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83
182화.
케일은 준비를 잘 마친 론과 프리지아를 마차에 태우고 기예르 영지로 향했다. 마차는 프리지아의 수하 중 한 명이 몰았다.
“자세히 설명해 봐.”
케일이 두 사람을 응시했고 프리지아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기예르 공작가에 오십여 년 전 쯤에 가신 가문으로 들어간 남작 가문이 있습니다.”
그 가문의 이름은 크리쉬.
“현 공작이 가주가 되기 전. 전대 공작대에 다른 후계자들이 세력 확장을 위해 끌어들인 가문들 중 하나입니다.”
안토니오의 할머니이자 현 공작인 소나타. 그녀가 그저 차순위 후계자에 불과했을 때. 기예르 영지에는 가신 가문이 몇 영입되었다.
크리쉬 가문도 그중 하나라고 했다.
케일의 입이 열렸다.
“그래도 학식으로 꽤 유명한 가문이지 않나?”
이백여 년 전, 왕실의 스승을 배출해 낸 가문으로 학식 면에서 명망 있는 가문이었다. 그랬기에 기예르 공작가는 영지도 뭣도 없는 가문을 품었다.
“도련님.”
론이 케일의 물음에 부드러이 답해주었다.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가 되진 못합니다.”
“하긴 그렇네.”
케일은 수긍했다.
과거 학식이 있는 집안이었든 말든 지금 개차반이면 개차반인 것이다.
어린아이 납치까지 의뢰한 놈들이니, 제정신이 아님은 틀림없었다.
“도련님, 그저께 밤이었습니다.”
케일은 론을 쳐다봤다. 아까부터 심각하게 인자한 척하는 것이 영 찜찜했다. 가짜지만 강력한 팔까지 얻은 론은 어째 요즘 들어 얼굴에 더 생기가 넘쳤다.
“늙어서 그런지 잠이 안 오더군요. 그래서 가볍게 기예르 영지 뒷골목으로 산책을 갔습니다.”
…뒷골목이 산책하는 곳이니?
케일은 묻고 싶었지만 그 질문을 삼켰다.
“그런데 웬 아이들이 늦은 밤 마차를 몰고 빈민가 구석에 가지 않겠습니까?”
“아이?”
케일이 아이가 마차를 몰았다는 말에 의아하게 론을 쳐다봤다. 론은 부드러이 정정했다.
“30대쯤 되어 보이는 건장한 아이들이었습니다.”
…언제 흉악한 건달 놈들이 아이들이 된 것일까.
케일은 침묵했고 론은 이어 말했다.
“어쨌든 아이들이 돌아다니니, 신기해서 가봤지요. 물론 몰래요.”
케일은 론을 존경스럽게 바라보는 프리지아를 모른 척했다.
“살금살금 따라가니, 빈민가와 상권을 나누는 경계선인 다리 근처에 집이 몇 채 있더군요. 그 집들 지하에 많은 이들이 잡혀 있었습니다.”
따각따각.
가짜 팔에 달린 손가락이 구부러지며 관절 소리를 냈다. 론은 부드럽게 말했다.
“암살자도 하지 않는 아주 쳐 죽일 짓이더군요.”
음.
케일은 오랜만에 암살자 론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하지만 케일은 빠른 대화를 원했다. 론은 핵심만 말했다.
“그리고 어제저녁 크리쉬 가문의 집사가 그 집들 중 하나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낮에는 그 건물이 그저 빈민가 가족이 사는 평범한 집이 되더군요. 물론 해가 지면 빈민인 척하는 가족들이 직원이 되지만요.”
프리지아가 이어 말했다.
“그리고 새벽까지 미행한 결과, 그 집사가 어떤 상인과 만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노예를 거래하는 상단일 확률이 높았다.
그녀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현재 그 상인의 뒤를 수하가 밟고 있습니다. 상단의 정체에 대해서는 곧 1차 보고가 올 겁니다. 어렴풋하게나마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고, 2차 보고 때면 확실히 다 알 수 있을 겁니다.”
톡톡.
케일은 마차 좌석 팔걸이를 두드리다가 론을 응시했다. 노인은 제가 모시는 도련님이 뭔가를 알아차렸음을 깨달았다.
케일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멀쩡한 사람들을 노예로 구매하는 불법 상단이라.”
그러면 그 노예들은 어디로 갈까?
로운 왕국은 노예가 불법이다.
크리쉬 가문이 미치지 않고서야 왕국 내엔 노예들을 유통하지 않을 것이다.
노예가 필요한 곳이 어딜까?
그리고 상단을 통해 은밀하게 노예를 모아야만 하는 곳이 어딜까?
케일은 짐작이 갔다.
“…인생 종치고 싶은 것들이 종탑을 세운 건가.”
“네?”
프리지아가 케일의 거친 말에 의아해 되물었지만 케일은 손사래를 치며 입을 열었다.
“아마 상단은 제국 출신일 거다.”
“…제국이요?”
프리지아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왕국 내 사람을 노예로 판 것도 모자라 타국에 빼돌린 것은, 겁을 상실한 놈들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감히 남작 따위가 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케일은 물었다.
“크리쉬 남작가 단독으로 진행한 건가?”
“…저희 조사상으로 기예르 공작가는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프리지아는 입술을 혀로 축이며 말을 이었다.
“크리쉬 남작가는 아무것도 없이 기예르 공작가 가신 가문으로 편입된 후, 그들이 밀던 이가 아닌 소나타 기예르가 현 공작이 되면서 언제 내쳐질지 모르는 처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세를 넓히려고 애썼다고 합니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했겠군.”
케일은 한 가지를 더 물었다.
“크리쉬 가문은 상단이 어디 출신인지 알고 있는 것 같나?”
“…그건 모르겠습니다.”
프리지아는 제국으로 확신하는 듯한 케일의 모습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공자님, 아직 상단에 대한 보고가 들어오지 않았으니 일단 정보를 받고 판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케일은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툭. 툭.
고양이 온과 홍이 계속 앞발로 케일의 허벅지를 두드렸다. 그놈들을 때려죽이자는 의사 표현이었다.
라온은 머릿속으로 케일에게 말했다.
-노예는… 용서할 수 없다. 이유도 없이 잡혀와 감금되는 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검은 용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짓을 크리쉬 가문이 해버리고 말았다.
검은 동굴에서 4년을 보내야 했던 라온은 노예나 감금 등은 끔찍하게 여기며 증오했다.
“론.”
“네, 도련님.”
케일은 기예르 영지 성문을 보며 말했다.
“계획 변경이다.”
“네.”
***
이른 아침.
케일은 푹신하고 보드라운 침대 속에 파묻혀 깰 듯 말 듯한 기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이 있었다.
마치 고단한 부모의 따스한 손길 같은-
“음!”
케일은 눈을 번쩍 떴다.
“도련님, 일어나셨군요.”
론이었다.
케일은 순간 오랜만에 놀라 이불 안에서 쪼그라들었다.
냐아아옹!
냐아옹!
고양이들이 비웃어댔다.
“인간, 일어나라! 늦잠 자면 안 된다!”
라온의 보챔까지. 아침부터 환장할 4중주를 들으며 케일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 그에게 론이 차를 내밀었다.
“레몬차가 없더군요. 기예르 공작가도 참 별로인 것 같습니다.”
케일은 그 말에 입꼬리를 씰룩이며 대번에 찻잔을 집어 들었다.
현재 케일 일행은 프리지아와 정보길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기예르 공작가에서 머물고 있었다.
어제 늦게 기예르 영지에 도착한 케일은 미리 가 있던 부단장 힐스만이 그의 도착을 공작가에 전한 덕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며칠 밤 기예르 공작가에 묵을 수 있게 되었다.
거대한 공작가에서 지나가는 귀족 하나 재워주지 못하는 게 이상했다. 그것도 그냥 귀족도 아니고 왕세자의 최측근이자 제국 훈장까지 받은 놈이니 알아서 데려가려 했다.
“레몬차가 없다니 아쉽네.”
케일은 잠긴 목소리로 즐겁게 아쉽다고 말하며 차를 머금었다.
“크윽!”
그리고 신음을 내뱉었다.
시종 론은 인자하게 말했다.
“기예르 영지는 쓴 차를 즐긴다고 합니다, 허허.”
제길.
케일은 얼굴을 구기며 쓰디쓴 하루를 시작했다.
그는 번듯하게 차려입자마자 곧바로 방을 나섰다.
“공자님!”
부단장 힐스만이 문 밖에서 대기하다가 케일을 따라왔다.
“크흐, 오늘따라 멋지십니다!”
힐스만은 오늘따라 더 귀족답게 꾸민 케일을 보며 감탄했다. 물론 화려하지 않고 적당하게 고급스러우면서도 차분한 것이 누가 보아도 전도유망한 귀족 자제 같아 보였다.
“그래? 잘됐네.”
하지만 힐스만은 잘됐다고 말하는 케일의 미소가 선해 보여 순간 멈칫했다.
순한 미소라니. 케일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크리쉬 남작 가문을 처단한다고 들었는데?’
힐스만은 시종 론에게 들었던 일의 중함과 반대로 유독 순해 보이는 케일이 이상했다. 부단장은 아직 인신매매에 대해서는 몰랐다.
“어디지?”
하지만 케일의 물음에는 곧바로 답했다.
“이 시간에는 정원에 계신다고 합니다. 이른 아침 식사 뒤에 산책을 하신다고 합니다.”
“정문 가는 길에 정원도 들리면 되겠군.”
곧바로 케일은 정원으로 향했다.
힐스만은 그 뒤를 따르며 론을 쳐다봤다. 론은 그저 인자하게 웃으며 케일의 뒤를 따랐다. 힐스만은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아 더 이상했지만 일단 정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정원에 도착한 케일은 안토니오 기예르를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우연인 척했다.
“오, 케일 공자. 편안한 밤 보냈습니까?”
“안토니오 공자께서 정원에 계신 줄은 몰랐군요. 네, 덕분에 편안한 밤을 보냈습니다.”
기분 좋게 케일과 안토니오는 악수를 나눴다.
안토니오는 귀족다운 차림새에 흐트러짐 하나 없는 케일을 관찰했다.
케일 헤니투스.
왕세자의 최측근이자 수도 테러를 막은 사람이었고, 더불어 제국에서 훈장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일을 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어제 호위를 먼저 보내 지나가는 길이라며 며칠 묵어도 되는지 물어왔다. 그리고 덧붙여 한마디를 더 건넸다.
‘대화를 할 수 있겠지요?’
대화.
왕세자의 최측근 케일과, 다른 왕자의 최측근이자 왕국 서남부를 지탱하는 안토니오가 나눌 대화는 뻔했지만 중요했다.
지극히 탐욕적인 대화이리라.
안토니오는 케일도 역시나 다른 귀족들처럼 탐욕적이라는 것을 ‘대화’를 제의하는 모습에서 느꼈다.
그리고 그 대화는 오늘 밤 은밀히 행해질 터.
“당연히 할 수 있지요. 아침 식사는 하셨습니까?”
안토니오는 아무렇지도 않게 평화로운 대화 주제를 꺼냈다. 그는 귀족적인 미소와 함께 답하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안 했습니다.”
“이런, 아침도 안 드시고 산책하십니까? 속 쓰리실 텐데요.”
“괜찮습니다. 아침은 곧 먹으려고 합니다.”
평이한 대화는 케일의 이어진 말에 조금 달라졌다.
케일은 우아하게 말했다.
“유명한 술집이 있대서 거기서 아침을 먹으려고 합니다.”
“…네?”
안토니오는 잠시 당황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케일은 제 할 말을 했다.
“제가 술을 조금 좋아합니다. 술 중에서도 아침 술이 최고지요. 그럼 이만. 저는 얼른 가서 아침 스프로 맥주를 마시겠습니다! 하하!”
문득 안토니오는 은빛 공자 대신 케일이 원래 가지던 별명을 떠올렸다.
망나니 케일.
안토니오는 귀족적으로 망나니 짓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오늘 할 일도 없겠다. 요양 중이니, 하루 종일 술을 마실까 합니다. 아주 행복하군요.”
제국에서 고대의 힘을 쓰고 요양 중이라는 게 통상적으로 알려진 케일의 상태였고, 이번 기예르 영지 방문도 덜 추운 남쪽으로 향하는 길에 들린 것이라 일러두었다.
그런 이가 술을 먹는다니.
안토니오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대화는 할 수 있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술을 딱 걸치고 대화를 하면 말이 술술 술처럼 나오더군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헛소리를 지껄이며 돌아서는 케일이었다. 그의 뒤를 하얗게 질린 힐스만과 여유로운 론이 따랐다.
“…종잡을 수가 없군.”
케일을 쳐다보는 안토니오의 표정은 복잡했다. 하지만 그 눈빛엔 실망감이 조금 서려 있었다.
자신이 세운 잣대에서, 얼마나 귀족다운가를 판단하여 그 사람에 대해 정의하는 안토니오. 그에게서 케일은 조금 덜 귀족다운 자가 되었다.
“괜찮을까요?”
부단장 힐스만은 이를 걱정하며 케일에게 물었지만, 케일은 듣지도 않았다. 그는 술집으로 들어서자마자 3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창가 근처 테이블에 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주문하시겠습니까?”
종업원이 케일의 시선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가 보아도 귀족다운 차림새에 외모와 분위기도 최소 백작가를 떠올리게 하는 품위를 지닌 이였다. 그러니 자연히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케일은 메뉴판도 보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다.”
강력한 한마디였다.
“네?”
되묻는 종업원에게 케일은 주문했다.
“술 종류별로 한 병씩. 그리고 안주는 제일 비싼 걸로.”
고상하게 주문하는 모습을 보며 힐스만은 눈을 껌벅였다. 종업원이 얼떨떨한 얼굴로 떠나가자 케일은 저를 쳐다보는 힐스만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뭘 봐?”
케일의 예상과 달리, 힐스만은 이내 환하게 웃었다.
“역시 공자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래요, 최한도 없고! 술을 왕창 마십시다! 하하하하!”
케일이 고개를 가로저었으나, 힐스만은 술병 뚜껑을 따며 흥을 돋웠다. 케일은 그러거나 말거나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예르 영지에 흐르는 강.
빈민가와 아닌 곳을 가르는 강을 바로 코앞에 둔 술집에서 강가에 세워진 다리가 보였다.
저 다리를 지나면 빈민가였다.
케일은 다리 건너편 허름한 집 열 채가 보였다.
왕국민들이 납치되어 감금된 집들이었다.
-…저 집들 부순다! 박살 낸다!
라온의 살벌한 목소리를 들으며 케일은 힐스만이 술을 채운 잔 대신 술병을 통째로 집어 들었다.
“고, 공자님.”
힐스만은 당황했다.
탁!
하지만 빈 술병이 탁자 위에 놓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얼굴이 벌게진 케일이 보였다. 케일은 벌게진 채로 다른 술병을 집어 들었다.
얼굴만 붉어질 뿐 술에 취하지 않는 케일은 저를 쳐다보는 힐스만에게 술병을 내밀었다. 힐스만은 과거 술병을 던지던 케일이 떠올라 흠칫했다가 이내 차분히 술병을 받아 들었다.
케일은 아무 말 없이 정말로 하루종일 먹고 마셔댔다.
그리고 해가 지기 시작했을 때.
“힐스만.”
“네. 공자님.”
호위인 힐스만은 한두 잔만 마시고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는 하루 종일 술을 마신 케일의 망나니 경력이 역시 거짓이 아니라 여기며 자신을 부른 케일을 응시했다.
케일은 다시 입을 열었다.
“론.”
“네.”
조용히 있던 론이 일어서며 답했다.
케일은 저를 쳐다보는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빈 술병을 쓰다듬으며 노을이 지는 밖을 쳐다봤다.
타는 불처럼 붉은 하늘 아래, 다리 위에 서서 신호를 보내는 프리지아가 보였다.
결국 상단은 케일의 예상대로 제국에서 온 놈들이었다.
끼이익.
케일은 의자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나 오늘 방패 쓴다.”
“네? 갑자기요?”
취하셨나?
부단장 힐스만이 은빛 방패라면 치를 떠는 케일이 취한 줄 알고 심각하게 앞으로를 생각하고 있을 때, 케일은 미소를 그리며 덧붙였다.
“밀어버려야 하거든.”
집 열 채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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