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71
170화.
케일은 주먹을 쥐었다.
파직, 파지직.
손안의 전류가 튕기는 것이 느껴졌다.
“인간, 불벼락 왜 쓰려고 하나? 내가 부숴준다! 말만 해라!”
“안 써.”
케일은 얼굴을 들이미는 라온을 가볍게 밀어내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살짝 미끄러운 호수 표면이 신발 밑으로 느껴졌다.
동시에 증표의 푸른빛을 따라 형성된 작은 통로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무슨 일 있습니까?”
케일은 다급하게 다가온 최한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딱히.”
“그럼 됐습니다.”
최한은 묵묵히 답하고는 케일을 따라 통로로 걸어갔다.
“많이 걸어야 합니까?”
고래 혼혈 파세톤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케일은 대충 답했다.
“좀 걸어야 된다던데.”
에르하벤은 호수에서 입구까지 꽤 걸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로잘린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통로를 둘러보았다. 마치 투명한 막에 감싸인 듯한 통로 벽 밖으로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보였다. 물론 홍은 그 눈보라를 보며 침을 꼴깍꼴깍 삼켜댔다.
“케일 공자, 증표를 사용하는 것만으로 바로 이런 안전한 통로가 생기다니 신기하네요. 세계수가 바로 그 신호를 느꼈나 봐요.”
로잘린은 신이 났기에 케일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케일은 알 수 없는 얼굴로 맞장구를 쳤다.
“글쎄요. 그런가 보네요.”
그 반응에 최한이 멈칫했다.
하지만 케일은 최한의 반응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에르하벤이 했던 말을 생각 중이었다.
‘이 증표를 사용하면 그래도 내가 보낸 사람이라는 표식은 될 테니, 그럭저럭 독에는 당하지 않고 지나갈 만한 통로가 생길 거다.’
분명 에르하벤은 그럭저럭 지나갈 만한 통로라고 했는데, 지금 이 통로는 상당히 쾌적했다.
찜찜한데.
케일은 찜찜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위험하거나 뭔가 터질 때마다 나타나던 짱돌의 희생 주장이 오늘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짱돌은 부술 건지 물어봤다. 그것도 상당히 염려 가득한 목소리로.
케일은 제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여전히 파괴의 불이 파지직거리고 있었다. 케일은 굳이 이 힘을 다시 몸 안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진짜 세계수를 태워먹으려고 했나?’
케일은 돈을 엄청 좋아하고 동전 줍기가 취미이던 고대의 힘 주인을 떠올렸다. 더불어 상당히 친절하게 길을 터주는 세계수의 반응도 생각했다.
‘이거 어쩌면-’
케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때, 케일의 눈치를 보던 범고래 아치가 살며시 말을 건넸다.
“그런데 공자님, 엘프를 만나보신 적이 있습니까?”
“있지.”
“그러면 엘프들이 어떤지 아시겠군요, 공자님.”
아치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왜?”
“지금까지 본 엘프들보다 더한 엘프들이 바로 이 호수의 엘프들입니다.”
더하다고?
케일은 시켈러가 ‘오만하고 싸가지 없는 엘프’라고 평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케일이 관심을 보이자 아치는 조금 더 힘 있게 말했다.
“그나마 고래족과 가장 가까이 있는 엘프 마을이고, 서로 필요한 물품 교류 때문에 몇 번 해안가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치는 한숨을 흘렸다.
“자기들이 선택받은 엘프들인 줄 압니다.”
케일은 스쳐 지나간 생각을 내뱉었다.
“세계수의 선택을 받았단 건가?”
“뭐, 그렇죠.”
아치는 코웃음을 흘렸다.
“이 엘프들은 세계수에 드래곤도 자유로이 볼 수 있는 유일한 엘프들이라고 아주 콧대가 높아요.”
슬그머니 파세톤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음, 상당히 타 종족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유독 이 엘프 마을이 그렇죠. 드래곤 님의 지시로 가는 것이지만, 음.”
파세톤은 살짝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지만?”
케일이 보채자, 아치가 나섰다.
“그렇지만 인간이니 무시할 겁니다. 고래족도 신체만 강한 무식한 놈들이라고 깔보거든요.”
아치는 기가 차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고래왕 시켈러가 세계수 때문에 봐주라고 하지 않았다면 꼬리로 후려쳤을 것이다.
그 표정을 본 파세톤은 침묵을 택했다.
‘…아치 대장님도 만만치 않은데.’
싸가지에는 더 큰 싸가지로 대응하는 아치의 일화를 들어왔던 파세톤이었다.
그때 두 고래에게 케일이 물었다.
“너희, 엘프들이 드래곤을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나?”
“압니다. 존경한다고 하더군요.”
“엘프와 드래곤이 만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나?”
“없습니다.”
아치는 그리 말하면서 힐끗 라온을 쳐다봤다. 그리고 조심스레 말했다.
“이번에는 라온 님도 계시니 엘프들이 그 빳빳한 목을 조금은 숙이겠지요.”
“과연 그럴까?”
“네?”
케일이 진지한 얼굴로 두 고래를 쳐다봤고, 두 고래는 그 눈빛에 멈칫했다.
설마 아무리 6살로 어리다고 해도 용인데, 그리고 고룡의 전언을 전하러 가는 사람도 있는데 엘프들이 막 대할까?
하지만 두 고래는 그간 엘프들의 그 고고한 콧대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다. 그 순간, 케일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운다.”
“…네? 우리가요?”
케일은 의아해하는 아치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엘프들이.”
“…네?”
“라온을 보면 감격해서 울지도 몰라.”
엘프들이 드래곤을 존경한다고?
그 정도 수준이면 차라리 나았다.
아치와 파세톤은 라온을 쳐다봤다. 검은 용은 어깨와 날개를 활짝 펴며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좀 위대하고 인기도 많다!”
라온 털옷의 하얀 털이 흩날렸다. 상당히 위엄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두 고래족은 담담한 케일 일행의 모습에 수긍을 택했다.
케일은 어벙한 고래족을 모른 척하며 증표의 푸른빛이 이끄는 대로 걸었다.
‘케일 헤니투스. 세계수 방어 마법진을 강화해야 된다. 꼬맹이와 로잘린에게 맡기면 될 거야.’
‘그리고 세계수에게 내 말을 전해다오.’
에르하벤은 케일이 북쪽으로 떠나기 전 따로 불러 은밀히 덧붙였다.
‘꼬맹이에게 말하지 말고.’
에르하벤이 세계수에게 전하려던 말.
‘나는 이제 2년도 안 남았다. 세계수, 네 열매는 내가 아닌 내가 보내는 용에게 주었으면 한다. 내 모든 걸 배우는 아이다.’
에르하벤은 웃으며 덧붙였다.
‘케일 헤니투스. 너만 알도록.’
케일은 웃는 고룡에게 평소처럼 답했다.
‘네, 저만 알겠습니다.’
‘그래. 너라면 이렇게 답할 줄 알았어.’
흡족해하는 에르하벤을 보며, 그 뒤로 케일은 고룡의 삶을 더 이어나가게 할 방법이 없을까 전보다 더 열심히 생각해 보았다.
에르하벤은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니었고 나이가 들어 자연히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였다.
‘그런데 에르하벤 님.’
‘왜?’
‘죽음을 반기시는 겁니까?’
‘…세상에 죽음을 반기는 존재가 있겠나. 아프기 싫고 죽기 싫고. 그건 인간이나 용이나 비슷할 것 같은데.’
고룡은 태연히 대답했지만 더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케일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불로불사는 자연의 순리로는 불가했다. 그래도 조금 더 노환을 늦추는 고대의 힘이 있을 것 같았다.
케일은 자신의 기억 속 고대의 힘들에 대해 생각하다가 걸음을 멈추며 생각도 멈췄다.
“다 왔다!”
신나하는 라온의 말에 케일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휘이이이-
눈보라의 중심에 위치한 거대한 구멍이 보였다.
“인간, 금 용 할배가 이 밑으로 내려가면 세계수 있댔다!”
“그래. 일단 라온, 너 투명화해라.”
“나? 알겠다!”
케일은 투명화해서 등에 업히듯 달라붙는 라온을 느끼며 아치와 최한에게 말했다.
“아치, 네가 엘프들과 안면이 있으니까 먼저 내려가고. 최한 너는 맨 마지막이다.”
“알겠습니다.”
최한은 곧바로 답했고 아치는 떨떠름한 얼굴로 구멍을 쳐다봤다.
툭. 케일이 아치의 등을 두드리자 아치는 한숨과 함께 아래가 보이지 않는 통로로 뛰어내렸다.
“재밌겠는데!”
“어서 가면 좋을 텐데!”
케일은 무서웠지만 온과 홍의 눈빛에 한숨과 함께 통로로 뛰어들었다.
저번 지하 도시로 갈 때와 비슷했다. 다만 더 심한 각도의 미끄럼틀이라 조금 더 다이내믹했다.
-우아! 인간, 재밌다!
등 뒤의 라온이 신나했다.
케일은 그 반응에 그러려니 귀찮은 얼굴로 통로에 몸을 맡겼다. 곧 통로 끝의 빛이 보였다. 케일의 몸이 그 빛 속으로 떨어졌다.
철퍽.
음.
케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폭 하고 부드러운 솜에 떨어지던 지하 도시 때와 달리 상당히 찝찝한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케일은 푹신하게 물에 젖은 짚들이 보였다.
“하아.”
털외투가 젖었다. 케일은 찌푸린 미간을 풀지 않고 그대로 일어섰다.
“크흠, 큼.”
케일은 자신을 보며 애매한 표정으로 서 있는 아름다운 엘프들을 볼 수 있었다. 입구 경비 두 명에 케일을 마중하러 온 듯한 세 명이 보였다. 그중 맨 앞에 있는 중년 엘프가 헛기침을 하였다.
케일은 그 모습을 훑어보고는 고개를 위로 들었다.
-신기하다!
라온의 말대로 신기했다.
호수가 보였다.
호수 아래에 세계수와 엘프 마을이 있었다.
마을 천장에 물길을 따라 넘실대는 투명한 막이 보였다. 더불어 나뭇가지가 보였다.
“크흠, 큼.”
케일은 계속해서 헛기침을 해대는 엘프 대신 뒤를 돌아봤다.
“우아, 재밌는데!”
그는 온과 홍, 뒤이어 도착하는 일행을 확인한 후, 중년의 엘프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범고래 아치는 애매한 엘프의 표정에 생각했다.
‘역시 그대로네.’
아치는 중년 엘프의 표정을 보며 저들이 인간인 케일과 고룡의 지시를 받고 온 케일 사이에서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한다고 생각했다.
파세톤도 마찬가지라 걱정스러운 얼굴로 케일을 쳐다봤다.
“크흠, 그-”
그때 중년 남성 엘프가 입을 열었다.
나름 직책 있어 보이는 자였다.
케일은 그래서 이 반응을 이해했다. 그는 중년 엘프 뒤에 서 있는 바짝 굳은 얼굴의 엘프들도 이해했다.
중년 엘프는 위치가 있다 보니 기대감을 억누르는 중이었고, 다른 엘프들은 중년 엘프의 표정 때문에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최대한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리라.
중년 엘프는 말을 이었다.
“그, 에르하벤 님의 전언을 전하러 온 분이십니까? 그, 그분도 오셨습니까?”
음?
아치는 중년 엘프의 상당히 예의 바른 어투에 당황했다. 그는 중년 엘프를 유심히 관찰했다.
엘프는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왜 저래?’
매일 싸가지 없게 거래하던 놈이 이상했다.
그때 아치는 케일의 입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라온.”
그 두 글자를 내뱉었고.
“나 나타났다!”
라온이 나타났다.
“오오오!”
그리고 이어진 괴성에 아치는 당황해 고개를 돌렸다. 중년 엘프가 심장을 부여잡고 감탄을 흘려댔다. 그 뒤 엘프들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엘프들이 왜 이래?
드래곤과 엘프들의 만남을 처음 본 고래족들은 당황했다. 그러나 힐러인 엘프 펜드릭을 통해 면역이 생긴 케일 일행은 담담했다.
“나는 위대한 라온 미르다!”
엘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대한 숙제를 외우듯 라온의 이름을 외워댔다. 한 엘프는 무릎이라도 꿇을 듯해서 이를 케일이 막으며 일으켜 세웠다.
“고맙습니다.”
케일을 향한 호의가 듬뿍 느껴지는 엘프의 미소에 아치는 경악했다. 하지만 케일은 예상했던 반응이라, 조금 귀찮을 뿐이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아, 네.”
중년 엘프는 땀을 닦아내며 말을 이었다.
“세계수를 보필하는 사제님께 가면 됩니다. 원래 사제님께서 나오시기로 했는데, 갑자기 세계수께서 전언을 내리시는 바람에 못 오셨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바로 사제님께 가죠.”
후딱 해치우고 난로 근처에 드러눕고 싶은 케일이었다.
“네. 바로 모시죠! 어?”
중년 엘프는 나뭇가지로 가득한 마을 방향으로 몸을 돌리다가 놀라 움직임을 멈췄다. 케일도 얼굴에 의아함을 드러냈다.
한 여자아이가 이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그 뒤를 엘프 몇 명이 따라오고 있었다.
“…사제님?”
사제?
케일은 중년 엘프의 말에 다시 여자아이를 쳐다봤다.
‘음?’
그 순간 눈이 마주쳤다.
‘나를 쳐다보는 건가?’
케일은 상당히 말썽꾸러기처럼 생긴 어린 엘프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광경에 갑자기 뒤통수가 서늘해져 왔다.
‘너무 절박한데?’
엘프 얼굴이 절박해 보였다.
아주 깊은 사명감을 지닌 듯 다급한 얼굴로 어린 사제는 케일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왔을 때, 중년 엘프가 황급히 사제에게 다가갔다.
“사제님,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사제는 중년 엘프는 쳐다도 보지 않고 손가락으로 케일을 가리켰다.
“붉은 머리칼!”
케일은 흠칫했다.
어린 사제는 주근깨 가득한 얼굴에 서린 비장감을 그대로 드러내며 케일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케일은 슬그머니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이 사제가 조금 이상해 보였다.
그때, 케일의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있었다.
찰랑.
동전이 부딪치는 소리.
케일은 어린 사제를 내려다봤다.
사제는 고개를 들고서 케일에게 손에 들린 주머니를 내밀었다.
찰랑, 찰랑.
주머니에서 꼭 동전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어린 엘프는 대뜸 말했다.
“오래된 인간 세계 돈이지만 받으세요! 은화래요!”
음?
“자, 자! 어서!”
사제는 케일의 품으로 동전을 들이밀었고 케일은 일단 받아 들었다. 그러자 사제는 넓은 소매 품을 뒤적이더니, 납작한 직사각형 물건을 꺼냈다.
“여기 금도! 금화는 없어서!”
어린 엘프는 급해 보였다.
“…뭐야?”
케일은 당황해 저도 모르게 반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어린 사제는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사제가 된 지 10년, 사제는 지금껏 이리 다급한 세계수 전언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사제는 금을 케일에게 다시 들이밀며 말했다.
“세계수께서 붉은 머리칼한테 돈을 주라고! 동전을 주라고 했어요!”
동전.
아까부터 그 단어가 거슬렸다.
케일은 왼손을 펼쳤다.
파지직, 파직. 파괴의 불이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케일이 다시 어린 사제를 쳐다보자 사제는 다급히 말했다.
“받아주세요! 안 그러면 다 태운다고! 불바다 만든대요!”
케일은 생각했다.
도대체 이 파괴의 불 주인이 뭔 짓을 했던 거지?
엘프 사제는 절박했다.
“동전을 엄청 좋아한다고, 환장한다고 했는데!”
그냥 돈 밝히는 평범한 영웅 아니었어?
케일은 기가 찼지만, 일단 엘프 사제의 금은 받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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