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75
174화.
순간 일행 사이에 정적이 내렸다.
범고래 아치와 혼혈 고래 파세톤은 말문이 막힌 표정이었고 로잘린과 최한은 고민에 잠긴 표정이었다.
은빛 고양이 온은 그러면 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케일의 얼굴을 외면했다.
하지만 케일은 이런 정적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인간! 역시 너는 우리 인간이다! 불꽃놀이 할 때 다치면 안 된다!
상당히 신난 목소리였다. 이런 살벌한 6살이 다 있나. 케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최한과 로잘린을 응시했다.
최한은 가만히 케일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됩니까?”
최한은 분명 케일이 하는 말을 들었다.
‘사람이 다치면 안 되니까.’
참 악당 같은 일을 벌이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케일이기에, 최한은 망설임이 없었다.
“나중에 보고 같이하자.”
그리고 들려오는 케일의 대답에 미소를 그렸다. 같이하자. 수십 년을 혼자 살아남기 위해 버텼던 최한에게 언제 들어도 듣기 좋은 말이었다.
케일은 마지막으로 로잘린과 시선이 닿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아주 효과적인 계획과 적절한 시기 같네요.”
“역시 로잘린 씨라면 그리 말할 줄 알았습니다.”
고래족 두 명은 더욱더 말을 잃은 표정이었으나, 케일은 신경 하나 쓰지 않고서 파세톤에게 지시했다.
“파세톤, 숙소부터 잡자.”
“아, 네!”
“그 뒤에는 호수 구경하고.”
호수.
그 단어에 파세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케일 일행을 파에른 왕국 수도 안으로 안내했다.
사람들이 그런 그들을 힐끗거렸다.
평범한 여행자용 로브를 써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일행. 그들이 이상해 보이진 않았다.
다만 그들이 호위하듯 둘러싼 한 사람.
백발의 신관을 사람들은 힐끗거렸다.
케일은 그 시선을 느끼며 미소를 그렸다.
-또 저렇게 웃는다! 왕세자랑 얘기하는 것도 아닌데!
라온의 말이야, 가볍게 흘려버렸다.
***
사박사박.
눈을 밟는 소리는 차분했다. 케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은 몇 명 보이지 않았다. 오가는 이들은 작은 목소리를 대화를 나눴지만 표정이 밝았다.
경건한 분위기지만 엄숙하지는 않았다.
케일은 한적한 공원에 온 듯한 기분에 설렁설렁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 그의 머릿속으로 라온이 말했다.
-인간, 입구에 있던 경비병 외에도 곳곳에 순찰하는 병사들이 있다!
참, 이제 시키지 않아도 착실하게 잘한단 말이야.
케일은 1살 더 먹었다고 알아서 잘하는 라온이 흐뭇했다. 그의 곁으로 최한이 다가와 속삭였다.
“축제 때 올릴 제사 전이라 호수 북쪽 지역은 접근이 불가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디든 충분히 뚫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최한도 이제 알아서 보고를 잘했다.
케일은 성장한 라온과 최한에 대한 흐뭇함이 밀려왔다.
멧돼지 잡아다주던 검은 용과 밥 준다고 하면 따라오던 놈이 참으로 많이 성장했다. 케일은 뿌듯한 마음과 함께 앞을 주시했다.
툭. 툭.
그런 그의 팔을 홍이 두드렸다. 케일이 홍을 바라보자 홍은 앞발로 앞을 가리켰다. 홍은 경악한 표정이었다.
냐아아옹!
차마 여기서 말을 할 수는 없어서 홍은 울어대며 눈으로 물었다.
‘여기에 불을 지른다고 들었는데?’
케일은 단박에 그 눈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래, 여기다.”
고양이와 케일의 모습을 지켜보던 로잘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말이 없던 고래족 두 명이 보였다.
저들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너무 큰데.’
눈앞에 신의 눈물 호수가 보였다.
물 한 방울 없이 메마른 호수는 움푹 파인 채 갈라진 밑바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슬그머니 케일에게 다가갔다.
파에른 왕국 수도 북쪽 외곽.
광장과 이어지는 큰 대로를 따라 걸으면 수도의 북쪽 끝에 있는 거대한 호수가 나타났다.
물 한 방울 없는 이 호수는 보는 순간 엄청난 크기에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로잘린은 조심스럽게 케일에게 물었다.
“공자, 이 정도면 거의 바고 시 면적의 삼분의 일 정도 되지 않나요?”
“그러게요. 생각보다 작네요.”
작다고?
로잘린이 멈칫했지만, 케일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온과 홍을 내려두고 거대한 호수의 외곽을 따라 걸었다.
“각자 흩어져서 구경하다가 잠시 뒤에 만나도록 하지.”
한마디 남기고 케일은 일행과 멀어졌다. 투명화한 라온만이 함께였다.
신의 눈물.
케일은 이 호수에 대해서 꽤 많은 조사를 했다.
이 호수 북쪽에 신전과 함께 제단이 있었다. 축제 때 그곳은 통제되지만 다른 곳은 여유롭게 출입이 가능했다.
케일은 그나마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향했고, 그러다 보인 안내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케일은 가만히 서서 안내판의 내용을 읽었다.
알던 내용을 다시 한번 읽은 케일은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꺼냈다.
누구지?
어떤 신이지?
케일은 읽을 때마다 궁금했다.
“남쪽이라.”
케일은 남쪽이라는 단어에 집중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당황했다.
-인간, 왜 그리 놀라나?
라온은 그 반응에 놀라서 케일을 불렀지만, 케일은 황급히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며 고민에 빠졌다.
‘저 자식이 왜 여기에 있어?’
케일은 황급히 ‘영웅의 탄생’ 내용을 떠올렸다.
메마른 호수 바닥을 바라보는 백발의 남자. 케일은 그를 힐끗거리며 확인했다. 동시에 ‘영웅의 탄생’ 내용이 뒤이어 떠올랐다.
클로페 세카.
파에른 왕국의 수호기사.
와이번 기사단의 단장.
또한 북 3국의 구심축.
“…이야.”
케일은 그저 감탄을 흘렸다.
수호기사 클로페를 여기서 볼 줄이야.
예상 못 했다.
하지만 잘됐다.
-인간, 저 인간 때문에 놀랐나? 음, 확실히 좀 강하다.
좀 강하다고?
케일은 라온의 평가에 멈칫했다.
클로페. 그는 ‘영웅의 탄생’에서 제대로 등장한 적이 황태자 아딘보다 적었다. 그래서 정보가 부족했다.
단 하나 유용한 정보가 있었지만, 그것 빼고는 아는 게 없었다.
-메리만큼 강하다.
그런데 네크로맨서 메리만큼 강하다고?
최한과 로잘린 사이가 메리였다. 그렇다면 수호기사 클로페는 상당히 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인간, 최한이 온다!
케일은 시선을 돌렸다.
최한이 굳은 얼굴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마도 클로페가 누군지는 모르나, 그 강함을 느끼고 다가온 듯싶었다.
케일은 손을 들었고, 최한은 그 행동에 멈춰 섰다. 케일은 대기하라고 손짓하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당연히 클로페 쪽이었다.
-인간! 저 백발 검사 근처에 기사들이 두세 명 있다.
웬만한 위험 탐지는 다 할 수 있는 라온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케일은 ‘영웅의 탄생’ 속 정보를 하나 떠올렸다.
케일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자신이 왜 백발에 신관복으로 왔겠는가.
왜 굳이 신의 눈물 호수에 신의 분노라며 불기둥을 만들려고 했겠는가.
-…인간, 너무 착하게 웃는다. 아니, 우리 인간은 착하지만, 그렇지만!
혼란스러워하는 라온의 목소리를 배경음처럼 들으며, 케일은 잔잔한 미소와 함께 호수를 내려다봤다.
사아아아-
클로페 세카. 그는 부드럽지만 서늘한 겨울바람에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근처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왕국민인가.’
그는 고개를 돌리며 관광 온 왕국민일 거라 생각했다.
클로페는 그동안 일부러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이 나타날 때는 와이번 기사단이 세상에 나타날 때일 터였다. 그리고 그때 파에른은 얼지 않은 항구와 땅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백발을 숨기지 않았다. 자랑스러운 수호기사 세카 가문의 상징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혹시나 하는 시선으로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왕국민들이 종종 있었다.
왕국민들에게 수호기사 가문은 든든한 방패이자 창이었기 때문이다.
신이 호수의 물을 거두다가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그 한 방울이 한 사람에게 닿았고, 그 사람의 머리칼은 하얗게 변해 버렸다. 그는 기사가 되어 북쪽 끝 땅을 어둠으로부터 지켰다고 한다.
신의 마음을 이어받은 자.
그는 그게 바로 클로페 자신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기에 클로페는 고개를 돌려 인기척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눈을 크게 떴다.
하얀 머리칼이 보였다.
더불어 지금 흩날리듯 내리는 눈처럼 하얀 신관복이 보였다. 어떤 신인지 신관복엔 표시 하나 없었지만, 은은하게 풍겨져 오는 분위기가 범접할 수 없는 사람임을 느끼게 해주었다.
휘이이-
바람이 그 백발 신관을 훑고 지나갔다.
신관은 클로페의 시선을 못 알아챈 듯 호숫가를 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남쪽으로 가면 뵐 수 있을까.”
클로페는 멈칫했다.
저 말이 심장을 쿡 찔렀다.
‘물이 다시 차오를 때. 남쪽으로 떠났던 신이 돌아온 순간이리라.’
신전에 적힌 문구이자, 안내판에 적힌 문구가 떠올랐다.
지금 저 신관은 남쪽으로 떠난 신을 떠올리는 것일까.
수호기사 클로페. 그는 곧 남쪽으로 내려간다.
그래서 과거 신이 내려준 호수처럼 얼지 않는 땅과 바다, 강을 가져 지금의 파에른 왕국을 전설로 만들고 싶었다.
‘…누구지?’
저 범상치 않은 자는 누구지?
클로페의 걸음이 천천히 백발 신관에게로 향했다.
케일은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남쪽으로 가면 뵐 수 있을 겁니다.”
걸렸구나.
케일은 입꼬리를 제어하며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클로페는 케일이 자신의 백발과 검을 보았음에도 태연함을 넘어 더 여유로워 보이는 눈빛에 기분이 묘해졌다.
분명 강하지 않은 자에게선 쉽게 느낄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신관의 입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탐욕에 그저 주었던 것을 거둬 떠나셨지요. 화도 한 번 내시지 않고, 눈물을 흘렸던 그 마음이 무엇-”
신관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나 이내 슬픈 표정으로 호수를 바라봤다.
“그 마음이 어떠하셨을지. 얼마나 슬프셨을지 궁금하군요.”
“…신을 모시는 분입니까?”
클로페의 진중한 눈빛이 케일을 향했다.
그는 판타지 소설에서 전형적인 북쪽의 기사로 등장할 법한, 백발에 아주 우수에 찬, 잘생긴 기사였다.
‘미치겠네.’
그러나 케일은 그딴 건 알 바가 전혀 아니었다.
휘이이-
바람이 불며 케일과 클로페 사이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형성했다.
하지만 케일은 잠시 말을 멈추게 만들었던 ‘바람의 소리’를 느끼며 당황했다.
‘…왜 저 자식을 보고 날뛰어?’
바람의 소리. 성물을 훔치던 도둑이 수호기사 클로페를 보며 날뛰기 시작했다.
‘저 자식한테 신의 눈물이 있나?’
아님 쟤 집에?
…털어야 하나?
케일은 고민할 때 다시 한 번 클로페의 물음이 던져졌다.
“어떤 신을 모시는지 알 수 없는 겁니까?”
그러나 케일은 평소보다 더 날뛰려는 바람의 힘과.
-희생하려는 건가?
환장하게 무서운 짱돌의 콜라보에, 고대의 힘을 진정시키며 나오는 대로 지껄이기로 했다.
클로페는 갑자기 굳어진 신관의 눈빛에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 그때, 신관의 입이 열렸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눈에 보일 터.”
케일의 입은 자동 반사처럼 잘 움직였다.
펄럭펄럭.
신관의 넓은 소맷자락이 펄럭일 정도로 바람이 불었다. 클로페는 흔들리는 호숫가 나무들을 보다가 거세지는 바람에서 신비로움을 느꼈다.
“호수가 곧 다시 차오르길 바랍니다.”
클로페는 신관의 눈동자가 보였다.
바란다는 말과 달리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쿵. 쿵.
클로페는 심장이 뛰었다.
호수가 다시 차오른다.
그것은 길조였다.
전설이 다시 시작된다는 길조.
물론 케일은 물이 아니라 불기둥으로 호수를 채울 것이다.
클로페는 왠지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입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이자의 정체를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 순간 클로페는 신관이 말라붙은 호수 바닥을 가리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설마?’
클로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국왕에게서도 볼 수 없는 카리스마를 지닌 이. 그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클로페를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그저 지나가던 방랑자입니다.”
누가 보아도 방랑자가 아니었지만, 케일은 그리 말하고 멀어져 갔다.
클로페는 그 뒤를 멍하니 바라봤다.
-인간, 쟤 너 쳐다본다.
케일은 라온의 보고를 들으며 생각했다.
밑밥은 깔았고.
그는 라온에게만 들리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라온, 다른 이들에게 내 주위에 오지 말라고 해.”
-알았다. 그래도 나는 옆에 있는다.
“그리고 세카 공작가가 어딘지 파세톤에게 물어봐.”
라온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인간, 이번에는 거기 터나?
참, 눈치가 늘었다.
케일은 흐뭇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주었다.
“일단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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