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92
191화.
주교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저 케일을 위아래로 훑어보았을 뿐이었다.
커튼 너머로 경매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첫 번째 물품은 아름다운 털실이 달린 깃펜입니다. 당연히 그 털실의 재료는 아름다운 수인의 흔적이겠죠?”
1번 테라스 안의 정적을 깨기에는 충분히 큰 목소리였다.
“얼마를 원하지?”
메마른 목소리가 테라스 안에 울려퍼졌다. 시종은 담담하게 거래를 시작했다. 본인이 주교임을 밝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다른 말은 묻지 않았다.
당신이 누구냐, 물건을 정말로 손에 쥐고 있냐.
이딴 물음은 하나도 중요치 않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주교에겐 케일이 초대장에 적어 보낸 한 줄이면 충분했다.
그 아래 적힌 문장이 초대장의 의미를 신빙성 있게 만들어주었다.
주교는 죽어버린 교황이 탐욕스러운 사람이라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밤의 환희’를 그에게 바쳤다.
그리고 교황에게는 그런 보물들이 숨겨져 있는 비밀 공간이 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런 장소에 ‘신물’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주교는 교황이 되고 싶었다.
그는 지금 작은 명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눈앞의 하얀 가면을 쓴 남자를 응시했다.
얼마를 원하냐는 물음에 아직 가면 남자는 답하지 않았다. 가면으로 덮이지 않은 입이 천천히 열렸다.
“밤의 환희는 죽은 마나와 닿으면 더 반짝인다지요? 보통 죽은 마나와 닿은 자연계 물질이 중독되는 형상과 다르게 말입니다.”
쓸데없는 말을 하는 가면에게 주교는 실소와 함께 한마디를 건넸다.
“왜? 네놈이 들고 있는 밤의 환희를 들고 가서 신전에 있는 가짜 밤의 환희와 실험이라도 해보자고?”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가면 쓴 남자는 주교를 보며 고개를 저어댔다.
“거 노인네, 성격 한 번 괴팍하네.”
“원래 늙으면 이렇게 돼.”
평신관의 몸이 멈칫거렸다. 하지만 등 뒤로 돌아보지 않았다.
평신관은 숨죽인 채 시종 옷을 입은 주교와 침입자의 대화를 모른 척했다.
“얼마를 원하지?”
주교는 한 번 더 가격을 물었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밤의 환희가 나타났다.
“내가 제국 황실 놈일지 의심은 안 되나 봐?”
하얀 가면이 내뱉는 말에 주교는 퉁명스레 답했다.
“제국 놈이든 아니든 나에게 물건을 팔려고 하는 장사꾼이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지.”
이 인간 꽤 똑똑하네.
맞다. 제국 놈이든 아니든 카로 왕국 사람인 주교에게는 밤의 환희를 도로 얻는 것과 신물에 닿을 기회가 중요했다.
케일은 이 공간에서 만난 주교가 꽤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주교의 착각을 바로잡아 주지는 않았다.
장사꾼.
케일은 장사꾼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냥꾼이었다.
미끼를 하나씩 던져, 벗어날 수 없는 함정까지 차근차근 눈앞의 사냥감을 끌어들일 작정이었다.
그 첫 번째 미끼가 신물이었다.
신물 때문이라도, 주교는 밤의 환희를 살 것이다.
케일과의 끈을 남겨두어야 할 테니까.
케일은 입을 열었다.
“얼마?”
“뭐? 허!”
주교는 기가 차 탄식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눈앞의 놈은 주교에게 먼저 가격을 제시하라고 뻗대고 있었다. 그런데 주교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왜냐고?
누가 유리한지 아는 장사꾼이었으니까.
가면은 자신이 유리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주교를 압박하려고 했다. 주교는 이런 영리한 놈들이 좋았다.
그래야 다루기 좋았다. 합리적인 인간만큼 이득에 명확한 사람은 없으니까.
“50.”
주교가 50억을 내뱉었다.
밤의 환희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매겨진 값어치였다.
아주 오래전임을 생각하면 상당한 가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케일은 단호했다.
“얼마?”
주교는 담담하게 답했다.
“60.”
두 사람의 레이스. 경매가 시작되었다.
대화는 단조로웠다.
“얼마?”
“70.”
테라스 너머로 경매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지금 3억 카운드 나왔습니다! 더 없으십니까? 아! 3억 1천 카운드!”
동시에 케일은 되물었다.
“얼마?”
평신관은 다시 내뱉은 두 글자에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초조한 듯이 굴었다. 커튼으로 가려진 앞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자꾸 멈칫거렸다.
“80.”
평신관은 주교의 대답에 숨을 들이켰다.
주교도 침입자도 참 숨 막히는 사람들이었다.
“얼마?”
케일이 한 번 더 물은 순간, 주교는 눈앞의 놈이 지루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100.”
100억.
단위가 올랐다.
값어치가 두 배가 되었지만, 주교는 가면 너머의 눈빛을 보고는 단번에 알아챘다.
아직 끝이 아니구나.
케일의 입이 열리기 전, 주교의 입이 먼저 열렸다.
“150.”
이제 그는 밤의 환희의 가치에 신물과 교황직을 걸었다.
그는 덧붙였다.
“단, 100억 이후부터는 한 번에 지급이 불가네.”
“얼마?”
허.
주교는 결국 탄식을 흘렸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가면을 노려보았다.
“입에 붙은 말이 얼마, 그 말뿐이더냐? 이런 노인 공경도 모르는 고얀 놈. 입만 짧아가지고.”
타박하는 것 같으면서도 정겨운 어조였다. 사뭇 친근감까지 보이는 말투였지만 그딴 연기에 속을 케일이 아니었다.
케일은 이제 말도 귀찮아 눈빛으로 물었다.
‘얼마?’
주교는 두 손을 펼쳐들며 답했다.
“200.”
헉. 평신관이 깊이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금액에 놀란 듯한 모습이었다.
“더는 안 되네.”
주교도 지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심으로 더는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케일은 김록수일 적 깨달은 바가 하나 있었다.
‘뒤가 구린 놈들일수록, 한 번 더 해.’
자신에게 일을 가르쳐 주었던 전 팀장이 팀장 자리를 자신에게 넘겨주며 했던 말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이 담긴 조언은 대개 맞아떨어졌다.
“얼마?”
“이런, 개새끼가 있나.”
주교는 아예 대놓고 욕을 해댔다.
케일은, 김록수는 어차피 일을 하며 별별 새끼란 새끼 소리는 다 들어봤기에 그러려니 했다. 원래 구린 놈일수록 궁지에 몰리면 말이 거칠어지는 법이다.
주교는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220.”
“230.”
“…고얀 놈.”
밤의 환희 가격은 230억 카운드가 되었다. 주교는 진이 다 빠진 얼굴로 마른세수를 해댔다. 하지만 케일은 그 모습에서 김록수일 적 전 팀장에게 들은 한 가지를 더 떠올렸다.
‘그리고 뒤가 구린데 돈도 많은 놈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봐.’
하지만 케일은 굳이 한 번 더 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써먹을 놈이면 숨 쉴 틈은 내버려 두고.’
써먹을 놈이니, 악착같이 뜯어내서 관계를 파탄 낼 필요는 없었으니까.
케일은 미래를 기약하며 시종이 평신관을 부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평신관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보며 작은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옜다. 100억이다.”
그리고 주교는 이를 그대로 케일에게 던졌다.
“역시 치밀하시군요.”
언제 말을 놓았냐는 듯 케일은 정중하게 돈주머니를 받아 들며 입꼬리를 올렸고 주교는 혀를 찼다.
그런 그에게 케일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나중에 한 번 더 뵙죠.”
이번엔 주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신물을 들고 찾아뵌다는 말로 들렸으니까.
케일은 품에서 쪽지를 꺼내 한쪽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남은 130억을 보내줄 장소였다.
촤르르륵.
다시 커튼이 열렸다. 케일은 돈주머니만을 챙겨 들고 테라스 밖으로 사라졌다.
쩔쩔매는 척했던 평신관이 태연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긴장이 사라진 얼굴은 주교 얼굴만큼이나 메마르고 차갑게 생겼다.
오히려 그 눈빛은 더 매서웠다.
“백발에 대해서 알아봐.”
“네, 주교님.”
그리고 시종인 척했던 주교는 평신관에게 고개를 숙였다. 달칵, 달칵. 시종의 품에 있던 마법 장치가 작동했고, 시종의 얼굴은 40대 남자의 얼굴로 변했다. 자잘한 흉터로 가득한 얼굴은 전사보다는 암살자가 어울려 보였다.
평신관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소파 깊숙이 몸을 기대었다. 평신관은 시종에게서 마법 장치를 건네받았다. 달칵. 순식간에 얼굴이 주교로 바뀌었다.
그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입을 열었다.
“늙은 겉가죽을 만지는 것도 참 짜증 나는 일이란 말이야.”
신관의 목소리도 노인으로 변해 있었다.
“늙은 척하는 것도 참 힘들어. 그래도 내가 이전 주교를 죽인 건 모르는 것 같지?”
“네, 모르는 것 같습니다.”
“백발이니, 파에른을 알아보도록.”
“네.”
평신관은 마법 장치를 매만졌다.
그리고 케일은 4번 테라스로 들어서며 라온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인간, 왜 변신 마법을 썼는데 모른 척했나? 그 정도 마법 장치면 구하기 힘들 거다! 귀한 거다!
케일은 미소를 그렸다.
“공자님, 오셨습니까?”
빌로스는 웃으며 가면을 벗어 던지는 케일의 모습에 얼른 커튼을 쳤다.
“잘 해결되셨습니까?”
“어.”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왜 모른 척했나? 나 궁금하다! 그리고 네 말대로 평신관은 겁먹은 척했지만 눈빛은 하나도 안 흔들렸다.
라온의 말을 무시하며, 성자 잭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주교의 외모를 설명해 주었다.
진짜 외모를 말이다.
‘카로 왕국 주교는 마른 체형에 날카롭게 생긴 30대 여자입니다. 그게 진짜 모습입니다.’
케일은 헛웃음을 흘렸다.
“참 무섭단 말이야.”
역시 판타지 세상은 무서웠다.
그때였다.
음?
뒷덜미가 섬뜩했다.
“도련님.”
론이 레모네이드를 내밀었다. 케일은 뒷덜미의 한기를 느끼며 론의 눈빛을 살폈다. 그 순간, 라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인간, 이제 바쁜 건 끝났나?
대충?
케일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라온이 말했다.
-인간 네가 왕세자 무시하라고 해서 영상통신 무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해서 말한다.
음?
진짜로 무시했다고?
케일은 영상통신을 정말로 착실히 무시할 줄은 몰랐다. 그는 라온이 얼마나 그의 말을 세심하게 기억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였다. 케일은 점점 더 추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라온은 해맑게 말했다.
-아까 주교랑 말할 때부터 연락이 온다. 벌써 10번째 영상통신 신호를 보냈다!
뭐라고?
‘그’ 왕세자 알베르가 10번 연락했다고?
-그리고 음성을 하나 남겼다. 그래서 일단 너에게만 들려준다.
케일은 레모네이드가 담긴 잔을 세게 움켜쥐었다.
왕세자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북 3국이 움직인다.
…뭐?
케일은 순간 제대로 못 알아들었다.
파에른이 움직인다고?
아직 2월인데?
바다도 아직 안 녹았는데?
왜?
“빌어처먹을.”
케일은 레모네이드를 들이켰다. 신맛에 얼굴이 있는 대로 찡그려졌다.
“공자님?”
빌로스가 놀라서 바라봤다. 케일은 주교에게서 받은 돈주머니를 빌로스에게 던졌다. 빌로스는 얼떨결에 그 주머니를 받았다.
케일은 그에게 지시했다.
“늑대왕 흔적, 그거 얻어놔.”
“네?”
“안에 백억 있으니까, 알아서 해.”
“네, 네? 배, 백억이요?”
빌로스가 기함하든 말든 케일은 말을 이었다.
“론과 함께 난 먼저 나간다. 론, 앞장서.”
그는 빌로스의 시종으로 함께 온 론을 앞장세우고 곧바로 투명화를 한 채 테라스를 벗어나 빠르게 숙소로 향했다.
-인간, 음성이 하나 더 왔다.
라온은 바삐 걸어가는 케일에게 말했다.
-좀 받아라. 일단 너와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으니.
케일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왕세자인 사람이 나 같은 귀족 나부랭이랑 얘기해서 뭘 하게?’
뒷덜미는 서늘하고, 입안에는 신맛이 감돌고, 갑자기 예상 밖의 일이 터지고.
‘환장하겠네.’
짜증이 치솟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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