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93
192화.
알베르 크로스만.
영상 통신구 너머 그의 꼴은 좋지 못했다.
늘 왕자답게 화사하면서 깔끔하게 차려입었던 이가 머리칼도 흐트러트린 채 집무실 의자에 기대어 있었다.
“존귀하신 저하의 얼굴을 보니 제 마음이 퍽 아프군요.”
-퍽이나.
왕세자는 편안한 소리를 해대는 케일 헤니투스에게 한 소리를 하려다가 그의 모습도 썩 좋지 않아 말을 더 잇지 않았다.
알베르는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노르란드로 파에른의 기사들이 들어가는 것을 파악했다.
파에른, 노르란드, 아스코산.
북 3국의 이름이었다.
그중 노르란드는 어둠의 숲 너머 북쪽 왕국이었다. 어둠의 숲만 없었다면 로운 왕국과 맞닿아있을 왕국이었다.
-그리고 정보원은 그 정보를 끝으로 영상 통신구를 파괴했어.
노르란드로 파견 나간 정보원은 왕세자의 수족인 다크엘프였다.
-아직 정보원의 정령이 되돌아오지 않은 걸로 봐서 죽진 않은 것 같더군.
“살아 돌아올 겁니다.”
케일의 대답에 알베르는 피식 웃고는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현재 브렉 왕국과 협조해 아스코산으로 파에른의 기사들이 갔는지 확인 중이다.
아스코산은 죽음의 협곡을 사이에 두고 브렉 왕국과 가장 가까운 왕국이었다.
“아스코산에도 파에른의 기사가 갔을 확률이 높겠군요.”
-그렇지.
정보원이 건넨 정보에 따르면 기사의 수가 최소 수십에 달했다.
북쪽 기사의 나라, 파에른. 아무리 기사가 많다고 해도 수십을 타국에 보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상해.
그래서 왕세자 알베르는 이상했다.
-아직 바다로 넘어오기는 이른데, 무슨 생각인 것이지?
괜히 로운 왕국과 브렉 왕국이 봄을 대비했던 게 아니었다. 아스코산과 노르란드는 비교적 북쪽 초입부였으나, 동북부를 차지하는 로운 왕국보다는 확실히 더 북부였다.
분명 아직 그 해안가는 얼어 있을 것이다.
특히 지금은 가장 추운 때 중 하나인 2월 초 아닌가?
‘기사가 움직이면 뒤이어 병사들이 움직일 터.’
만약 로운 왕국이 북 3국의 야욕을 몰랐다면, 그냥 군사 훈련이라고 애써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바다로 넘어오기는 일러. 물론 2월 중순이 되면 일부 해안가는 녹겠지. 그러나 손해야. 인력 낭비가 심해.
왜 지금 움직이지?
그렇게까지 북 3국은 빨리 전쟁을 벌이고 싶은 건가?
알베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생각보다 북 3국의 선택이 공격적이었다. 수십의 기사들을 양국에 보낸 파에른의 행동은 타국들 눈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그런 행동을 취한 것은 그만한 의지가 있음을 뜻했다.
그는 로운 왕국 동북부의 해안가를 떠올렸다. 해군 기지 건설. 이 사실은 이미 퍼져 있었다. 최대한 보안을 유지했지만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군 기지가 아직 초반 단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수십 척의 배가 완성되어 마법사들의 보안 아래서 전쟁을 대비 중이었다.
‘그것도 이놈 덕이지.’
알베르는 케일을 응시했다.
그의 수하인 쥐족 혼혈 드워프. 지금은 헤니투스 영지로 돌아갔지만 우바르 해안가에 머물면서 설계도를 손봐주었다.
그 덕분에 생각보다 빠르게 배 건조가 가능했다.
그런데 봄을 대비하던 계획들이 틀어졌다.
정보원도 발각되었다.
‘내가 뭘 놓친 거지?’
하나.
알 수 없는 하나를 놓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걸 알지 않는 이상 이 꽉 막힌 머릿속을 정리할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
알베르는 갑갑하게 목을 조이는 넥타이를 풀어젖혔다.
-케일, 넌 뭐가 보이나?
알베르가 답답한 목소리로 물었다.
답답한 티를 낼 놈도 이놈뿐이고, 태연한 모습을 보면 안심이 될 것 같아 연락했다.
그러다가 이내 실소를 흘렸다.
-아니, 너라고 뭐가 보이겠나?
“와이번.”
알베르의 웃음이 멈췄다.
케일은 영상 통신구 화면으로 자신을 뚫어질 듯이 쳐다보는 왕세자가 보였다.
“와이번 기사단이 부활했습니다.”
알베르의 눈동자가 커졌다.
파에른의 전설이자 현재 존재하는 수호 기사, 그가 이끌던 와이번 기사단.
알베르는 순간 머릿속이 맑아졌다.
-하늘이군.
배가 아니었다.
아니, 배도 온다. 그러나 하늘이 먼저였고 그 뒤가 배였다.
그런데 하늘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왕세자의 총명한 눈동자가 케일에게로 향했다.
-…언제 알았지?
“파에른 호수에 불난 것 아십니까?”
-너냐?
“네. 그때 알았습니다. 보고는 까먹었습니다.”
-이런 개새- 하.
케일은 태연히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 행동에 한숨을 쉬던 알베르의 눈빛이 묘해졌다. 생각보다 케일이 너무 평온해 보였다.
-…우리 똑똑한 케일 공자. 하늘로 오면 어둠의 숲을 넘어서 날아올 텐데, 헤니투스 백작가가 괜찮을까?
알베르는 케일의 입꼬리가 씰룩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케일은 참 오래 기다렸다.
처음에는 책 내용과 달라 당황했지만, 이미 책 내용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다가올 앞날을 준비하고 또 준비했다.
이제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저하.”
-그래.
“동북부 군사명령권을 준비해 주십시오.”
하.
알베르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주 태연하게 큰 것을 요구한다.
그래, 이래야지.
이래야 케일 헤니투스지.
알베르의 귓가로 케일의 요구가 더 이어졌다.
“기사단과 저하의 마법병단 1대대를 상시 대기 시켜주십시오.”
케일은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기다리세요.”
알베르는 손으로 눈가를 쓸어내렸다.
이 미친놈.
기다리라니, 알아서 막는다는 소리 아닌가?
그는 웃으며 케일에게 물었다.
-지금껏 뭘 하고 있었던 거지?
케일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시건방진 놈.
거친 말과 달리 알베르 왕세자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는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돈하듯 쓸어넘겼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도 알았다.
-네크로맨서를 다시 네 밑으로 불러들인 이유가 있었군. 마음껏 알아서 해. 뒤처리는 내가 하지.
“권력이나 틀어쥐십시오.”
-걱정 마. 전쟁 터지면 다 내 손안이야.
이제야 평소다워진 알베르는 맑은 머릿속으로 앞으로 할 일을 최대한 앞당길 계획을 짰다. 그 때, 생각에 빠진 알베르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케일의 몸이 살짝 움찔거렸다.
라온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겨우 와이번 따위를 타고 우리 집을 부수려고 한단 말인가? 진심으로?
케일은 상당히 진지한 목소리에 서늘해져 왔다. 여섯 살의 진심이 듬뿍 담긴 말이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어쨌든 나는 내 할 일을 할 테니, 넌 네 할 거 마음대로 해.
뚝.
예고도 없이 영상통신이 끊겼다.
케일은 소파에 몸을 기대며 꺼진 영상 통신구를 쳐다봤다.
할 일이 또 많아졌다.
케일은 다음 날 늑대왕의 흔적을 손에 든 채로 곧바로 영지로 향했다.
***
“아버지.”
“그래.”
오랜만에 마주한 부자였지만 분위기는 좋지 못했다.
데르트 백작은 따뜻한 차를 마시며 속을 데웠다. 그는 아들 케일에게 이미 영상통신으로 내용을 들었다.
“파에른의 기사들이 노르란드로 갔다고?”
“네.”
“그리고 와이번을 타고 넘어올 것 같고?”
“네.”
“브렉 왕국과 로운 서북부 쪽은 아스코산에서 넘어올 것 같고?”
“그렇죠.”
탁.
찻잔이 테이블 위에 놓여졌다.
데르트 백작은 집무실에 걸린 영지기를 쳐다봤다.
가문의 상징인 황금 거북이가 보였다.
그는 아들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알았다.”
그 단어면 충분했다.
“헤니투스는 원래 무가이고, 로운 동북부의 방벽이지.”
데르트는 비록 전사는 아니지만 검을 다뤘고 무(武)를, 힘을 잊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구석 영지에서 왜 기사단에 공을 들였겠는가.
황금 거북이.
평온하게 오래 살려면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
그는 자신과 달리 제 엄마를 닮아 유일하게 가문에서 붉은 머리칼인 아들을 응시했다.
“영지 일도 내 일이고, 아들을 돕는 것도 내 일이지.”
그는 케일이 영상 통신구를 통해 부탁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데르트 백작은 아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번 해보자.”
언젠가 케일이 그에게 했던 말.
‘아버지, 한번 해봅시다.’
그 말을 아버지는 잊지 않았다.
작년 늦가을부터 지금까지 영지 병력을 늘리는 데 열중했으며, 아들의 말을 들은 후론 영지 창고를 식량으로 꽉꽉 채워두었다.
성벽도, 영지의 모든 땅의 수비와 연락책에도 신경을 써두었다.
케일은 데르트 백작의 손을 잡았다.
“은밀히,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케일은 꽉 마주 잡은 데르트 백작의 손힘에서 그의 대답을 들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가 더 이상 데르트 백작에게 말해둘 것은 없었다.
그렇기에 케일은 곧바로 영주성을 벗어나 어둠의 숲으로 향했다.
그는 검은 늪이 있던 장소에 서서 늪의 흔적만 있는 메마른 땅을 내려다봤다.
“여기도 오랜만입니다. 좋습니다. 그리웠습니다.”
검은 로브를 둘러쓴 네크로맨서 메리가 케일의 곁에서 연신 말을 내뱉었다. 기계적인 목소리에는 언뜻언뜻 반가움이 내려서 있었다.
“그랬냐, 메리야? 나도 약한 인간이랑 너랑 보니 좋다! 역시 우리 마당이 최고다.”
그리고 그 옆의 검은 용이 날개를 파닥이며 메리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러면서도 검은 로브와 검은 용은 힐끔힐끔 케일의 눈치를 봤다.
파에른 기사의 이동.
이 소식을 접한 후로, 케일은 유독 말이 없었다. 라온은 그 사실을 떠올리며 코끝을 찡긋거렸다. 라온의 입이 열렸다.
“인간, 걱정 마라. 아무도 안 다친-”
“케일 님!”
하지만 라온의 말은 다른 이에 의해 멈춰졌다.
검은 늪으로 최한과 호랑이 주술사 가샨, 늑대 소년 라크가 들어서고 있었다.
케일이 부른 이들이었다.
그들은 대강의 내용을 전해 들어 표정이 어두웠다. 물론 가샨의 경우에는 살짝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그들은 등진 채 검은 늪만을 응시하는 케일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나 케일은 아무 말도 없었고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공자님-”
가샨이 케일을 불렀다. 그때, 케일이 뒤돌아섰다.
담담한 최한, 호전성을 드러내는 호랑이 가샨, 더불어 쭈뼛거리며 다가오는 늑대족 라크.
“최한, 가샨.”
“네, 케일 님.”
“어서 말씀하십시오, 공자님.”
케일의 시선이 서쪽을 향했다.
“죽음의 협곡에 간다. 준비해.”
케일은 라크의 눈동자로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멈칫했지만, 그래도 전보다 당당하게 눈빛을 받아내었다. 오랜만에 케일과 제대로 움직이게 되었으니 긴장한 게 여실히 보였다.
최한과의 훈련으로 강해진 것이 케일의 눈으로도 보였다.
하지만 그래 봤자, 부족했다.
늑대족은 집단, 가족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늑대족이 성장할 때는 혼자일 때였다.
상실, 괴로움. 혼자일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필요했다. 그 감정이 있어야 한 가지 감정을 더 깨달을 수 있었다.
늑대족에게는 진리나 다름없는 감정.
케일은 품안의 물건을 떠올렸다.
늑대왕의 흔적.
그것은 일기였다.
피로 새겨진 일기.
케일은 지시를 기다리는 라크에게 말했다.
“라크, 너도 간다. 준비해.”
“네, 네!”
늑대왕은 다시 세상에 그 이름을 떨쳐야 한다.
“메리.”
“네?”
검은 로브가 들썩이며 케일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곧이어 들려오는 소리에 그녀의 시선은 검은 늪으로 향했다.
쿠웅-
케일의 손에 들린 아공간 주머니에서 나온 물체.
라온이 특수 제작 했던 아공간 주머니였다.
“음.”
늑대족 라크는 멈칫하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소년의 눈동자가 검은 늪 중앙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그의 귓가로 주술사 가샨의 탄식이 들려왔다.
“용이라니.”
용의 시체가, 하얀 백골이 메마른 늪 중앙에 자리해 있었다.
거대한 고룡의 잔재는 뼈만이 남겨져 있다 해도 큰 압박감을 주었다.
재작년 케일이 ‘지배하는 아우라’를 얻었던 장소에서 발견한 그 용 시체였다.
“…아.”
메리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케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케일은 메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입이 열렸다.
“조종해라.”
그는 네크로맨서 메리에게 지시했다. 몇 초의 정적 뒤, 검은 로브에서 단단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합니다.”
“그래.”
당연히 여기는 케일의 반응에, 메리는 검은 로브 안쪽에 있는 주먹에 힘을 주었다.
케일은 하늘을 쳐다봤다.
용은 와이번을 잡아먹고 동쪽 하늘을 지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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