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70
169화.
“미친 짓이죠.”
케일은 젊은 남성이 건네는 커다란 술잔을 받아 들었다.
그는 절망의 호수에서 그나마 가장 가까운 마을을 찾아왔다.
그 마을 유일한 작은 여관 겸 식당. 주인의 손자는 절망의 호수에 대해서 묻는 로잘린에게 손을 절레절레 흔들어 보였다.
“다른 계절도 아니고, 1월에 거길 가는 건 그냥 죽겠단 소리예요.”
“그래요? 다른 때에는 가는 사람이 있긴 있나 봐요?”
케일은 술을 마셨다가 멈칫했다.
술이 따뜻했다. 그리고 상당히 셌다.
‘약한 술 달랬는데.’
가장 약한 술인데, 벌써부터 목이 타는 듯 속이 화끈거렸다.
-인간, 그런데 술은 맛있나? 왜 인상을 찡그리면서 계속 마시나?
케일은 빈 의자에 시선을 돌렸다. 빈 의자지만 당연히 그곳엔 투명화한 라온이 있었다. 케일은 주위를 슬쩍 둘러보고는 낮고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여섯 살이 술이라니. 용이라도 안 된다.
만약 라온이 취해서 산이라도 하나 날려 버리면 어떻게 되겠나? 그게 재앙이다.
-…알았다.
케일은 침울한 라온의 목소리를 모른 척했다. 대신 로잘린과 남자의 대화에 집중했다.
현재 케일 일행은 모두 평범한 갈색 머리로 염색 마법을 해둔 상태였다. 물론 고래족 파세톤과 아치는 충격적인 외모 때문에 로브를 썼다.
“음, 봄이나 여름쯤에는 그 호수에 가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주인의 손자는 살짝 어깨를 떨었다.
5대 불가사의 중 하나.
사람들 중에 용감한 이들이 그곳을 찾아가기는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좋지 못했다. 남자는 난로 불빛 아래 앉아 있는 주인 할머니를 힐끗 보다가 입을 열었다.
“눈보라를 보고 도망친 사람들은 살았지만, 눈보라 속으로 들어간 이들은 반만 살아남았어요.”
“그래도 눈보라에 들어간 반은 살았네요.”
최한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남자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살아 돌아온 반은 모두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그리고 실명되었죠.”
실명.
그 독에 당하면 전체적으로 몸이 약해지고, 동시에 실명과 더불어 방향감각을 잃는다고 했다.
케일은 알고 있던 사실을 들으며 생각했다.
‘은근히 잔인한 세상이란 말이야.’
죽은 마나를 뿜어내던 죽음의 사막이나 독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절망의 호수나.
이 세상은 인간 간의 세력 다툼 외에도 무서운 존재들이 많았다. 수인족도, 어둠 속성 종족도, 참 강하고 잔인한 이들이 어디에나 있었다.
‘그 덕에 괴물들이 힘을 못 쓰지.’
그 덕에 몬스터들이 힘을 못 썼다. 괴물의 영역은 아주 협소했다. 물론 괴물을 만날 일이 없는 케일이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여관 주인의 손자는 오랜만에 온 손님들이 걱정되었던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튼 거기 가실 생각이면 한번 고려해 보세요. 정말 무서운 곳입니다.”
“솔리.”
손자는 가만히 불을 쬐던 할머니의 부름에 멈칫하며 입을 닫았다. 여관 주인은 여전히 난롯불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껏 절망의 호수에 가는 인간들을 보며 느낀 게 있지.”
노인의 나이만큼 오래되어 보이는 여관 벽에는 노인의 그림자가 넓게 드리워져 있었다.
노인은 젊었을 때부터 여기서 살아왔다. 그러다가 모험가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남편도 여기에 정착하였고, 함께 여관을 세웠다.
그리고 딸을 낳고, 그 딸이 결혼하여 손자를 낳는 것까지 보았다.
노인은 고개를 돌렸다.
케일과 노인의 눈이 마주쳤다.
“말이 안 통해.”
호수에 가는 인간들은 말이 안 통했다.
“내 딸과 사위가 그랬지.”
몇 년 전 떠나간 남편은 더 앞서 떠나간 딸과 사위를 먼저 가서 볼 테니 천천히 오라고 했었다. 손자가 다 크고 결혼할 때까지 악착같이 산 후에, 그 후에 오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노인은 그러겠다고 답했다.
케일의 눈을 응시하던 노인은 고개를 돌렸다.
“…말은 알아들었지만 안 갈 인간은 아니구먼.”
노인의 귓가로 방금까지 눈을 맞췄던 남자, 케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살아 돌아와서, 여기서 이 술 다시 마시죠.”
노인은 따뜻한 불빛에 몸을 쬐며 입을 열었다.
“솔리.”
“네, 할머니.”
“술값 받지 말거라.”
케일은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손자 솔리에게 술잔을 흔들어 보이곤, 그 술을 들이켰다. 머릿속으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 우리 그 눈보라 부숴 버리자!
케일은 그 말을 무시했다.
온과 홍이 냐옹거리며 탁자를 두드려 댔다. 케일은 그것도 무시했다. 그는 고룡 에르하벤에게서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눈보라를 없애려면 세계수를 없애야 된다.’
‘물론 세계수가 눈보라를 조종하니까, 내 증표를 네가 사용하면 바로 길을 터줄 거야.’
에르하벤은 드물게 케일에게 경고하듯이 말했다.
‘눈보라를 보면 세계수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만여 년 동안 죽었다가 살아났다가를 반복한 존재가 세계수다.’
‘세계수는 자연을 가장 닮았지. 자연에서는 살고 죽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 말을 명심하도록.’
세계수는 다른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눈보라를 일으켰다.
그 눈보라에 인간이 죽어갔지만, 그랬기에 세계수는 다른 생명체의 욕망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케일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자신의 방으로 가기 위해 일어섰다.
온과 홍이 따라왔다.
그는 자신을 따라 일어서는 최한에게 작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호숫가에 유품이 있으면 다 챙기도록. 모두에게 전해.”
최한은 따라오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케일은 미련 없다는 듯 제 방으로 올라갔고 최한은 미소를 띤 채 일행이 있는 테이블로 돌아갔다.
방에 들어선 케일은 침대에 드러눕자마자 홍의 질문을 받아야 했다.
“이번에 나도 독 먹으면 실명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마 그렇겠지?”
오.
홍은 감탄과 함께 얼른 제 누나 옆으로 가 잠들 준비를 했다. 홍은 어떻게 하면 눈보라를 많이 먹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잠들었다.
***
그리고 다음 날, 홍은 휘몰아치는 눈보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입을 크게 벌렸다.
“우아아아.”
열려진 입안으로 흩날리는 눈들이 들어왔다. 톡 쏘는 게 색다른 독맛이었다.
“더, 더!”
홍의 들뜬 목소리에 케일은 제 품의 홍을 조금 더 눈보라 쪽으로 들이밀었다. 범고래 아치가 그 광경을 드물게 충격받은 표정으로 쳐다봤다.
아기 고양이를 눈보라에 들이밀다니!
싸가지는 없어도 도덕적 관념은 있는 아치는 입을 뻐끔거리다가 파세톤의 어깨를 잡았다.
“저, 저거-”
말려야 하지 않나?
그렇게 말하려던 그에게 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맛있는데!”
그리고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먹으면 배탈 난다.”
옆에 있던 온이 말했다.
“눈은 아무리 먹어도 작아서 배 안 부른데.”
케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찬 거 먹으면 배탈 나.”
무뚝뚝한 목소리에 온은 ‘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온 마법과 더불어 털옷까지 입은 라온이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맞다. 감기는 조심해야 한다. 위대해도 코는 막힌다.”
라온의 당당한 말에 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안개를 일으켰다.
휘이이-
케일은 눈앞의 거대한 눈보라에서 나는 바람 소리와 다른 작은 소리에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제 옆의 온이 안개를 회전시키고 있었다.
“뭐 해?”
“나도 눈보라처럼 하고 싶은데.”
온이 그리 말하고는 케일을 쳐다봤고 케일은 솔직한 감상을 전했다.
“훌륭하다.”
온이 얌전하게 웃으며 안개를 회전시켰다. 검은 용은 그 옆에서 이리저리 조언을 하며 더 강력한 안개 회오리를 만들어주려 노력했다.
그리고 이 광경을 파세톤은 애매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뭐, 뭐 이런!”
혼혈 고래 파세톤은 범고래 아치의 어버버거리는 모습을 모른 척해줬다. 그는 시선을 앞으로 했다.
예전에 케일과 함께 어둠의 숲에 갔을 때 마주했던 검은 늪보다 훨씬 더 거대한 호수가 보였다.
사실 파세톤은 얼어붙은 나무들 너머로 보이는 꽁꽁 언 호수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사계절 내내 얼어 있는 호수의 위에 자리한 거대한 눈보라로 그 크기를 짐작할 뿐이었다.
파세톤은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검은 드래곤은 호수 주위에 다른 생명체가 없다고 했다. 그 말에 일행은 긴장을 풀고 있었다.
그 모습 자체가 신기했다.
‘이 바람을 그저 편히 흘려보낸다니.’
눈보라가 일으키는 거대한 바람.
왜 눈보라를 보면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서는 이가 많다고 했는지 이해되었다. 사람이 저절로 뒤로 밀릴 만한 바람이었다.
그리고 조금씩 눈보라 밖으로 밀려난 눈들도 피부에 닿으면 따끔한 것이, 더 다가가면 독에 중독될 것 같은 공포를 안겨주었다.
주위의 나무도, 풀도, 땅도 모두 하얗게 얼어붙은 공간. 그래서 더 공포스러웠다.
그러나 파세톤 주위의 사람들은 태연했다.
범고래 아치도, 최한도, 로잘린도, 라온, 온, 홍도 평소와 다름없어 보였다.
심지어 케일도.
‘역시 케일 공자도 보이지 않는 강함을 지닌 것이 틀림없어.’
이따금씩 케일이 보이는 위압감에 놀랄 때가 있었다. 파세톤은 지금도 꼿꼿하게 서 있는 케일을 응시했다.
물론 케일은 바람의 소리를 사용해 바람을 밀어내며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독이 닿을 때마다 심장의 활력이 바로바로 치료를 해줬다.
하지만 그 따끔거리는 감각이 아프게 느껴져 케일은 홍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가자.”
얼른 눈보라 사이로 길을 터서 따끔거리지 않았으면 싶었다.
로잘린은 홍을 품에 안아 들며 케일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후 염색 마법을 풀었고, 그 덕에 홍과 로잘린, 케일은 유독 붉어 눈에 확 띄었다.
“공자, 바로 에르하벤 님의 증표를 쓰실 건가요?”
“그러려고요.”
케일은 로잘린의 눈동자에 깃든 탐구욕을 알아챌 수 있었다.
고룡이 건네준 증표. 마법사인 로잘린이 충분히 궁금해할 만했다. 그녀는 케일이 제국에 다녀오는 동안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있었다고 들었다.
에르하벤이 한마디 말로 그녀의 성취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도록.’
매번 에르하벤이 라온을 가르쳐 줄 때 슬그머니 가서 주워듣고 배웠던 로잘린이었다. 에르하벤은 이를 모른 척해줬으나, 한 번도 직접 물어보라 말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직접 물어보라고 말한 것은 로잘린이 성장했음을 가리켰다.
케일은 이 부분을 언급했다.
“나중에 에르하벤 님께 증표에 대해서 물으면 가르쳐 줄 겁니다.”
“그렇죠. 물어봐야겠어요.”
로잘린은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케일은 라온을 가르치던 에르하벤의 모른 척 덕분에 수업에 꼽사리로 끼어 들을 수 있다며 신나하던 로잘린을 떠올렸다.
왕녀든 아니든 그녀 본질 자체도 대단했다.
로잘린은 케일이 꺼내 든 푸른빛 증표를 탐색하듯이 바라보다가 케일의 목소리를 들었다.
“로잘린 씨, 마탑을 세우면 어떻겠습니까?”
“네. 네?”
케일은 되묻는 로잘린에게 흘러가듯이 물었다.
“로잘린 씨 실력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로잘린도 차분한 안색으로 흘러가듯이 답했다.
“맞아요. 충분해요.”
케일은 그녀를 바라봤다. 역시나 로잘린은 그녀답게 이성적이면서도 자신만만한 눈빛을 보였다. 로잘린은 확실히 스스로가 가진 위치와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꿈도, 야망도 확실했다.
케일은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돈이나 마정석 필요하면 말하세요.”
“고마워요.”
로잘린은 굳이 호의를 거부하지 않았다. 케일은 그녀의 인사에 슬쩍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며 증표와 함께 눈보라로 다가갔다.
‘조금 힘드네.’
눈보라가 어찌나 센지 바람의 소리로 바람을 흘려보내도 압박감이 느껴졌다.
케일은 숲을 나와 호숫가로 걸어갔다.
‘절망의 호수는 태초부터 불가사의 지역이다.’
에르하벤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세계수는 아무나 만나주지 않아. 눈을 조종하는 것은 세계수의 의지.’
‘세계수는 그 눈보라를 뚫고 온 이들에게 낙원을 선물하지.’
낙원이라.
케일은 낙원이라는 단어를 입안에 굴리며 걸음을 멈췄다.
눈보라가 일어나는 호수가 코앞이었다.
이제 한 발만 내디디면 얼어붙은 호수 위였다.
케일은 증표를 조작하며 한 걸음을 내디뎠다.
달칵.
푸른 증표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케일의 걸음이 호수 위에 닿았다.
그때였다.
“음?”
케일은 걸음을 멈췄다.
파지직.
증표가 없는 왼손을 내려다봤다.
손바닥에 붉은 전류가 맴돌고 있었다.
파괴의 불이다.
에르하벤이 했던 말이 케일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뭐, 한때 세계수가 폭주하는 바람에 눈보라가 북부를 점령하고 땅이 얼었던 적이 있었지. 나도 전설로 들었는데, 아주 무서웠다고 해.’
‘아! 그 전설에서는 그걸 없앤 인간 영웅이 있다고 말하더군.’
순간 케일은 열 손가락 산에서 만났던 엘프 족장을 떠올렸다. 족장이 그에게 짱돌의 전설이 담긴 책을 주며 했던 말이 흐릿한 기억 속에서 튀어나왔다.
‘참 웃긴 전설인데. 영웅이 엄청나게 돈을 탐냈다고 하더군요. 그 영웅이 죽자 그의 재산을 되찾아 보관하게 된 또 다른 영웅의 일대기인데.’
‘영웅이 돈 따위를 탐내겠어요? 그것도 얼어붙은 세상을 구한 위대한 영웅이며, 어떠한 권력도 작위도 명예도 탐내지 않은 사람이 고작 동전 줍기가 취미라고?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케일은 다시 에르하벤을 떠올리며 그가 전설을 말하며 흘렸던 실소를 기억해 냈다.
‘전설에는 그 영웅이 세계수도 태워먹으려 했다는 헛소리도 있던데. 그게 사실이겠어? 예전에 내가 세계수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도 아무 답이 없더라고. 그 반응이 전설이 헛소리란 소리 아니겠어?’
…설마 이거?
케일은 손바닥을 맴도는 불벼락의 기운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다.
휘이이이-
증표의 푸른빛이 쏟아진 방향을 따라 눈보라가 마치 투명한 동굴처럼 통로를 만들었다.
“공자, 증표를 사용하셨나요?”
“인간! 너 불벼락은 왜 꺼내 드나?”
로잘린의 음성과 라온의 다급한 목소리.
그 사이로 케일은 또 다른 목소리를 들었다.
짱돌이 평소와 다른 말을 했다.
-부수려는 건가?
이건 또 다른 패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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