어오려는 ‘암’ 때문에 고래족을 면밀히 감시했지만 그전에는 별달리 감시라고 할 것이 없었다.
물론 몇백여 년 전에 북쪽 왕국들은 고래족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경계가 흐트러졌다.
‘고래족의 힘을 잊은 거지.’
고래족은 꽤 오래전부터 본인들의 힘을 대륙에서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인어족들과 세력 다툼이란 이유도 있었고 딱히 대륙 일에 관심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걸 알 리 없는 인간들이, 그저 아주 강하다고 알려지기만 하고 본 적 없는 힘을 계속 경계할 리 없었다.
위티라도 그 사실을 꼬집었다.
“우리가 너무 조용히 있었나 봐요.”
케일은 그런 그녀에게 장난스레 말을 건넸다.
“지금은 일부러 조용히 있는 거잖아?”
고래족은 암이 제국은 물론이거니와 북 3국과도 협력 관계임을 들었다. 고래족은 북 3국을 눌러줄 필요성이 있었고, 암을 없애고 싶었다.
“맞아요. 그래서 조용히 있는 거죠.”
파에른 왕국의 관찰을 용인하며 고래족은 평범하게 행동했다.
물론 겉으로만.
그들의 내부는 지금 어느 때보다도 바빴다.
“오랜만이네.”
“고래왕을 다시 한번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케일은 고래왕 시켈러의 손을 잡았다.
꽤 오랜만에 만난 사이임에도 어색함이 덜했다.
“자네가 부탁한 자료일세.”
시켈러가 손짓했고, 팔자걸음을 걷는 펭귄이 다가와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케일은 서류를 받아 로잘린에게 건넸다.
“폐하, 감사합니다.”
물론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뭘. 내가 한 게 무어라고.”
케일은 그 말과 달리 기분 좋게 웃는 시켈러를 볼 수 있었다.
시켈러가 건넨 문서.
그 안에는 현재 북 3국이 얼지 않는 해안가에서 만든 배들에 대한 정보가 가득했다.
북 3국은 대륙의 감시는 경계했지만 바다의 감시는 미처 경계하지 않았다.
왕이 산다기에는 소박한 집.
시켈러는 소파에 몸을 기대며 느긋하게 말했다.
“오랜만에 이런 싸움을 해보는군.”
“이런 싸움이 어떤 싸움입니까?”
케일은 차를 마시려다가 해조류 향기에 멈칫하며 물음을 던졌다. 시켈러는 케일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난장판.”
찻잔을 내려놓은 케일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시켈러는 흥미를 숨기지 않았다.
골치 아프던 인어족을 누르고 찾아온 또 다른 일. 하지만 이번 일은 꽤 즐거웠다.
“우리 고래족은 말이야. 아니, 나는 말일세. 그냥 냅다 부딪쳐 싸우는 게 좋거든? 막 서로 속이고 자잘하게 싸우는 게 취향이 아냐.”
“크흠, 큼. 전하.”
범고래 아치가 고래왕의 가벼운 어휘에 헛기침을 했지만 시켈러는 무시했다. 그렇다고 사라질 왕의 위엄이 아니었으니까.
시켈러는 케일에게 짧은 감상을 전했다.
“그런데 내가 뒤통수 칠 입장이 되니, 참 즐거워.”
케일은 물었다.
“전하의 뒤통수를 치려던 놈들이라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맞아! 인어족을 이용해 우릴 건드리려던 놈을 난 용서할 수가 없어.”
그래서 시켈러는 요즘 재밌었다.
“북 3국은 우리 고래족이 다른 왕국들과 협력한 줄 꿈에도 모르겠지. 무엇보다도 ‘암’과 북 3국은 우리가 저들의 존재와 사이를 안다는 걸 모르고 있어.”
“그래서 저들에게는 난장판이 펼쳐지겠죠.”
케일의 담담한 어조에 시켈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즐거울 것 같아.”
케일은 흥이 난 시켈러와 그런 그에게 동조하는 고래족 사람들을 말리지 않았다.
강한 자들이 흥이 나 앞으로 나설수록 약한 이들이 사는 법이니까.
그리고 케일은 흥이 난 이들에게서 얻을 것이 있었다.
“해상로는 어떻게 됩니까?”
케일이 이곳에 온 이유는 해상로 때문이었다.
“이미 준비를 마쳐놨어. 자네 측 사람들을 데리고 동대륙까지 함께할 고래족을 선발해 놓았네. 파세톤이 총 담당자지.”
조용히 서 있던 파세톤이 슬쩍 손을 들어 보였다.
“다만 배는 자네 쪽에서 준비해야 해.”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내밀었다.
“저희 영지에서 준비한 서류입니다.”
케일은 오늘 영주 대리인 자격으로 참여했다.
비밀 유지와 고래족과의 친분으로 따지면 케일이 가장 적당했기 때문이었다.
시켈러는 출항일과 인원, 선박 등등 여러 가지가 명시된 내용을 확인 후,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해상로는 우바르 영지에서 시작, 고래족의 안내를 따라 북쪽을 거쳐 동대륙으로 향했다.
케일은 시켈러에게 여러 가지 내용을 모두 들었고 간략한 회의를 진행했다. 그리고 회의가 모두 끝났을 때, 시켈러는 그에게 물었다.
“이제 어디를 갈 건가?”
시켈러가 오늘 도착한 케일을 붙잡고 바로 회의를 시작한 이유가 있었다.
케일의 요청 때문이었다. 그의 일정이 빡빡해 이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가 북쪽에서 할 일을 들은 고래왕은 기꺼이 이를 수용했다.
케일은 내일 아침 일찍 떠날 곳을 언급했다.
“절망의 호수부터 가려 합니다.”
“뭐?”
시켈러는 눈을 크게 떴다. 듣고 있던 비서 펭귄이 어깨를 들썩였다.
절망의 호수.
파에른 왕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하얀 눈보라에 뒤덮인 호수였다.
그것도 독을 지닌 눈보라.
시켈러는 저도 모르게 물었다.
“호수에 불을 지르려고?”
뒤이어 위티라가 다급히 말했다.
북 3국 안내를 맡은 파세톤이 거들었다.
“공자! 거긴 세계수가 있는 거 모르시나요?”
“세계수에 불을 지르다니요! 그건 너무 큰일 아닙니까? 아무리 공자님의 배포가 커도, 이건 재앙입니다!”
뭔 소리야.
케일은 고래족 남매를 뚱하게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뇨. 수도 호수에 지를 건데요.”
“뭐?”
시켈러는 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파에른 왕국 수도의 호수.
말이 호수지, 물 한 방울 없는 그곳에는 전설이 있었다.
신의 눈물로 만들어진 호수.
그 호수의 눈물이 메마르자 신은 파에른을 떠났다.
그 이후 다시 신의 눈물을 기다리고 있다는 호수였다.
케일은 멍하니 쳐다보는 혹등고래 가족들에게 말했다.
“신의 눈물 대신 신의 분노를 전해주면 놀라지 않을까요?”
“맞다, 인간! 놀랄 거다!”
라온이 코를 훌쩍이며 케일의 말에 동의했다.
시켈러는 멍하니 물었다.
“…절망의 호수는?”
“심부름요.”
세계수와 세계수 옆의 정령들. 그리고 그곳의 엘프 마을까지.
“…누구?”
시켈러는 케일에게 심부름을 보낸 이를 물었다.
케일은 별것 아니라는 듯 답했다.
“에르하벤 님이라고, 골드 드래곤 님이 시킨 심부름입니다.”
고래왕은 검은 용 라온을 힐끗 쳐다봤다가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
“…허. 그래, 자네라면 수도 호수도 태울 수 있겠구먼.”
납득의 한숨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케일은 손수건으로 콧물을 훌쩍거리는 라온의 코끝을 문대며 말했다.
“절망의 호수 엘프들은 어떻습니까?”
고래왕은 즉답했다.
“오만하고 싸가지가 없어.”
케일도 즉시 답했다.
“좋군요.”
음? 좋다고?
시켈러, 펭귄이 케일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반면에 케일 일행들과 범고래 아치, 고래족 남매들은 담담했다.
케일은 라온의 동글동글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그래봤자, 내 등 뒤엔 용이 둘이지.’
엘프가 오만하든 말든, 케일이 알 바가 아니었다.
***
그렇기에 며칠 뒤, 파에른 왕국 북부 해안가에 몰래 진입한 케일의 걸음은 느긋했다.
파에른 왕국 최서북단에 위치한 해안가.
사람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해안가 너머에 거대한 눈보라가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저깁니다.”
범고래 아치가 눈보라를 가리켰다.
고래왕 시켈러는 재밌겠다며 파세톤과 함께 범고래 아치를 붙여주었다.
‘싸가지 없는 엘프 놈들한테는, 싸가지는 물론 앞뒤도 없는 아치가 적격이지.’
훌륭한 판단에 케일은 기꺼이 아치와 함께하기로 했다. 물론 아치는 울상이었다.
“가자.”
케일은 북부에서 가장 큰, 365일 꽁꽁 얼어 있는 호수로 향했다.
냐아아옹.
“신나는데! 강해지는데!”
오랜만에 온과 홍은 케일의 품에서 즐거워했다. 특히 홍이 눈보라와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전해진 하얀 독을 떠올리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온은 눈보라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안개도 저렇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독을 지닌 눈보라.
케일의 표정이 독이 특기인 붉은 고양이 홍처럼 설렘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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