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9
18화.
“…용 말입니까?”
“그래.”
“비슷한 건 봤습니다.”
비슷하긴. 케일은 최한이 말하는 비슷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어둠의 숲, 깊숙한 곳에서 사는 해괴한 모습의 몬스터들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 중에는 도마뱀과 용, 그 사이의 존재도 있었다.
최한은 본인의 흑무검술 중반부를 지나 후반부를 만드는 것과 동시에 그 용을 닮은 몬스터를 죽였다.
“봤다고? 그럼 어떻던가?”
하지만 케일은 이를 모른 척하며 최한에게 물었다. 현재 케일의 방에는 최한만이 있었다.
“…괴물이더군요.”
“어떤 점에서?”
“생김새나 그 포악성 면에서, 괴물이었습니다.”
“그래?”
케일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행동과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그럼 넌 용을 보지 못했어.”
“네?”
“용은 인간과 같아.”
탁. 이제는 신맛 뒤에 단맛까지 느껴지는 레모네이드가 담긴 컵을 케일은 테이블 위에 올려았다. 그는 궁금해하는 표정의 최한에게 답해주었다.
“용도, 수인족도, 드워프도, 엘프도. 모두 인간과 같아. 왜냐면 그들도 감정이 있고 삶이 있거든.”
그런 부분이 케일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본론은 지금부터였다.
“그런데 말이야.”
달라진 케일의 분위기를 눈치챈 것일까. 최한의 앉은 자세가 꼿꼿해지며 그의 시선이 케일에게로 향했다.
“그런 존재가 태어날 때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둠 속에 떨어졌어. 햇빛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어둠 속 불빛에 의지해 살아가지. 어떻게 살아가는 줄 알아?”
톡. 케일은 검지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이성이 없는 존재가 되길 강요당하고.”
톡. 한 번 더 손가락이 테이블 위에 맞닿았다.
“가족도, 무엇도 기댈 수 없이 외로움을 버텨야 하며.”
톡. 검지가 테이블 위에 닿을 때마다 최한의 눈빛이 가라앉아 갔다. 테이블 아래 무릎 위에 올려져 있던 최한의 손이 주먹을 꽉 쥐며 손등 위로 핏줄이 불거져 올라왔다. 이를 모른 채 케일은 말을 이었다.
“매일 고문과 학대로 죽지 않을 정도로 근근히 살아가.”
최한의 표정이 굳어졌고 그의 눈빛에서 분노가 보였다. 케일은 그가 이럴 줄 알았다. 이 착한 녀석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지 않을 리 없었고 케일이 왜 용과 이런 이야기를 꺼냈는지 정도는 알아챘을 것이다.
케일은 다시 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마시며 이야기를 끝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이 근처에 있지.”
짧은 침묵이 내려 앉았다. 케일은 창 밖을 보다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려 최한을 살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살벌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착한 녀석이라, 학대 받는 이야기에 분노한 것일까. 케일의 예상과 달리 최한은 어둠의 숲에서 홀로 버티며 근근히 살아가야 했던 자신의 수십년을 뒤돌아보고 있었다.
그래서 침묵이 길었고 그 침묵의 끝에 최한은 케일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는 케일에게 물었다.
“구해서 거두실 겁니까?”
“미쳤어?”
“네?”
케일은 반사적으로 그의 말에 놀라며 되물었다. 그리고 그 미쳤어 소리에 최한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거두긴 왜 거둬.”
케일은 말도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인간한테 학대당하고 자라온 용이 얼씨구나 하고 나를 거둬주세요 하겠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가득할 것이다. 설사 자신을 구해준 이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용은 본인들이 인간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생명체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본능에 가까운 것으로 굳이 학습하지 않아도 스스로 느끼는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용은 인간 밑에서 자라지 못한다. 때문에 용을 사육하고 훈련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고문과 학대로 그 이성을 무너트려야 했다.
‘용은 타고나길 굉장히 거만한 성격이라고 했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용을 키우면.’
왠지 느낌이 왔다. 쓸데없는 사건 사고에 휘말릴 것 같은 느낌이.
동, 서 대륙 합쳐서 채 20 개체가 넘지 않는 용이었다. 그 용 중 하나를 거둔다? 이건 뭐 ‘나는 대륙의 사건 중심에 나설 것이요.’ 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또한 원래 죽었어야 할 용이다. 웬만하면 다른 용들처럼 혼자 어디 가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게 나았다.
여하튼 케일은 극구 사양이었다. 마나 제어구가 달린 목줄만 풀어줘도 4살이라도 케일 본인보다 잘 살 놈이다. 괜히 태어날 때부터 자연의 왕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
“그럼은 무슨. 당연한 걸 왜 묻고 그래.”
케일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최한에게 대수롭지 않은 질문을 한다는 듯 허탈하게 웃으며 답했다.
“자유롭게, 편안하게 살게 놔 줘야지. 용은 용의 방식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어?”
“…그렇군요.”
테이블 아래 최한의 주먹 쥔 손에 힘이 풀어졌다.
“그 용을 그럼 구하는 겁니까?”
“어. 그러니 좀 도와줘.”
“무엇이든. 정말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적극적인 최한의 자세에 케일은 사건이 크게 벌어질까 싶어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엇이든 하기는. 그럴 필요 없어. 될 수 있으면 누굴 죽일 생각도 없고. 그냥 최대한 조용히 하자.”
“역시, 케일님은-”
최한이 일렁이는 눈동자를 한 채로 말을 꺼냈지만 시계를 본 케일은 그 말을 자르며 자신이 할 말을 먼저 했다.
“나가서 론 보고 1층에 술상 좀 차려놓으라고 해.”
“다르- 네?”
케일은 일단 술판부터 벌였다.
* * *
한낮 오후부터 술판이 벌어졌다. 최한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멀뚱멀뚱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를 뺀 모두가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평온한 광경의 중심. 그 곳에는 술을 병나발로 들이키고 있는 케일 헤니투스가 있었다. 서서히 얼굴이 붉어지는 게 누가 봐도 취한 사람 같았다.
“술을 저렇게 드시는데 안 말리셔도 됩니까?”
최한은 옆에 있는 한스를 보며 물었다. 부집사 한스는 여전히 묘족임을 모른 채로 새끼 고양이 모습의 온과 홍에게 음식들을 갖다 나르고 있었다. 물론 최한의 물음에 경쾌하게 답했다.
“네! 손에 아무 물건도 없잖아요? 그러면 안전한 겁니다! 병은 안 던지겠다고 하셨거든요!”
최한은 케일을 말했으나, 한스는 본인들을 말했다. 묘하게 어긋난 대화에 최한은 입을 꾹 다물며 한스를 외면했다. 고양이 옆에 있는 한스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았다. 대신에 최한은 호위로서 케일을 살폈다.
“주인장. 여기 술 맛이 좋은데? 상상 이상이야.”
케일은 최한이 살펴보는 것도 모른 채, 진심으로 술맛에 감탄하고 있었다. 술판을 벌인 지 어언 두시간 째. 만일을 위해 술을 안 마신 이들도 몇 있었지만 대개 이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처음 한시간 동안은 눈치를 엄청 보더니. 쯧.’
처음에는 케일이 술판을 벌이니 모이라는 소식에 병사들은 투구를 쓰고 모였다. 순간 기가 찼던 케일은 오늘은 술병을 던지지 않겠다고 말하고 나서야 살벌한 분위기를 풀어놓을 수 있었다.
“이 마을이 작지만 둘러싼 산들이 많지 않습니까. 산 과일과 약초들을 넣어서 만든 특제 술입니다. 그래서 가격이 조금 비싸지요.”
주인인 노인은 본인의 단언대로 술맛이 상당히 좋았다. 케일은 감탄하며 그 술병을 들어 노인에게 주문했다.
“이거 양 많은가?”
“예. 좀 많습니다.”
“그러면 여기 우리 일행들한테 다 돌려.”
“공자님, 그러지 않으셔도-”
부단장이 벌게진 얼굴로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눈동자는 케일의 손에 들린 술병으로 향해 있었다. 병사들의 눈빛도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도 모를 케일이 아니었다.
“그냥 마셔. 내 마음이야. 알겠어?”
산적의 존재에 대해 보고를 하러간 병사 몇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병사들 눈동자가 반짝였다. 케일의 손에 들린 술병을 보며 설레긴 처음이었다.
케일은 곧 많이 팔 생각에 들뜬 여관 주인이 술과 함께 주문한 안주들을 각 테이블 별로 돌리는 것을 날카로운 눈동자로 바라봤다.
케일 헤니투스. 이 인간은 술이 강했다. 얼굴이 쉽게 붉어지고 하도 술만 마시면 망나니 짓을 많이 해 다들 술이 약한 줄 알지만, 실상은 그냥 말짱한 정신으로 망나니 짓을 하던 이였다.
그렇기에 지금 케일의 머릿 속은 선명했다. 그는 한 삼십분 정도 더 술을 마시다가 최한을 보며 말했다.
“최한. 와서 나 좀 부축해. 나 이제 올라가서 쉴란다.”
“공자님. 제가 하겠습니다.”
“됐어. 부단장은 오늘 좀 쉬어. 다른 병사들도. 어제 전투를 하지 않았는가? 여기는 이제 위험한 일도 딱히 없을 것 같고 경비를 서는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닌 이들은 하루 쯤은 좀 놀고 즐겨야지.”
“공자님-”
“피곤하다. 간다.”
부단장이나 다른 이들이 따라오면 상당히 곤란했다. 그리고 그들도 최한이 부축하자 더 이상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술도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마시지 않았고 가장 강했으니까. 그런 이가 호위로 곁에 있으니 걱정이 없는 것이다.
‘이제 한 사람만 남았나.’
여관 정문과 그 밖의 경비를 서는 이들이야 쉽게 피할 수 있지만 론이 남아 있었다. 한스와 론은 둘 다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면 절대 들어오지 않을 이들이다.
다만 둘의 다른 점은, 한스는 자신의 기척까지 파악할 정도의 실력자가 아니었지만 론은 그 정도는 우스운 실력자라는 점이었다.
‘이 노인네는 내가 뭘 하든 말든 관심도 없을테니까.’
사실 론은 케일이 몰래 나가도, 무슨 짓을 해도 신경 하나 안 쓸 것이 뻔했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다만 자신이 귀찮아지는 일이 발생하는 것을 지극히 싫어할 것이기에 미리 말은 해두어야 했다.
케일은 최한과 함께 따라오는 론에게 일러두었다.
“론. 나 밖에 놀러갔다 온다. 비밀이야. 알지?”
이 노인네는 술도 좋아하면서 오늘 술도 하나 마시지 않았다. 대신 자신만 뚫어지게 쳐다봤는데, 역시 무서운 인간이었다. 더 무섭게 론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기다리지 마.”
기다리기는 개뿔이. 역시 론은 케일의 예상대로 다른 말 없이 수긍했다. 케일은 최한의 부축을 받으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쉴 테니까. 위급 상황 아니면 한스, 론. 깨우러 들어오지마. 나 잘 때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예전에 론 대신 한 시종이 케일을 깨우다가 아침부터 욕이란 욕은 다 들어야 했다. 사람을 때리지 않는 케일이었지만, 그 시종은 마치 욕으로 맞은 것 같다고 그 일에 대해 저택에 말하고 다녔다.
“당연히 압니다. 푹 주무십시오.”
“도련님, 저 론은 방 밖에 있겠습니다.”
론의 대답에 케일의 표정이 떨떠름해졌지만 이내 그는 나가는 두 사람을 지켜보다가 부축하고 있던 최한에게 은밀히 지시했다.
“창문으로 소리 없이 내방에 와.”
최한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곧 두 사람을 따라 방 밖으로 나갔고 문이 닫혔다.
냐아아옹.
“이제 해요?”
케일을 따라 올라왔던 온과 홍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상자를 열었다. 달칵. 마법 잠금 장치가 풀리며 한 번 더 모습을 드러낸 상자 속에서 케일은 옷을 하나 꺼내들었다. 옷을 갈아입고 난 후 열려진 창문 밖에서 최한이 들어섰다. 그는 눈을 크게 떴다.
“케일님?”
케일은 검은 복면을 쓰기 전, 손에 들린 검은 옷을 최한에게 던졌다.
“너도 입어.”
어제 심어둔 장치로 마법 영상 저장 장치는 일시 작동이 멈출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케일은 들키기 싫었다. 그래서 대낮부터 술을 마셨고 이 옷들을 준비해왔다.
“이게 뭡니까?”
검은 색의 옷에는 상의 가슴 자리 근처에 하나의 붉은 별을 기점으로 작은 하얀색 별 다섯개가 무늬로 새겨져 있었다.
‘뭐긴. 비밀 단체 옷이지.’
‘영웅의 탄생’ 책에는 최한과 사사건건 부딪치던 비밀 단체의 옷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놓았다. 그 설명을 토대로 케일이 특별 제작한 옷이었다. 혹시 몰라 옷은 따로 만들고 저 별 문양은 케일이 직접 새겼다. 그래서 가까이서 보면 조잡했으나, 멀리서 보면 얼추 그럴싸했다.
이 옷을 본 사람들은 그 조잡함은 보지 못하고 ‘검은 옷에 붉은 별과 하얀 별 다섯개’만 기억할 것이다. 비밀 단체를 직접 만난 후작과 달리 말만 들었던 베니온에게는 이 옷을 목격한 수하의 보고가 아주 골치 아픈 생각거리와 분노를 안겨주리라.
“…나쁜 짓입니까?”
대답이 없는 케일에게 최한이 한 번 더 물음을 던졌다. 검은 복면까지 쓴 케일의 모습은 영락없는 악당이었다.
“어. 나쁜 짓이지.”
케일은 복면 사이로 유일하게 드러난 눈가를 휘며 음흉한 미소를 그려냈다.
“베니온 놈에게는 나쁜 짓이지.”
“아.”
최한은 탄식을 흘리더니 손을 뻗어 케일의 손에 들린 또 다른 복면 하나를 가리켰다.
“주십시오.”
아무리 착한사람이라도 누군가가 밉기 마련이었고 엿 먹여주고 싶은 법이다. 하물며 수십년을 혼자 살아오며 이제 세상에 나온, 이제 17살의 시간에서 벗어나는 이였다.
“아, 그리고 얘들은 묘족의 아이들이야. 수인족이지.”
별 것 아니라는 듯 케일은 최한에게 온과 홍을 소개시켰고 그들도 별다른 말 없이 서로 인사를 주고 받았다. 사람의 진짜 모습에 민감한 묘족 아이들이 최한의 능력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최한도 보통 고양이가 아님은 그간 함께 여행하며 눈치채고 있었다.
“저 녀석은 최한. 얘는 온, 쟤는 홍. 소개 끝이다. 얼른 다들 준비해.”
짧은 준비 시간이 주어졌고 케일은 욕실에서 자신과 똑같이 검은 옷과 검은 복면을 입고 나온 최한에게 명했다.
“가자.”
물론 2층 창문 앞에 서며 덧붙였다.
“2층에서 나갈 때 나 좀 업고 내려가. 나 낙법 모른다.”
최한이 처음으로 케일의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온과 홍이 최한에게 다가가 앞발로 툭툭 토닥여주었다. 그 때 케일이 그들에게 말했다.
“얼른 가자고.”
무사히 여관을 빠져나온 일행들은 자작가의 별장이자, 용의 사육지가 있는 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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