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7
16화.
“도련님, 가보실 겁니까?”
마차를 나서자마자 따라붙는 론에게 케일은 무심히 답했다.
“그럼 내가 가지. 누가 가?”
거침없이 현장으로 향하는 케일의 뒤를 바로 론과 부단장이 따라붙었다. 굉장히 일사불란하게 케일을 감싸듯 두 사람이 따라붙었지만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서서히 마차에서 내리는 남자. 베니온 스텐.
그를 본 순간 케일의 미간이 깊이 찌푸려졌다. 아버지 데르트 백작이 전해준 베니온 스텐의 성격에 대한 평은 단 한 줄이었다.
또한 케일, 김록수는 ‘영웅의 탄생’ 속 그에 대해 평할 수 있었다.
전형적인 악역.
하지만 그 전형적인 악인을 책이 아닌 현실에서 마주하는 것은 꽤 골치 아픈 일이었다. 케일은 최한처럼 나쁜 짓 한다고, 마음에 안 든다고 앞뒤 안 가리고 사람을 팰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케일이 당도한 사건 현장에는 이미 어느 정도 사건이 진행된 뒤였다. 그 몇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최한은 화가 아주 많이 나 어깨를 부들부들거리고 있었다.
“고귀하신 분의 앞길을 이렇게 막으면 어떻게 합니까?”
“지금 사람이 다칠 뻔 했는데 그런 말이 나옵니까? 막기는 누가 막았다는 겁니까? 먼저 그 쪽이 마차를 그런 식으로 몰아서 이런 사단이 났잖습니까!”
“귀한 분의 마차를 보면 피해야지요. 멍청하게 있는 저 평민이 어리석은 것이지요!”
베니온의 수하와 최한이 말싸움을 하고 있었고 그런 최한의 곁에 서있던 한스는 난감한 얼굴로 케일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귓가에 속삭였다.
“최한님이 많이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
한스는 이미 마차의 정체와 그 주인이 후작가 사람임을 알아본 듯 했다. 그리고 지금 화를 내는 저 수하의 주인, 베니온도 상대의 정체를 알아챈 듯 했다.
헤니투스 백작가의 마차 문양을 보았기에 그 고귀한 인간이 마차 밖으로 걸음을 내딛었을 것이다.
“그만 하게.”
화려한 금발의 남자. 베니온은 자신의 수하에게 다정히 말을 건넸다. 수하는 그제야 곧바로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베니온의 뒤로 빠졌다. 최한만이 놀란 노인을 달래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쯧. 케일은 혀를 찼다.
수하는 화가 나지 않았다. 수하도 한스처럼 곧바로 꽤 먼거리였지만 황금 거북이 문양이 새겨진 마차를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 과장되게, 죄를 따지는 최한에게 화를 냈을 것이다. 이를 알고 한스는 난감해하며 다가오는 케일을 기다렸던 것이고.
케일은 베니온과 수하를 노려보는 최한의 어깨를 잡았다.
“너도 그만해.”
“하지만-!”
무엇때문에 최한이 화났는지 안다. 자신의 두번째 고향과 같은 해리스 마을을 닮은 이곳. 그 곳에서 한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 할만한 짓을 해놓고 태연한 행태와 노인에게 사과하지 않는 저들의 모습에 화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피해자인 노인은 화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최한처럼 그는 무력이 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뻔히 다른 길도 있는데, 피하지 않고 한 사람을 다치게 할 뻔 했습니다. 그걸 어떻게 그냥 두고,”
“최한.”
케일은 꾹 힘을 주어 최한의 어깨를 눌렀다.
“진정해.”
최한의 검은 눈동자를 케일은 가만히 응시했다. 화가 나있던,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해리스 마을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던 최한이 안정 되어가는 것이 보였다.
케일은 그 모습을 확인하고 미련없이 고개를 돌려 베니온 스텐과 마주했다.
화려한 금발에 잔잔한 미소를 지은 입가. 주름 하나 없이 다려진 정갈한 정장. 흠집 하나 없는 구두. 하지만 케일의 시선을 사로 잡은 것은 하얀 와이셔츠 소매 끝에 살짝 물든 붉은 색이었다.
‘검은 용 고문 구경하다가 피가 튀겼나 보군.’
미친 새끼. 고문관이 검은 용의 피부가 피로 덮힐 정도로 채찍질을 하는 걸 보며 식사를 하는 인간이 베니온 스텐이었다.
“반갑습니다. 헤니투스 백작가 분이십니까?”
“네. 반갑습니다. 베니온 스텐 공자.”
역시나 상대는 케일을 알고 있었다. 베니온은 그냥 편하게 후계자 자리에 오른 인물은 아니었다. 다만 조금 재수 없어서 문제였다.
“음.”
언뜻 상냥한 미소를 지었지만, 그게 참 재수없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베니온이 그랬다.
“이 근처 영지 연회에는 올 일이 별로 없어 이야기로만 많이 들었습니다만. 백작가에 조금 자유분방하시고 귀족 답지 않은 분이 계시다고 들었는데.”
그는 생글생글 웃으며 위 아래로 케일을 훑어보았다. 참 재수 없는 시선인데, 뭐라 시비 걸기에는 애매한 눈빛이었다.
“재작년부터 요 근래까지 바센 헤니투스 공자께 대신 연회나 동북부 귀족 자제 모임 자리를 내어주었다는-.”
다 알면서 묻기는. 케일은 이런 대화에 재주가 없었다. 그래서 환하게 웃으며 정중하게 답했다.
“네. 그 망나니가 접니다.”
망나니. 그 단어가 케일의 입에서 직접적으로 나온 순간, 베니온의 수하가 멈칫했다.
“망나니 중에서도 나름 알아주는 상 망나니죠.”
베니온의 입꼬리가 비웃듯 묘하게 뒤틀렸다. 이런 정신나간 인간은 처음 본다는 표정이었으나, 케일은 신경쓰지 않았다.
스텐 후작가. 한 파벌을 이끌 정도로 대단한 곳이지만 그렇다고 아직 정식으로 소가주 인정도 받지 못한 자가 피차 작위가 없는 귀족 자제를 자기 기준에 따라 마음대로 건들 수는 없었다.
후작은 참 냉정한 것이 보통 소가주가 되면 보호와 권위를 위해서라도 정식 소가주로 공표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후작은 그러지 않았다.
‘다섯째까지 아직 있거든.’
베니온 밑에도 여동생 둘과 남동생 하나가 더 있었고 그들 사이의 경쟁을 후작은 즐거이 여겼다. 그 스트레스로 베니온은 검은 용 고문 관람을 취미로 여겼고 후작은 제 아들들의 경쟁을 재밌는 경기 관람으로 여겼다. 당연히 거기서 도태된 꼴이 불구가 된 장남의 운명이었다.
미쳐서 돌아가는 집안 꼴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헤니투스 백작가는 얼마나 좋은 곳인가.
“재밌는 분이시군요.”
베니온은 케일의 말을 부드럽게 받아넘겼다.
어느 파벌에 속하지도 않고, 동북부의 외곽에서 뚝심있게 버텨온 돈 많은 백작가. 그곳과 누가 척을 지겠나? 오히려 탐을 내면 탐을 냈지.
하지만 베니온 속마음은 케일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망나니 장남. 그리고 제법 똑똑한 차남. 케일과 바센의 관계를 파악하고 있을 것이기에 베니온은 케일을 보며 자신의 형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베니온은 귀족스럽게 케일에게 이 사건의 해결안을 건넸다.
“잠깐 의도치 않은 장애물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인사를 하게 되니, 꽤 좋은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군요. 케일 공자와 안면도 트게 되었고요.”
의도치 않은 장애물. 노인을 말했다. 베니온은 노인 때문에 시간이 지체된 일만을 아쉬워했다. 그리고 지금 이 일을 베니온은 좋은 일로 마무리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수하에게는 길 위를, 이 땅 위를 달릴 자격이 있는 자와 멈출 자격이 있는 자를 잘 구분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이름 높은 후작가의 공식적이지 않지만 소가주로서 백작가의 망나니에게 할 수 있는 조언을 부드러이 건넸다. 같은 공자임에도 너와 나는 다르다며 가르치는 투였다.
물론 케일은 가만히 듣고 있었지만, 개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베니온은 모든 말을 마치고 마무리로 이 자리에서 가장 불안해하고 있는 이를 쳐다봤다.
털썩. 시선을 받은 노인은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땅에 머리라도 닿을 듯 깊이 허리를 숙인 노인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최한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각 영지는 다스리는 귀족의 성향에 따라 영지민들의 자세가 판이하게 달랐다. 스텐 후작가의 개나 다름없는 이 자작가는 그 성향을 그대로 이어받아 굉장히 귀족적이었고 권위적이었다.
베니온의 입꼬리가 유들유들한 미소를 머금었다. 만족한 것이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케일이 베니온을 불렀다.
“베니온 공자.”
고개를 돌린 베니온에게 케일은 물었다.
“끝났습니까?”
“…그렇습니다만.”
케일은 쪼그리고 앉았다. 비싼 옷자락의 천이 땅바닥에 닿았다. 그는 물끄러미 덜덜 떠는 손을 쳐다봤다.
‘이러다 큰일 나지.’
케일은 분명 들었다.
후우.
최한이 깊이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를. 저건 분명 분노를 참고 있는 소리일 것이다. 그 순간 케일은 뒷목이 섬찟했고 이러다간 죽을만큼 처 맞는 게 자신이 아니라 베니온이 될 것이라 확신이 들었다. 베니온이 처맞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니었지만 최한이 자신의 소속일 때 남들 앞에서 귀족을 때려서는 안 되었다.
케일은 노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베니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귀족의 손이 평민의 어깨 위에 올라갔다.
“노인장.”
노인이 경기할 듯 놀라며 고개를 들어 케일을 쳐다봤다.
“예, 예?”
케일은 무심히 물었다.
“술집 어디야?”
“네?”
“맛있는 술 어디서 파냐고. 들었다시피 내가 망나니거든. 술을 못 마시면 아침이 상쾌하지가 않아. 내일 아침의 상쾌함을 위해 술을 마셔야겠거든. 그러니까.”
케일은 노인의 상체를 일으켰다. 이를 지켜보던 베니온은 술 이야기에 소리 없이 탄식을 흘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내해.”
떨리는 눈동자로 바라보는 노인과 눈을 마주하며 케일은 미간을 팍 찌푸린 채 말했다.
“안 일어나?”
노인은 주춤거리며 케일과 베니온의 눈치를 번갈아 봤다. 하지만 케일은 그 시선을 무시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평민 어깨 위에 올렸던 손을 그대로 베니온에게 내밀었다.
“오늘 반가웠습니다. 베니온 공자.”
케일은 악수를 청했다.
베니온은 가만히 서서 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때 베니온의 시종이 급히 다가와 그에게 작게 속삭였다. 하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 크기 였다.
“소가주님, 지금 시간이 많이 지체 되셨는데.”
“…귀족들 대화에 끼어들면 안된다.”
미소 하나 없는 얼굴로 베니온은 시종을 내려다봤고 시종은 허리를 숙였다. 베니온은 미소를 지으며 케일의 손을 잡았다.
“바쁘니 이만 가보지요.”
그리고 손을 놓았다. 아주 짧은 악수였다. 케일은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기회가 되어 수도에서 뵙게 된다면 술이라도 한 잔 하죠.”
“…같은 술 맛을 못 느낄 것 같지만, 좋습니다.”
유들유들 짓는 미소가 왠지 시들시들해보였다. 케일은 그 시들한 미소를 위해 마지막은 산뜻하게 장식했다.
“네. 오늘 이렇게 뵈니, 역시 스텐 후작가의 가주가 되실 분은 베니온 공자뿐인 것 같습니다. 아주 멋진 분이시군요.”
가주. 그 단어에 베니온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케일의 예상대로 베니온은 다시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케일에게 칭찬의 말을 건넸다.
“케일 공자님도 유쾌하고 아주 많이 자유로운 분 같습니다. 다음에 꼭 뵙지요.”
아니. 절대 뵙지 않을 생각이다. 보더라도 멀찍이서 떨여저서 볼 것이다. 케일은 속마음을 감춘 채 고개를 끄덕여보였고 곧 베니온은 정말로 바쁜 듯 마차에 올라타 자리를 떠났다.
케일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최한의 어깨를 툭 쳤다.
“귀족의 반은 저래.”
투박하게 건넨 말에 최한의 어깨가 움찔했지만 케일은 이미 노인의 앞에 다시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노인장. 못 일어나겠어? 다리를 다쳤나?”
툭툭 내뱉는 말과 달리 케일은 매섭게 노인의 몸 곳곳을 살폈다. 타박상도 하나 보이지 않아 다시 뚱한 표정이 된 케일이 물끄러미 노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최한을 불렀다.
“최한.”
최한은 대답 대신 쪼그리고 앉아있는 케일의 뒤통수만을 바라봤다.
“네가 이 노인장 데려다 줘라.”
“괘, 괜찮습니다. 그, 술집 안내를.”
“됐어. 술은 무슨. 술 마실 기분도 아냐.”
술집 안내를 하려는 노인을 말리고 케일은 뒤돌아 말 없이 서 있는 최한을 올려다봤다.
“네가 구했으니까. 이왕 하는 거 끝까지 안전히 데려다 줘.”
최한의 입이 닫혔다 열렸다를 반복하며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그 때 노인의 목소리가 케일의 귀에 들렸다.
“저희 집이 술을 팝니다만.”
“음? 노인장 집이 술집이었어?”
진짜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케일에게 노인은 어색하게 웃으며, 하지만 한결 편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네. 이 마을의 유일한 여관입니다. 술집과 식당도 겸합니다.”
“유일하니, 거기가 제일 맛있는 곳이겠군. 한스!”
케일이 따로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한스는 일어서는 노인의 곁으로 가 그를 부축하며 여관에 대해서 물었다. 그 움직임을 시작으로 주위가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론이 다가와 흙이 묻은 케일의 옷자락을 털어주었다. 그리고는 부단장의 뒤를 따라 나머지 일행이 있는 마을 입구로 향했다. 이제 이 자리에 남은 사람은 케일과 최한 뿐이었다.
“…케일님.”
“왜?”
“화 안 나십니까?”
“뭐가?”
최한은 다시 멈칫하며 선뜻 말을 잊지 못했다. 케일은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나를 무시한 것? 혹은 너에게 그런 말도 안되는 조언을 한 것? 저 노인을 죽일 뻔 했으면서 그걸 오히려 장애물이라 말한 것?”
케일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담담했다. 전혀 화가 난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무미건조 했다. 케일은 말을 이었다.
“앞에 사람이 있는데 달려야 합니까? 왜 안 피합니까? 이 노인이 다칠 뻔 하지 않았습니까? 사람을 죽일 뻔 해놓고 어떻게 장애물이라고 말하며 당당할 수 있습니까?”
최한은 먼 산을 바라보는 케일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동시에 그의 목소리를 귀에 담았다. 여전히 케일은 담담히 말했다.
“왜 베니온, 당신이 노인에게 사과를 받는 겁니까? 제대로 사과 하세요.”
케일은 최한처럼 말할 수 있었고 그러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없는 사람이야. 말하고 싶지도 않고. 화도 안나.”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케일은 최한의 이런 점이 그를 멋져보이게 만듦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도 그렇게 멋져 보이고 싶지 않았다.
노인은 다치지 않았고 자신이 아닌 백작가에 꼬투리 잡힐 명분도 만들지 않았다. 케일 자신의 이미지 깎이는 거야 바센에게 도움이 되니 잘된 일이었다.
“난 나처럼 행동하는 게 내가 터득한 내 삶의 요령이거든.”
권력에 적당히 타협하고, 불합리에 적당히 수긍하고.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 안에서 내 마음대로 사는 것. 케일은 복잡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최한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또한 케일은 무시 당하거나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으면 언젠가는, 정말로 언젠가는 꼭 갚아주었다.
“아마 저 자식 곧 집에서 쫓겨날거야.”
“…네?”
저 자식이 누군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최한은 드물게 놀란 감정을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내며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은 아주 음흉한 웃음을 입가에 그렸다. 저 멀리서 다가오던 고양이 두마리가 걸음을 멈춰세웠다.
그는 아까 전부터 보고 있던, 마을 오른쪽에 위치한 산을 보며 미소를 더 짙게 그렸다. 최한에게 하지 못했던 뒷말을 그는 속으로 내뱉었다.
‘내가 저 자식의 용을 빼돌릴 거거든.’
용을 빼돌리고 나면 베니온은 후작에게 큰 분노를 안겨줄 것이고 가주가 되는 길에 장애물이 생길 것이다. 길을 가다 멈춰야 할 때, 그 때를 모르고 멈추지 않고 달리는 자에게 한 번 쯤 가던 길이 가로 막혀 봐야 하지 않겠나.
기꺼이 케일은 베니온 가는 길에 커다란 장애물 하나 올려놓을 용의가 있었다. 물론 몰래. 그는 흥미롭게 쳐다보는 최한에게 툭 던지듯 내뱉었다.
“궁금하면 네가 조금 도와주면 돼.”
“뭔지 몰라도 꼭 돕고 싶군요.”
최한의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선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악동과도 같은 미소였는데, 그 미소에 고양이들이 꽤 흥미로운 얼굴로 다가왔다.
케일은 원래라면 3일 뒤에 날아가버렸을 산을 보며 중얼거렸다. 오늘 자신은 무시를 당했고, 베니온 소매에 물들어진 피와 고개 숙인 노인이 마음에 걸렸다.
“하면 후회하지 않을거야.”
이번에는 바로 갚아줄 수 있을 것 같다.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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