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80
179화.
하지만 텃밭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 짱돌의 목소리는 귀신같이 사라졌다.
“여긴 밭인데?”
“여기 맞아.”
케일은 투명화해서 보이지 않는 홍의 물음에 답하며 공작가에서 가장 조용해 보이는 곳으로 다가갔다.
-마법 장치 없다!
당연히 라온이 미리 말해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호기사 가문인 세카.
당연히 그 가문의 저택에 대해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알아낸 케일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이 장소를 알고 있었다.
딱 보자마자 이 곳이 ‘그 텃밭’임을 깨달았다.
세카 가문의 초대 공작이자 최초의 수호기사였던 사람. 그 사람은 아름다운 정원과 후원을 만들어놓고는 뒤뜰 가장 구석에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노년에 들어서자 그 텃밭을 직접 가꾸었다. 작은 텃밭에 갖가지 채소를 심고, 거름을 주고 물을 뿌리고, 병충해를 막고.
지극정성으로 작은 텃밭을 돌보는 그의 모습이 소탈하고 검소해 보여, 그 또한 그의 성품을 기리는 일화가 되어 사람들에게 소개되었다.
그랬기에 그가 죽고 난 후에도 공작가는 이 텃밭을 사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이 텃밭을 직접 사용하는 이가 줄었고, 결국 역사가 있기에 모습만 깔끔히 유지된 채 관심이 끊겼다.
사실 가문의 역사가 담겼다는 이유로 볼품없는 텃밭을 지금껏 깨끗하게 유지해 두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일이었다.
“좋네.”
그렇기에 자잘한 잔디만 자란 텃밭을 거침없이 밟으며, 케일은 그럭저럭 괜찮은 텃밭 상태에 만족했다.
-인간, 땅 파나?
라온의 물음이야 가벼이 흘렸다.
휘이이이-
대신, 바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케일의 시선이 주위를 훑었다. 저 멀리 보이는 후원, 난리가 난 광장과 달리 밝지만 차분한 듯한 공작가 건물들. 물론 건물 안의 사람들은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텃밭이 보였다.
마지막으로 텃밭 옆 창고.
작고 낡은 창고가 보였다.
“…여기구나.”
케일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는 빠르게 창고로 향했다. 아주 작은 크기의 창고는 케일이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듯싶었다.
최한은 케일의 움직임을 본 후, 텃밭에 서서 주위를 경계했다.
툭툭.
최한은 제 신발을 건드리는 촉감에 고개를 숙였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냐아아옹.
온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조금씩 안개가 피어오르며 텃밭 근처를 가리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든든한 지원군에게 최한은 손을 뻗었고, 온은 최한의 손을 타고서 그의 어깨에 안착했다.
케일은 밤과 안개에 가려진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창고 앞에 서서 허리를 숙였다. 녹슨 철문이 보였다.
케일은 힘껏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끼익, 끽!
“음.”
꿈쩍도 안 한다.
제대로 녹이 슬었는지 문이 안 열렸다.
“어휴.”
냐아아옹.
라온의 한숨 소리와 홍의 기가 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케일은 그 정도쯤은 무시하며 문고리에서 손을 놓았다.
“라온.”
-알았다, 우리 약한 인간아. 이건 마법 안 써도 내 앞발로 가능하다.
케일은 라온의 말에 고민했다.
그 짜리몽땅한 앞발로 문을 여는 게 되나?
그런데 되었다.
파직!
얇은 철문에 앞발 모양의 홈이 생기며 창고 안으로 손쉽게 젖혀졌다. 아니, 부서졌다. 케일은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문을 보며 입을 열었다.
“홈 자국 지우자.”
-알았다!
파직, 파직, 팍!
라온은 문을 잡고 몇 번 앞발질을 했다. 결국 거대한 구멍이 생겨 버렸다. 누가 보아도 저건 용의 앞발이 아니라 어디 마나구를 맞은 자국인 줄 알 것이다.
“독으로 녹여도 되는데.”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홍의 침울한 목소리는 모른 척했다.
케일은 두 애들을 내버려 두고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허리를 펴지도 못할 공간.
“라온, 불.”
작은 광구가 나타나 창고 안을 비췄다. 케일의 표정이 요상해졌다.
“…농기구?”
농기구들이 보였다.
몇 년 전 걸로 보이는 삽, 수십 년은 된 것 같은 호미, 낡은 곡괭이. 다양한 잡동사니들도 보였다.
케일은 괜히 호미를 집어 들었다. 지금 그의 아공간 마법 주머니에도 호미가 있었다.
수십 년은 된 것 같은 호미가 신물이면 참 좋을 텐데, 아쉽게도 바람은 구석을 가리켰다.
케일은 구석을 쳐다봤다. 잡동사니들이 한가득이었다.
“하아.”
깊은 한숨과 함께, 그는 쪼그린 채 잡동사니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참 볼품없는 모습이었으나, 케일은 착실했다.
다만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밥값.”
냐아아옹. 홍이 와서 도왔다.
“인간, 그냥 다 바람으로 날려버리자! 그러면 창고도 날아가나?”
라온이 물었다. 창고 안이라 머릿속으로 말하지 않았다.
“어. 날아가.”
“그렇구나! 그런데 여기 이상하다!”
이상?
케일은 이상한 놋그릇을 딴 곳으로 던져두며 라온을 쳐다봤다.
저번에 신물 두 개를 발견했을 때, 라온은 짧은 감상평으로 범상치 않은 물건에 대해 알아차렸다.
“뭐가 이상한데?”
케일의 물음에 라온이 해맑게 답했다.
“분노! 파괴!”
…뭐?
“한!”
…한?
“그런 게 느껴진다!”
챙그랑.
케일 손에 있던 작은 집게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 순간 바람의 소리가 닿아 있는 물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라온의 목소리도 뒤이어 들려왔다.
“맞다! 저 바람이 닿아 있는 저거다! 저거에서 겨울처럼 추운 한이 느껴진다! 눈의 복수 같다! 오, 좋은 이름이다! 눈의 복수!”
미치겠다.
케일은 라온이 눈의 복수라 부르는 것을 쳐다봤다.
물뿌리개.
파란색의 흔하디흔한 물뿌리개.
다만 아주 오래전의 것으로 보이는 조금 낡은 모양과 색감.
케일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무래도 신의 눈물은 아닌 것 같다.
분노와 한이라니.
차라리 신의 분노면 말이 되겠네.
“…어?”
케일은 눈가를 가리던 손을 내렸다.
전설이 모두 사실일 필요는 없다.
“설마?”
케일은 라온을 쳐다봤다. 라온은 동글동글한 눈동자를 깜박이다가 케일의 눈빛을 알아챈 듯 ‘아!’ 하고 말했다.
“인간, 우리한테 위험한 건 아닌 것 같다! 우리에게 분노하지 않았다!”
그 말에 케일은 곧바로 물뿌리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곳곳을 살폈다. 겉면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과 옆면, 뚜껑, 어디에도 글귀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닌가?”
케일은 죽음의 신이 썼던 책을 떠올렸다. 그 책처럼 글귀라도 하나 남아 있을 줄 알았다. 물론 태양의 신 물건처럼 케일은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신물도 있었다.
달칵.
케일은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물뿌리개 뚜껑을 열었다. 그 안을 광구로 비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엔 없나?’
아쉬움이 밀려왔다. 케일은 한숨과 함께 물뿌리개의 뚜껑을 닫았다.
“아.”
그리고 다시 열었다. 뚜껑을 뒤집었다.
“하, 하하-”
케일은 웃음을 터뜨렸다.
뚜껑 바닥에는 아주, 정말 아주 얇은 선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레이스 장식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문양들.
케일은 그 문양을 가리키며 라온에게 물었다.
“마법으로 확대해서 볼 수 있어?”
“나는 당연히 할 수 있다! 위대하니까!”
곧이어 라온은 뚜껑 바닥 문양을 보며 말했다.
“글자다!”
“읽어봐.”
케일은 곧바로 지시했고 라온은 천천히 글자를 읽어 내려갔다.
“같은 내용이 계속 반복된다! 수백 번은 되는 것 같다!”
아주 작은 글자로, 그것도 문양처럼 만들어 숨겨둔 문장.
케일은 그 내용이 궁금했다.
라온의 목소리가 좁은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결국 아무것도 없는 것이 삶. 강물을 막아두어도 결국 넘친다. 나는 얼어붙은 땅을 위해 강을 만들었건만. 너희들은 결국 강을 막았구나.”
케일은 순간 자신이 애초부터 하나를 잘못 알았음을 깨달았다.
신의 눈물 전설이 남겨진 호수.
그곳은 호수가 아니었다.
강이다.
라온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내 소중한 아이를 쫓아내고 탐욕을 멈추지 못한 너희들의 결과도 하나다.”
소중한 아이?
원래 전설로는 신은 수호기사를 남겨두었는데?
마지막 문장이 라온의 입을 통해서 전해졌다.
“강이 결국 흐르듯, 모든 것은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라온이 다 읽고 케일을 올려다봤다.
“라온, 무슨 글자로 보이지?”
“룬어다!”
“그래?”
저번 죽음의 신 책을 읽을 때처럼 라온은 룬어로 읽혔다. 룬어가 적혔지만 마법 물품이 아니라는 점. 그 부분부터 신물에 새겨진 진실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물론 신의 입장에서 진실이었다.
케일은 그 진실을 하나하나 가다듬었다.
원래 신은 얼어붙은 북부를 위한 강을 만들었다. 그러나 과거 파에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이를 호수로 만들어 그들만을 위한 호수로 만들었다.
그 결과 신은 분노하고 이 신물을 남겨두었으리라.
더불어 사람들은 그 호수를 만들기 위해 신이 소중히 여기던 아이를 내쫓았다.
이 말들이 진실이라면 현재 내려오는 진실은 많은 부분 왜곡되어져 있었다.
‘적어도 수호기사는 신이 정해준 이가 아니군.’
파에른 왕국민들이 그렇게 의지하고, 클로페 본인조차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 수호기사의 실체는 전혀 다른 진실을 품었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소중한 아이가 파괴의 불 경쟁자인가?’
그는 짱돌이 한 말을 떠올렸다.
‘불의 영원한 경쟁자의 흔적을 부수려는 건가?’
아무래도 복잡하고 찜찜한 것들이 덩어리째로 섞인 느낌이었다.
하지만 케일은 생각을 그만두었다.
그 모든 것들을 지금 파악할 필요는 없었다. 시간도 장소도 적절하지 않았다.
케일은 물뿌리개를 내려다봤다.
“라온, 일단 챙기자.”
“좋다! 이건 우리한테 해 안 끼친다!”
라온이 바로 물뿌리개를 자신의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케일은 기어서 창고를 빠져나왔다. 그러자 안개가 자욱했다.
케일은 고개를 들었고, 최한이 앞에 와 있었다. 케일이 그에게 물었다.
“시간이 다 되었지?”
“네. 곧 올 것 같습니다.”
케일은 온과 홍에게 지시했다.
“시작하자.”
냐아아옹.
텃밭 근처만 있던 안개가 점점 더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개는 여전히 하얬다.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하는 독. 그 독이 듬뿍 담긴 독안개가 뒤뜰과 케일의 몸을 점점 감쌌다. 하얀 독안개는 케일에게 닿지 않고 그를 보호했다.
-인간! 이제 우리 ‘암’한테 가나? 걔네 거 가져오나?
“아직.”
케일은 머릿속으로 던져진 라온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다가 최한의 목소리에 대답을 고쳤다.
“온 것 같습니다.”
최한은 정문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있는 대로 자신의 기운을 뿜어내며 다가오는 거친 기운. 그 기운은 강대했고 거침이 없었다.
-왔다! 그럼 가져오나?
“그래, 암이랑 인사 좀 하고 가져와야지.”
인사라는 단어에 최한이 살짝 멈칫했다.
하지만 케일은 여유로운 목소리로 라온에게 비행 마법을 부탁했다.
독안개로 감싼 몸이 점점 위로 향했다.
그때였다.
콰아아앙!
콰아앙!
거대한 굉음이 세카 공작가를 덮쳤다. 갑자기 공작가가 시끄러워졌다. 케일은 지붕 위에서 올라섰다. 그러자 보였다.
“하하하하! 아주 약하네!”
조잡한 비밀 단체 옷을 입은 검은 복면의 남자가 부서진 정문 와이번 조각상 하나를 짓밟은 채 웃고 있었다.
범고래 아치는 주먹으로 그 흉악한 와이번 조각상을 다 부숴 버렸다. 아치는 오늘 케일에게 지시를 받았다.
‘네 성질대로 마음껏 해.’
아치는 달려오는 공작가 기사들을 보며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수호기사의 상징, 하나 남은 와이번 조각상도 부서졌다.
아치는 오랜만에 제 성질대로 굴었다.
“이야, 이건 와이번이야, 아님 파리야? 아주 귀엽네! 툭, 툭 건들면 우수수 부서지네! 으하하하!”
케일은 아주 제대로 미친놈처럼 구는 아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범고래 아치 뒤에는 조잡한 비밀 단체 옷을 입은 로잘린과 파세톤이 있었다.
“훌륭하군.”
케일은 정문으로 달려가는 기사와 사자족 남자를 보며 밤 공기의 상쾌함을 만끽했다.
사자족 남자는 암의 복장이 아닌 간편한 가죽 갑옷 차림이었다. 그는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외쳤다.
“저, 저런 더럽게 조잡한 가짜 옷을 감히! 저놈들이 그놈들이구나!”
케일은 마음이 훨씬 더 상쾌해졌다.
“밤 공기가 참 좋네.”
아직 한밤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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